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봄 마중
음력으로 섣달그믐이다. 전날 고향을 지키고 사는 큰형님을 찾아뵙고 안부 인사를 나누고 왔다. 고향 집 고샅 은행나무에 까치가 둥지를 틀어 살았다. “고향 집 찾았더니 삽짝 밖 은행나무 / 높다란 꼭대기에 까치가 지은 둥지 / 층수를 높여 가면서 하나둘셋 채였다 // 암수가 짝을 이뤄 알 놓아 새끼 치려 / 꼬챙이 물어다가 허공에 얼기설기 /석 삼 년 눌러살고도 올봄에도 머문다”
앞 단락은 ‘까치 아파트’ 전문으로 연휴가 시작된 금요일 아침에 남긴 시조다. 4일 연휴에서 첫날이다. 아침 식후 산책 행선지를 동네 주변으로 정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 꽃밭으로 나갔더니 꽃대감 친구와 안 씨 할머니는 뵙지 못했다. 근래 연일 날씨가 포근하고 비가 왔던 관계로 겨울을 나는 움과 싹이 트고 있어 꽃밭에는 예년보다 봄이 일찍 찾아오는 듯했다.
아파트단지 바깥으로 나가 외동반림로를 건너 이웃 아파트단지에서 초등학교 앞을 지나 용지호수로 나갔다. 호숫가에는 이른 아침이면 산책객을 볼 수 있었으나 산책로를 거니는 이들이 없어 한적했다. 호수 수면에 겨울을 나는 고니 가족 네 마리는 먹이활동은 않고 한가로이 물에 떠 놀았다. 깃이 까만 물닭들은 물살을 가르는 헤엄을 치거나 자맥질하면서 아침거리를 찾고 있었다.
용지호수에서 성산아트홀 뜰로 가서 펼침막의 공연과 전시 일정을 살펴봤다. 새봄에 눈길을 끌 만한 공연은 없고 백 살을 앞둔 영국의 여성 화가 그림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용지문화공원으로 건너가 옛적 창원도호부 시절 부임했던 부사들이 남긴 빗돌과 몇몇 금석문을 둘러봤다. 공원에 조경수로 자라는 산수유나무와 매실나무에서는 꽃망울이 부풀어 연방 꽃잎을 펼칠 기세였다.
맨발 걷기 산책로에서 신문사와 관공서 거리는 설날 연휴로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청사 주변 갓길은 차량이 한 대도 없어 명절임을 실감했다. 어느 청사 전면 외벽에는 최근 3년간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상위에 올랐다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글쎄, 청렴도 평가 기관 공정성을 신뢰해야겠지만 피부로 체감된 청렴도에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청 뜰로 가 봄이 오는 이즈음 꽃망울 맺는 매화와 산수유를 살펴봤다. 연못가 능수버들에서 수액이 오르면서 가지가 휘어졌다. 경찰청 청사 앞 목련은 꽃눈에서 솜털이 부풀어갔다. 역세권 상가에서 물향기 공원으로 올라가서 수양약버들이 휘어지는 모습에서 수액이 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창원중앙역으로 건너가니 열차 출발 도착 시각이 아닌지 역사로 드나드는 이가 적었다.
창원대학으로 내려가 공학관 앞에 피는 매화꽃망울과 산수유꽃망울을 살펴봤다. 양지바른 곳이라 매화와 산수유꽃은 연방 화사한 꽃잎을 펼칠 낌세였다. 캠퍼스를 바깥으로 나와 대학 앞 상가에서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창원천 천변을 따라 걸어 사림로 단독주택 골목으로 향했다. 외벽이 붉은 벽돌로 둘러친 담장에 드리운 영춘화를 살피니 노란 꽃잎을 펼쳐 봄기운이 느껴졌다.
거기 영춘화가 꽃잎을 펼침과 동시에 창원의 집에서도 홍매화가 봄이 왔음을 알려줌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창원의 집으로 드니 기와를 얹은 토담 밖에 선 한 그루 매실나무는 홍매화가 꽃잎을 활활 펼쳐 향기를 뿜었다. 사림동 주택가 골목길을 걸으면서 담 너머 뜰에 피는 매화 망울은 연이어 볼 수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가는 어느 꽃집은 설날이라 문을 닫아 봄꽃을 보지 못했다.
봉곡동 상가에서 점심을 들고 휴먼시아 아파트단지 한들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이 끝나고 봉림사지로 올라가는 분재원에는 도심에서 봄 마중 마지막 코스로 운룡매가 기다렸다. 분재처럼 가지를 옹글고 비틀어 자란 매실나무가 수많은 꽃송이를 활활 펼쳐, 도래한 봄은 되돌릴 수 없음을 확인했다. 안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뜰로 들어 벌들이 날아와 윙윙거리는 매화를 사진에 담았다. 24.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