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38-21번지... 38-21번지.. 38..아! 여기다!! "
전단지에 쓰인 주소를 찾아 20여분을 중앙동 일대에서 헤맸다.
그러다 간신히 찾아내긴 했는데... 그런데...
" 뭐야? 우리 천사원보다 훨씬 크잖아... "
그랬다.
전단지 주소대로 찾아온 이 집은 나까지 합쳐 총 아홉명이 함께살고있는 천사원보다
족히 서너배는 더 커보였다.
" 돈이 썩어나나보네. 천사원은 수리도 제대로 못하구있는데.. 피식.. "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
커다란 집의 위용에 주눅이 든 나머지, 천사원에 살고있는 내 처지를 비관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검은색 철문 너머로 얼핏 보이는 넓다랗고 예쁜 정원에 대한 부러움도 아니다.
다만, 재력 좀 있다고 집의 외관에 돈을 쏟아붓다시피한 집주인을 향한,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작태가 한심해서 나오는 비웃음일 뿐.
기껏해야 네식구일까?
한세대, 아니, 넉넉잡아 두세대가 산다고 치자. 그래봤자 식구는 일곱명을 넘지않겠지.
집 평수는 어림잡아 80여평 정도. 어쩌면 그보다 더 넓을지도 모른다.
고작 일곱명정도가 사는 집이 80여평을 넘을 정도로 클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단층 건물도 아닌 2층짜리 건물이 말야.
이건 말 그대로 돈있다고 유세떠는 것 정도로 밖에 보이지않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가까운 예로 내가 살고있는 천사원이 있지않은가?
천사원의 연간 기부금은 기껏 2천정도이다. 달로 환산하면 한달에 채 200도 안되는 돈.
그 돈으로 여덟명의 아이들과 한명의 성인이 생활해나가고 있다.
인근 주민들의 소소한 도움과, 원장님의 개별 수입금까지 몽땅 털어놓지만, 그래도 생활에는 어려움이 많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니까.
애초에 천사원은 원장님의 자비로 세운 개인시설이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란 원장님은
자신의 20대를 바쳐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천사원을 지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버림받은 아이들이 더이상 아파하지않도록,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않도록 보듬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자비로 세워진 민간시설이다보니 국가의 공인을 받지 못했다.
공인을 받지 못했다보니 국가의 보조금은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순전히 원장님의 지인들에게서 받는 기부금과 원장님 개인 수입에 기댈수 밖에 없는데
그나마 요즘은 기부금마저 뜸해지고 있어 천사원의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 세명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선규, 순호, 석현이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장 부담되는 학비는 양 부모님이 안계시는 관계로 면제받았지만,
교복이나 체육복 및 각종 학용품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 사사로이 드는 비용들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 성에 대해 눈을 뜰 나이고, 또 자신을 가꾸는데 관심이 생길 나이다보니
여자친구를 사귀는데 드는 비용이나 꾸미는데 들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착한 녀석들이라 되도록이면 손을 벌리려하지않겠지만,
난 녀석들이 다른 사람에게 꿀리지않기를 바란다. 주눅들지도 말았으면 한다.
돈이 없어서 하고싶은 일을 못하게 되는 것..
그건 그녀석들에게나 지켜보는 나에게나 똑같이 힘들 일일테니까.
부모가 없어서 못하는 일들도 충분히 많은데..
돈이 없어 하고싶은 일을 못하게 된다는건........
가슴속의 상처를... 끄집어내 다시 헤집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일테니까.....
내가 과외를 하기로 결심한 것도 다 동생들을 위해서,
그리고 천사원을 위해서 꼭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원장님과 상의를 했고(원장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내가 극구 우겼다)
간신히 허락을 받아 오늘 눈 앞의 이 집을 찾아오게 되었다.
이렇듯 100원짜리 하나도 절실한 사람이 있는데,
힘들게 찾은 이 휘양찬란한 집은 돈이 넘치다못해 갖다 버리는 꼴 밖에 되지않으니,
웃음이 나올수밖에 없지않은가?
한참동안 대문을 노려보고 서있었다.
검은색의 웅장한 철문은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했다.
" 아까부터 거기서 뭐하시나? "
평생의 원수라도 되는 냥 대문을 노려보고 선 내 귓가로 누군가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왠 남학생 하나가 내게서 5미터쯤 떨어진 담벼락에 기대서서 담배를 물고있었다.
염색한것 마냥 새까만 머리칼을 살짝 흐트러트린채 반쯤 눈을 감고
턱을 비스듬히 치켜들고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 남학생.
느릿느릿 담배연기를 내뿜고있는 남학생을 가만히 훑어보았다.
교복을 입고 당당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모양새라던가
검지와 중지사이에 꽂혀있는 담배가 묘하게 자연스러운게,
한 두달 정도의 흡연경력으로 가능한 모습이 아니였다.
게다가 반쯤 풀어헤친 셔츠라던가 마이 주머니에 대충 꽂혀있는 넥타이.
전체적으로 단정하지 못한 차림새에 어딘지 모르게 위험스러워보이는 분위기,
거기다 교복차림에 당당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은
남학생의 정체를 단 한마디로 결론짓게 만들었다.
[양.아.치] 라고.
" 거기서 뭐하고 있냐? "
다 피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양아치가 묻는다.
대답할 가치를 못느껴서 무시했더니, 내 옆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온다.
크다...
187정도 될까?
167인 내가 간신히 어깨에 닿을 정도.
내 앞에 버티고선 양아치의 커다란 키는 순간적으로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 한번 더 묻는다. 여기서 뭐하냐..? "
느릿느릿.
지독한 저음으로 읊조리듯 느릿하게 내뱉는 어조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하다.
몽환적이면서도 나른한, 마치 느린박자의 재즈와도 같은...
" ...대답 안하냐? "
" ....아... "
양아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었다.
살짝 눈썹을 찌푸리는 양아치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그쪽이랑 상관없는 일일텐데? "
" 아.. 그래? "
" 그래. "
그래 라는 대답이 별로 웃긴 것도 아닐텐데 양아치는 한쪽 입술을 들어올리며 피식거린다.
그 웃음에 왠지 모르게 울컥해져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 만약... 상관있으면 어쩔래...? "
" ......뭐? "
" 니가 보고있던 대문. 우리집 거거든? 그러니까, 바로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
엄지 손가락으로 뒷쪽을 가리키며 특유의 느릿한 어조로 말을 잇는 양아치.
" 그럼 나랑 상관있는거 맞지? "
* * *
제..기랄!!
양아치가 이 집의 주인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충격으로 멍해있는 나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선 양아치는
나를 보며 누구냐고 묻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에게 [과외선생]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2층으로 올라갔다.
덕분에 덩그러니 거실에 남겨진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눈에서 레이져빔이 쏟아져나온다)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아주머니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 어머나! 예쁘기두 해라. 그래, 과외 전단지 보고 찾아오신거예요? "
" 아..네... "
" 교복입고있는거 보니까, 아직 학생? "
" 아.. 전단지에 18세 이상이라길래.. 안..되나요? "
" 안되긴요~! 그러고보니까 세화고교복이네? "
" 네.. "
" 세화고정도면 대환영이죠. 뭐니뭐니 해도 명문고등학교인데!! "
" ..아.. 명문이랄 것 까지야.. "
" 어머어머! 당연히 명문이죠!! 나도 세화고 나왔는걸!! "
양 손을 허리에 얹고 외치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고교 평준화로 인해 과거처럼 성적순이 아닌, 뺑뺑이로 입학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자신의 모교인 세화고에 다는 것이 어지간히 반가운 듯
한참동안이나 세화고에 대한 얘기를 쏟아내던 아주머니는
처음보다 훨씬 더 살가워진 목소리로 물으셨다. (처음부터 친절했지만)
" 아참. 성적은 어느정도예요?
아, 성적이 조금 안좋아두 가르치기만 잘하면 되니까 너무 어려워하지말구요. "
성적.
내가 제일 자신있는게 바로 성적이다.
내 노력과 눈물의 산물.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뒤로 단 한번도 놓쳐본 적 없는 전교 1등.
" 자랑같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한번도 전교1등을 놓쳐본적 없어요. "
조심스럽게 묻는 아주머니의 배려에 나는 자신 만만하게 웃어보이며 답했다.
" 아, 그래요? 전교 1... 헉! 정말이예요? 정말 전교 1등? "
" 아..네.. "
" 어머..어머...어머어머어머!!! "
초롱초롱빔 강도 2배로 상승.
얼굴전면의 홍조화 추진.
천천히 벌어지던 입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아주머니는 산삼을 캔 심마니처럼 감격에 찬 함성을 질렀다.
" 합격!!!!!!!!! "
* * *
내가 여태껏 전교1등 자리를 한번도 놓친적이 없는 이유는 순전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노력, 노력, 또 노력.
예습복습은 기본이요, 재복습, 재재복습, 재재재복습까지 하는 게 나다.
한번 배운건 완전이 이해할때까지 몇번씩이고 반복해서 익히고,
그리고 설령 알게됐더라도 방심하거나 마음 놓지 않는다.
수시로 점검하고 또 점검해서 완벽하게 내것으로 만든다.
내게 있어 공부는 생존 그 자체이다.
그렇다보니 대충 공부하는 애들과는 공부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틀리다.
살아남기위해 남들보다 뛰어나야하고, 살아가기위해 남들보다 완벽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대할때 필사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도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과외수업도 공부의 연장이니까.
내가 배우는게 아니라 가르친다는 입장이 조금 다르지만,
알고있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기위해 그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기위해 탐구를 하다보니
나에게도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데... 다하는데...
" 강신후. 좀 제대로 앉지? "
이 양아치녀석은 당최 도움을 주지않는다.
" 그리고 이어폰도 좀 빼지 그러니? "
수업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를 등받이삼아 기대앉아
귀에 이어폰을 꼽고 흥얼거리는 녀석의 귀에서 이어폰을 잡아뺐다.
긴 앞머리에 가려진 녀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 내 놔. "
" 안돼. "
" 내 놔. "
" 수업끝나고 돌려줄게. "
" 내 놓으라고했다.. "
" 난 수업끝나고 돌려준다고 했어. "
손가락을 축 삼아 이어폰을 둘둘 감은 나는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어폰의 행방에따라 시선을 옮기던 녀석은 한동안 뚫어져라 내 교복 주머니를 노려봤고,
녀석의 눈썹이 위험하게 치켜올라가는 걸 알면서도 나는 절대로 이어폰을 돌려주지않았다.
신후의 어머님과 약속을 한 것도 있고, 또 이왕 맡은거 제대로 해보자 라는 욕심 때문이였다.
" 야... "
특유의 어조로 나를 부르는 신후.
후- 하고 바람을 불자 녀석의 얼굴을 가린 길다란 앞머리가 바람에 나부끼면
그 속에 감춰져있던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난다.
움찔.
예리하게 잘 벼려진 신후의 눈동자가 내 눈을 향한다.
얼핏 보면 고요해보이지만 그 속에 잠재워진 강렬한 이글거림은
딱딱하게 경직되어버린 몸을 두려움으로 떨리게 만든다.
" 왜.. "
꿀꺽 침을 삼킨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답을 했다.
내게서 시선을 떼지않고 한쪽 팔을 침대에 걸치고 오만하게 턱을 치켜든 신후.
" 너... 자꾸 까불지마라.... "
" ...... "
" 자꾸 까불다가... 죽는 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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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캬캬캬!! 신후 너무 좋아요ㅠ.ㅠ
이런 내 타입같으니!!
신후때문에 행복해요\(´ ∇`)ノ
첫댓글 꺄아꺄아!! 팍팍 좀 올리세요!
마구마구 흥미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부지런히 올려 주시면 말할 것도 없이 감사(꾸벅_)
신후 멋져요~카리스마가 그냥 느껴지는데요...ㅋㅋㅋㅋ....담편도 빨리 올려주세용....ㅎㅎㅎ
강신후라....왜 강신재가 생각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