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시 작품들에 나타난 상징(象徵)
시인이나 평론가들은 상징을 여러 관점에서 여러 유형으로 나누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모든 것은 다 털어 버리고 오직 작품 속에 나타난 상징을 살펴보면서 '아, 상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며 상징적 표현을 터득하도록 합시다.
그럼 앞에서도 잠시 살펴본 적이 있는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동천(冬天)'에 나타난 상징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제5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동천(冬天)'의 후기에서 미당 선생님은 '특히 불교에서 배운 특수한 은유법의 매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여기 고백하여 대성(大聖) 석가모니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고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불교적 은유에 힘입어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그럼 이 시에 나타난 상징은 무엇일까요? 이 시에서 우리가 알지 못할 시어가 하나라도 있나요? 아, 어쩌면 '즈믄'을 모르시는 분들은 계시겠군요. '즈믄'은 우리 고어(古語)로 '천(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모를 시어(詩語)가 하나도 없겠지요. 그럼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풀이부터 해 봅시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시적 자아]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사랑하는 님[임]의 고운 눈썹을 천 밤ㅡ 오랜 세월ㅡ 동안이나 정성들여 깨끗하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초승달로) 달아매어 놓았더니, 그 추운 동지 섣달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매서운 새도 그 사실을 알고서는 두려워서 감히 바로 날지 못하고 비스듬히 스쳐서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슨 상징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기지요. 그 의문을 풀어보기 전에 먼저 이 시에 대한 박제천 시인의 말을 들어봅시다.
박제천 시인은 시인 서정주의 절정을 보여 주는 작품은 '동천'이라는 말과 함께 이 시를 인용하고서 '전문 5행의 이 짧은 시로서 미당 서정주는 아마도 한동안 누구도 넘보기 어려울 한국 시의 한 극치를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이는 그의 시적 경영의 업적일 뿐 아니라 80여 년에 불과한 우리 근대시의 한 기념비이리라.'고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시에 쓰인 상징을 찾아볼까요?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는 '님의 고운 눈썹'과 '매서운 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운 눈썹'은 서정적 자아[시적 자아]의 가슴속에서만 자리하고 있다가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음'으로써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보편적 일반적 대상으로 승화되며, 다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놓음으로써 초승달의 이미지와 겹쳐져서 서정적 자아[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염원이나 절대적 가치>, 또는 모든 사람들의 <절대적인 존재나 외경(畏敬)의 대상>을 상징하게 됩니다.
'매서운 새'는 <죽음을 초월한 영원을 동경하는 인간 정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고운 눈썹'의 이미지와 겹쳐진 '초승달'과 그 초승달에 대한 외경 때문에 동경하면서도 비껴 날지 않으면 안 되는 '매서운 새'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이 시에서 천상과 지상, 이승과 저승, 영원과 찰나, 절대자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를 상징하고 있다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이 시에 나타난 상징은 '고운 눈썹=초승달'이 상징하는 <염원이나 절대적 가치>, 또는 <절대적인 존재나 외경(畏敬)의 대상>과 '매서운 새'가 상징하는 <죽음을 초월한 영원을 동경하는 인간 정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두 상징이 어우러져서 이 시 전체는 <천상과 지상, 이승과 저승, 영원과 찰나, 절대자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를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하지요? 머리 아프지요? 하지만 '시 짓기'를 하려면 이 '상징'이란 녀석은 골치 아파도 모르면 안 되는 녀석이니 잘 알고 친하게 지내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고등 학교 시절로 잠시 돌아가 머리 좀 쉬어 갈까요?
이 시의 지은이가 미당 서정주인 줄은 이미 아실 것이고, 이 시의 갈래는 형태상으로는 자유시, 내용상으로는 서정시에 속하며, 운율은 7·5조 3음보의 내재율을 밟고 있으며, 제재는 '고운 눈썹'과 '매서운 새'이며, 주제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畏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는 처음 '현대문학'(1966)에 발표되었던 시이지만, 그 이전에 대학교 시화전에서 먼저 대했던 시인지라 나와는 사실 인연이 깊은 시이지요. 허나 그 때는 이 시가 솔직히 그렇게 훌륭한 시인 줄은 몰랐었지요.
그럼 이번에는 김수영의 '눈'에 나타난 상징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시를 이해하려고 할 때는 항상 그 시의 제재와 핵심이 되는 시어나 시구를 알아야 하지요.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시어는 '눈[雪]'과 '기침'입니다. '눈'은 ' 이 시에서 '순결한 양심'을 상징하고 있고, '기침'은 '자기 정화(淨化)를 위한 행위(行爲)'를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살아 있는 눈을 보면서 억압된 현실 속에 매몰되어 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기침을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모든 불쾌하고 더러운 것들과 억압된 현실에 항거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등을 쏟아 버림으로써 자기 정화(淨化)를 꾀하여 순결한 양심을 되찾고자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따라서 이 시는 부정한 현실과 부패한 권력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울분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표현한 참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모더니스트로서, 1970년대 민중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인 김수영이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그의 대표적인 산문에서 쓰고 있는 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만나보면서 이 강의를 끝내기로 하지요.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시작(詩作)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참여 시인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과제물>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읽고, 그 시에 나타난 '상징(象徵)'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를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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