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 손순미
해변시장에 아귀 사러갔다
온 몸이 주둥아리인 아귀는
톱날 같은 이빨을 진실의 입처럼 벌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죄 지은 자의 손목을
확! 나꿔채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 커다랗게 벌린 입 속으로
햇살이 빨려들어간다
생선장수가 망나니처럼 칼을 들고 나와
사정없이 아귀 뱃속을 가르는데
조기, 새우, 가자미, 고등어, 오징어 등속이 나온다
바다의 것들을 모조리 잡아 삼킨 듯
뱃속에 어물전 하나 차려놓았다
먹어도 먹어도 한평생 허기에 빠져 산다는
아귀 귀신이
탐욕으로 생을 조롱했구나
죽음으로 탐욕을 고백했구나
아귀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낸 도마에
노을이 흥건한 저녁
아귀의 고해성사 한 접시 올려놓았다
한 마리 아귀찜을 먹는다
한 마리 아귀찜을 듣는다
―웹진『시인광장』(201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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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아닐 때도 얼큰한 아귀찜은 주당들의 단골메뉴였습니다
험상궂게 생긴 모양과는 달리 제법 부드러운 식감도 있어서
아삭한 콩나물과 잘 어우러지는 별미이기도 합니다
굶어죽은 귀신이 들었다 해서 '아귀'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아귀의 뱃속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은 식탐이 잔뜩 갇혀있다고 하네요
'탐욕'이 얼마나 숨탄것을 죄 짓게 하는지...
죽어서도 진실을 감춰버린 유회장처럼...끝없는 정치권의 다툼처럼....
설마 고해성사하듯 아귀찜을 먹지는 않겠지만 그저 시 한 편의 깨달음이라도 존재했으면...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도 저마다 의미를 다르게 부여하는 현실이 낯뜨거운 아침입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탐욕으로 망가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