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인이 된다는 것은 권력과 지배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삼종기도

[안 엘리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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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성인이 된다는 것은 권력과 지배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마태오 복음의 ‘참행복’을 성인들의 신분증으로 정의했다. 교황은 일치와 조화를 위해 인내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평화의 일꾼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평화는 누군가를 정복하거나 무찌름으로써 얻어지는 게 아니”라며 “평화는 결코 폭력적이지도 무장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평화는 정의와 자비의 행위를 통해 날마다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며, 이를 위해 “예수님께 마음을 열고” 우리 마음을 비무장지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축일을 축하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모든 성인의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인들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곧, 우리는 완벽하고 항상 올곧으며 철두철미하게 살았던 소위 “꼿꼿한” 형제들과 자매들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이러한 고정관념, 곧 “상본 속의 거룩함”이 거짓임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성인들의 신분증인 예수님의 참행복(마태 5,1-12 참조)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인들은 시류를 거스르는 삶, 혁명적인 삶을 말해줍니다! 성인들은 진정한 혁명가들입니다.

예를 들어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참행복을 살펴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평화와 예수님의 평화가 얼마나 많이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라 ‘평온한 상태’, 다시 말해 아무런 문제도 없이 고요하게 남아 있는 상태를 평화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평온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가리켜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평화를 일구는 이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싸우는 이들, 평화의 일꾼들, 곧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평화는 이뤄내야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 협력,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평화가 위에서 비처럼 내리길 바라지만, 성경은 “평화의 씨앗”(즈카 8,12)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생명의 토양, 우리 마음의 씨앗에서 싹을 틔우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빛나는 증인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평화는 정의와 자비의 행위를 통해 날마다 침묵 속에서 자라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평화를 힘과 권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그와 반대입니다. 그분의 삶과 성인들의 생애는, 평화의 씨앗이 자라서 열매 맺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평화는 누군가를 정복하거나 무찌름으로써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평화는 결코 폭력적이지도 무장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모상대로(A Sua Immagine)’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많은 성인·성녀들이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거저 이뤄낸 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자신의 삶을 바치는 수고를 통해 평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마음의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공격하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평이라는 철조망과 무관심이라는 콘크리트 장벽으로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평과 무관심 사이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하지만 이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평화의 씨앗은 마음의 밭을 비무장지대로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가요? 비무장지대인가요, 아니면 불평과 무관심, 공격적인 행동으로 무장하고 있나요? 과연 어떻게 해야 마음을 비무장지대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신 예수님께 우리 마음을 열고, 평화의 권좌인 그분의 십자가 앞에 서고, 고해성사를 통해 주님께 “용서와 평화”를 받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되고,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선물이요 주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인가? 우리가 살고, 공부하고, 일하는 곳에서 긴장을 자아내고 상처를 주는 말, 독이 되는 험담, 분열을 일으키는 논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우리는 평화의 길을 열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변방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을 도와주며 불의를 치유하는가? 이것이 평화를 이루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모든 참행복에 적용되는 마지막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패자로 사는 게 아닌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답을 주십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권력과 지배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늘에서는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며 그분과 가장 닮은 이들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상에서도 승리하는 이는 빈손으로 남아 있는 반면, 모든 이를 사랑하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 이는 승리합니다. 시편이 노래하는 바와 같습니다. “평화로운 이에게는 후손이 이어지리라”(시편 37[36],37).

모든 성인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