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웜(Blueworm)-16
"예. 가지고있다. 만날 장소를 말하라."
대답을 공손히 했지만, 이내 말투를 바꾸었다. 서로 얼굴모르는 사이에 기 먼저 죽을 필요는 없다 생각하였다.
"강변북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 행주산성 가까운 곳에 있는 행주대교 밑으로 가라. 우리가 따르겠다."
"알았다. 도착해서 전화하겠다."
"No! 전화는 우리가 한다. 그 박스를 안전하게 확실히 받은 후 나머지를 지불하겠다."
전화는 끊어졌다. 현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이제 사장을 따돌리고 그들을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는 엑세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에덴 어린이집이란 청색 네온싸인을 우측으로 하고 서빙고동 지하차도로 들어섰다. 강변북로였다. 바람은 차거웠다.
"완남 오빠. 현퀵이 우회전하여 강변북로로 들어섰어요!"
"나도 봤다. 그런데 현퀵은 뭐야?"
"완남 오빠. 운전 조심해 하세요! 현제라면서요? 퀵써비스맨 현제. 현퀵이라고 하세요."
"좋다. 그러면 너도 그냥 오빠라고 불러라"
"크흐흐. 고속 운전 중에도 웃겨요. 알겠어요. 오빠. 어서 달려요. 놓치겠어요."
밤 9시가 좀 넘었지만 일산쪽으로 가는 차량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작고 붉은 빽라이터를 켜고 달리는 것은 장현제의 오토바이 하나였다. 곳곳에 경찰대신 야간 촬영 감시 케머러만 있었다. 완남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따라 달렸다.
선애는 완남의 팔에 차고 있는 무전기를 꺼내 현퀵과 교신을 시도했지만 아예 무전기를 꺼버렸는지 응신이 없었다. 선애는 시계를 본 후 더욱 초조해졌다. 밤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헤이. 김선애!"
헬멧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강변을 달리는 오토바이 뒤에 타서 바짝 긴장해 있던 김선애는 휴대폰 벨이 울리자 망설이다 받았지만 많이 듣던 목소리가 반가운듯 이름을 부르자 마지못해 대답하며 다시 물었다.
"헤이. 근데 누구셔? 난 지금 중대한 일로 바쁘니 다음에 전화 다시하면 좋겠네요."
"어. 헤이 헤헤이- 김선애. 나 태환이다. 지금 니 뒤를 쫏아 가고있다. 죽변의 수진이가 연락해 와서 상황을 들었다. 이런 문제는 나에게 먼저 말해야지. 알겠냐?"
"우와- 이게 어쩐일이야. 그렇게 바쁜 양반이 다 출두를 하시고. 근데 태환아. 나 지금 무지 바쁘고위험한 상황 속에 있거든. 완남이 오빠 등잡고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거든. 어쩔건데?"
생각지도 못했던 초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반 짝이었던 사업가 태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지금은 노닥거릴 때가 아니었다.
"들었어. 그래서 내가 뒤를 쫏아 가고 있잖아.지금 어디로 가는거야?"
"어휴. 적군이야? 아군이야?"
"믿고 어서 말해라. 위치가 어딘지?"
선애는 주춤했다. 어떻게 도와줄려고 그러는지 방해가 될려고 그러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완남이 오빠. 태환이가 뒤를 쫏아오고 있대요.위치를 알려 달라는대요?"
"응. 그래. 그느마면 도움이 된다. 지금 마포대교 지나가고 비상등 켠 오토바이라고 말해라."
그렇잖아도 혼자 선애를 보호해서 맛치를 찾아 공항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던 터라 한국 육군에서 수색대도 마쳤고 빠르고 용기있고 발이 넓은 후배 태환이가 뒤 따라 오고 있다는 말에 조금 안도한 완남이 위치를 알리고 접선하기를 바랬다.
"오케이. 내 차는 흰색 폭스바겐 SUV이다. 곧 따라가서 신호할께."
"태환아. 우린 지금 우리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오토바이를 추격하고 있어. 그 운전자가 맛치 상자를 가지고 있거든. 그것을 꼭 되찾아야 돼. 그리고 내가 지금 캐나다로 가져 가야해. 죽어도 가져가야돼."
"죽어도?"
"그래. 죽어도."
"와. 대단한 죽변 아줌마 탄생하셨네. 대충은 영호형에게 들었다. 완남이 형에게 운전조심하라고 그래. 내가 곧 너를 쫏을거다."
태환이하고 전화를 하면서도 앞으로 향한 시선을 게울리하지 않았던 선애의 눈은 현퀵의 오토바이가 우측도로로 빠져 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빠. 현퀵이 우측으로 나가고 있어요."
"봤어. 행주대교를 건너려는 것 같다."
"아니예요.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데요."
완남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제가 행주대교 밑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접선하려고 한다 생각하며 긴장하였다. 그는 커브를 돌면서 빽미러를 봤다. 추격자는 없었다. 헷라이트를 꺼고 속력을 줄여 넓은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섰다.주차장은 좌측과 우측 끝에 각 각 한대의 승용차가 어둠 속에 검은 물체로 웅크리고 있었다. 현제의 오토바이는 중간 쯤 강이 바로 아래에 보이는 철제 난간 가까이에 멈춰 있었다. 완남은 그의 오토바이약 5미터 우측 뒷편에 250VJF를 주차시켰다.
"현제! 너 어쩔려고 이러는거야! 그 박스 이리내라."
완남이 놀라 당황하는 그의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뒤에서 급히 내린 선애가 현제의 바로 좌측 옆에 서며 말하였다.
"현제씨.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 상자 안에는 미역같은 해산물이 들어있어요. 그것은 지금 당장 토론토로 보내져야 해요. 요즘 돼지고기를 먹고 블루웜에 의하여 죽어가는 사람들 뉴스를 들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 속에 든 맛치가 백신을 만들게 할 수 있는거예요. 당신은 무슨 이유에서 그것을 막을려고 하는거예요? 당신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블루웜을 발생시킨 집단의 일원인가요?"
현제는 놀랐다. 따지듯 심각하게 말하는 여자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블루웜을 발생시킨 집단이라니.
"사장님. 저도 가족과 제가 살기 위하여는 그들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식해서 뭐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치기 전에 물러나십시요. 나는 이 박스를 그들에게 전해주고 돈만 받으면 됩니다. 지금 나는 삼백 만원이라는 현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모른척 해주십시요. 이 일로 사장님과 싸우기 싫습니다."
"우리는 그 박스를 가져야 해요. 아시겠어요?"
선애가 그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가 선애에게 얼굴을 돌리고 본 순간 완남이 그의 곁으로 가까이갔다. 완남이 덤벼들 자세를 취하자 현제는 휙 돌아서서 박스를 잡은 팔을 철제 난간 밖으로내 밀었다.
"더 가까이 오면 이 박스를 강에 던지겠오."
현제는 비장한 각오를 한 것같이 목소리가 떨렸다.
"야. 현제! 정신차려. 이 새끼야! 그 놈들이 그 맛치 때문에 삼백 만원이라는 거금을 줄것 같아!"
"나 사장! 당신은 모르지만 이미 계약금을 현금으로 받았오. 나는 이제 돌아 갈 수가 없오. 더 이상"
현제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긴장하였다. 그 때 백색의 헤드라잇을 비추며 검은색 벤츠가 그들 옆에 급히 달려와 서며 스킨헤드가 장총을 들고 차에서 내려 그들 셋 사이에섯다. 그는 서둘렀다.
"누가 현제야!"
그가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하마에스요!"
현제가 그가 든 총을 보고 놀라워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 내가 하마에스다. 그 상자 어디있오?"
벤츠 쪽에서 나는 목소리였다. 역시 그는 상자의 유무부터 물었다. 그는 이 땅이 남의 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듯 아직은 건방진 존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빈 두 손바닥을 비비듯하며 차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 오며 말했다. 그는 턱수염을 기른 중동사람이었다. 현제 정도의 키에 몸집이 커서 덩치가 좋아 보였다. 그는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마에스씨. 돈은 어디있오?"
현제가 박스를 든 왼팔을 어깨위로 올리며 물었다. 그 순간 그렇다. 그건 찰라였다. 옆에 섰던 스킨헤드가 왼팔을 뻗어 현제의 박스를 탈취하려고 움직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긴장된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본능이 움직인다. 현제도 그 본능대로 움직였다. 다른것은 그 순간 현명한 판단이 튀어나왔다. 그는 스킨헤드가 치켜든 팔을 향해 움직이자 본능적으로 왼팔을 든 쪽 뒤로 몸을 돌리며 박스를 완남에게 던졌다.
"사장님. 박스!"
깜짝 놀란 완남은 엉겹결에 허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박스를 받았다. 그와 동시 선애는 250VJF쪽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키가 꼿혀 있음을 확인했다. 스킨해드는 달려들던 탄력에 의하여 휘청하며 쓰러지듯 철제난간을 잡았다. 하마에스는 상자가 완남에게 던져지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완남을 향해 몇 걸음 움직이며 달려 들었다. 그러나 완남이 그것을 먼저 보고 우측으로 돌면서 허리를 펴며 왼쪽 무릅으로 달려드는 그의 복부를 찼다. 그는 욱하는 신음과 함께 주저 앉았다. 완남은 선애를 보았다. 제대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완남은 선애에게로 달려가며 큰소리를 쳤다.
"선애야. 빨리 시동걸어!"
선애는 완남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선애는 꼿혀져 있는 키를 힘주어 누르며 돌렸다. 250VJF는 부드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발진 준비를 하였다.
선애는 오토바이에 앉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빵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오던 완남이 선애 바로 옆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오빠! 오빠! 완남 오빠!"
쓰러진 완남이 선애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헤드스킨이 다시 총을 쏘려고 겨눌 때 두려워 난간을 잡고 서있던 현제가 달려들어 그의 총신을 잡고 밑으로 누르며 당겼다. 그는놀라 앞으로 넘어질듯 휘청거렸지만 금방 몸의 중심을 잡고 허리를 펴 일어나며 한 동작을 마친 후 다음 동작으로 움직이는 현제의 우측 어깨를 엽총개머리판으로 쳤다. 현제는 악 소리와 함께 왼손을 어깨에 대고 쓰러지듯 걸어서 철제 난간으로 가서 아픔을 참으며 기대었다. 그런사이 완남은 상자를 선애에게 주려고 기를 썻다.
"자. 선애야. 상자받아라. 그리고 어서 출발해. 나는 괜찮아. 운전할 수 있겠지? 스쿠터와 같으니 어서 출발해. 내가 저들을 막겠다. 어서 출발해!"
"오빠! 완남 오빠! 괜찮아요? 총에 맞았어요?"
지금 일촉측발과 같은 위급한 상황인데 이렇게 안부를 묻고 할 시간이 없는데 하면서도 선애는 어떤 행동을 하길 주저하였다. 그러나 선애는 완남의 왼쪽다리 무릅아래에서 피가 흥건한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여고시절 교련시간 때 배웠던 압박붕대 사용법이 컴퓨터 화면같이 떠 올랐다. 선애는 목에 감았던 머플러를 풀어 완남의 왼쪽 무릅 위를 묶었다. 응급처치는 되었다.
"선애야. 어서 출발해. 나는 다리에 총알이 스쳤을 뿐이야. 저 놈은 군에도 안 갔다 온 놈이야. 그러니 걱정말고 어서 가. 나중에 연락하자."
선애는 완남을 제대로 부축도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스킨해드를 보니 그는 다시 총을 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작동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선애는 이미 중년이다. 아무리 여자라 해도 중년의 삶의 내공은 경우에 따라 찬란히 빛을 내기도 하고 지금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멋진 대처생각이 행동으로 옮기게도 된다. 선애는 이 위기를 박스와 함께 피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있어서 도움되지 않는다 판단하였다.
“알겠어요. 오빠. 뒷 처리를 맡아주세요.”
선애는 완남을 그대로 두고 다시 250VJF에 올라 손잡이에 있는 기어를 전진으로 바꾸고 서서히 회전하는 순간 헤이마스가 일어나 완남에게로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완남에게 다가가며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놓았다 하며 결함을 고쳐보려 애쓰는 스킨헤드를 보며 외쳤다.
"야. 임마! 저 여자를 쏴! 어서! 박스를 가지고 달아나고 있다. 어서 쏴라. 어서!"
그는 고개를 들어 선애를 보며 다시 복부에 개머리판을 대고 무조준 사격을 하려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찰칵. 발사가 되지 않자 그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현제가 뒤에서 달려들며 스킨헤드가 계속 총열을 두드리며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엽총의 총신을 잡고 다시 힘차게 밑으로 꺽었다. 현제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이었다. 제대로 상대의 엽총을 탈취할 줄 알았다. 엽총같은 장총은 총신을 잡고 아래로 꺽으면 총을 잡은 사람의 손목을아래로 꺽는거와 같은 효과로 잡은 상대는 손목과 방아쇠에 넣은 손가락의 꺽임으로 총을 놓게된다. 이건 총검술의 F.M.이다. 현제는 순간적인 힘으로 총을 꺽어 뺏으며 그의 어깨 밑 쯤에서 돌아 위로 올라오는 개머리판에 힘을 주어 턱을 가격하였다. 이건 현제의 본능이었다. 잠재했던 훈련의 본능. 11회 12회를 감당하는 권투선수는 탈진상태에서도 무의식속의 훈련된 본능으로 팔을 뻗어 치며 습관적으로 위빙을 하여 주먹을 피하려 한다. 준비된 훈련은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본능을 촉진시킨다. 스킨헤드는 억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와 동시 하마에스는 다리를 뻗고 앉아 있는 완남을 덮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완남은 그의 두 어깨를 잡고 뒤로 쓰러지며 넘어치기로 그를 뒤로 던져버렸다. 그가 쓰러져 놀라 주춤하며 일어나려 하자 현제가 엽총을 들고 하마에스에게도 빠르게 뛰어들며 총 개머리판으로 옆구리를 가격하였다.
"완남 오빠!"
선애는 어서 가라고 손짓하는 완남을 그냥 둔채 출발했다. 출발은 서툴렀지만 주차장을 벗어나자계속 잘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선애를 지나쳐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먼저 주차된 차 안의 누군가 총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선애는 조금씩 속력을 내었다.
태환이 열린 차창을 통해 한번의 총성을 듣자 놀라 급히 다리밑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앞서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경찰차를 뒤로하고 오토바이가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자인 것으로 미루어 선애로 짐작했다. 태환이는 차를 급히 돌렸다. 완남이 형이 걱정되었지만 선애가 죽어도 가져가야 한다는 맛치가 우선이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선애냐?"
"응. 태환아. 나 겁나서 오토바이운전을 못하겠어."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다. 내려서 내 차로 옮겨탈 수 있겠어? 바로 앞에 너가 달려오는 방향에 있다."
"아니야. 그럴 시간이 없어. 지금 공항 캐나다향 출구로 가야돼."
"알았어. 그럼 내말 잘 듣고 휴대폰 꺼고 운전에만 집중해라. 내가 앞에서 길을 안내할테니 나만 따라와. 알았지?"
"응. 그렇게 해주는거지? 알았어."
선애는 우선 안심되었다. 급하면 태환이 차를 타면 된다. 허나 단 일분이라도 시간을 아껴야 했다. 선애는 태환이가 탄 흰색 폭스바겐 SUV를 지나 앞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SUV가 비상등을 켠채 앞질러 달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