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 13대 근초고왕 때 최전성기를 맞이함. 마한의 잔여 세력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현재의 전라도 곡창 지대를 차지하여 더욱 안정을 맞이한다. 안정된 국내의 상황을 힘입어 근초고왕은 해외로의 진출을 시도한다. 이에 중원의 요서와 산동, 강남 일대에 여러 식민지를 건설하고 왜에도 진출해 식민지를 건설한다. 그리고 북쪽으로 진출, 고구려의 평양 동황성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케 한다. 15대 침류왕은 불교를 수용한다. 고구려와 비슷한 목적으로 불교를 수용하나 기존의 종교 세력(여교의 한 갈래. 동일하게 고등신과 부여신을 섬기나 정통성을 부여씨에 부여하고 있다)과 마찰을 빚게 된다. 이복 아우 진사가 기존의 종교 세력을 등에 업고 침류왕을 독살, 침류왕의 아들 아신을 왜로 추방하고 그 지지 세력을 핍박한다. 이로써 근초고왕 때부터 지속되던 백제의 평화와 전성기는 침류왕-진사왕 대에 이르러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진사왕은 즉위 이후 자신이 벌인 정국의 혼란을 가라앉히기에 힘을 쓴다. 그 일환으로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는 등 정책을 쓰지만 많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비록 아신 태자의 지지 세력을 핍박하기는 하였으나 조정의 중신들 상당수가 실질적으로 아신 태자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사왕은 서서히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진사왕의 증세는 재위 말년에 심해져 백제는 392년 광개토태왕이 침공해 왔을 때 왕의 결제조차 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관미성을 빼앗기자 백제 안에서는 진사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끓기 시작한다. 하지만 진사왕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구원의 행궁으로 사냥을 하러 떠난다. 이때를 틈타 왜국에서 아신이 귀국하고 자신의 지지 세력을 힘입어 진사왕을 시해, 즉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