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회는 신약성경의 헬라어 본문을 정경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5,700여 개의 헬라어 사본들은 모두 제각각이어서 과연 어느 본문이 진정한 본문인지 알수없다.
그래서 성서 비평학자들은 자기들의 학문적 기호에 따라 성경의 본문에 어느 부분은 삭제하고,
어느 부분은 첨가한 누더기 본문을 소위 비평본 본문으로 출간하였다.
지금의 신약신학들은 모두 이 비평본 본문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신약성경의 본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러한 혼합본문을 거부하고 소위 전사본문이라 불리우는 흠정역 킹제임스성경을 더 신뢰할 수 있는 본문이라는 주장이 한국을 얼마전에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하여 '킹 제임스 성경'으로 구원받지 않은 구원은 가짜라는 말까지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은 그것이 공인본문이든, 시내산 사본이든, 안디옥 사본이든,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든 모두 예수님의 모국어가 아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되실 때까지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셨다.
그의 갈릴리 출신 제자들 역시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였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최후의 말씀을 하실 때에도 아람어로 말씀하셨다(마27:46, 막15:3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은 히브리어 성경 구절이 아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시편 22:1을 암송하신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왜냐하면 한글 성경으로 읽으면 완전히 동일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중에 내뱉으신 말씀은 바로 당신의 모국어인 아람어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서 "사박다니"는 아람어 동사 '사바크'의 의문문이다.
이것은 히브리어가 아니다.
시편22:1을 보면 '아자브타니'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은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으셨고 마지막 최후의 순간 숨이 멎는 그 때에도 외국어인 헬라어가 아니라 아람어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모두 아람어로 읽어야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람어 구절들이 있다.
요 1:42 게바
막5:41 달리다굼
막 7;34 에바다
막10:46 바디메오
마 27:33 골고다
막14:36 아바
마 5:22 라가
막 11:9 호산나
요 20:16 랍오니
마 6:24 맘몬
마 5:18 일점일획
막 7:11 고르반
특히 주목할 것은 "번역하면" 이라는 구절이 7회(막 5:41, 15:22, 요 1:38,41,42 9:7)
사도행전에 3회 등장하는데 모두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하고 있다.
즉 헬라어 사본이 원전이 아니라 번역문임을 스스로 헬라어 성경이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헬라어 사본이 원본이면 헬라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복음이 이스라엘에서 시리아로 넘어갈 때 초대교회는 무서운 박해에 직면하였다.
그래서 안디옥은 마침내 유럽을 복음화하는 바울의 주요 거점이 되었고 이 안디옥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시리아의 주요 도시라는 사실이다.
신약성경의 원전 아람어 본문은 현재 고대 '에스트란젤라(Estrangela)' 시리아어로 전해지는 사본이 약 360개 정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360개에 달하는 아람어 신약성경의 사본은 세월의 흔적에 따라 판독이 불가하다는 차이 외에는 본문 기록이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헬라어 사본처럼 마구잡이로 단어들과 구절들이 들락달락하지 않고 거의 모든 아람어 사본이 본문의 일치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아람어 사본을 기록하고 필사한 서기관들이 마치 히브리 성서를 필사할 때 '한 글자 한 점'도 틀리지 않도록 여러가지 문헌기호를 채용한 것과 같이 아람어 성경에 본문 장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람어 알파벳에는 각각 해당하는 '숫자 값'이 있어서 글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문장도 '숫자 값'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람어 성경 사본의 여백에는 그 페이지에 기록된 모든 글자의 모든 '숫자 값'을 더한 '수'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하니 아람어 성경 본문이 이리저리 달라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헬라어 글쓰기에는 이런 개념 자체가 없다.
본문 보존이라는 개념이 불필요한 헬라 문화에서 배태된 헬라어 성경사본들의 수기본과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완벽한 '코셔(Kosher)' 본문을 추구하는 히브리 성서의 필사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성경 필자가 헬라어 필사자에게는 '문학'이었고 아람어 기자에게는 '기도'였다는 차이가 이런 큰 차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아람어로 기록되고 집대성된 원래 시리아 신약성경, 페쉬타는 아람어 알파벳 수효와 같은 22권이어서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 27권에서 5권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은 소위 '5개의 서방본문'이라고 하는데 '베드로후서, 요한2서,요한3서,유다서,요한계시록'은 원래 페쉬타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요한계시록 아람어 본문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고 오히고 사도 요한이 사목하던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에 의해 먼저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소아시아 교회들이 읽었던 요한계시록은 처음에는 아람어로 기록된 본문이었으나 헬라어 번역본이 아람어 본문을 대체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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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악에 바쳐서 분노로 살고 있군요.
영지주의 끝을 보고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