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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한 얼굴에 화려한 망토를 걸친, 역사책 속 나이 지긋한 루이 14세의 초상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영화 안에서 궁정 발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젊고 매혹적인 루이 14세(브누아 마지멜 분)의 모습이 그저 영화 속 허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17세기 유럽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군주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칭했으며, 재무장관 콜베르를 기용해 중상주의 정책을 펴서 무역을 활성화시키고 제국주의 침략의 기틀을 닦은 그 막강한 ‘태양왕’이 우스꽝스런 옷을 걸치고 궁정 대신들 앞에서 원맨쇼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루이 14세가 대신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독무대를 꾸며 춤을 춘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에서 최초로 춤을 정치에 이용한 군주였다. 루이 13세가 죽고 다섯살에 왕위를 계승한 그는 모후의 섭정 중에 귀족·시민 반란인 ‘프롱드의 난’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궁을 떠나 피신하는 처지에 놓이는데, 이때 겪은 고통 때문에 훗날 왕권 강화에 더욱 힘을 쏟는다.
루이 13세 사후에 실권을 쥐고 있던 재상 마자랭이 1661년에 죽자 루이 14세는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 재상제를 폐지하고 법원의 칙령심사권을 박탈하는 등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궁정 귀족들 앞에서 신격화할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그 프로그램의 도구로 음악과 춤을 이용했던 것이다.
귀족들이 왕의 권력에 철저히 복종하게 하려면, 왕은 귀족 가운데 하나가 아니고 그들과는 전혀 다른 신과 같은 존재임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상징은 태양이었다. 태양이 있어야 세상 만물이 존재할 수 있고, 별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궁정 발레에서 주역을 맡았던 루이 14세는 열다섯살 때 ‘밤의 발레’라는 작품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으로 출연했는데, 이때 그는 눈부신 황금빛 무대의상에 태양을 상징하는 황금빛 머리장식을 달고 등장해 귀족들을 심리적으로 제압했다.
이때부터 그는 극작가 몰리에르와 작곡가 륄리를 양 날개로 거느리고 궁정에서 자주 무도회와 예술제를 열어, 예술로 자신의 신성을 과시하는 한편 귀족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예술 활동으로 돌리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이탈리아 출신이면서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궁정악장으로 임명된 륄리는 루이 14세를 위해 남성적이고 힘이 넘치는 발레곡을 작곡하고 직접 안무까지 해 궁정행사 때 왕이 춤으로 찬란한 위엄을 떨칠 수 있게 해주었다.
절대왕정 시대는 이미지 메이킹의 시대이자 연출의 시대였다. 루이 14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제후들은 귀족과 민중 앞에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일까 고심했으며, 전문가 그룹을 곁에 두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을 기획하고 연출하게 했다. 그래서 춤과 음악을 비롯한 문화 전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당시의 궁정무도회에서는 요즘 오스트리아 빈에서 각국 명사들이 모여 벌이는 오페라하우스 무도회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춤의 규칙과 예법이 엄격했다고 한다. 궁정무도회란 군주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오로지 절대군주 한 사람을 위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은 부드럽게 모아 주되, 나머지 손가락은 나란히 붙여야 한다. 손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하려는 듯 손가락을 좍 벌려 펼쳐 보여서는 안 된다” 등의 세세한 규범까지 지켜야 했으니, 귀족들은 무도회에 나갈 때마다 설렘보다 스트레스만 잔뜩 받았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