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제자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이해 - 이승구 교수(국제신대원)

[bloomy]

그리스도와 제자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이해『국제신학』1 (1999): 1-30
Kierkegaard on Christ and Christian Discipleship

이승구 (교수, 조직신학)

1. 들어 가는 말

이 논문에서 나는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적 제자도에 대한 이해를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려고 한다. (1) 진정한 제자 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이해하는가? 역사 가운데 사신 예수님에 대한 고도의 이해(high Christology)를 갖지 않고서도 키에르케고르적인 의미의 "예수를 따르는 자"(follower of Jesus)가 될 수 있는가? (2) 제자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강조는 구원론에 있어서 신인 협력주의(synergism)에로 향하는 정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상황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첫째 질문은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이 그저 예수께서 행하셨던 대로 또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도덕적 가르침대로 행하고, 따라서 예수께서 구주이신 신인(the God-man)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을 동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이런 견해를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merely ethical discipleship)라고 부르려고 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이런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는 키에르케고르의 사상 가운데 존재할 여지도 없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논문에서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모범(pattern, model, example)이시라는 것은 그가 구주(Saviour)시라는 것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는 구주로서 우리의 모범이신 것이다(Jesus is the Pattern as the Saviour). 따른 말로 하자면, 라이다 톰테가 잘 말한 바와 같이, "모범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죄에 대한 속죄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제자됨의 핵심적 요소로서의 예수의 뒤를 따름은 진정하게는 신인(神人, the God-man)이신 그 분과의 신앙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적 제자도에 대한 이해의 근본적 차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대 신학에 있어서 예수의 신인(神人) 되심을 무시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이 논의는 단순히 키에르케고르 해석의 문제를 넘어서서 현대적 정황 가운데서 신학을 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논문의 둘째 질문, 즉 제자도에 대한 강조가 과연 신인 협력주의적인 구원관을 함의하느냐는 질문은 제자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이해가 일종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여기서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는 용어를 이 용어의 매우 폭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이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는 용어로 나는 제한된 의미에서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한된 의미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는 제 2 오렌지 공의회(주후 529년)에서 정죄된 5세기의 마실리아(Massilia or Marseilles)의 수도원장이었던 죤 카시안(John Cassian), 레기움의 파우스투스(Faustus of Rhegium), 또는 9세기의 라임의 대감독(Archbishop of Rheims) 힝크마(Hincmar, c. 806-882)의 구원론적 이해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는 용어로서 나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신인협력설(synergism) 일반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신인협력설"(synergism)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선(善)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도 강조되기는 하지만, 이 때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자연적 노력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의 조화를 강조한다.
셋째로, 따라서 사람의 구원의 궁극적 공적적 원인은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것이 주장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공로로 얻을 수 있도록 은총을 사주신 것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런 특성을 가진 제자도를 반(半)-펠라기우스주의적 제자도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의 제자도에 대한 이해는 이런 반(半)-펠라기우스주의적 제자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 두 가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나는 키에르케고르가 요하네스 클라마쿠스(Johannes Climacus)라는 익명으로 출판한『철학적 단편』과 그에 대립된다는 뜻에서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익명으로 출판한 『기독교의 훈련』에 표현된 제자도의 의미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이해를 탐구할 것이다. 이 두 권의 익명의 저작에 대한 나의 논의는 제자도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에 제한된다. 이 논문에서의 나의 논의는 비록 이 두 권의 책이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철학적 단편』과 『기독교의 훈련』이 말하고 있는 제자도는 서로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철학적 단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제자도 이해

그러면 먼저『철학적 단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제자도에 대한 이해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이 책에서 기독교는 쏘크라테스적인 견해인 '관점 A'(scheme A)와 대조되는 사유 실험('관점 B', scheme B)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관점 B'에서는 제자가 따라야만 하는 교사가 신인(神人, the God-man)이시라는 것이 처음부터 분명히 표현되었다. 그래서 그 신인이신 교사는 하나님이신 교사라는 의미에서 "신적 교사"라고 불리웠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교사가 되시기 위해서 신인이 되신 것이다. 그런데 알바우흐 등이 분명히 하듯이, "성육신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비우시거나 자신의 영광을 제쳐놓지 않으셨다". 동시에 그가 취하신 종의 모양은 속임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신인이시다.

클리마쿠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강조한다. 그가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가 하나님임을 믿도록 하는 "일종의 표적"을 주신다는 것도 강조되어졌다. 그 표적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환기시켜서 그들을 신앙에로 이끌든지 아니면 걸려 넘어지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이 표적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신인이 "주목된다는 것", 그리하여 "그가 신적 권위를 가진 분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역설을 해결하는 데는 신앙이 요구되지만 말이다." 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서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목적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현존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 사시는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PF, p. 56=PFS, p. 69).

다시 말하자면, 그는 어떤 가현설주의자들이(docetists)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 지상 위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종의 형체는 단순히 덧붙여진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그의 몸은 환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몸(an actual body)이다"(FP, p. 55=PFS, p. 68). 그러므로 우리는 루이스 두프레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문시해 본적이 없다. 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것을 전적으로 제거하시는 행위로 그의 신성을 비우셨다는 케노시스 개념도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것이었다." 사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일기 가운데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는 모든 순간에 사람이시듯이 하나님이시다 - 마치 하늘이 바다 가운데 아주 깊은 것처럼 보일 때에라도 바다 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JP, I, 284=Pap. II A 595. cf. JP, VI, 6364=Pap. X 1 A 156).

이렇게 그 교사가 신인(神人)이시라는 것은 그 교사와의 바른 관계는 신앙의 관계라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 있는 이 특정한 인물 예수가 신인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고서 그의 제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클리마쿠스는 신인이 이 땅 위에 계셨다는 것이 "역사적 사건"(a historical fact)이라고 말한다(PF, p. 87=PFS, p. 108). 기독교적 진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단순한 사람으로만 보이는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놀라운 선언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실족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즉, 이 역사적인 인물이 신인이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실족의 가능성이며, 실족의 기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실족의 가능성을 가지고, 그 앞에서 신앙을 통해 이 실족 가능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 당대의 직접적 제자들에게도 해당되고, 간접 제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자가 되는 일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결코 결정적인 잇점이 되지는 못한다"(PF, p. 106=PFS, p. 133). 또한 첫 세대의 간접적 제자들과 후대의 제자들 사이에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cf. PF, p. 93=PFS, p. 117). 이런 의미에서 클리마쿠스는 다음과 같이도 말한다: "간접 제자(follower at second hand)라는 것은 없다. 처음 세대의 제자나 마지막 세대의 제자나 [모든 제자들의 조건은] 같은 것이다"(PF, pp. 104f.=PFS, p. 131).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그가 신인(神人, the God-man)이심을 믿고, 이런 신앙-관계(faith-relation)에 근거해서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인협동설 문제와 연관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제기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예수께서 신인(神人, the God-man)이심을 믿을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철학적 단편』은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학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신인이심을 믿을 수 없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인을 믿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의지로 할 수 있는 것(letting go by our will)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글에서 분명히 밝힐 바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한 클리마쿠스의 대답은 오히려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은(letting go by our will)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주실 때에야 가능하다고 클리마쿠스는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그는 "신앙은 의지의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PF, p. 62=PFS, p. 77). 클리마쿠스의 말을 다시 들어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서, 만일에 내가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의도할 용기를 가졌다고 한다면 ...... [그렇다면 나는 쏘크라테스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쏘크라테스적인 관점에서 나는 [그렇게 이해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고, 이제 그런 이해를 의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에 내가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우리가 쏘크라테스적인 것에로 다시 되돌아 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해야만 하는데), 그러면 나의 모든 의지의 작용은 [이런 바른 이해와 관계를 갖는 일에] 소용없는 것이 된다......(PF, p. 63=PFS, p. 77).

이 가정[the scheme B]에 의하면 ......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처해진] 사태의 참된 정황인 것이다)......(PF, p. 17=PFS, p. 21).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그 조건을 하나님에게서 받을 때에만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오성을 버려 버리고 신앙에 상응하는 권위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요구에 온전히 일치하는 것인 바), 오직 그럴 때에만 그 사람은 믿는 것이다(PF, p. 10=PFS, p. 129)

이런 구절들에 근거해서 우리는『철학적 단편』에서 클리마쿠스는 오직 하나님이 조건을 주실 때에만 우리가 신인(神人)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닐스 떨스트룹이 이 책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때에 그는 이 점을 아주 분명히 하고 있다.

신앙은 ...... 의지의 행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의지의 행위이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믿을 수 있는] 조건이 이미 주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의지가 그것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믿을 수 있는 조건이 이미 현존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믿을 수 있는] 조건을 받은 후에 라야 신앙은 "의지의 표현"이다. 그전에는 신앙이 의지의 표현이나 작용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프레의 관찰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에서 인간 의지의 작용은 하나님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라야만 가능하게 된다. 모든 자유를 초월하는 은총의 소여의 한계 내에서라야(only within the limits of the datum of grace) 신앙은 자유롭다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진리 안에 있지 아니한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신인(神人)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데이비드 로버츠가 잘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자유함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의지가 자유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진리, 즉 죄 가운데 있으므로 우리의 정신과 오성은 "[진리]를 생각할 수 없고,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없음이 분명하다. 또한 진리가 선포된다고 해도 우리의 오성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이 자신의 파멸이 될 것이라는 것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PF, p. 47=PFS, p. 59).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신인(神人)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도 없고, 그의 제자도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바우흐 등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셔야만 한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구주로서 사람의 세상에 들어오셔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주가 되시기 위해 신인(神人)이 되셨고, 구주로서 구속 사역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구속 사역을 각각의 개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적용하신다. 이렇게 구속 사역을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것을 『철학적 단편』에서는 "[믿을 수 있는] 조건을 주시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조건을 받는 사람만이 믿는 자이다"(PF, p. 103=PFS, p. 129). 이것은 예수님과 동시대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PF, p. 65=PFS, p. 80), 모든 세대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PF, p. 100=PFS, p. 126). 하나님이 주시는 조건이 없이는, 즉 하나님께서 중생시키셔서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는 일이 없이는,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신인(神人)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는 "그 조건이 없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이다. 제자가 이해해야 하는 첫째 사실이 자신이 비진리 가운데 있다는 것인 한(限) 말이다"(PF, p. 65=PFS, p. 81).

이제까지 우리가 논의한 두 가지 요점, 즉 (1) 역사적 인물인 예수께서 신인(神人)이시라는 것과 (2)우리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주실 때에만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에서의 제자 됨이 좋은 모범을 본받거나, 단지 교사로부터 어떤 지식만을 전수 받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그 교사와 제자 사이의 바른 관계이다. 그런데 이런 바른 관계는 그 교사가 참으로 누구인지를, 즉 신인(神人)이시라는 것을 바르게 인정하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클리마쿠스에 의하면, "믿는 자만이 ...... 알려진 대로[즉, 계시된 대로] 그 교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PF, p. 68=PFS, p. 84). 그 교사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는 호기심에 가득 찬 무리들, "그들이 그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그것 자체로 그의 제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PF, p. 57=PFS, p. 71). 또한 그 교사가 가르치는 추상적 지식에만 관심을 보이고 배워보려고 하는 이들도 참된 의미에서의 제자들은 아니다. 그 교사가 가르치는 도덕적 교훈에 관심을 보이고 따르려고 하는 이들도 아직 제자는 아니다.

신인(神人)에 대해서 진정한 신앙적 관계(faith-relation)를 가진 사람만이 제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표현된 제자도(discipleship)를 단순한 윤리적 제자도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인(神人)은 단순히 우리가 그를 본받아야 하는 좋은 모범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다. 그는 후세에 좋은 영향력을 남겨 놓은 도덕적 교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만일 기독교가 참이라면, 교사는 구주요, 구속이요, 화목자이신 교사여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PF, p. 17=PFS, p. 21). 그러므로 이 책과 관련해서 단순히 윤리적 제자도를 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반(半)-펠라기우스주의도 이 책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건을 은총의 주입과 비슷한 어떤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조건과 은총의 주입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그 교사는 "제자에게 진리를 가져다 줄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조건조차도 회복시켜 주는 자"라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PF, p. 17=PFS, p. 21). 사실 아주 담대하게 이렇게 주장한 학자도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한 모든 준비적인 단계 그 자체도 바로 은총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표현되고 있는 제자도의 성격을 면밀히 고찰할 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 두 가지 요점이 강조되어야만 할 것이다.

첫째 요점은 우리가 '제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던 것'과 '제자가 된 후에 하나님과 관련해서 하는 것'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반(半)-펠라기우스주의에 의하면, 그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제자가 되기 이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하던 사람이라면, 제자가 된 후에 행하는 것도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제 제자가 된 후에는 이제 그것이 주입된 은총에 의해 강화된 것이라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반펠라기우스주의적 입장을 주장하는 신학자 다르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정신과 영적인 의지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파괴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신적인 압력에 복속할 수 있다...... 자신의 자연적 능력 이상으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사람은 그 자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그 자신 이상으로 신비롭게 상승시키는 것을 초자연 또는 은총이라는 전문적 용어로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 사상에서는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할 뿐이다. 인지적인 측면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사상에서는 제자가 되기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이 초자연적 게시에 의해서 확언되어지고 보충되는 것이다. 이처럼 반(半)-펠라기우스주의에서는 모든 점에서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하게 할뿐이다.

그런데 클리마쿠스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 그에 의하면, 어떤 이가 제자가 되기 전에는 그는 비 진리(非眞理)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심지어 "진리를 추구하는 자로도" 묘사될 수 없다(PF, p. 13=PFS, p. 16). 그리고 그가 제자가 되는 순간에 그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전과 같은 질의 좀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소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PF, p. 18=PFS, pp. 22f.). 그의 실존의 질릐 trms본적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간에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 조건을 받을 때에, 그의 삶의 방향이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게 되었고 그는 돌이킨 것이다"(PF, p. 18=PFS, p. 23).

물론 반(半)-펠라기우스주의도 때때로 중생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위에서 인용한 바 있는 다르시(D'Arc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 바울의 서신들은 그것[초자연 혹은 은총]을 묘사해 보려는 시도로 가득차 있다. 그는 이것을 은총, 양자됨, 중생, 그리스도에게 참여함 등으로 부르고 있다. 성 요한은 이것을 '아들?quot;(sonship)이라고 부르기를 애호한다.

그러나, 이 인용문에서 우리가 잘 살펴 볼 수 있듯이, 이 개념들은 대개 반(半)-펠라기우스주의적 개념으로 변용되어 있다. 그러므로, 클리마쿠스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 사상가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들이 이 용어들에 부여하는 의미는 서로 다르다. 반(半)-펠라기우스주의에 의하면, 중생 혹은 신생은 그들이 말하는 은총을 다른 말로 지칭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체계 안에서 은총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케 하듯이, 중생도 자연인의 능력과 연관성을 끊지 않고 그것을 인간의 능력 이상으로 높여 준다. 그러나 클리마쿠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긍정적 상승은 '입장 B'(scheme B)에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입장 B'에서는 비 진리 안에 있는 것과 새로운 피조물로 있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비연속성이 있다.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만 한다. 이런 전환은 이전에 행하던 것을 긍정적으로 상승시키는 것 정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기 이전에 행하는 것과 제자가 된 후에 행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단절이 있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반(半)-펠라기우스주의에서의 신앙 이해와 클리마쿠스의 신앙 이해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야만 한다. 반(半)-펠라기우스주의에서는 신앙을 주로 동의(assensus)로 생각하는 데 비해서, 클리마쿠스는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신인에 대한 신뢰(fiducia)로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조건은 "주입된 은혜"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클리마쿠스적 의미의 신앙은 인간의 능력 훨씬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인도함을 받은 인간의 노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클리마쿠스의 신앙은 절대적으로 수동적이다. 그것이 적극적으로 작용할 때에라도, 신앙은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수동성의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이 책 전체를 통해서 강조된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공로를(one's own merits) 통해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임을 아주 자명하다.



3. 『기독교의 훈련』에서의 그리스도와 제자도

『철학적 단편』에서 발견한 그리스도와 제자도에 대한 이런 이해를『기독교의 훈련』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기독교의 훈련』에서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이 책에서는『철학적 단편』과는 조금 다르게 낮아지신 예수님에 대한 따르는 행위가 강조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그를 따라야만 하고 그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안테-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삶은 [우리가 본받아야만 하는] 범례(paradigm)이다...... 모든 세대는 그리스도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범례로 제시해야만 한다'(TC, p. 109). 만일 우리가 안티클리마쿠스가 사용하는 용어의 정확한 뜻을 잘 살피지 않는다면, 안티-클리마쿠스가 단순히 윤리적 제자도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아주 쉽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를 시작한다면, 안티-클리마쿠스가 "따르는 자"(제자)와 대조하고 있는 "찬송만 하는 자"(admirer)를 예수를 특별한 종교적 인물(즉, 신인[神人])로 여기는 자로; 그리고 이런 기독론적 논의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예수께서 행하신 대로 따르려고 하는 이들이 제자라고 생각하기가 아주 쉽다. 키에르케고르 해석자 가운데서 이 책을 이와 같은 식으로 해석해 보려고 하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서 엘로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서 키에르케고르에게는 "그리스도를 본질적으로 ...... 구속자와 구원자로 파악한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부정확하다.

왜냐하면 그런 견해는 그리스도에게 우리 인간성과 본질적으로 상응하지 않는 성질과 능력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목적의 공동체의 실존을 의도하기로 하는 모든 개인들의 윤리적 범례를 구성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신학적 교리들은 기독교의 윤리적 본질에 의존하는 것이다." 엘로드는 이와 같이 칸트 철학적인 관점에서 키에르케고르를 해석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안티-클리마쿠스가 말하는 정확한 의미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본다면,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가 이 책에 있는가 하는 이 질문은 사실 전혀 제기될 수조차 없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이제 이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사실『기독교의 훈련』은 처음부터 이 책이 우리와 신인(神人)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한다(TC, p. 83, et passim). 그런데 그 신인(神人)은 "1800여년 전에[이 책이 쓰여진 때를 생각하라!] ......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고난받고 죽기 위해서 ...... 여기 이 땅 위에 사셨던 분이며"(TC, p. 9), 죽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성부 오른 편에 영광 중에 앉아 계신 분이시고"(TC, p. 26), 그리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분이시다(TC, p. 27, cf. TC, pp. 167, 180, 193).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는 실족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로 이끄심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아주 많은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신인이심을 강조하며,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와는 아주 거리가 먼 제자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신인(the God-man), 즉 "사간 가운데 계신 하나님"(God in time)은 단순히 우리가 그를 본받음으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참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되는 이상적인 사람(ideal man)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 가운데 계신 하나?quot;(God in time)은 우리가 그를 따라야만 하는 우리의 모범(pattern, example)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에 대한 신앙적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제자도에 대한 이런 이해를 나는 '고도의 기독론적 제자도'(high-christological discipleship)라고 부르려고 한다. 이하에서 나는 제자도에 대한 안티-클리마쿠스의 이런 '고도의 기독론적 관점'의 세 가지 중요한 요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안티-클리마쿠스의 강조는 그리스도의 선재와 높아지심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여준다는 점,
(2) 안티-클리마쿠스가 신인(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일반적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3) 안티-클리마쿠스가 일반적 고난과 기독교적 고난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 이 세 가지 논의를 통해서 나는 안티-클리마쿠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윤리적 제자도'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안티-클리마쿠스의 강조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안티-클리마쿠스는 비하의 상태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안티-클리마쿠스에게는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과 그의 역사적인 삶이 가장 중요했다. 안티-클리마쿠ㄴ스는 왜 그리스도의 비하를 이렇게도 강조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그의 제자도에 대한 견해와 관련해서 추구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비하에 상응하는 것은 따르는 자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TC, p. 231).

진정한 제자는 이 땅에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셨던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과 관련해서라야 발견된다. 오직 하늘에만 게시는 분이나, 상상 가운데만 계신 분이나, 신화 가운데 있는 분이나, 원역사(Urgeschichte) 가운데 계신 분을 따르는 이가 될 수는 없다. 신인(神人)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역사적 인물로 있을 때에야 그를 '따름'(following)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강조는 단순히 윤리적인 제자도를 지지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안티-클리마쿠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강조는 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앙-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안티-클리마쿠스의 '예수'는 처음부터 신인(神人, the God-man)이시다. 바로 이것이 이 책에서 '걸림돌'(offence)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걸려 넘어짐[失足]에 대해 그렇게도 큰 강조를 하는 이유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실족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복합적 용어 또는 신인(神人, the God-man)과 관련된다......당신 곁에 서 있는 한 인물이 신인(神人)이시라는 상황이 신인(神人)과 불가분리적이다. 신인은 하나님과 인류의 연합이 아니다. 그런 용어는 얼마나 시각적 환영이 심한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 신인은 하나님과 개별적 인간의 연합이다(TC, p. 83).

이 역사적인 사람, 예수께서 신인이시라는 것이 실족의 기연(奇緣, occasion)이다. 에수님과 직접적 동시대에 살던 이들에게도 바로 이 사실이 실족의 기연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형제 자매들은 모두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그의 가르침, 권위 등] 도대체 어디서 얻었다는 말인가?"(TC, p. 105, cf. 마 13:55=막 6:3) 그들은 역사적 예수 때문에 걸려 넘어졌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하시며 자신을 신인(神人)으로 믿을 것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TC, p. 135). 그가 이 지상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신다는 사실이 실족의 기연이었다. 이 실족 가능서 앞에서는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걸려 넘어지느냐, 아니면 믿느냐?"(TC, p. 83). 말하자면, 안티-클리마쿠스에게는 이 역사적 인물을 신인으로 믿느냐, 아니면 그에게 걸려 넘어지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만일에 예수님께서 신인이 아니시라면, 그에게 돌려 질 수 있는 높아지심[乘貴]도 없을 것이다(TC, p. 167). 또한 만일 그가 신인이 아니시라면, '비하'라는 말도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마니, 예수님께서 그저 사람이기만 하셨다면 그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말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비하를 지칭하는 말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신인이신 경우에만, 그가 이 땅 위에서 개별적 인간으로 실존하신 것이 비하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안티-클리마쿠스에게는 주님의 비하의 기간, 즉 이 땅에서의 주님의 삶이 모든 세대와 동시대성을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것(the absolute)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지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동시대성을 가진다"(TC, p. 68);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과 관련해서는 오직 한 가지 시제, 즉 현재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TC, p. 67).

그러므로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두 시대와 동시대적일 수 있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세대"와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동시대적인 것이다(TC, p. 68).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이 안티-클리마쿠스에게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한(限), 그에게는 '단순한 윤리적 제자도'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도덕적 교사나 윤리적 모범은 그의 최선의 경우에도 이런 의미에서 절대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해서 안티-클리마쿠스는 그리스도의 비하만이 아니라, 그의 승귀도 강조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그의 비하 뿐만이 아니라, 그의 높아지심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 어떤 학자들은 키에르케고르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영화롭게 되셨다는 사실을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고 믿고 생각하였으며, 아주 높이 영화되었다고 생각하고 믿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는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TC, p. 166). 오직 승귀만을 생각하거나, 승귀를 믿지 않는 이들은 실제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되지 않다고 한다(TC, pp. 154f., 166).

이제는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안티-클리마쿠스의 강조가 단순히 윤리적 제자도를 뒷받침해 주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오히려 '비하'에 대한 강조는 그리스도가 신인이심을 분명히 해주는 요소이며, 따라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신인이심을 믿어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안티-클리마쿠스의 강조는 '순전히 윤리적 제자도'보다는 '고도의 기독론적 제자도'를 지지해 주는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의 제자도의 두 번째 측면으로 우리가 지적하려고 하는 신인(神人)과 일반적 사람의 차이에 대한 강조도 '고도의 기독론적 제자도'를 지지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인과 일반적인 사람의 차이를 아주 강조한다: "신인(神人)은 다른 모든 개인적 사람과 그리고 전체로서의 인류와도 본질적으로 이질적(heterogeneous)이다." 안티-클리마쿠스가 이점을 강조할 때, 그는 그 둘 사이에 양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티-클리마쿠스는 비록 에수 그리스도는 참된 인성을 취하셨지만, 그는 동시에 참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이다. "신인(神人)으로서 그는 참된 사람이시지만, 다른 개별적인 사람과는 아주 달라서 우리가 일종의 뻔뻔한 대담성을 가지고 그와 같은 편을 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TC, pp. 197f.).

첫째로, 안티-클리마쿠스는 만일에 우리가 예수는 그저 사람이기만 하다는 가정을 가지고 시작하면 우리는 결코 그가 하나님이시라든지, 신인(神人)이시라는 결론에 이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TC, p. 30). 그러므로 (안티 클리마쿠스가 "신앙의 가정'이라고 부르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가정에서 시작할 때에만 우리는 신인을 옳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저 뛰어난 도덕적 교사라고만 생각하면, 그는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서 신인으로 "사셨었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TC, p. 35).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개별적 인간으로 시간과 공간 안에 사셨다는 사실이 안티-클리마쿠스에게는 그의 삶과 가르침의 결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논의되는 인물인 역사적 에수께소 그저 사람이시기만 하시다면, 그의 삶과 가르침의 결과가 그가 이 땅 위에 사셨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해Y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과 관련해서는 삶의 결과가 그의 삶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TC, p. 35). 그러나,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이것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단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TC, p. 123).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와 쏘크라테스의 또 다른 차이점이 나타난다. 쏘크라테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삶의 결과를 생각할 때, 사람에서 하나님으로, 즉 다른 질에로 비약하는 문제가 없다. 그의 삶의 결과 역시도 사람의 영역 안에 있다. 그러므로 불행히도 사람들이 그가 시간과 역사 안에서 살았었다는 사실을 잊는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가르침의 효과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쏘크라테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삶의 결과가 그가 사셨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TC, p. 35). 쏘크라테스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안티-클리마쿠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그 같은 것이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TC, p. 37). 왜냐하면 그는 신인(神人)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가 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로 사셨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예수님을 선한 도덕적 선생님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며, 기독교와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에게서 그로부터 아주 좋은 윤리적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은 좋은 도덕적 모범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없애 버린 것이다"(TC, p. 36). 그는 예수님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예수께서 모범으로 보이신 바를 행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실제의 예수님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아주 분명히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신인이 아닐 것이고, 그의 삶이 인류의 발전과 동질성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기만 할 뿐일 것이다"(TC, p. 218). 만일에 그가 단순히 사람이기만 하였다면, 그는 좋은 도덕적 모범일 수는 있으나, 세상의 구주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냐하면, "그가 참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TC, p. 137).

그러나 안티-클리마쿠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유일한 구주이시다: "그는 구주이시다. 그 안에만 구원이 있은 것이다"(TC, p. 81).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모범이시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구주로서 우리의 모범이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티-클리마쿠스도 예수님을 따름은 그를 신인(神人)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의 일기 가운데서 키에르케고르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방]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윤리적인 것에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 원형(prototype)을 헛되게 취하는 것이다. 여기서는[그를 따름 문제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예배와 경배가 문제가 된다. 예배와 경배를 통해서라야만 모방하기를 원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JP, IV, 4454=Pap. X 1 A 134).

그러므로 그를 따른다는 것은 온전히 그와 같아진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조롱"(mockery of God)으로 여겨질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도 모든 점에서 신인(神人)과 다른 개별적인 사람의 차이를 강조한다. 신인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신다]. 그의 수난과 그의 죽음의 확실성과 필연성을 아신다.

그런데도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좋게 받아들이는 듯이 날마다 평온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 가운데서 사실 수 있으셨다"(TC, p. 184). 신인은 심지어 그는 높여지시리라는 것도 아주 확실히 아신다: "낮아지신 그분이 자신이 높여지시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는 영원한 확실성을 가지고 그것을 아셨던 것이다"(TC, p. 163). 그러나 다른 개별적인 사람들은 전혀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매우 조심해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과제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들에게 분명해 질 수 있을 뿐이다"(TC, p. 18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수난을 당하시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단번에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와 동시대에 있는 사도들에게조차도 말이다"(TC, p. 184). 그러므로 이 책에서 "따름"이나 "모방"이라는 말로써 권고된 것은 "너의 삶은 인간의 삶에서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와 비슷해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TC, p. 108). 인간으로써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와 같아지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도 진리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진리는 그보다 끝없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TC, p. 200). 우리가 따라야할 모범이신 그리스도와 따르는 우리네 인간의 차이는 키에르케고르의 일기들에서도 많이 강조된다:

선택된 사도들조차도, 그러므로 아무런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신인(神人)과 질적으로 다르다. 사도도 제한 받아야만 한다. 오직 신인(神人, the God-man)만이 순수한 이상성을 지니시고, 따라서 의도적으로 최고(the maximum)를 지니신 것이다(JP, I, 352=Pap. X 2 A 422).

(모범이신) 그리스도와 동시대가 됨으로 당신은 그를 닮을 수 없다는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당신은 그가 당신에게 동정을 베푸시도록 그 모범이신 분에게 호소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범이신 분은 당신을 가장 엄격하게 무한히 심판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당신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 되시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다른 작품인 "사람이 진리를 위해서 자신을 죽음에 내어줄 권리가 있는가?"에서, 키에르케고르는 다시 한번 더 이 요점을 분명히 한다. 이 작품에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모든 사람 사이의 차이와 비유사성에 주된 강조점이 있다. 그러므로 뢰닝의 ,다음 말은 이 작품에 대해 매우 바른 주장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참된 과제는 믿는 그리스도인이 그 주님을 본받을 수 있는 한계를 확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티-클라마쿠스와 키에르케고르가 신인과 다른 일반적인 사람의 차이점을 강조한 것도 우리가 고도의 기독론적 제자도라고 부른 것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적 제자도의 세 번째 측면인 기독교적 고난의 문제에 대한 고찰에로 넘어 가기로 하자. 안티-클리마쿠스에게 있어서는 제자란 제자가 됨으로 인해서 고난을 받는 이이다. 이와 연관해서 우리는 이 책이, 키에르케고르의 다른 모든 책과 같이, 제자로서 당하는 고난이 그저 일반적인 고난이 아니라, 기독교적 고난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는 것을 언급해야만 한다.

기독교적 고난이란 말로써 안티-클리마쿠스는 특별히 기독교적인 고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인해서 임한 고난"을 뜻한다(TC, p. 173). 그런 기독교적 고난은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고난, 즉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면 피할 수 있은 그런 고난이다"(TC, p. 67).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적 고난은 "기독교를 위한 고난"(suffering for Christianity)이며, "(기독교적) 교리를 위한 고난"(suffering for the doctrine)이다.

따라서, 예를 들자면, "병, 경제적 어려움, 다음 해를 위한 걱정 등등은"(TC, p. 115) 기독교적 고난에 속하지 않는다. 또한 윤리적인 사람이 그의 윤리적인 노력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난도 기독교적 고난이 아니다.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그런 고난들은 이교도들도 그리스도인 만큼이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보편적 인간의 경험일 뿐이다"(TC, p. 173).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을 인내로 견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만 한다(TC, p. 173). 기독교적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다음 두 종류의 고난을 특별히 기독교적인 고난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세상과 그리스도인의 이질성(heterogeneity)에서 오는 어떤 외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의 기독교적 고난은 "그리스도와 기독교가 이 세상에 가져온 고난"이다. 즉, "[하나님 또는 복음의] 말씀 때문에"" "의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다(TC, p. 110). 이런 고난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에 진리가 있은 곳에는 언제나 있는" 그런 고난이다(TC, p. 112). 즉, 우리가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려고 한다"고 참으로 주장할 때 우리에게 임하는 그런 종류의 고난이다(TC,p. 117). 예를 들어서, "말씀 때문에 일어 나는 환란과 핍박"(TC, p. 116, 마 13:21=막 4:17 참조) 그리고 "그리스도인 이기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인이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손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TC, p. 173) -- 그런 것들이 기독교적 고난에 속한다.

두 번째 종류의 기독교적 고난은 좀더 내면적인데, 이것도 그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당하는 고난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감수성과 따라서 자신의 죄성에서 나타나게 된 기독교적 내면성 안에 있은 고난이다(TC, pp. 194f.).

키에르케고르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죄에 대한 슬픔이 가장 깊은 슬픔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슬픔은 "그와 비교하면 인간의 그 어떤 슬픔도 그 고통과 불안 안타까움에서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TC, p. 194),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려고 하며 이 고난을 감내하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즐긴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영적 마죠키스트(masochist)가 아닌 것이다. 그는 단지 '그의 모범이신 신인(the God-man)에 의해서 제시된 대로 기독교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고난을 감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아는 것이다. 물론 그는 감히 자신을 신인과 동일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도 우리는 모범이신 신인(the God-man as his Pattern)과 개별적 그리스도인(individual disciple)의 차이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모범을 따르고 모방하고 닮으려고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의 따름 가운데서 그는 항상 그의 모범이신 신인과 개별적 인간의 차이를 분명히 의식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1) 안티-클리마쿠스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비하를 강조한다는 사실,
(2) 신인이신 예수님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강조한다는 것, 그리고
(3) 제자의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기독교적 고난의 성질을 고찰해 보았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은 다 밀접히 연관된 것이라는 점이 이제는 분명해졌을 것이다. 또한 이 고찰로부터 이 책에서 말하는 제자도 무엇보다 먼저 그의 신인(神人) 되심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이 분명해 졌을 것이다. 이런 제자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예수님의 좋은 모범에 의해서 감동 받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만일에 어떤 이가 이와 같은 의미에서만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는 아직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의미의 제자는 아닌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도 그리스도는 동시에 구주요 모범으로 이해되고 있다(TC, p. 232). 모범의 뒤를 따르고 그를 본받기 위해서는 그 모범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의 일기 중에서도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구속 활동이 근본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가 명하시는 삶은 (마태복음 5장) 중생 이전에는 꽃피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속 활동은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조건(conditio sine qua non)이다. 그리고 이 삶은 참으로 중생한 사람에게서 반드시 나타나야만 하는 삶이다. 고전 5:7, 엡 5:2, 롬 3:25.

그러므로,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먼저 은혜가 있어야만 한다"(JP, II, 1493=Pap. X 5 A 101). 우리가『기독교의 훈련』에서 발견하는 것도 이 일기 중의 내용에서 발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사실 말란축 같은 이는 『기독교의 훈련』에서 모방에 대한 강조는 은총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와 연관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신인과 개별적 사람 사이에 신앙-관계가 앞서야 그 개인이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인에 때한 신앙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따름'이나 '제자 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을 떠난 행위는 죽은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다(JP, I, 976=Pap. X 1 A 457). 그러므로 『기독교의 훈련』에서도 제자도가 '단순히 윤리적 제자도'로 이해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의 훈련』에서 반(半)-펠라기우스주의적 성향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에로 넘어가 보기로 하자.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강조와 관련해서 반-펠라기우스주의적 정향을 찾아보려고 했던 시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비록 『기독교의 훈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루스와 말란축, 그리고 두프레 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 일이 있다.

[키에르케고르에게는] 가톨릭적 입장에로 지향해 가는 어떤 긍정적 성향이 있다. 이것은 신앙의 원리와 대조하여 행동의 원리에 대한 그의 강조에서 특별히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말년에, 특히 그가 기독교적 삶에서의 모방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을 때 그의 자작들에서는 가톨릭주의에로의 성향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는] 참으로 신인협력주의적 은총 교리(a true synergistic theory of grace)가 있다. 이 신인협력주의는 은총의 초기 단계에만 제한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행위의 발달 전반에 걸쳐서 그 나름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기독교의 훈련』과 관련해서 반-펠라기우스주의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아주 가치 있고, 흥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사람들이 그로부터 가장 신인협력주의적 성향을 찾아보려고 하는『기독교의 훈련』의 제 3 부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이 문제를 고찰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나는 나의 논의의 명료화를 위해 이 책의 다른 부분에 대한 언급도 같이 해 나갈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피상적 독서는 여기서 신인협력주의적 정향을 찾아보려는 견해를 찾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것이 사람들이 제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과 조화스러운 것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하에서 제공해 보려고 하는 조심스러운 검토는,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우리가 제자가 되려고 애써야 하지만, 우리가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 우리의 노력은,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 영향력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항상 불충분한 것으로 드러나며, 더구나 (2) 우리의 구원은 오직 신인(神人)께서 이루신 것에만 의존하고, (3)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제자가 되려고 하는 것의 궁극적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해서 중요한 것은 이 부분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짐이라고 표현된 우리의 제자 됨은 그리스도의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높은 곳에서 쉬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도 일하신다. 그는 모든 이를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이 일에 묶여 있다고 표현될 수 있을 정도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눔에 보이지 않는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신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한 순간이라도 그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높은 곳에 불가시적으로 계시지만, 그는 [그의 신성으로] 어디에나 현존하시며 그에게로 이끄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는 마치 그가 계시지 않은 것처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세속적인 말들만이 있는 것이다(TC, p. 155).

이 구절의 말에 의하며, 신인(神人)은 승천하신 후에는 높은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사역은 그가 이 땅 위에 계실 때 하셨던 사역(즉, 그의 구속 사역)에 근거해서 하고 게시는 사역이다. 즉, 그는 자신의 구속 사역에 근거해서 하늘에서 우리들을 그에게로 이끄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펴 볼 바와 같이, 그가 이 땅 위에서 하셨던 사역과 높은 곳에서 지금 하시는 사역 사이에는 정합성과 연속성이 있다. 이 연속성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관찰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가 지금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과 관련해서 이 연속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안티-클리마쿠스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자신에게로 이끄는] 이 일을 하실 분은 높이어 지신[승귀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이 일을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분은 낮아지신 분이시다. 그 낮아지신 분이 이 땅에 사신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높이어 지신 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낮아지신 분이 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가 높은 곳에서 모든 이들을 자신에게로 이끌겠노라고 하신 이 약속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을 것이다(TC, p. 161).

이 구절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만일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비하의 상태 가운데서 그가 높이어 지신 후에 무엇을 하시리라는 것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여기에 그가 이 땅 위에서 하신 일과 그가 지금 높은 곳에서 하고 계시는 일과의 연관성의 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측면의 연관성이 있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일의 근거가 그가 이 땅 위에서 하신 구속 사역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 땅 위에 살았을 때에 하셨던 것은 그가 지금 높은 곳에서 하고 계신 사역과 연관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TC, p. 151). 우리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우리를 그에게 이끄실 수도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구속이 없었다면, 우리의 제자 됨도 없는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첫째로, 예수께서 이 이끄심에 대해서 하신 말씀 자체에서 이 점을 관찰하고 있다. 그 말은 요한복음 12:32을 인용하면서 안티-클리마쿠스가 하고 있는 말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TC, p. 151, et passim). 안티-클리마쿠스는 예수님께서 그의 비하 상태에서 이런 형태로 이 말씀을 하셨다는 점을 보고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비하의 상태에서 언급된 것이고, 그의 이끄심은 그가 땅에서 들리운 후에 수행될 것이다.

둘째로, 안티-클리마쿠스는 이 말씀에 대한 제 4 복음서 기자의 해석을 상기시킨다. 요한복음 12:33에 주어진 요한의 해석은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는 말씀이다. 이에 대해서 안티-클리마쿠스는 다음 같이 말한다: "이렇게 사도는 땅에서 들리우심을 비하로, 그것도 가장 깊은 비하로,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심(crucifixion)으로 설명한다(TC, p. 25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미하신 것은, 에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즉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우리를 그에게로 이끄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 구속 사역의 본질이지만, 십자가에서 하신 것만이 구속 사역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안티-클리마쿠스는 구속 사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서, 히브리서 기자를 따르면서 안티-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는 수난 받으신 것으로부터 순종을 배우셨다"(TC, p. 180). 즉,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사신 방식, 즉, 성부께 대한 그의 절대적 순종과 진리를 위해서 수난 당하신 것이 구속 사역의 한 부분이고, 이 사역이 지금 그가 하고 게시는 사역의 근거와 토대이다(TC, p. 181).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사역의 통일성과 정합성이다. 지금 그가 하시는 것은 그가 땅 위에서 하셨던 일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에는 두 가지 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구속 사역 자체의 완성이고, 또 하나는 이 구속 사역의 적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티-클리마쿠스와 같이, 그는 이 땅 위에서 이루신 일[첫째 완성]을 지금 완성하시는 일[두 번째 완성]을 계속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게로 우리를 이끄시는 일은 이 두 번째 완성의 일이시다. 안티-클리마쿠스의 말을 다시 들어 보기로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높은 곳에 불가시적으로 계시지만, 그는 [그의 신성으로] 어디에나 현존하시며 그에게로 이끄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는 마치 그가 계시지 않은 것처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세속적인 말들만이 있는 것이다 그는 그에게로 이끄시는 여러 방식들과 수단들과 같은 아주 다양한 것들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비록 그가 사용하시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죄 의식이라는 한 점에 모아진다.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사람, 회개하는 죄인을 그에게로 이끄시는 것이다(TC, p. 155).

이 인용문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방식을 아주 분명하게 해준다. 사람들을 그에게로 이끄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지만, "그 모든 방식은 죄 의식이라는 한 점에로 모아진다." 여기서 그의 사역의 통일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죄 의식을 느끼게 한다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둘이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은 그의 한 사역의 두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연관해서 예수님께서 수행하시는 그에게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참으로 이끌림 받는 것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첫째는, 이끌려진 것은 자아라는 점이며, 그리고 그 자신에게로 이끈다는 것이다"(TC, p. 159). 이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기독교적 의미의 자아 됨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여기서는 반-펠라기우스주의 문제와 연관된 문제 하나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에게로 이끄는 활동이 두 단계의 활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먼저는 그 자신이 되도록 하는 활동이고, 둘째는 그를 그 자신에게로 이끄는 활동이다. 강조해야 할 것은 이중 첫번째 활동도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아가 되는 것도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무엇 보다 먼저 모든 사람이 자신이 되도록 도우신다"(TC, p. 160).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 지는 첫째 단계도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먼저 자아가 되고 나서, 그 후에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지는 것인가? 즉, "이 두 가지의 활동이 두 단계의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보기로 하자. 만일에 우리가 안티-클리마쿠스에게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안티-클리마쿠스가 반-펠라기우스주의적 정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만일에 먼저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자아가 되고 그 후에야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에게 반-펠라기우스주의적인 정향이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가 말하는 것에는 이를 가능한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끌려진 것 자체가 자아라면, 참으로 그에게로 이끈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첫째로, 그가 그 나름의 자아가 되도록 돕고, 그 후에야 그것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는 것이다. 또는 이것은 그에게로 이끄심과 함께 또한 그 이끄심으로 자아가 되도록 도우신다는 것이다(TC, p. 159).

과연 어떤 것이 안티-클리마쿠스의 진정한 의도일까? 이 인용문을 잘 보면, 두 단계의 행동이라는 것이 사실은 동시에 일어 나는 것에 대한 분석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맥상 강조된 것은 자아가 되어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연관되기 전에는 스스로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닮았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에 앞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자아가 되는 일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주도권에 대한 강조이다(TC, pp. 156f.).

이 점은 이 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 심각하게 비판되고 있다는 점에 의해서 확언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스스로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에 말려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TC, pp. 224ff.). 안티-클리마쿠스는 개인들보다는 전체로서의 교회에 대해 이 말을 하고 있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교회 전체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라면 교회에 속한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그리스도를 따른 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온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아주 비상할 정도의 그리스도인인 안티-클리마쿠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유이다: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확신한다. 그러나 내가 매 순간 내가 여기서 말한 것을 늘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또 그로부터의 모든 추론에 대해 모든 책임을 다 질 정도로 그런 완벽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TC, p. 249).

비록 그 자신은 온전한 의미에서 그런 사람일 수는 없지만, 안티-클리마쿠스는 그리스도인 됨의 이상이 이런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제자도에 대한 그의 견해와 일치한다. 그에 의하면, 제자라면 제자가 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면서 또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 수난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노력이나 수난에 그 어떤 공로도 돌리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그런 공로에 대한 생각조차도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참된 제자는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신인의 죽음에 대한 구속적 이해를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JP, III, 2483=Pap. X 1 A 197).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대한 무한한 만족이 받아졌다는 확신 가운데서, 그의 추구에 대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한한 보장이 된다"고 생각하며 시작한다(TC, p. 270). 이런 정신에서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속과 관련해서는 당신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먼 의미에서라도 말이다. 당신은 전적으로 빚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만족을 치루어 주셨다. [즉, 죄책은 전적으로 당신의 것이고, 만족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다](Christian Discourses, p. 308).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제자는 자신의 노력과 사역에 대한 그 어떤 공로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Journals, 1069=Pap. X 2 A 511).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 그의 출발점이고 마침 점이기도 하다.
키에르케고르의 일기로부터의 다음 인용문은 이 점을 더 분명히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속죄와 은혜는 명확하고 늘 그런 것으로 남는다. 죽음의 순간이 모방의 모든 노력을 그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세워 놓을 때, 그 때는 모방의 모든 노력이 아주 사소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속죄와 은혜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노력이 있는 한, 이 노력이 사람을 다 소진시켜 버리는 고통스러운 불안과 초조로 바꾸어 놓지 않으려면, 그리하여 처음에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하게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속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력해 나갈 때에는 순간순간 잘못이 범해질 수 있고, 어떤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바, 그것이 다 죄이다. 그러므로 구속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방은 가장 결렬한 것이지만 농담처럼, 아이 같은 행동의 이루어져야만 한다(JP, II, 1909=Pap. X 4 A 491).

이 구절은 속죄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의 노력(제자 됨)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이해를 잘 요약해 준다고 여겨진다. 속죄가 있어야 제자 됨이 있고, 제자 됨이 참으로 제대로 된 것이기 위해서는 항상 속죄가 상기되어야만 한다. 이를 다음 두 요점으로 나누어 말해 볼 수도 있다.

첫째로,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하의 상태 가운데서 성취하신 속죄 행위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진지한 것이다. 이 구속 행위와 대조하면, 모든 인간의 본받으려는 노력은 사소한 것일 뿐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어린이 같은 행위일 뿐"이다. 즉, 우리의 노력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더구나, "공로로 여겨지는 선행은 자연히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JP, II, 1121=Pap. VIII 1 A 19). 둘째로, 그리스도의 구속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의 근거이다(cf. JP, II, 1875=Pap. X 3 A 378; JP, II, 1910=Pap. X 4 A 492). 구속에 근거한 그런 노력만이 "그 가운데서 사람이 다 소진되는 고통스러운 불안과 초조"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구속과 우리의 노력의 이런 관계를 마리 떨스트룹은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한 바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 안의 감사를 일깨운다. 바로 이 감사가 그리스도를 본받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런 본받음은 [구속의] 기쁨에서 온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의 모방은 모든 사람들을 얽어매는 율법주의적 요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 마디로 하자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신앙의 열매"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신인의] 무한한 비하와 은총, 그리고 [우리들의] 감사에서 나온 노력 -- 그것이 기독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이렇게도 말한 바 있다: "당신의 노력은 될 수 있는 한 엄격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구원받는 것은 '은총'에 의해서이다." 이런 요점들은『기독교의 훈련』에서 말하는 제자도의 성격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비하 상태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훈련』과 관련해서도 반-펠라기우스주의적 성향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졌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는 제자도의 핵심적인 부분인 그리스도를 따름이 신인에 대한 신앙-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음이 잘 드러났다.



4. 마치는 말

이 모든 고찰을 거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 우리가 이 논의를 통해 분명히 발견한 것일 것이다. 첫째로, 『철학적 단편』과『기독교의 훈련』에 나타나 있는 제자도는 그리스도를 단순한 도덕적 교사로만 여기는 "단순한 윤리적 제자도"가 아니다. 둘째로, 이 두 책은 구원 문제를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적 사역으로 이해하는 신인협력주의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이 두 가지 요점은 이 두 책에서 제자도의 문제로 다루어진 기독교 윤리, 즉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가 합리주의적 윤리 이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해준다. 왜냐하면 윤리적 측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는 그저 윤리적인 사람의 윤리에 대한 이해와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이 시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윤리적인 측면이 자율적이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 삶의 윤리적 측면도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신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규범"(the Christian ethical norm)은 "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JP, II, 1901+Pap. X 4 A 340). 그리고 그 제자 됨의 의미는 이 논문이 잘 밝힌 바와 같이 '단순한 윤리적 제자도'가 아니라, '고도의 기독론적 제자도'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