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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질문]몽골이 고려점령후 고려왕실을 해체하지 않은 이유?
미드나잇 추천 0 조회 3,000 11.05.29 15:58 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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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29 16:38

    첫댓글 어찌됬든 전쟁에서는 버텨냈고 나중에 사신보내서 숙이고 들어왔으니 봐줬겠죠
    스타로 치면 금, 송은 끝까지 버티다 엘리당한거고 고려는 어찌저찌 막아는 내다가 안될거 같아서 gg친거죠

  • 작성자 11.05.29 17:03

    그렇게 단순한 문제인가요..?; 몽골이 점령한 지역중에 왕실이 무사한 지역은 고려이외에 없지 않나요?

  • 11.05.29 18:50

    고려도 초반에 잠시 막다가 나중엔 사실상 막는다는개념보다 방치하는개념이 되지요. 털리기는 전국토가 다털리다 시피했는데 아무래도 님말씀대로 정부가 존립하고 버티긴있었으니;;;

  • 11.05.29 17:06

    - 항복의 타이밍과 대상이 기가 막혔습니다. 막말로 "항복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책을 써도 될 정도로;;;

    - 쿠빌라이가 원종이 항복할 때 지지세력도 부족하던 차에 제일 먼저 골칫거리들이었던 고려가 알아서 항복하니 배팅을 아주 크게 했습니다.(...) 무려 자기 손녀딸 중 하나를 줬죠.. 고로 고려도 황금씨족(...)의 일원으로 쿠릴타이에도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죠.. 항렬 자체는 꽤 짬이 되어서 말빨도 있고 했습니다.

  • 11.05.29 17:15

    그게 고려 측에서도 약간은 도박을 한 감이 있죠. 당시 쿠빌라이가 압도적이었던 때도 아니었으니 ㄷㄷㄷ

  • 11.05.29 19:17

    우왕 손녀딸 get ㅋㅋ 손녀딸을 무시할수 없었겠네욬ㅋ

  • 11.05.29 19:10

    델카이저님말처럼 항복타이밍과 대상을 잘 잡은거죠...당시 몽고는 몽케칸 사후에 내전시기였는데..고려에서 쿠빌라이한테 항복함으로서..쿠빌라이의 정치적입지가 확고해졌다고 봅니다..(수십년간 항쟁하던 고려에서 쿠빌라이한테 항복함으로서..쿠빌라이의 정적들보다 우위에 서게되죠)

  • 작성자 11.05.29 19:38

    그럼 쿠빌라이가 고려에게 고마움을 느껴 왕실을 남겨뒀단 의미..??

  • 11.05.29 21:23

    미드나잇// 그런 셈입니다...^^; 뭐 작은 나라라 뜯을 것도 그다지 없었고... 여튼 쿠빌라이가 고려의 항복을 매우 기꺼워 했는지, [세조구제]를 맺어 고려의 독자성을 인정해 주고 국체를 유지시켜 줍니다. 근데 '일본원정' 시기가 되자 고려에 꽤나 압력을 넣죠. 고려가 호구수나 군대규모를 속이거나 죽는 시늉을 하면서 일본원정에서 발을 뺄려고 하자, 여러차례 사신을 보내와 고려를 힐문하게 됩니다...-_-;

  • 11.05.29 21:29

    몽골애들 하는 거 보면, 자신들에게 굽하지 않으면 후려치는 것이 거의 '원칙'인지라- 초반에 몽골이 얼마나 강적인지도 모르고 까불던 고려의 '최씨정권'때문에 고려가 전장으로 완전 쑥밭이 되고 말죠. 최충헌이는 초반부터 뇌물을 아가리 찢어지게 쳐넣어주면 몽골 오랑캐들이 알아서 물러가리라 여겼습니다. 마치 [요-금교체기]처럼 고려정치판에 영향 없이 넘어가길 바랬던 것입니다. 근데 다루가치를 두고 간섭할 기미를 보이자 수틀린 최씨정권이 돌연 항전으로 기울었고... 이랬던 상황이 최씨정권의 몰락과 뒤이은 고려국 왕태자 전의 '칭신입조'로 바뀌자- 굽히고 들어오는 애들을 후려치기는 뭐하고, 내분으로 어수선한 상황이라

  • 11.05.29 21:32

    쿠빌라이가 많은 점수를 준 것입니다. 고려의 항복을 받으면서 쿠빌라이가 한 말이 참 의미심장 하죠. "고려는 당태종도 꺾지 못한 나라인데, 나에게 항복하니 이건 천명이다"...^^; gksmf님의 말씀처럼 고려의 항복이 쿠빌라이의 [정치적 입지]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 11.05.29 23:55

    해동 / 단순히 나이스 타이밍 이라고 보긴 좀;;;; 몽골이 고려를 '직접 통치'하려고 했다 해도. 통치력에 확연한 한계가 있을것 같습니다. 나중엔 방어선이 아주 쉬발나서 토호들이 몽골에 붙고 수천단위로 레이드 뛰는것도 쩔쩔이었지만;; 레이드와 통치는 또 수준이 다르니까요. 몽골의 통치체계가 좀 시망이다보니(....)

  • 11.05.30 01:41

    무장공비님// 몽골이 고려를 직접 통치하려면 가능했던게 그냥 쿠빌라이가 고려영토를 동방왕조에게 영지로 주어버리면 됩니다. 어차피 몽골제국이 쿠빌라이칸을 대칸으로 모시고 나머지 4아들 가문과 동방왕조가 자기들의 울루스 안에서 다스리는 국가였기 때문에 쿠빌리아기 그냥 고려를 동방왕조 영지로 주어버렸으면 최소한 원나라 망하기 십수년전까지는 직접통치가 가능했겠지요. 때문에 쿠빌라이가 고려를 살려주었던 것은 gksmf님의 말대로 고려의 항복이 쿠빌라이 정치적 입지를 확고해 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 11.05.30 07:31

    유문기님 동방왕조는 만주쪽에 무칼리후손외 공신들의 후손 땅으로써, 원나라 영역에 포함되는걸로아는데 동방왕조애들이 사실상 울루스정도의 자치적인 지위를 누릴정도로 원의 땅에 대한 지배력이나 통치력이 미약했습니까?

  • 11.05.30 09:05

    '몽골제국의 만주지배사' 에 따르면 거의 그런것 같더군요. 만주지역에 공신들 후손들이 많다고는 하나 거기의 주류는 칭기스칸의 동생들 가문인 동방 3왕가였고, 이들의 군사력은 쿠빌라이 칸도 위협적으로 여길 수준이였으니 말입니다.

  • 11.05.30 10:53

    Rothschild// 까고 말해서 '4한국'이 강조되어 그렇지, 동방3왕가들도 그에 못지 않은 세력을 자랑했습니다...^^; 원나라가 고려를 우대한 이유가 바로 [동방왕가 견제]였거든요. 나중에 동방왕가가 반란(나얀의 난)을 일으키자 고려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국경까지 나아갔으며, 그 잔당들이 고려로 침범하여 고려가 2차로 전장이 됩니다...-_-; 동방왕가는 반란 이후로 세력이 꺾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할 정도로 강력하기 그지없었어요. 원나라 판도 안의 제왕가들 중에서 동방3왕가의 필두인 [옷치긴 왕가]는 가장 강력하고 광대한 세력을 자랑했습니다.

  • 11.05.30 11:22

    해동천자님 몇가지 질문을 드릴수있을지요. 1번째로 동방왕가가 그정도로 강력한것은 아무래도 만주땅이 몽골땅보다 특산물이 많이나고 비옥해서입니까? 2번째로나얀의 난 진압이후에 쿠빌라이가 위협의뿌리를 제거안한 이유는 무엇인지 알수있을지요? 마지막으로 나하추같은애들이 동방왕가의 뒤를 잇는애들이라고 보면되는겁니까?

  • 11.05.30 11:44

    1. 간단하게 말하면 몽골 특유의 분봉제도로 인해서 분봉받은 4가문이나 동방왕가는 쿠빌라이와 그의 후손들에게 정해진 공물을 잘 보내면 자신들의 통치를 공고하게 할 수 있었지요. 즉, 몽골 자체의 정치문화로 인해서 각 가문들과 왕가들이 자기들만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다루가치를 보내거나 고려와 같은 견제세력을 만드는 것이었지요. 나중에 쿠빌라이와 나중에 카이두와 싸울 때 나머지 울루스에게 자신에게 보내는 공물을 그냥 니들이 가지고 나를 도와 주라고 하면서 카이두를 견제, 압박하는 견제세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 11.05.30 11:57

    2. 그게 나얀의 난을 정벌하였지만 카이두가 계속 자기 가문의 지위 좀 높여달라고 징징대니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동방3왕가를 공중분해 시키기보다는 어느 정도 존속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만 나얀의 난을 주도한 웃치킨 가는 크게 세력이 약화되고 더 이상 동방왕가들이 뭉쳐서 난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어졌디요. 그리고 대칸을 둘러싼 계승다툼에서 패햐지 않는 한은 어차피 자기들 말좀 들어주라고 징징대는 경우이기 때문에 가문들을 멸문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영지와 군사들 몇 명 몰수하여 세력을 약화시키면 그만이지요.

  • 11.05.30 12:06

    3. 예, 동방3왕가는 카사르, 카치온, 웃키친가인데 이 들 외에도 칭기스칸이 국왕으로 봉한 무칼리가 등이 있습니다. 나하추는 이 무칼리가의 후손으로 당시 웃치킨가와 함께 만주에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지요. 원나라가 약해져 더 이상 대칸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나하추는 열심히 세력을 키워 당시 요동정세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 11.05.30 13:26

    ㄷㄷ;;; 그런데 영지를 몰수당했는데 세력을 다시 어떻게 키웠던건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나하추외에 옷치킨 가 또한 원나라 멸망하고 명에 귀투하나요?

  • 11.05.30 16:27

    유문기// (1)에서 원나라 조정이 각 왕가를 견제할 목적으로 '다루가치'를 보냈다고 하셨는데, 이건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이 분봉왕가들이 자기 영지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관료임용에 중앙조정의 관리를 받았는가인데- 사실 [형식상] 중앙의 중서성을 통해서 임명하기는 했으되, 사실 분봉왕가들은 독자적으로 영지 내의 '인사행정'을 행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분봉왕가들이 금을 멸한 시점에서 받은(병신분봉) '한지식읍'의 경우, 현지 유력자나 지식층과 '혈연관계'를 맺으면서 유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것이죠...^^; 남송을 멸하고 받은 '강남호'의 경우는 중서성에서 수취하여

  • 11.05.30 16:34

    분봉왕가들이 "중서성을 통하여.." 세액을 받았지만, 화북의 한지식읍이나 몽골-만주의 식읍은 독자적으로 임명한 관료들이 관리했습니다. 예컨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집안]의 경우도 원나라 중앙이 아니라 동방왕가에 의해서 '현지관료'로 임용된 케이스죠...^^;

    (3)의 경우, 물론 나하추도 중요하지만- 만주의 동방왕가 후손들을 관리하기 위해 명이 설치한 [우랑카이 3위]의 존재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 11.05.30 16:38

    해동천자님//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우루스의 구조를 보면 분봉받은 모든 경제력, 군사력이 다 분봉왕가의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직활령과 나머지 4가문과 대칸의 우루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4가문만 아니라 무려 대칸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모든 분봉받은 우르스에는 대칸 및 나머지 4가문 및 왕가들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한 우르스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다루가치도 이곳에서 나오는 공물을 받고 돌아오기 위해 보내는 것이고 따라서 분봉왕가가 독자적인 인사행정을 가지고 있던 말든 간에 어쩔 수 없이 다루가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 11.05.30 16:42

    Rothschild// "그런데 영지를 몰수당했는데 세력을 다시 어떻게 키웠던건지..." -> 애초에 동방왕가들은 영지를 깡그리 몰수당한 적이 없습니다...^^; 봉호를 줄이고 군사를 빼앗아 규모를 줄이는 정도였지만, 타격이 꽤나 컸어요. 또한 이런 조치를 취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일족에 대한 [징벌적 조치]이기 때문에, 나중에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고- 설사 이런 '감봉(減封)'을 당했다 할지라도 쥐어짜기를 이전처럼 하면 되는 거죠...-_-; 예컨대 원나라 중앙조정이 1319년에 대대적인 [봉호삭감]을 행하자 분봉왕가들의 식읍이 거의 반절이 줄어듭니다만, 세금을 두배로 물리는 방법으로 이전과 같은 재정을 확보합니다.

  • 11.05.30 16:46

    더구나 계속되는 내전과 쟁탈전에서 황제들은 분봉왕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봉호를 더해주거나 대규모로 '사여'를 행했기 때문에, 떨어지는 떡고물도 쏠쏠했습니다...ㅋ

    유문기// 그렇군요...ㅎㅎ;;

  • 11.05.30 22:51

    유문기 님께 질문. 김호동 교수의 『몽골제국과 고려』를 보니, 쿠빌라이가 훌레구와 알루구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본래 대칸의 관할이던 정주지대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줬다고 적혀있던데요. 혹 쿠빌라이나 후대의 대칸들이 동방의 왕가들에게도 이 권한을 주지는 않았나요?

  • 11.05.29 20:11

    낚시의 타이밍?!
    자세하게 글을 한 분이 서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 11.05.29 23:40

    무신정권에 대해 자세한 서술을 한 '고려 무인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충렬왕이 세자시절에 내전중인 쿠빌라이를 찾아가 항복하자 쿠빌라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고려는 먼리의 먼 나라다.' 라고 칸이 된 후에 고려를 후대하기로 약조했다합니다.. 그래서일듯하네요..

  • 11.05.30 00:12

    사실 몽골이 고려까지 지배할 역량도 없었음요. 때려부술 역량이야 충분했지만 중국처럼 직접 지배할 필요가 있는 땅도 아니고 알아서 항복하는데 굳이 건들 필요도 없고. 모스크바처럼 말 잘듣기만 한다면야 몽골도 굳이 왕실까지 해체하면서 저항을 불러 일으킬 필요도 없었죠. 물론 황금씨족과 결혼시켜주면서 나름 후대해준건 원종과의 개인적 친분도 있고 정치적 문제도 있고.

  • 11.05.30 10:53

    글쎄요...-_-; 원나라 판도 안의 '동방왕가'들은 고려가 복속한 후로도 무려 황해도 서흥-평산에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심지어는 원나라 조정을 뒤로제끼고 '공물'을 뜯어가기까지 하거든요. 고려가 동방왕가에 흡수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원나라의 [동방왕가 견제]때문입니다. 즉 원나라가 나서서 동방왕가가 고려에 손을 뻗치는 것을 막아준 덕에 고려가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죠...^^; 원나라는 그에 그치치 않고 고려에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데, 이것도 역시 동방왕가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여러 제왕가들이 꽤나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 11.05.30 10:54

    동방왕가들이 고려 하나 '흡수'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미 한반도 북부의 평안-함경-황해도 북부까지 손을 뻗칠 정도였으니... 이렇게 동방왕가에 흡수될 고려는 동방왕가의 종주인 원나라에 [귀속]되므로, 최종적으로 보면 원나라가 고려를 없애고 자국에 편입하는 것과 다름없어요...ㅎㅎ;;

  • 작성자 11.05.30 17:15

    제 질문엔 이게 정확한 정답인거 같네요!
    단순히 타이밍과 친분문제보단 동방왕가 견제용으로 고려를 살려두었던것이 맞겠군요

  • 11.05.30 20:17

    많이 알고갑니다^^

  • 11.05.30 21:01

    결론은 직할통치 할 수 있었는데, 견제용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니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 11.05.31 10:33

    보통 외국에서 작성하는 원나라시대의 지도를 보면 고려가 원나라땅으로 나오는데 이러한 맥락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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