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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경에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한것을 기념하여 건축한 하드리안문 이오니아식 건축물이라고 한다. 트루키예의 안탈리아에 있다. |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의 유구한 역사는 마치 박경리의 <토지>나 황석영의 <장길산>이라는 대하소설처럼 그 배경과 인물 등 그 범위가 크고 사건도 아주 복합적으로 얽히고 넓고 분량도 엄청나게 크다. 역사 교수님들이 하는 유대 민족의 역사 강의를 매일 둘레길을 걸으면서 유튜버로 수도 없이 많이 듣다가 보니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유데인의 역사에 관한 여러 사람의 강의를 종합해서 듣다가 보니 그 내용의 파악이 조금 부족했던 부분들은 서로 보완해주게 되고 해서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추어지고, 어느 정도 그 흐름과 윤곽이 잡히는 기분이 든다. 역사의 광범위한 곁가지는 모두 떼어내고 핵심인물들이 이어온 핵심사건 줄거리를 세계사 강의 내용과 때로는 성경을 넘나들며, 조합하고 배열하여 재구성을 해 보았다. 유대민족이 로마의 지배에서부터 근현대사는 지난달에 카톡에 올린 바가 있어서 이번에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로마의 지배까지, 특히 로마의 지배가 본격화되는 헤롯왕조 시기를 중점을 두었다. 또 135년 이들이 2차독립전쟁에 패하고 세계이곳저곳으로 흩어졌었던 기간을 정확히 말해서 1813 년동안 디아스프라래나 뭐 세계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가 현대에 와서 1948년에 1813년 만에 나라를 다시 세우기까지를 A4용지 5쪽 분량으로 요약 정리하여 기록해 보았다. 이것은 무슨 신화나 그들의 고전이 아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피로 얼룩진, 피로 물들어가는 유데인의 처절한 삶의 역사이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역사♡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으로 가는 교역로의 중심지이다. 이곳을 놓고 이집트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오스만 로마 십자군 이처럼 강력한 제국들이 패권을 잡으려고 각축전을 벌이던 곳이다. 큰 제국이 되려면 교역로인 이곳을 차지해야만 했었던 것같다. 고고학자들은 이곳 여리고라는 곳에는 9천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있다고 한다. 기원전 3천여 년 전에 가나안인 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1800년경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가족들을 데리고 먼 길을 걸어서 이곳까지 왔었지 그에게 신(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축복의 약속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너의 후손이 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양육하고 번성하리라는 축복이었다. 아브라함이 80대가 되도록 아들을 놓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네 자손을 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양육하고 번성하라”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하셨던 그 약속을 믿지못했는지? 사라는 자신의 시종을 아브라함의 침실로 보내어서 아브라함이 86세에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삭을 낳았었지.∼♡♡
그의 아들 이삭은 쌍둥이인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인 에서와 동생인 야곱이다.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형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님께서 드리는 장자의 축복기도를 가로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도 외삼촌에게 7년을 일하면 레아에게 장가들 것을 약속하고 봉사를 했는데 돌아온 것은 레아가 아니라 탐탁지 않은 못생긴 라헬이었다. 다시 또 7년을 일을 해주고 자신이 원하는 레아에게 장가를 들 수가 있었다. 그는 얍복강가에서 누군가와 밤이 새도록 씨름하던 끝에 얻어낸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그는 두 명의 처와 두 명의 노비에게서 열두 명의 아들을 놓게 되는데 이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열두지파이다.∼♡♡
열두지파 중에는 본처에게서 난 요셉과 베냐민이 있는데 야곱(이스라엘)은 본처에게서 난 요셉을 가장 사랑을 많이 주게 되는데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형제들이 그를 이집트 상인에게 인신매매를 하게 되고 이집트로 팔려간 그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고 그의 소문이 바로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그는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된다. 7 년 동안의 기근에 식량을 구하러 찾아온 형들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형들에게 했던 요셉의 말이 인간의 말이 아닌 천사의 말로 느껴진다.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시면서 올린 자신을 못 박는 저들을 용서하라시던 기도처럼 느껴진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시절에 태어나서 왕명에 의해 나일강에 버려지지만, 나일강 갈대 상자에서 건져진 그는 왕궁에 입양되어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고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당시 이스라엘 열두지파들은 이집트에서 벽돌을 굽고,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바로왕)의 피라미드를 쌓으며 힘든 노예새왈을 할 때였지. 신(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모세가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출발을 했었지. 모세는 시나이산(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었지. 40여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며, 모세는 느보산 정상에서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다음 주자인 여호수아에게 바턴을 넘겨주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피터지는 전쟁 끝에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고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법궤를 모시는 성전을 중심으로 신의 계시를 받은 지도자가 제사와 정치를 관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제사는 제사장이, 정치는 왕이 하게 되었다. 초대 왕으로 사울이 선택되었다.∼♡♡
2대 왕인 다윗은 어린 소년 시절에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격파하여 왕의 사위가 되고 왕좌에 오른 후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하고 주변국들을 통일시키고 나라의 기틀이 마련된 이때가 기원전 1000여 년 전이었다.∼♡♡
3대 왕인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으로 기원전 957년경에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하고 왕궁을 건축했다.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느라고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심한 노동력 동원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4대 왕인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가혹한 세금부과와 가혹한 정치로 인해 마침내 민심이 폭발하여 10지파는 북이스라엘로 나머지 2개 지파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남유다로 갈라지게 되었다. 외부의 힘이 아닌 세금 때문에 내분이 일어난 것이 남북으로 갈라진 원인이었지.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시리아에 멸망하면서 민족들은 흩어져서 지금까지 그들의 흔적을 알 수 없다. 그리고 136년 후 기원전 586년에 남유다는 바빌론에 느부갓네살왕에 멸망했다. 이때 예루살렘성전이 소실되고 바벨론 포로 생활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 유대교가 완성된다. 왕도 없고 나라도 없고 성전도 없던 시절이지만 이들은 에스라라는 선지자가 흩어져 있는 율법서를 모아서 토라(모세오경)를 완성하고 마을마다 작은 예배 장소에 모여서 제사 대신에 토라를 읽고 토론을 하며, 나라가 없어도 땅이 없어도 성전이 없어도 작동되는 그들만의 신앙생활과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고 이 당시가 유대교가 완성된 시기가 아니었을까? 성전이 없어도 토라라는 텍스트와 공동체만 있으면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것을 터득했었지.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유대인이라는 말이 바벨론 포로 생활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벨론은 그 후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에게 망하고 키루스 대왕은 이민족 포로들을 돌려보내고 성전건축을 지원해주었다. 이사야는 타민족인 키루스 대왕을 메시아라고 했다. 참고로 성경에서는 키루스 대왕이 고르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당시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라는 총명한 소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하에서 학문을 전수받고 자라서 젊은 청년기에 왕좌에 앉아서 이집트에서부터 동방으로 인도까지영토를 넓혔는데 그지역 안에 있던 페르시아와 속국인 유데지역도 헬라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알랙산더 대왕은 다른 정복자들과는 달리 무력뿐만 아니라 정복지에 시대를 앞서가던 헬레네즘 문화를 심었었지. 헬레네즘 문화라고 하면 그리스어, 그리스철학, 그리스 건축 등 특히 이 가운데 그리스 철학은 소크라테스에서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까지 이어지는 당대의 우수한 학문이었다. 지피지기 면 백전백승(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는 유명한 손자병서에 기록된 말처럼 그는 전투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은 문(文)과 (武)를 겸비한 지도자라고나 할까. 그는 지혜롭고 지식이 많은 지장(智將), 용맹스러운 용장(勇將), 덕스러운 덕장(德將)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32세에 요절하자 제국은 한순간에 붕괴하여 그의 휘하의 장군들이 각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안티오코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로 분열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기원전 312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존속한 서아시아 일대의 헬레니즘 국가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제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를 계승한 아나톨리아 반도, 레바논,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했다고 한다. 이 지역을 셀레우코스 왕조가 이어받아서 지배를 하던 중 안티오코스 4세가 헬레니즘 문화를 더 전파하기 위해 유대교를 억압하였는데 할례를 금하고 토라 소지도 못하게 하고 예루살렘성전에 제우스신을 모시게 하자 사제인 마타티아스가 반란을 일으키어 하스몬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마타티아스는 제사장 가문으로, 안티오쿠스 4세의 성전 모독과 유대교 금지령에 반발해 반란을 촉발했고, 그의 아들들이 주도해 성전을 탈환했다. 성전 탈환 후 유대인들은 이교도 신상을 치우고 성전을 다시 봉헌했으며, 이 사건을 기념하는 유대교 명절이 하누카(수전절)라고 한다. 8일 동안 촛대에 불을 밝히며 ‘봉헌’과 ‘빛’의 의미를 상징한다고 한다.∼♡♡
기원전 129년 셀레우코스 왕조가 몰락하고 기원전 312년 마카비전쟁을 이끈 시몬 하스몬이 자신을 유대의 지도자이자 총사령관 겸 대사제장으로 칭하며 하스몬 왕조를 새우지만 하스몬 왕조는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전 63 년 왕실 내에서 형제간 내분이 일어나서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이들을 중재하러 왔다가 국왕 힐카누스 2세를 폐위시키고 이두메 출신인 헤롯에게 왕의 자리를 부여했다. 헤롯은 이스라엘(야곱)의 후손이 아니고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이라고 한다.∼♡♡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후원을 받아 원로원으로부터 유다의 왕으로 인정받았다. 얼마간 영토 없는 왕이 된 헤롯은 로마가 파르티아를 시리아에서 몰아내자마자 예루살렘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기원전 37년 안티고누스는 헤롯에게 패배하여 참수형에 처해지고, 예루살렘은 헤롯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로써 헤롯은 유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였다.∼♡♡
로마의 앞잡이로 인식되던 헤롯은 유대인의 지지를 충분히 얻지 못하자 하스몬 가문의 유대인 여자 미리암 1세와 결혼함으로써 왕조와 인척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으려고 허물어진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찾아가서 기도드리는 통곡의 벽이 헤롯왕 때에 건축한 예루살렘성전의 일부 벽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34년간이나 유다왕국을 통치하면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헤롯은 통치 초기 고(舊)왕조의 일족과 추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였다. 80세가 넘은 전 대제사장 힐카누스 2세를 죽이고, 또 자신의 사위이자 대제사장이었던 아이스톨불러서 3세를 여리고 왕궁에서 살해하였다. 또, 자신의 아내이자 하스모니안 왕조의 딸 미리암 1세를 부정한 여인으로 몰아 처형했으며, 자신의 장모를 클레오파트라 7세와 공모했다는 죄목으로 죽였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갈등은 헤롯의 지위를 다시 한번 크게 흔들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월등한 전략과 우세한 병력을 가진 옥타비아누스 장군은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승리하면서,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얻어 황제에 즉위하였다. 참고로 성경에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이 아구스도라고 기록되어있다. 아마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될 당시에 외국사람의 이름이나 칭호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이로써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로마제국이 탄생하자, 헤롯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로부터 얻은 헤롯은 통치권이 불안했지만, 그러나 그는 황제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할 만큼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하여 그가 미처 점령하지 못하였던 도시들 힙포, 가다라, 갈릴리 지역, 바산, 바니야스, 사마리아, 여리고 등을 황제로부터 선물로 얻었다. 헤롯은 그가 죽을 때까지 아우구스투스의 신뢰받는 가신(家臣)으로서 절대 군주의 지위를 결코 빼앗기지 않았다.∼♡♡
통치 중반, 헤롯은 자신의 명성을 로마제국 내에 알리는 대규모의 건축 사업을 벌여 나갔다. 우선 그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복구되고 하스몬 왕조에 의해 파괴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재건하여 신전과 도로, 화려한 궁전을 지어 자신의 왕권을 보호해주는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황제에게 봉헌하고, 그 이름을 '고귀한 자'라는 뜻의 세바스티아라 칭했다고 한다. 또, 지중해 연안에 가이사랴라 불리는 항구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와의 해상로를 열어 놓았으며, 자신의 왕궁을 비롯하여 대규모의 수로와 로마식 경기장, 그리고 원형극장 등을 화려하게 건설하였다. 아울러 마사다의 요새에 자신의 견고한 왕궁도 지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130년경 당시에 황폐화 된 예루살렘 지역에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이름의 새로운 식민지를 세우려 했었다. 또한 서기 1세기와 2세기 동안에, 기독교가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313년에,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는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내려주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틴 제국의 시작 시기로 여겨지는, 330년경에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 (새로운 로마)로 천도하였는데 그 지역이 오늘날 트루키예의 수도인 이스탄불이다. 380년의 테살로니카 칙령으로,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기독교도 황제들은 자신들의 유대인 백성들을 박해했고 이들의 권리들을 제한하였다.∼♡♡
작년 가을 트루키에 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 있는 하드리안 황제의 신전과 안탈리아에 위치해 있는 하드리안 문을 보았었지. 하드리안황제 신전에서는 기념촬영을 하지 않았고, 하드리안문에서는 기념촬영을 했었지. 하드리안문은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해 지어진 이오니아식 문으로 알려져 있다. 북쪽 탑의 상부는 13세기 셀주크 왕조 시기에 재건된 부분이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로마는 이처럼 처음에는 꼭두각시 헤롯을 왕으로 임명하여 간접지배를 하다가 기원전 6년에 총독을 임명하여 직접지배를 하면서 세금(인두세)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서기 66년에 유대인들이 로마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하게 된다. 로마는 70년에 그 지역을 초토화 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서쪽벽만 남겨두었는데 예루살렘성전은 원래 솔로몬왕때 건축이 되었던 성전이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소실되고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3차에 걸쳐 귀환한 동포들이 지은 것을 헤롯왕 때 다시 대대적으로 증축을 하였었는데 그 벽이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오늘날은 그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이 그 벽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기도 소리가 마치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소리 내 우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이 1차 독립전쟁이며 이 전쟁은 73년에 끝난다.∼♡♡
유대인들의 2차 독립전쟁은 132~135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로마는‘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아일리아카피톨리나’로 당시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새롭게 개정했다. 유대 지방의 이름도 유데라는 지명을 없애고 옛날에 그지역에 살던 블레셋사람들의 이름을 따서‘시리아팔라이스티나’로 이름을 개정하였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그때부터 등장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거기에서 살지 못하도록 그 지역을 떠나도록 강제 이주를 시켰다. 이때부터 이주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유테인들은 나라없는 민족으로 살다가 1948년 5월 14일 국제연합회의에 의해 디아스프라 생활 1813년 만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웠다,∼♡♡
디아스프라기간동안 지금의 이스라엘 땅의 지배는 어느민족이 하였을까? 4세기 말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과 비잔틴 제국 창건에 이어 이스라엘 땅은 기독교 중심 국가가 되었다. 예루살렘,베들레헴, 갈릴리의 기독교 성지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나라 도처에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이전에 어느 정도 누렸던 자치권과 공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일년에 단 하루 성전 파괴를 애도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예루살렘 출입이 금지되었다.
7세기경에 이 지역을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세력들이 비잔틴과 페르시아를 몰아내고 점령한 이후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놓였고, 십자군 지배는 1099년부터 1291년까지 약 200년간 지배를 했지. 이 기간은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왕국을 세운 시점부터, 12세기 후반 살라딘의 아이유브 술탄국에 의해 십자군 국가가 멸망한 시점까지이다. 오스만의 지배는 1517년부터 1917년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1917년 12월 9일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오스만의 통치가 끝났다고 정리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 위임통치로 영국이 1920년대부터 1948년까지 행정권을 행사하였다. 그해 5월 14일 그러니까 1813년 만에 유데인들의 나라가 건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