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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기봉은 이번 전시작들에서 두 갈래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논리철학 논고』를 연관시켰다. 출품작 중 명시적으로 『트락타투스』의 문장들을 캔버스 표면에 요철 전사한 경우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연관관계다. 금속활자 인쇄술처럼 음각과 양각을 가진 설치작품 〈A Thousand Pages-White〉에서 『트락타투스』 텍스트가 부질없는 가루 안료를 통해 형태화된 경우도 그렇다. 이들 작품에서 핵심은 만질 수 있을 만큼 뚜렷이 화면에 표현되었지만 불립문자처럼 읽거나 이해할 수 없는 그 단어들, 문장들이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를 시각적으로 모방하면서 동시에 이기봉의 창작을 통해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다른 갈래는 이기봉이 미술로 시도한 철학이다. -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 미술과 철학: 이기봉의 ‘당신이 서 있는 곳’」(강수미 교수, 미술비평가) 중에서, 본문 15-16쪽
페터 바이벨은 예술과 과학 사이를 자유분방하게 넘나드는 작가로서 현재까지도 다양한 재료, 형식과 기술을 통해 자신의 문제 인식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작가는 인식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언어와 미디어, 나아가 실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고유한 작품 세계를 통해 ‘논리적 접근이 지닌 치유의 효과에 대한 믿음(페터 슬로터다이크)’을 기반으로 관객에게 세상을 단순화하여 해석하는 기존의 모델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을 제안한다.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예술은 인식의 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페터 바이벨전 | 20~21세기를 관통하며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구축하다」(박영민 기자) 중에서, 본문 22쪽
문신은 우연함과 자유로움을 모방하지만 빈틈없이 계산된 형태를 표현한 충실하고도 독창적인 예술가다. “예술의 세계에는 제자도 스승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라는 그의 말처럼, 주제, 재료, 기법 등에 있어 어떠한 편견 없이 도전했던 문신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조각은 다루기 힘든 경질의 재료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기술의 정교함, 좌우균제의 절묘한 조화에서 오는 안정감, 간결하고 추상적이지만 작품 속에 느껴지는 생명성, 주변 자연을 작품화한 시적인 감성도 볼 수 있다. - 「미술관 탐방 | 예술의 혼(魂)과 hone을 담다 -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 조각가 문신」(김명해 화가) 중에서, 본문 31쪽
마술적인 하나의 순간, 아주 드라마틱한 전환이 있기보다는 좀 ‘차근차근 작은 것들로 쌓아가는 그런 발전이 더 현실적이고 더 우리의 삶에 가깝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거, 그런 표정이나 예를 들면 그냥 잠을 재워준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상한 근거 없는 기법을 가지고 그냥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하는데 심지어는 그게 중국어로 바뀌어서 내용도 모르는 어떤 그냥 소리로 전환되고 그런 것만으로도 꿀잠을 재울 수 있다 하는 식의 그런 작은 것들. 첫 만남에서도 ‘마침내’라는 단어를 듣고 그것을 음미하면서, 그리고 가만히 빤히 보면서 ‘저 사람의 패턴을 알고 싶다’라는 그런 호기심. 이런 식의 것들로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초밥을 먹고 같이 상을 치운다, 이런 작은 행위들. 제가 그전에 만들었던 영화에서의 아주 극적인 전환의 마법도 좋지만 또 이런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 「2023 쿨투라 AWARDS – 오늘의 영화 | “차근차근 작은 것들로 쌓아가는 그런 발전이 더 현실적이고 우리 삶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강유정 교수, 영화평론가) 중에서, 본문 41쪽
언젠가부터는 생각을 바꿨어요. 절대 그만둘 수 없다가 아니라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시를 떠날 수 있다, 시인을 버릴 수 있다고…….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렇게 해야죠.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시가 저를 원하지 않을 때, 시가 저를 견딜 수 없이 상처 입힐 때는 억지 부리지 않고 돌아서겠어요. 그렇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볼 거예요. 최선을 다해볼 거예요.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도록. 하지만 부디 이런 상상은 먼 훗날의 일이기를. 지금은 시 아닌 다른 존재를 도무지 생각할 수 없고, 그만큼 시를 좋아하고 있어요. - 「2023 쿨투라 AWARDS – 오늘의 시 | ‘나’라는 오롯한 혼자, 그로써 견딜 수 있는 마음 - 「숨」의 박소란 시인 인터뷰」(최지은 시인) 중에서, 본문 55쪽
우리 사회에 무언가 대단한 화두를 던지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그저,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중히 모아서 여러분 앞에 조심스럽게 펼쳐놓는 창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여러분도 좋아하시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요.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23 쿨투라 AWARDS – 오늘의 드라마 | “〈우영우〉는 나에게 격려와 용기 준 작품….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소중히 펼치는 창작자 되고파”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문지원 작가 인터뷰」(이은주 기자) 중에서, 본문 67쪽
쿨투라 어워즈 좌담은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졌던 우리 문화의 동향을 개괄적으로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큰 틀에서 검토함으로써, 현재 우리 문화를 성찰해보는 자리입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국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한류 붐을 일으키며 많은 성취가 있었다고 봅니다. 《쿨투라》가 올해도 설문을 통해 살펴본 ‘오늘의 시,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미술’ 등의 목록을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흐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2023 쿨투라 AWARDS - 좌담 | 2023 오늘의 한국문화 지형도 - 오늘의 시,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악과 미술, 기타 문화」(쿨투라 편집위원회) 중에서, 본문 68쪽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많은 응모작들이 모였다. K-콘텐츠에 대한 열기와 그 열기를 자기의 언어로 말하고 싶은 또 다른 열정을 부피로 체감할 수 있었다. 2023년도 신인상 당선작으로 김해솔 씨의 시 「아몰퍼스」 외 2편과 이우빈 씨의 영화평론 「어눌한 발화를 통해 매체로서의 영화를 증명하기 ─ 〈헤어질 결심〉과 뉴진스의 〈OMG〉 M/V를 중심으로」를 선정하였다. 올해 유난히 많은 투고작이 몰린 소설 부문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다음 호로 당선작 발표를 미루었다. 매체적 위상이 높아진 《쿨투라》의 미래를 새로운 신인으로서 한껏 밝혀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 영상적 소통의 매력과 실험성의 페이소스를 보여준 당선작」(심사위원 유성호, 강유정, 김민정, 손정순) 중에서, 본문 88쪽
나는 말하는 일을 좋아하고 말하는 일을 수정하는 일은 더 좋아한다고. 이건 어쩐지, 시공을 초월하는 일 같다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 같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내가 한 말에 책임지는 일이다. 번복할 수 없음을,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아는 일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계속 말하고 수정하는 일은, 나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게 할 수도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과해. 과하다고. 넌 미쳤어.” -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 시 부문 당선소감」(김해솔) 중에서, 본문 90쪽
제 또래들이 NCS니 토익 스피킹이니 착실한 사회인으로의 변태에 몰두할 때 저는 여전히 영화란 공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혹은 영화로 글쓰기란 어불성설의 몽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영화와 글이라는 두 개의 이정표는 점점 색이 바래고 저는 저의 미래를 어디로 몰고 나가야 할지 영 헷갈리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영화와의 권태기는 연인 간의 권태기가 으레 그렇듯 저로부터 나온 문제입니다. ‘지금이라도 코딩을 배울까?’란 야비한 맘이 저를 연신 괴롭히고, 저는 괜히 이 문제의 원인을 영화란 친구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 영화평론부문 당선소감」(이우빈) 중에서, 본문 98쪽
윤 배우는 1960~197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끈 여배우 트리오 중 한 명이었다. 파리에 거주한 이후로는 국내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만무방〉 등의 작품에 간간히 등장하며 고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2010년 작 〈시〉는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마지막 출연작이 됐다. 극중 주인공 미자는 시작(詩作)을 공부하는 노년 여성으로 알츠하이머 증세를 겪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해 호평을 얻었던 윤 배우가 그 즈음부터 발병을 했다니 운명의 지독함을 느끼게 한다. -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윤정희 | 사랑의 기억」(장재선 시인) 중에서, 본문 83쪽
말은 그냥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요즘 시대에 린샹푸의 언행일치는 은근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후에도 자기가 한 말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긍정적 인물은 약속을 허투루 간주하지 않는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를 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의를 따르는 데 목숨을 내건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원청』은 협(俠)의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멀리서 보기에도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위화는 이 작품으로 묻는 것 같다. 현대 중국의 기원에 있는 의로움의 정신은 무슨 까닭으로 이토록 변질되었는가? - 「문학 월평 | 부재한 곳으로 가는 꿈 - 위화, 『원청』」(허희 문학평론가) 중에서, 본문 91쪽
원작 〈바람의 소리〉는 바느질과 수繡가 여러 번 등장한다. 수라는 여성적 방식을 통해, 비밀이 전달되기도 하고 암호가 제작되고 풀어지기도 한다. 수를 놓는 데 필연적인 바늘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그 긴장감의 성격 역시 바늘처럼 첨예하고 섬세하며 날카롭다. 하지만 〈유령〉은 ‘불’의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다가가 담배불을 빌린다. 두 사람은 불이 붙은 담배도 교환한다. 이 불은 총구의 불꽃으로, 옷을 찢어 기름을 적신 화염병의 심지로, 폭탄의 엄청난 폭발력으로 마침내 건물을 집어삼키는 화염으로 연쇄된다. - 「영화 월평 | 불꽃같은 정염의 폭발과 서늘한 추, 누가 유령인가?」(강유정 교수, 영화평론가) 중에서, 본문 109쪽
2006년 청주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이미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있다. 현실은 여고생이 아니고 더 어린 여중생이고, 폭력의 도구는 고데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픽션보다 더 믿을 수 없는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드라마틱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학교폭력’이라는 한국 사회 핫이슈, ‘사적 복수’라는 한국 드라마 최신 트렌드, 그리고 표현의 수위에 자유로운 OTT 플랫폼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19금 드라마. 그것이 바로 〈더 글로리〉다.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 「드라마 월평 |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를 본다 - 〈더 글로리〉, 〈금혼령〉」(김민정 드라마평론가) 중에서, 본문 111쪽
가장 화제를 모으는 작품은 21년만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황금곰상을 노리는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이다.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 황금곰상을 받은 경우는 〈신데렐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두 번 뿐이다. 이미 일본에서 개봉하여 ‘천만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월드프리미어를 선호하는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은 그 자체로 20여 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가 선사한 충격을 떠올리게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모여라, 2023 베를린영화제로 - 홍상수, 변성현, 유형준 감독 초청」(설재원 에디터) 중에서, 본문 117쪽
방영 이후부터 종영 직전까지 큰 사랑을 받아온 만큼 드라마 작가의 자질 문제로까지 얘기가 번질 정도로 결말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이 드라마의 결말에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실망하는 것일까. 단 한 화 만에 ‘모든 것이 꿈이었다’라는 전개로 15화에 걸쳐 쌓아온 이야기의 탑을 무너트린 전개의 엉성함과 원작의 설정 파괴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핵심은 ‘배신감’이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콘텐츠 경험이 ‘없던 일’이 되었다는 배신감. - 「청년문화비평 | 해피엔딩의 조건」(김현구 출판편집자) 중에서, 본문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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