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님, 이경남 목사는 사기꾼입니다. 그는 공수부대원도 아니라 행정병이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만 확인해 보셨나요? 그리고 그는 현장 목격자로서 글을 쓴 것이 아니기에 그의 글을 픽션 혹은 허구 투성이입니다. 그의 거짓말은 5월 21일 그가 실탄을 지급받았는지 물어보시면 당장 탄로날 것입니다. 거짓말 작가가 인터넷에 올린 거짓말은 토론 자료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자, 님은 시민군 장갑차가 군인들을 깔아죽이는 장면을 직접 현장에서 목격한 김영택 기자가 거짓말하였다고 주장하시렵니까? 시민군 편이며, 광주사람인 김명택 기자가 무엇하러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시민군 장갑차가 군인들을 깔아죽인 것이 먼저요,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의 총격전은 나중이었다는 사실은 시민군들 역시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여기 아래 대표적 시민군 이수범님의 증언이 있습니다.

이 증언은 전남대 5.18연구소 사이트에 있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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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3&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69 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어요. 위의 그림 파일로 캡쳐된 증언을 여기 텍스트로 베껴드립니다.
<<그 뒤부터 시위대 쪽에서는 시간별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너희들 물러날 시간이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하면서 계속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러는 도중 시민 쪽에서 가지고 있던 APC 장갑차 한 대가 군인들 쪽으로 달려
갔다. 그때 공수부대원들은 2열 횡대로 해서 YMCA 앞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우리와 마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갑차를 몰고 가니 미처 피하지
못한 군인들이 몇 명 치어버렸다. 그때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부상을 당한 걸로 알고 있다. 그 일이 있고 나자 공수부대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오후 1시 30분이었다. 내가 왜 그 시간을 기억을 하냐면 우리가 계속 시간 카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계를 보면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
무장시민군이 계엄군에게 오후 1시 30분까지 도청을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주었어요. 그래서 광주향토사단 병력(31사 96연대 2개 소대)이 헬기로 철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은 도경이 도청 기밀문서를 모두 헬기로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철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시민군 장갑차가 선제 공격하여 군인들을 깔아죽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1995년 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의 광주사태 조사보고서 중 전남도청 발포 부분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제가 그 단락을 아래 인용해 드립니다:
<< 서로 10m 정도까지 접근, 긴장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13시경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는 데 항의하며 시위대가 화염병을 투척하여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갑자기 공수부대 쪽으로 돌진했다. 공수부대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부근 전남도청, 상무관, 수협 도지부 건물 등으로 산개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死亡했다. >>
이 발췌문 및 검찰부의 광주사태 조사보고서 전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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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sionvoice/11045264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첫댓글 이 글 번호가 [역 : 01]이 되어야 하는가요? [역 : 02] 가 되어야 하는가요? 이데아님의 첫 번호매김글에 대한 반론이니 [역 : 01]로 글번호를 올렸습니다.
10:08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났는지 봅니다. 12:42 현재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와의 웹채팅 두 시간 전. 방금 채팅 끝났음. 채팅방에서는 처음 대하는 olive 님의 활약이 두드러진 채팅이었습니다.
[역 : 02]입니다. 글 작성을 완료하시면 마지막에 표시를 해주세요. 나중에 확인하고 옮기겠습니다.
네 윗글은 10:08 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글번호매김을
[역 : 02]로 수정하였습니다.
<글등록을 완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