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탐매기
이월 초 입춘 이튿날은 월요일이었다. 간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에도 그치질 않고 부슬부슬했다. 새벽잠에서 깨 어제 댓거리로 나가 임항선 그린 웨이 산책에서 본 능수매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평소 지기들에게 사진과 곁들여 보내는 작품으로 준비해둔 ‘버들개지’는 후 순위로 미루고 ‘임항선 능수매’로 대체했다. 올해 우리 지역 매화 개화는 예년보다 조금 빠른 편이다.
날이 밝아오기 전 어둠 속 제법 먼 동선이 예상된 산책을 나섰다. 창원대삼거리로 나가 김해 불암동으로 가는 97번 좌석버스를 탔다. 김해 상동 용당나루와 가야사 고적 복원으로 이전을 앞둔 김해건설공고 교정에 피는 매화를 완상하기 위해서다. 나흘 전에도 평소 교류가 있는 세 문우와 탐매를 다녀온 곳이다. 그날은 꽃망울이 갓 피려는 즈음이라 며칠 사이 개화 상태가 궁금했다.
출세간 수행승으로 불자를 향한 법문보다 일반인에게는 글로 더 친숙하게 다가왔던 법정 스님이 있었다. 15년 전 봄이 오던 길목 스님은 병세가 깊어 입적하기 전, 그가 남겼던 다수 책은 더 이상 찍어내지 마십사하고 다비 후 재를 뒤져 사리도 찾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구름처럼 사라졌다. 스님의 맑은 영혼은 혼탁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우산을 받쳐 쓰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불현듯 법정 스님 글에서 본 ‘매화는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답고 벚꽃은 활짝 피어나야 아름답다’는 구절이 머릿속 맴돌았다. 산중에서 홀로 보낸 시간이 많았을 법정 스님은 이른 봄 두 나무가 꽃을 피우는 상황도 잘 지켜본 듯했다. 실제로 매화는 반쯤 피었을 때 향기가 진하고 벚꽃은 구름처럼 군락을 이루어 풍성하게 피어야 아름다웠다.
창원대 앞에서 아침 첫차로 운행하는 97번 버스로 시내를 관통해 장유에서 김해 시내로 들어 분성사거리에서 내렸다. 그곳 부원동은 지역에서 상권과 업무 요충지로 김해를 옛적부터 달리 부르는 ‘분성’이라는 지명을 지켰다. 분성사거리에서 상동면으로 가는 72번 버스를 타고 삼계를 지나 나전고개를 넘어 골짜기로 내려가니 공장 지붕이 보이고 진영기장간 고속도로 나들목이 나왔다.
행정복지센터를 지난 봉암에서 내려 대포천을 따라 걸어 지류가 끝난 맞은편에는 양산 물금 오봉산으로 임경대가 바라보였다. 많은 비는 아니어도 우산을 받쳐 쓸 정도라 펼쳐 쓴 채 강변을 따라 거슬러 올랐다. 부산시민들에게 상수원을 공급하는 매리취수장을 지났다. 4대강 사업으로 용당나루에 매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매리(梅里)라는 지명은 공교롭게도 우연이 아닌 듯했다.
화현과 신곡을 거친 감로리에는 옛적부터 전하는 ‘감로사’가 있는데 그냥 지나쳤다. 설레는 마음으로 목표한 용당나루 매화공원에 닿았다. 며칠 전보다 활짝 피지도 않고, 그렇다고 멈추거나 오그라지지 않고 꽃망울은 반쯤 피는 즈음이었다. 우산을 받쳐 쓰고 먼 길 에둘러 탐매를 나선 보람을 느꼈다. 아무도 찾지 않은 한갓진 강변 둔치 피어나는 매화를 홀로 완상하기가 황송했다.
빗방울에 젖은 꽃잎과 꽃망울을 살펴보고 매리에서 용산을 거쳐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대성동 고분군과 인접한 김해건설공고를 찾아가니 방학이 끝나 개학을 한 듯했다. 교정 들머리 구지로에 줄지은 여러 그루 고매에서 피는 꽃도 장관이었다. 아까 용당나루 매화공원처럼 갓 피려는 꽃망울이 점점이 달려 있었다. 활짝 피었을 때보다 빗속에 반쯤 핀 매화가 더 운치 있어 보였다.
교정에서 2학년 학생을 만났는데 여기서 졸업하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가야사 고적 복원 사업으로 학교가 올봄에 신축 교사로 옮겨진다고 들었는데 이전까지는 몇 년 걸리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학교가 떠나가고 금관가야 유적지 발굴로 매실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겨질 듯하다. 댐 건설로 수몰될 마을을 지키는 노거수를 보는 듯해 마음 한구석 허전함이 느껴져 왔다. 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