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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4일 서(西)유럽 가족여행은 오늘 로마 시내 일정을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따라서 어제 나폴리에서 로마로 돌아와 투숙한 CONCORDE FIUGGI 호텔을 새벽 일찍 나선다. 오늘 첫 방문할 곳은 바티칸 박물관이라, 09시 입장을 위해 줄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총본산 바티칸 시국의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이라~ 예약은 않아, 당일 07시30분에 바티칸박물관에 도착하여 09시 입장 시까지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린다. 로마의 겨울철 아침 날씨가 꽤 쌀쌀하나 기다림은 견딜만하다. 좌측이 입구이며, 앞 쪽 위 보이는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좌)와 라파엘로(우)다.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은 방문객들의 복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당일 겨울철이라 복장 관련 불손함(?)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칼이나 삼각대 등 끝이 뾰족한 물건과 큰 가방 등은 들고 들어가지 않도록 검색은 철저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로마 교황청 바티칸 궁전 내의 기념물ㆍ미술관ㆍ회화관 등의 종합적 명칭으로, 이곳은 원래 교황의 바티칸 궁전이었으나 1377년에 프랑스 아비뇽의 유폐를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온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 교황이 돌아와 퇴락한 권위를 회복하고자 그 화려함과 웅장함도 대단했으니! 박물관의 소장품은 16세기 초 추기경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의 개인수집에서 시작되어 역대 교황에 의한 기증품과 시설의 증설에 의하여 풍성하게 되었다. 바티칸 박물관은 바티칸 궁 수 개의 건물에 교황들이 모아놓은 예술작품을 전시한 곳. 이 바티칸 궁에는 총 1400개가 넘는 방들이 각 건물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바티칸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곳은 이 방들의 몇 곳을 공개한 것이다. 외부 안내판에서 만난, 시스티나 소성당(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천지창조》와 함께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작품이라, 이곳을 들리는 세계의 관광객들 모두에게 설렘을 제공한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완성한 후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다시 교황 클레멘테 7세의 부름을 받고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되었다. 중앙에 그리스도와 마리아가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위쪽은 천당, 아래쪽은 지옥으로 표현되었다. 예수 옆에는 산 채로 피부가 벗겨져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자신의 가죽을 들고 있는데, 미켈란젤로는 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또한 예수의 몸은 《벨베데레의 토르소》를 본떠 그린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각각의 인물을 인체의 근육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된 후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성직자들이 모였지만,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나체로 표현되어 있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트렌티노 공의회에서 미켈란젤로가 숨지기 한 달 전 그림의 나체에 가리개를 씌울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작업을 미켈란젤로의 제자가 맡아 극히 적은 부분만 수정되게 되었다. (참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39500512) 역시 외부 안내판에서 만난, 시스티나 소성당(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이다. 미켈란젤로가 4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 전체에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기법을 이용해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천장 아래의 좁은 공간에서 떨어지는 안료를 맞으며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척추가 휘고 한쪽 시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작품을 살펴보면,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의 창세기 아홉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그릴 때 노아의 이야기부터 거꾸로 그렸기 때문에, 처음에 그려진 노아보다 점차 천지창조에 가까울수록 그림이 심플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창세기 9 장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그림 중앙에 있는 아담과 신의 손끝이 맞닿아 있는 장면이다. 바티칸 박물관 건물들은 1550년대부터 짓기 시작했는데, 현존하는 건물들은 1820년대 지은 건물들이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을 하면서 나폴리에서부터 베네치아까지 예술품을 싹쓸이해 갔다. 그러다 보니 현재 이탈리아에 남은 것이라고는 못 떼어 간 벽화나 건물에 붙어 있는 부조물이 많다. 그러나 1816년 비엔나 회의에서 유물 반환의 명령을 받았고 이때 돌아올 전시물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 현재 우리가 보는 박물관 건물이다. 1층에는 각종 그림을 모아 놓은 회화 전시관,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이집트 전시관, 키아라몬티 미술관, 시스티나 성당이 있다. 바티칸 도서관은 3년의 보수 공사가 끝나고 2010년 9월 20일 재개관했다. 2층에는 에트루리아 전시관, 지도의 방, 라파엘로의 방들이 있다. (참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37800068) 광장 중앙에 지구의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천체 속의 천체'라는 작품이 있는데, 주변 건축물 등과의 묘한 조화를 이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위 1960년 로마 올림픽을 기념하여 구리로 제작한 작품이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 시 한국어 안내가 가능한 개인용 수신기를 제공받아, 관련 정보를 청취하여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얘는 비둘기가 아니라 갈매기라네^^ 맞나? 갈매긴 바닷가에 있어야 되잖나? 몰러.. 오동통통 생겨,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녀석인 듯! ㅎㅎ 이곳 '피냐의 안뜰(Cortile della Pigna)' 한쪽에는 거대한 솔방울 분수가 있어 '솔방울 정원'이라고 불리운다. 4m 높이의 청동 솔방울인데, 공기를 정화하는 솔방울처럼 이 앞에서 죄를 씻어내고 자신을 정화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으니! 또한 솔방울은 고대 로마를 상징하며 소나무의 원천인 것이니! 그리고 솔방울 양 쪽에 있는 공작(새)은 교황을 상징한다. 라오콘 군상이다. 1506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 궁전 근처의 포도밭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 조각상을 전시한 것이 바티칸 박물관의 시초라~ 율리우스 2세는 바티칸에 당대 최고의 화가와 조각가들을 불러들여 바티칸 궁전의 건축과 장식을 맡겼는데, 이 또한 바티칸이 지금의 최고의 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바티칸 박물관이 처음 일반에 공개된 것은 18세기 후반으로, 역대 교황의 궁전으로 사용되던 바티칸 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공개한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 만들어진 이 작품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아들을 구하지 못하는 무기력함까지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과 놀란 근육의 표현이 압권이다. 라오쿤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신관으로,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를 트로이 성으로 들이는 것에 반대해 신의 노여움을 사서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목졸려 죽임을 당했다. (참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39500512) 잠시 광장의 휴식을 취한 후 팔각정원으로 들어선다. 벨베데레의 토르소 이 작품 역시 바티칸에 소장된 작품들 중에서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몸통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 미켈란젤로에게 이 작품의 상태를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이 상태 그대로 완벽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이 몸을 그림에 모델로 넣었다. 또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토르소가 모델이 된 작품이다. 원형의 방에 천장은 경외롭고 웅장하다! 판테온 신전에 있는 천장과 유사하여, 그곳에 있는 천장을 본떠 만들었다고도 한다. 네로 황제의 욕조가 있는 곳이다. 미술관은 율리우스 2세(제위 1503~1513) 때 벨베데레의 정원에 고대 조각이 전시됨으로써 시작하여, 클레멘스 14세 때인 1773년에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지도의 방'은 길이 120m, 너비 6m로 황금빛 천정과 벽 역시 화려함의 극치라~ 돌무덤에서 부활하여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 태피스트리(tapestry, 다채로운 선염색사<先染色絲>로 그림을 짜넣은 직물)이다. 벽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화려한 천장을 뚫어져라 올려다 보면서 앞으로 진행 중~ 사람들은 3D처럼 보인다고도 하는데!!! 여하튼 규모 즉 면적이 넓고 커서 놀랍다! 붐비는 사람들 속 사이 단체 관광객 가이드는 인원 체크도 하랴 설명도 하랴 분주~ 피에타(PIETA)다. 실제 위치해 있는 곳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위 거룩한 문이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25년에 한 번 씩 대희년에만 열린다. 평소에는 교황만 이용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25세 때 완성한 작품 피에타(PIETA)다. 중세 시대의 거의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은, 당시 정서와는 맞지 않게 성모 마리아를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배척당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성모 마리아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33살 아들을 둔 늙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표현이 되어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마리아가 품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그대로 잘 표현되어 있다. 피에타는 '탄식'이란 뜻이다. 피에타는 1972년 5월21일에 큰 수난을 겪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재능을 시기하다 깊은 좌절에 빠진 한 청년이 《피에타》 조각상을 망치로 15번 내리쳐 파손시킨 것이다. 복원을 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피에타》를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고 지금처럼 유리로 된 보호벽 뒤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유리벽이 있었던가? 헉~ 아래 로마 트래비 분수 앞 노점에서 구매한 피에타 기념품이다. 현재 사무실 보조책상 위 두고 있다. 세계 카톨릭의 총 본산격인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모습이다. 따라서 관광객들이 로마에 들릴 테면 굳이 종교와 상관없이 꼭 들러볼만하다. 뒤편에 교황의 제단이 있다. 옥좌로써 발다키노(baldacchino, 1624~1633)이다. 역시 바로크의 거장 G.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의 작품! 17세기 전 유럽에 유행했던 로마 바로크 양식의 효시가 될 만큼 그 다양한 건축물들이 성 베드로 성당에서 만나게 된다. 아무튼 발다키노는 많은 양의 청동을 투입하여 만든 제단으로, 권위가 있으면서도 경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발다키노 위 돔 부분인 쿠폴라가 있다. 미켈란젤로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화려하고 웅장 그 자체라~ 태양이 지나가면서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은 묘한 서광(?)을 내려주기도 한단다. ㅎ 천장에 붙여넣은 금이 3톤이나 된다고!!!
4세기,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던 당시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인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은 것이 이 성당의 시초다. 하지만 중세 때 황폐해졌다가 16세기 경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재건 계획에 따라 건축가인 브라만테를 시작으로 라파엘로ㆍ미켈란젤로ㆍ마데르노ㆍ베르니니 등 10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120년에 걸쳐 작업한 끝에 1626년 11월 28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 때 완성됐다. 수용인원만도 6만 명이 넘고, 50개의 제단과 500개의 기둥, 그리고 베르니니ㆍ미켈란젤로 등이 제작한 450개의 조각상 등이 들어서 있어 성당이기 전에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규모 면에서도 유럽 최고를 자랑하는데, 총 면적 1만5160㎡에 돔의 지름만도 42m나 된다. (참조 : 자신만만 세계여행 EUROPE _김민준ㆍ곽정란ㆍ윤도영/삼성출판사/2016_) 성 베드로 대성당(산 피에트로 광장 Piazza di San Pietro)
광장 중앙에 높이 25.5m, 무게 350톤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다. 17세기에 거장 베르니니가 설계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는 284개의 원기둥이 있고, 상부에는 140개의 성인상이 세워져 있다. 이 성인상들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제작한 것으로, 저마다 모양이 다르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오른쪽의 것은 마데르노가, 왼쪽의 것은 베르니니가 만들었다. 원기둥은 4열로 만들어졌으며, 분수와 오벨리시크 중간(서는 지점이 표시되어 있슴)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각각 앞 열의 원기둥만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참조 : 자신만만 세계여행 EUROPE _김민준ㆍ곽정란ㆍ윤도영/삼성출판사/2016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