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뒷이야기] 서울예술대학의 경쟁력
?(2000.04.19)
지난 주 '서울예술대학의 경쟁력'에 대한 취재를 했던 주간부 이제 기자입니다. 서울예대 취재는 비교적 일찌기 시작되었습니다. 약 2주전부터였죠.(중간에 다른 취재건이 있어서 잠시 중단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덕분에 예대와 관련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전화통화는 말할 필요도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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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대 경쟁력] "끼 넘치는 꼴찌들, 모두 모여라"
서울예대 출신 동문 중 맨 처음 만난 사람들은 개그맨 백재현(연극 88), 심현섭(시각디자인 89), 김지혜(시각디자인 98) 등이였습니다. 모두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하고 있죠. KBS 희극인실에서 만난 그들에 대한 첫인상은 바쁜 스케쥴 탓인지 무척 피곤해 보인다는 것과 의외로 굉장히 진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개그맨은 평소에도 농담 잘하고 남 웃기기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농담을 걸 정도였습니다. 심현섭씨에게 제가 "안좋은 일이 있는가, 왜 그리 심각한가?"라고 하자 "남 웃기는데 이골이 나면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 같았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제가 그들에게 느낀 점은 예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극과 출신인 백재현씨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개그클럽','프라나' 두 개의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예대 동문 중 남경주, 이정화(뮤지컬 배우)씨를 걸출한 명물로 뽑았습니다. 예술적 끼와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더군요. 시각디자인과 출신인 김지혜씨는 방송할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 말고 예대에 들어 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선배들이 진출해 있고 학교강의 자체가 실기 위주로 편성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대에 입학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고교 재학시절부터 예대입학을 지상과제로 여겼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연극과 94학번인 조경수씨는 "고등학생들도 예대내에서 이뤄지는 행사나 작품발표회 때 많이 찾아와 구경한다" 며 "그 정도로 열성이 있는 사람들이 오는 학교니 당연히 그 실력을 인정받는거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실제로 방송계 현장에서도 예대 출신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였습니다. KBS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개그아이디어를 내는데 예대 출신이 뛰어나다. 아마 학교 동아리 활동등을 통해 이미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서인지 다른 개그맨들보다 많이 세련되어 있다. 특히 개그클럽 출신들은 기획, 구성력 등에서 탁월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대 출신 중에는 제도권 교육에서 자기자신의 적성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예대에 들어와 그 재능을 뒤늦게 발현한 케이스도 많았습니다. 이 학교 졸업생인 방송연예과 심길중 교수는 예대 내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합니다. 그 분 또한 26세때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채 방황을 하던 중 우연히 학생잡지에 난 예대광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공이 적성에 맞아 열심히 공부한 덕에 모교 강단에까지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순수 예대 출신 교수는 심길중 교수님이 첫번째라고 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동문들도 많았습니다. 방송연예과 출신인 이상봉(방연75)씨는 현재 패션 디자이너로 활약 중입니다. 그는 "연기 재능에 한계를 느꼈다. 하나의 도피처이자 생활수단으로 찾은게 디자인이었다. 학교앞 국제복장학원에서 실습을 배웠다. 그러나 아직도 연기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남아있다. 직접 연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아직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연극, 영화부문에 의상이라도 맡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백운철(연극 65)씨는 탐라목석원 원장으로 제주도에서 희귀한 돌, 나무뿌리를 수집하고 사진작가로도 활약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돌, 나무에 관한 사진은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불란서 박물관에 50장 정도가 소장되어 있다고 예대 조운용교수가 귀띰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학을 다녀온 예대 출신도 눈에 띄었습니다. '소풍'이라는 단편영화로 칸느영화제에 입상한 '송일곤' 감독(영화과 89) 은 "재학시절부터 유학가고픈 마음이 있었다. 폴란드 국립영화학교(안제이 바이다. 키에슬로프스키,로만 폴란스키 등 명감독들 이 학교 출신)를 택한 이유는 미국이나 불란서 쪽은 한국사람 이미 너무 많아서 별로. 새로운 경험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예대출신 유학생이 많냐는 질문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는 경우는 같은과 동기 박진오(탤런트 송채환 남편)뿐이다. 그는 현재 뉴욕대 대학원 연출과에 재학중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쟁쟁한 인재들을 배출한 예대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문들의 조직력이었습니다. 이것은 동문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나 결속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체계적인 동문회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잘 나가는 공연계열 일부학과에만 국한된 얘기입니다. 총동문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대 음대 작곡과 백의현 교수(연극 62)는 "예대동문 주소록조차 갖춰져 있지 못한 상태" 라며 "앞으로 예대인의 날 제정, 예대인의 축제 개최, 예대 발전기금 모금 등 보다 적극적인 동문회 활동을 펴 나갈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97 미스코리아 진 김지연(방연 97)양을 만난 것도 저에게 솔직히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단지 예쁘다는 것때문만은 아닙니다. 인터뷰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기의 소신을 차분하면서도 뚜렷하게 밝힐 줄 아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상 질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걸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남자친구에 관한 질문이었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대답을 예상했으면서도 순간 약간 씁슬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뭔지….
그 외 반칙왕의 김지운(연극 83) 감독도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배우를 해도 될만큼 미남에다가 뛰어난 패션감각(카페 내에서도 선글래스와 모자를 쓰고 계시더군요), 유창한 화술 등 매력을 골고루 갖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4년제 대학에는 지원조차 안했다. 일반교양은 독학으로 메꿀 수 있을 거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지식과 테크닉이었다. 4년은 시간소비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좋은시절' 시나리오가 프리미어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는 10여년동안 백수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철저하게 자기를 예술인으로 단련시킨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노벨 브레숑, 장뤼 고다르 등 유럽 예술영화의 거장들을 존경한다는 그는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그는 "결혼도 나에게는 여러가지 인생 선택사항 중 하나"라며 "결혼할 사람은 없어도 여자친구는 많은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취재기간 동안 제가 크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인간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칠게 표현해 '일종의 종교집단'을 방불케하는 예대인들의 결속력과 모교에 대한 자부심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하버드 출신들도 이 정도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예술계에서 예대출신들의 맹활약을 기대하면서 취재 뒷얘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