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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이야기 (2)
원효대사가 승복을 벗고 무애를 두드리며 민중을 교화한 데는 깊은 이유가 있었다.
당시 불교는 왕실과 귀족들을 위해 존재했다.
일반 백성들이나 천민들은 감히 넘나볼 수 없는 귀족불교였다.
자장율사나 원광법사가 귀족불교를 지향했다면 원효대사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불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전부 교화대상이었다.
불성에 있어서는 부처나 중생이나 한 치의 차이가 없거늘 귀족과 천민이라고 차이가 있겠는가.
이것이 원효대사가 민중 속으로 들어간 이유였다.
원효대사가 처음 스님의 신분으로 일반 백성에게 다가가려해도 한계가 있었다.
원효대사 스스로가 소성거사가 되고, 복성거사가 되지 않는 한 민중교화는 불가능했다.
이에 파계라는 이름으로 환속을 했다.
천민들과 하층민들은 성스럽게 보이던 원효대사의 파계를 접하고 비로소 자신들과 같은 '클래스'로 인정해줬다.
그 결과 어른에서 아이까지, 높은 사람에게 낮은 사람까지 신라에서 원효대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원효대사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줄 수 있는 곳이라면 세간과 출세간이 따로 없었다.
이런 원효대사를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스님은 '불기(不羈)의 자유인'이라고 표현했다.
굴레가 없다는 뜻이니 매인 곳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벗어버리면서까지 대중교화에 나선 원효대사야말로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자였다.
그는 '불기의 자유인'의 모습을 이론적으로 규명하여 [이장장(二障章)]을 남겼다.
그에게 이론은 항상 실천과 함께였다.
원효대사는 환속한 후 단지 대중교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법 못지않게 학문 연구에도 매진했다.
그는 환속한 몸으로 절에서 머물며 강의를 하고 저술에 집중했다.
55세에 행명사(行名寺)에서 [판비량론(判比量論)]을 저술했고, 분황사에서는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지었다.
황룡사에서는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강의했고, 혈사(穴寺)에서 입적했다.
진정한 출가는 옷이 아니라 행위에 있다.
이것이 후대에 원효대사를 원효거사가 아닌 원효대사라고 부른 이유다.
그는 일생에 걸쳐 80부 15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겼다.
소성거사 신분인 원효대사가 집필한 책들이다.
그 내용이 모두 도리에 정통하고 입신의 경지에 도달함이 '문장의 전장을 영웅처럼 누비는'것 같았다.
한 사람이 심원하고 깊이 있는 내용의 저서를 100권 이상 남긴 예로는 신라의 원효대사를 제외하고 [지도론]을 쓴 인도의 용수보살, [종경록]을 쓴 중국의 영명연수 대사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원효대사의 저술은 대부분 산실되고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온전히 전하는 것은 [대승기신론소], [화엄경소], [금강삼매경론], [이장의], [십문화쟁론] 등 13부 17권에 불과하고 12부 안팎이 부분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원효대사의 저서에는 특히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관련 글이 가장 많다.
대승기신론은 '큰 믿음을 일으키는 글'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마명보살이 지었다.
수많은 경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명보살이 이 책을 지은 이유는 오로지 자비심 때문이었다.
경전 속에 법이 있더라도 중생의 마음과 행동이 다르고, 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인연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 없어도 법을 말하고 한번 척 보고 도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법을 들어도 믿음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마명보살은 '무명이라는 헛된 바람'이 마음의 바다를 흔들기에 윤회에 떠돌게 된 중생들을 한없이 자비로운 큰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대승기신론]을 지었다.
말하자면 [대승기신론]은 '모든 경전들의 고갱이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경율론의 압축이 [대승기신론]이다.
즉 '글은 적되 뜻은 많은(少文多意)' 책이다.
그런데 불교 공부가 깊지 않은 사람은 많은 뜻을 적은 글에 담은 [대승기신론]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친절한 안내자가 필요하다.
원효대사가 쓴 [대승기신론소(疏)별기(別記)]는 전문가가 알기 쉽게 풀이한 최고의 해석서다.
즉 마명대사의 압축파일을 '글은 간략하되 뜻은 풍부하게(文約義豊)'라는 원칙에 맞춰 압축풀기를 했다.
압축풀기만으로도 잘 열리지 않은 파일은 별기를 붙여 더 자세히 설명했다.
마명보살이 캐 낸 원석을 원효대사가 정련하여 순도 높은 금을 추출했다고나 할까.
마명보살은 어떤 신념이 있었기에 [대승기신론]을 집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중생들이 불보살과 같은 바탕이라고 아는 데서 나오는 힘'에 대해 확신했기 때문이다.
중생들과 불보살의 '같은 바탕'은 무엇일까?
마명보살은 그 바탕을 한마음(一心)이라고 규정했다.
우주만물의 근원이 한마음이고 그것이 바로 대승이다.
한마음 즉 대승은 중생과 부처가 모두 평등하게 가지고 있는 존재의 본질이다.
말을 하고 있는 나, 먹고 자고 웃고 우는 나는 내가 아니다.
즉 내 몸이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먹고 자고 웃고 울 수 있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바로 나다.
그것이 한마음이다.
한마음은 모습이 없고 형체가 없이 텅 비어 있다.
그러나 분명히 있다.
말에 있는 모습과 이름에 있는 모습과 마음이 인연한 모습을 여의어서 마침내 변할 것이 없고 무너뜨릴 것도 없으면 그것이 한마음이다.
한마음이 곧 진여(眞如)이다.
생멸하는 마음의 근원이 바로 진여다.
한마음은 불생불멸인데 망념에 의해 차별이 생긴다.
즉 중생심 안에는 이미 대승인 여래의 성품이 갖춰져 있는데 무명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렇게 가려져 있는 불성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한다.
그런데 모든 중생이 망념과 무명을 여읜다면 경계로 나타나는 모든 모습은 사라지게 되고 진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진여의 세계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두 가지 문이 있다.
하나는 진여문(眞如門)이고 다른 하나는 생멸문(生滅門)이다.
진여문은 일체의 존재가 생멸함이 없이 본래 고요한 상태를 뜻한다.
진여문을 통해 한마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수행해야 한다.
사마타를 지관(止觀)수행이라 한다.
생멸문은 한마음의 본체인 본각(本覺)이 무명의 작용에 따라 생멸하는 측면을 관찰하는 것이다.
생멸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빠사나를 수행해야 한다.
위빠사나는 관관(觀觀)수행이라 한다.
사마타는 대상에 끄달리지 않는 것이고 위빠사나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통해 한마음 즉 진여에 들어갈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는 어떻게 하면 생멸문과 진여문을 통해 일심에 들어갈 수 있는 지,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지, 수행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 지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해놓았다.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 별기]를 제대로 읽으면 어느 누구라도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야말로 경율론의 압축파일이 열리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원효대사 #법보신문
첫댓글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