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내 것은 하나도 없다!
"평생 거지 같이 벌어서 천사처럼 쓰겠다."고 악착같이
평생 모은돈을 기부하신 분
1958년부터 프라스틱을 주워 양동이를 만들기 시작하여
2002년에는 관정 장학 재단을 마들어 매년 2,000명이상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셨던 삼영그룹 창업주 관정 이종환 회장님!
그가 이렇게 지급한 장학생이 23년간 1만2000여 명이며 금액으로 2700억원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장학생만 750여 명이며 2012년에는 600억원을 서울대에 기부해 전자도서관을 지어줬다.
포브스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기부왕으로 등록되어있다.
그는 말년에 ‘한국의 노벨상’을 만들고 싶어했고, 생전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2023년 9월 23일 별세했다.
그는 해방 후 “두 번째 인생을 산다”며 부국강병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후
한국애자 등 1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을 만들었다.
1958년 플라스틱이 신문물로 인기를 끌던 당시, 플라스틱 사출기로 컵·바가지 등을 만들어 팔면서 큰돈을 벌었다. 이후 포장용 필름과 콘덴서용 필름을 국내에서 처음 개발해 수출중흥정책에 기여한다.
그는 1980년대 미국 유학중 이던 둘째 아들이 난치병으로 꿈을 피우지 못하자, 2000년 ‘일류 인재 육성’ 을 목적으로 교육재단을 설립하여 재산 대부분을 기부한다.
그는 “우리가 가진 건 사람밖에 없다. 사람을 키워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내자”는 말을 자주 했다고한다.
2015년 국내 최초 ‘1조원 장학재단’이 됐으며 이후에도
남아 있던 부동산·현금 등 300억여원을 정리해 재단에 넣었다고 한다.
그가 기부한 금액은 부동산 가치 등이 오르면서 총 1조7000억원이 된다.
그는 “돈을 벌 때는 천사처럼 벌 순 없지만, 쓸 때는 천사처럼 쓴다”는 말을 자주했다. ‘공수래(空手來), 만수유(滿手有), 공수거(空手去)’라는 말을 스스로 만들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에 가득 채운 뒤 그것을 사회에 돌려 주고 빈손으로 가는 것)
평소 자장면이나 된장찌개를 주로 먹었으며 ‘자장면 할아버지’ 로도 불렸다.
그의 건강 비결은 절주와 규칙적인 생활이며 60대 부터 모든 식사에 드레싱이 없는 야채를 먼저 먹었고, 술은 하루 와인 한 잔을 넘기지 않았다. 90대 중반까지 골프를 즐겼던 ‘에이지슈터’(age shooter·한 라운드를 자신의 나이 이하 타수로 마치는 사람)였다.
그는 눈을 감기 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정도(正道)를 지켜라. 결국 정도가 이긴다. 재단을 영속되게 잘 운영해 달라”는 유훈을 남기고, 그는 “용서할 줄 아는 삶을 살라” 는 말을 남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