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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4월 초
무굴의 상황은 최악에 이르었다. 갑작스런 조정의 몽진으로 인하여 국가조직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어 치안이 심각히 악화되었다. 결국 각지의 군벌세력 및 지방귀족들은 자체적으로 정치조직을 구성, 러시아와의 결전에 임하는 반면 백성들의 피란을 위하여 순군을 배치하였다.
러시아 선발대의 황도 점령 2달전.
제6 무라타시는 10만의 가병을 이끌고 은밀히 알라하바드로 가고있었다. 그들의 존재는 오직 제1 무라타시와 황제만이 알고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무굴군 통합사령부
-아프가니스탄 통합사병부 30일간의 기록
1846년 5월 23일
칸다하르 주둔 제국군 5만 러시아군 5천에게 대패 제국군 3만 칸다하르 북부산악지대로 퇴각. 임시정부로 전령 파견.
1846년 5월 30일
칸다하르 주둔 제국군 3만,순군 20만 칸다하르 남부주둔 러시아군 1만 급습. 러시아군 퇴각. 제국군 5천 순군 9천 사상
1846년 6월 3일
52군단,3군단,9군단,51군단 연락 두절. 통합사령부에서 역병조짐. 러시아군의 아프가니스탄 포휘로 외부정보 차단. 군사들 내에서 무굴제국이 이미 멸망하였다는 소문이 돔.
1846년 6월 5일
3군단 전령도착. 3군단 전멸. 순군 5만 사망 5천 부상. 생존 5천명 가즈니 주둔 10군단에 배속조치
1846년 6월 10일
1,2,4,5,81,72 군단 연락 두절. 통합사령부군 역병으로 9만명 사망 약품부족으로 병자까지 산채로 화장.
1846년 6월 11일
피란민 구출 목적으로 가즈니 외곽으로 노예군 45연대와 48연대 파견. 군사들 내에서 정신병자와 자살자가 속출. 장교들 내에서도 무굴이 이미 멸망하였다는 소문이 널리 퍼짐.
1846년 6월 12일
페이자바드 주둔 99,100,101 군단 러시아군과 교전.
러시아군 후퇴. 참전 병력 9만 8천 중 8만명 사망. 3군단 101군단으로 통합
1846년 6월 14일
1201 소대 순찰도중 피란민 구출 파견군 45연대,48연대 발견. 피란민 8만명과 절멸[絶滅] 추정. 통합사령부 식량사정 최악. 임시정부의 지령 바람.
1846년 6월 18일
노예군 10군단 4만명 반란. 순군 20만 투입. 임시정부로 전령을 파견하였으나 러시아군에게 전원 피살.
1846년 6월 20일
파라 주둔군 40군단,45군단,53군단,92군단,33군단 러시아군에게 대패. 철수 직전 피란민 40만명 구출. 잔류한 피란민 20만명 집단 자살. 피란민에게 이미 무굴이 멸망하였다는 정보를 획득. 사령부에서 사기저하를 막기위해 비밀로 부치다.
1846년 6월 24일
수색대 502 소대가 통합사령부로 러시아군 5만 진군 목격.
1846년 6월 27일
통합사령부군 15만 러시아군 5만과 최초 교전. 임시정부로 마지막으로 전령파견. 사령관이 전문을 쓰고 아직 무굴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음을 터뜨린뒤 자결.
1846년 6월 30일
통합사령부 해체.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60만명 절멸. 무굴인 80만명 부하라로 피란. 무굴군 9만 부하라로 퇴각.
통합사령부의 해체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생존군 50만 대혼란 예상.
"황제폐하! 대황제폐하..! 평화협정을 승인하옵소서~~!"
"승인 하옵소서~!"
1846년 8월 29일
안다만 임시정부로 러시아군 사령안 네르안시츠의 문서가 도착하였다.
엄청난 수준의 영토를 요구하는 이들의 요구이지만 이미 무굴군 300만 이상이 괴멸한 지금 무굴 전체를 삼키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관용(?)에 임시정부의 문부백관 7천은 행궁에서 황제의 승낙이 떨어지기를 빌며 시위중이었다.
"무라타시 전하 이곳은 왜 오신겁니까! 사방이 이미 러시아군인데 빨리 남하하셔야 합니다!"
"기다려봐.. 이곳 근처에 있을 터인데.."
"42소대 정찰조 소대장 리바더스! 무라타시 전하! 찾았습니다! 무라타시 양병소입니다!"
"하하하!!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군!"
"무..무라타시 양병소라니.. 무라타시 전하.. 그곳이 황도에서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모를수도 있겠지! 엄청나게 험한 산속을 100만명이 넘는 인부가 절벽을 깍아 만든 무라타시 양병소이지! 들어가기는 쉬우나 나오기는 힘든 곳.. 그립군.. 42연대장!"
"예 전하!"
"폭약을 터뜨려 철문을 무너뜨려라! 무라타시 훈련생들을 위해!"
1846년 11월 13일
제6 무라타시 휘하 군사 8만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는 경악에 빠졌다.
10년간 절벽에 싸인 이곳에서 살아남은 80만명의 훈련생들은 제6 무라타시가 꺼낸 황제의 검을 보고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였으며 2일만에 무라타시 양병소에 있는 200만정의 신식총과 10억개의 탄환 및 수십만근의 화약을 자체 배분하고 군제를 개편하였다. 또한 제6 무라타시의 출정 명령을 하달 받고 북소리와 발걸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침묵속에 험한 산길을 나아갔다.
무굴 페르시아 파견 사령부
"제3 무라타시전하! 1847년 1월 15일 부로 전 무굴 생존군 담간으로 집결했습니다!
1군단,15군단,32군단,43군단,46군단 제국군 24만 무라타시 전하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는 무굴군의 반격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한다! 지금 페르시아 동부지방은 그야말로 무주공산! 전군 진격하여 러시아군을 분산시켜 항전하고 있는 무굴군의 전열이 가다듬어 질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당장 세부제바르로 진격명령을 내려라!"
"무라타시 전하 구천세!"
1847년 3월
대러시아 전선은 매우 심각한 혼란 속에 싸여 있었다. 전선은 붕괴되었으며 네팔부근의 무라타시 훈련생들로 이뤄진 군은 러시아군에게 포위되었고 각지의 생존부대들은 번국으로 후퇴하여 황제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황제는 친히 제1 무라타시를 의계세서과교 대군장 식읍 50만호 대장군의 직책을 내려 중부무굴지역에 전선을 형성하여 피란민들을 보호토록하였다.
각지에서의 항전은 점차 러시아군의 전략과 무기를 간파하여 효과를 거두고 있었는데 특히 무라타시 훈련생들의 항전소식은 무굴 전체를 환희에 빠트렸다. 특히 칸푸르대전에서는 무라타시 훈련생 50만이 러시아군 30만을 몰살시켜 대러시아 전쟁에서 최대의 승전으로 기록되었다. 칸푸르에서의 승리소식은 입을 타고 전 무굴제국으로 퍼져나갔으며 "러시아는 절대 이길수 없다" 라는 소문을 잠재우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무굴군에 자원하는 숫자를 크게 늘려주었다.
게다가 러시아군은 수십발의 총알을 맞고도 끄떡없이 일어나 창을 던지는 무라타시가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에 맞쳐 제후국 마이소르의 국왕 국제의들사천은 사비 5만 파운드를 쏟아 신식군 50만을 양병하였으며 황제폐하에게 이들을 제국군에 편입토록 청하였다.이 소식을 들은 황제폐하는 친히 국비 6만 파운드와 마이소르 신식군 50만을 무굴의 정식 제국군에 편입하도록 하는 친서를 내려주었고 이들을 제1 무라타시에게 배속시켰다.
중부무굴의 전선이 이뤄지자 다급한 러시아국은 황제의 친서로 평화교섭을 맺으려 하였으며 마침 중부 무굴 통합사령부로 천도한 황제는 이들의 혀와 눈을 뽑고 모욕하였다.
1849년
대러시아 전쟁 발발 6년
전열을 갖춘 중부 무굴 통합사령부군 170만은 전선을 펼쳐 효과적으로 러시아군을 막아내었으며 중부 무굴 통합사령부로 천도한 황제가 직접 칼로 러시아 사절단의 수장을 목을 친후 북진[北進]을 명하였다. 무굴의 황제가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한 연설은 서구 열강에도 전해져 무굴의 호전성을 두려워 하게 하였다.
"짐은 제국이 패할지언정 나는 7살 먹은 어린아이에게 창을 주어 싸우게 할것이며 칠순[七旬]이 넘은 노인네에게 돌을 주어 던지게 할 것이다! 결국 이 나라 수억 백성이 모두 죽어 짐 혼자 남더라도 제국이 패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리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짐은 곧 제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너희들은 자신의 죽음에 연연해 하지마라 너희들이 절멸하더라도 나는 너희들의 자식과 부모를 징집[徵集]하면 된다. 또 너희들이 사지를 잃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쌀 한톨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멀쩡히 살아 돌아와라! 패하더라도 사지 멀쩡히 돌아온다면 나는 너희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보아라! 이 무굴제국이 세계를 재패 하는 것을 말이다!"
1851년
북진은 순로롭게 이뤄지고 있다. 황제께선 황도로 돌아가 살아남은 황도인들을 위로하셨으며 약탈당한 황궁과 선대능들을 복원시키셨다.
1851년 6월 2일
제1 제3 무라타시가 자신들의 군을 이끌고 라호르에서 십수년만에 재회하였다. 두 무라타시의 재회소식을 들은 러시아군 총사령관 네르안시츠는 가용할수 있는 전군을 이끌고 라호르로 진격한다.
1851년 8월 6일
두 무라타시가 이끄는 제국군 50만이 러시아군 30만과의 접전 끝에 러시아군 22만을 죽이고 네르안시츠를 포획하였다. 네르안시츠는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자결하였다. 이로써 러시아군 주력이 소멸하였다.
1851년 9월
부하라 주둔 78,111,15,3 군단과 연락이 닿다. 79연대 3소대가 무라타시의 전문을 보내자 번국 주둔 4군 사령관이 이에 응하고 제국군 5만 순군 2만 노예군 2만을 이끌고 남하하다. 이들을 주축으로 아프가니스탄 통합 사령부가 부활하다.
1852년 2월 9일
아프가니스탄 통합 사령부군 40만이 러시아군 20만과 카불에서 5개월간의 접전끝에 러시아군 10만을 죽이고 8만을 사로잡다. 무굴군은 20만명이 사망하였다. 이 전투의 여파로 카불의 인구는 일전 수십만 단위에서 수백단위로 줄었다.
1852년 2월 15일
무굴의 황제 미시브가 붕어하다. 전쟁의 긴장속에서 잇따르는 업무에 과로하다 죽은 것으로 보인다며 주치의가 자결직전 유서를 남겼다. 황제의 유언대로 시신은 제2 근위함대가 인도양 한 가운데서 화장한뒤 뿌려지다. 성은을 입은 후궁 및 궁녀는 순장치 않고 원하는 자에 한에 속세로 보내주었다. 무굴군 400만은 러시아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달간 전투를 중지하였다.
1852년 3월 14일
러시아황제의 조의사신단이 오다. 무굴 조정에서 러시아 조의사신단의 무조건 평화협정 제의에 긍정을 표한다. 조의사신단은 제2 친위전대의 안내로 인도양 한 가운데서 선대황에게 중국식 제를 지내주었다.
1852년 4월 1일
황궁에 숙박중인 러시아 조의사신단을 급진청년장교파 50명이 급습하여 조의사신단 76명이 전원 사망하다. 당황한 황실은 급진청년장교파 수뇌진에게 정권을 이양하다.
1852년 4월 3일
선대황의 막내아들 사려고가 청년장교파의 지지로 즉위하다. 이때 사려고의 나이 8살이다. 사려고는 앳된 목소리로 즉위식에서 러시아 응징을 선포한다.
1852년 4월 5일
무굴 제국군 250만이 러시아 국경을 돌파하다. 돌파 직후 러시아군 50만을 괴멸시키다.
이겼내여.. 이겼내요... 다음화에서 간략히 러시아 영토 급습장면 조금 넣고 영토 할양 받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음화에선 전쟁씬 보다는 국가부채를 갚아나가야 되겠군요 부채가 수십만 파운드라서 말이죠.. 솔직히 수백사단을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실껏 아닙니까 ㅠㅠ 중국 털어서 돈이나 얻어야지.. 오스만에게 얻은 영토를 영국한테 팔아서 돈도 만들고..
그리고! 전쟁은 근성이다! 근성만 있으면 하와이로 미국도 물리친다!
첫댓글 하와이로 미국은 못 물리칠 것 같은데요;; ㅋㅋ 역시 이기셨군요. 근데 중국 배상금 테크는 쓰시면 좀 재미없을 것 같은데...
정말 어떤 치트도 없이 이걸 이기신 겁니까;
저..저는 잠시 제가 이긴줄도 몰랐습니다..
용....용... 용자다..
크하하하 파산을각오하면 안돼는게없어요 맨파워만있다면 말이죠....
역시 형님아gg님 당신을 믿습니다
역시 이기셨군여 ㄷㄷㄷㄷ...
......아아........... /감동 용자시네요....하하하하.,,
우와... 그상황에 이런 역전이.... +_+ / 그나저나 이로 인하여 본격 하와이로 미국 먹어치우는 연대기 연재 결정인건가요?;;
그.. 그건
용자왕 형님아 gg
오...대단하십니다.
와.... 어떻게 저걸 이기시죠? 정말 대단하심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