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읍 고적 답사
설을 사흘 앞둔 이월 첫째 수요일은 새벽부터 동선이 제법 멀게 그려지는 산책을 나섰다. 어둠 속에 집 근처에서 동정동으로 나가 북면 마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온천장에서 내렸다. 전에는 이른 아침 온천장을 찾으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금이 상례였으나 근래는 조금 더 진전해 부곡 온천장까지 가게 된다. 부곡의 온천수가 더 따뜻하고 사람들이 덜 붐벼 혼잡하지 않아 좋다.
창녕은 본포다리를 건너 북면으로 오가는 영신교통을 이용하면 멀게 느껴지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이다. 백월산 동녘 산마루 위로 스무여드레 조각달이 걸린 어둠이 사라지는 즈음이었다. 마금산 신촌에서 영신교통 버스가 오길 기다려 탔더니 승객은 나 혼자였다. 본포교를 건너자 차창 밖으로 날이 밝아온 강변 풍광이 드러났다. 밀양 무안 인교에서 부곡 수다를 거쳐 온천에 닿았다.
이번은 목욕만 하고 돌아가기는 단조로워 창녕읍까지 가서 고적 현장을 둘러보고 다시 부곡으로 돌아올 참이다. 버스는 부곡 온천장에서 골프장 들머리를 지나 영산으로 향했다. 영산에서 마늘과 양파가 자라는 들판 도천면에서 국도를 달려 창녕읍으로 들었다. 송현리 고분과 마애불상을 찾으려고 화왕산 등산로로 드는 들머리에서 내렸는데 버스 요금은 북면에서 고작 900원이었다.
창녕은 제2 경주라고 이를 만큼 불교문화와 고분군이 즐비하다. 지난해 가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가야 고분군에는 창녕 송현리와 교동의 무덤도 포함된다. 창녕은 삼국유사와 가락국기 6가야에서 비화가야로 불린다. 가야국 맹주 금관가야, 고성 소가야. 함안 아라가야, 고령 대가야 외에 창녕과 합천과 경북 상주에서도 가야시대 여러 고분과 토기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 창녕엔 신라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진흥왕 순수비가 현전하고 국보급 불상과 석탑으로 불교문화가 찬란했던 경주에 견줄만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아침 해가 솟은 화왕산의 햇살이 비치는 송현리 마애여래좌상을 먼저 찾았다. 마애불은 일반적으로 노천이기 마련인데 송현리 마애불은 전각을 세워 마애불이 눈비를 맞지 않도록 해두어 문고리를 열고 불상을 뵈어 두 손을 모았다.
그간 흐른 세월에 마모된 돌부처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도 백제인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불의 온화함이 느껴졌다.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해 남산의 여러 불상을 조각했던 경주의 장인이 창녕까지 와 남긴 수작인 듯했다. 마애불 곁에는 여러 기의 가야인 부족장 무덤들이 덩그렇게 있었다. 교동리로 가니 거기서도 고분군과 함께 군립 박물관에는 가야시대 유물을 만날 수 있었다.
교동 고분군에서 교상리 만옥정공원으로 가 진흥왕이 당시 확장한 신라 영토에 남긴 첩경비를 둘러봤다. 화강석에 해서체 음각으로 새긴 금석문은 마모가 심해 육안으로는 판독이 쉽지 않았다. 공원에는 퇴천리에서 옮겨왔다는 석탑과 조선시대 창녕을 거쳐 간 현감 공덕비가 보였다. 인근 교하리 석빙고를 둘러보고 술정리로 가 근래 신라적 송림사 터로 확인된 3층 석탑을 살펴봤다.
아침 일찍 창녕 읍내 머물면서 2시간 남짓 걸려 발걸음을 서둘러 불상과 비각과 석탑과 고분 유적지를 둘러봤다. 아마 지금 주민이 사는 집터 밑에서도 절터 주춧돌이나 기왓장이나 토기 조각이 나올 듯했다. 흙담이 둘러친 송현리 골목길에서 노랗게 핀 영춘화에서 봄이 가까워졌음을 확인했다. 오일장이 서는 장터에서 수구레국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부곡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침에 스쳐 지난 온천장으로 들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그간 산천을 누비면서 무릎이 시큰하고 종아리가 시려왔는데 온천수에 몸을 맡겨서인 조금 풀리는 듯했다. 넓은 탕에는 입욕객이 적어 여유롭게 사우나실과 냉탕으로 들고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니 상쾌함은 더했고 등 뒤로 와 닿는 햇살이 느껴졌다. 정류소에서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