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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바이블 73, 사기꾼 플랑타르(성배와 성혈)
● 성배의 계승자는 없다!
앞서서 언급한 성배에 얽힌 미스테리에 대한 내용을 이제부터 반박해 보도록 하겠다.
'성혈과 성배'류의 작품에는 일부분 진실이 담겨있다. 일부분의 내용이 진실임을 알게될 때 사람들은
작가들의 주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 같다.
문제는 진실과 거짓, 그리고 무리한 억측이 눈치 챌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뒤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 거짓의 중심에 #플랑타르라는 망상가가 있었다!
(1) 사기꾼 플랑타르
사실상 #소니에르 신부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만들어진 측면이 적지 않다. 소니에르 신부는 불법적인
미사를 통해 수입을 올렸으며 그의 재산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소니에르 신부가 양피지
암호문이나 보물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소니에르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으며, 그가 죽은 후 한 음식점 주인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보물과
성유물'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스테리 작가 '제라르 드 세드'의 책을 기초로 삼고 있는 '성혈과 성배'에서는 교황청이 소니에르
신부를 보호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혈과 성배'의 작가들은 두번에 걸쳐 교황청 문서를
뒤졌으나 소니에르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자들은 교황청 문서에서 소니에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고의적인 누락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주석을 달아 놓았다.
[성혈과 성배/ 자음과모음 / 이정임 외,역 / P.59]
소니에르 신부에 대한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성배와 메로빙 왕조를 끼워 넣은 인물의 장본인은
'플랑타르'라는 사람이다. '플랑타르'(Pierre Plantard: 1920~2000)라는 프랑스인은 당시 아네마세에 있는
샤노빈 현장에서 도안공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950년대에 배임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6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바 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조사하고 1979년과
1994년의 두번에 걸쳐 책을 출판 했으며, 1996년에 BBC 방송에 출연하여 그의 사기행각을 폭로했다.
'장 뤽 쇼멜'이 폭로하는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은 다음과 같다. [장 뤽 쇼멜이 1979년에 내놓은 Le Trésor
du Triangle d'or과 1994년에 La Table d'Isis ou le secret de la lumière라는 책 참조]
플랑타르는 50년대 중반에 '레네 르 샤토'에 있는 소니에르 신부의 부동산 구입자인 '노엘 코르뷔'(Noel
Corbu)를 알게 된다. '노엘 코르뷔'는 바로 소니에르의 가정부 마리에게서 그의 저택을 구입했던
그 사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서신들과 두 사람이 함께 '레네 르 샤토'의 막달라 탑에서 찍은
사진은 현재 보관되어 있다.
'노엘 코르뷔'를 만난 후에, 플랑타르는 시중에 떠돌아다니던 소니에르의 소문에 자신의 상상력(양피지
암호문, 성배, 메로빙 왕조, 시온 수도회 등등...)을 덧붙인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자신의 원고를 출판할 출판업자를 만날 수 없었다.
1956년 6월에 '플랑타르'는 동료들을 모아 '시온 수도회'를 창설했다.
창설자들에 의하면 '시온'이란 이름은 예루살렘의 시온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 있는
'몽트 시온'(Mont-Sion)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주택 복지를 위한
권리와 자유권을 변호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이듬해인 1957년 해체되었으나
재설립과 해체를 반복했다.
그때부터 '플랑타르'는 자신의 동료인 '필립 드 슈리제'(Philippe de Cherisey)와 함께 신부가 발견했다고
하는 #양피지들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년대 무렵에 그는 파리 국립 도서관에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이 자료들을 등록 시켰다.
#비밀문서에는 메로빙 왕가의족보, 시온 수도회의 역사와 단장의 명단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서들에는 시온 수도회가 소니에르 신부의 보물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으며, 피에르 플랑타르가
다고베르트 왕의 직계 후손임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헌에 언급되어 있는 많은 출판사들과
카톨릭 학회지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60년대에 플랑타르는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에게 자신의 자료를 제공했다.
1967년에 '제라르 드 세드'는 플랑타르가 제공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레네의 황금'과 그 책의 문고판인
'저주받은 보물'을 출판하게 된다. 이것은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도 파악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드 세드의 저서를 낸 파리의 출판사에 어떤 사진자료를 달라고 편지를 썼다.
우리들이 요구한 사진은 그에 따라 우리들에게 우송되어 왔다.
그 사진의 뒷쪽에는 빠짐없이 '플랑타르'(Plantard)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당시 그 이름은 우리에게 아무런 뜻이 없었다. 그런데 드 세드의 저서 가운데 한권의 부록에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피에르 플랑타르가
드 세드의 어느 저서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결국 피에르 플랑타르가 우리들의
조사과정에 지배적인 인물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다."
[Michael B 외 / 聖血과 聖杯 / 강혜령 역/ 행림출판, 1982 / P.89]
뒤에서 언급 하겠지만 이후에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천년동안이나 유지해온 비밀조직의 단장으로써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행동이 아닌가?
'제라르 드 세드'가 내놓은 책의 작가는 표면상으로는 작가 본인으로 표시 되어 있었으나,
출판 계약서에 따르면 이익금은 세사람이 나누어 갖기로 계약이 체결 되어 있었다.
세명의 사람은 '제라르 드 세드'와 '플랑타르' 그리고 '필립 드 슈리제'였다.
그러나 1971년 이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 추가적인 인세를 받지 못한 '필립 드 슈리제'는
양피지 암호문은 자신과 플랑타르가 함께 위조한 것임을 밝혔다. 이 내용은 그의 여러 책들과
편지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한편, 세사람이 책의 인세 분배 문제로 싸우고 있는동안, 그 책에 관심을 가진 #BBC 다큐멘타리팀이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리고 책에 담겨진 내용이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BBC에서
방영되자 플랑타르는 어느덧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 내용이 방송국에서 방영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 무렵,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이라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그 내용은 1979년에 출판되게
된다.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조사하던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양피지 문서를 건네
받아 검토를 의뢰했다. 그 결과 양피지 문서는 1960년대 초반 이전에 기록된 것이 아님이 판명 되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에게 이 문제를 추궁하자, 그는 문제의 양피지가 '필립 드 슈리제'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진본(眞本)에 토대를 둔 사본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무렵 BBC의 다큐멘타리를 제작했던 '헨리 링컨'은 동료들을 불러들여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작가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1996년에 재출간된
'성혈과 성배 증보판'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국내에는 2005년에 재출판)
"'성혈과 성배'가 출간을 얼마 앞두고 있을 때 까지도, 우리는 #피에르 플랑타르드 생클레르와 셰리제
후작에게서 무작위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계속 받았다."
[마이클 베이전트 외 / 성혈과 성배 / 이정임 외,역 / 자음과모음 / P.607]
시온수도회의 단장중에 죽은 사람이 끼워져 있었다는 곤란한 문제에 직면한 작가들에게 플랑타르가
정보를 제공해 준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당시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셰리제 후작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 문제에 대해 그에게 문의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플랑타르가 우리에게 알려준
첨부 사항이 이를 해명해주고 있었다. 이 첨부 사항에 따르면 시온 수도회 내부에서 일종의 분열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클 베이전트 외 / 성혈과 성배 / 이정임 외,역 / 자음과모음 / P.5 95]
천년동안이나 비밀을 엄수했던 비밀조직의 단장 치고는 플랑타르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째서 비밀조직의 정보를 일부러 흘리는 것일까? 이것을 과연 천년동안이나
비밀리에 운영되던 비밀조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헨리 링컨'이 프랑스에 와서 소니에르 신부 사건을 취재할 무렵에, 이미 1979년에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폭로한 책을 내놓았던 '장 뤽 쇼멜'은 헨리 링컨에게 그 모든 사건이 사기라고 설명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의 유죄 판결과 양피지 위조 사건을 알려 주었으나, 헨리 링컨은 기어코
1982년에 '성혈과 성배'를 출판하게 된다.
'성혈과 성배'가 발간되기 한 달 전부터 출판사 측에서는 런던의 모든 버스 문에다 "예수에 대한 진정한
역사"라는 제목의 광고 포스트를 붙이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성혈과 성배'가 발간되자, 더욱 유명해진 플랑타르는 주변인에게 자신이 679년 다고베르트 2세의
피살로 사라졌던 메로빙 왕조의 후손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녔다고 한다.
1984년에 시온 수도회에서 사임했던 플랑타르는 1989년에 시온 수도회의 새로운 '그랜드 마스터’
(단장)의 명단을 작성한다. 그런데 재정 스캔들에 휘말린 상태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 '로제 파트리스
플라'(Roger-Patrice Pelat)라는 미테랑의 오랜 친구를 단장의 목록에 포함시켰다.
1993년, 플라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던 예심 판사 '티에리 장 피에르'(Tierry Jean-Pierre)에 의해
플랑타르의 가택수색이 실시되었고, 그의 집에서 플랑타르가 프랑스의 진정한 왕이라고 기록한 문서를
발견했다. 심문 끝에 플랑타르는 그 문서가 사기임을 인정했으며 이로 인해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그는 3번에 걸쳐 수감 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판결과 관련된 서류는 오늘날 관련 기관에서 공람할 수
있다.
'성혈과 성배'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질 즈음, 1996년 8월20일자 런던 타임스 1개 지면에
또 하나의 책 광고가 실렸다.
'신의 무덤'이라는 책에서 '리처드 앤드류'와 '폴 셀렌버거'라는 작가는 소니에르 신부의 양피지를
해독하여 '레네 르 샤토'에서 수Km 떨어진 '몽 까르두'라는 야산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에 부족한 내용을 보충한 '성혈과 성배 증보판'이 재발매 되었다.
그러자 1996년에 BBC 방송에서는 '어떤 미스테리의 역사'(The History of a Myster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게 된다. 방송에 출연한 '장 뤽 쇼멜'은 문제의 발단이 된 원본 양피지들을
공개했다. 그 양피지들은 고대로 부터 전해내려온 고문서가 아니라 현대에 제작된 것이었다.
'장 뤽 쇼멜'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을 낱낱이 공개했으며, 방송에 출연한 '플랑타르'는 모든 이야기가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실토했다. 이로써 소니에르 사건을 다시 다룬 BBC는 70년대에 방영했던 이전
방영물들에 대한 속죄를 한 셈이다.
'플랑타르'는 2000년에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을 무렵인 2003년, 이번에는 그 내용을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다빈치 코드'가 등장해서 또 다시 돌풍을 일으켰다.
플랑타르의 사기행각에 관련된 연구로는 '장 뤽 쇼멜'(Jean-Luc Chaumeil)의 조사도 훌륭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에슈구앵'과 '르누아르'의 책에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Marie-France Etchegoin et Frédéric Lenoir,
Code da Vinci: L'Enquête, Paris, Robert Laffont, 2004참조]
또한, '리차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의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The Truth behind the
Da Vinci Code)이라는 책에서도 확인 할수 있다.
플랑타르와 시온 수도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하다.
프랑스에 다시 메로빙 왕조를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야망 이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예수의 후손이
전 세계를 영적통치하는 것이 그들의 야망 이었는지 애매모호하다.
그들이 품었던 야망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 없는 망상임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필자는 한가지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그 야망이 이루어 질때까지 절대 비밀을 엄수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이지, 어째서
이 엄청난 비밀을 일부러 노출시켰는가? '플랑타르'가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책의 인세 문제로 싸웠다는 것을 상기하도록 하라. 책과 관련된 이익금을 분배받는 조건으로 그 엄청난
비밀(?)을 3류 미스테리 작가에게 제공 했다는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일인가? 게다가 플랑타르는
'성혈과 성배' 작가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했다.
비밀조직의 단장이라면 책이 출판 되지 못하게 막아야 할것이 아닌가? 플랑타르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망상가가 아니겠는가? 이러고도 시온 수도회가 천년동안 비밀리에 운영되던 비밀조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2) 뒤섞여 버린 거짓과 진실
우선 이들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메로빙 왕조와 예수의 후손들을 연결시켜줄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주장에는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있다.
#템플기사단이 프랑스왕 필립4세와 교황 클레멘스5세의 공모에 의해 종교재판을 받아 처형이나 화형을
당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템플 기사단을 실존성이 의심되는 시온 수도회와 연계시키는
주장은 무모한 것이다.
템플 기사단이 숙청당할때 그들이 고백한 동성연애 죄목이 예수의 후손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또, 그들은 십자가를 모독했다고 했는데, 그런 행동이 예수의 후손과 시온 수도회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십자가를 모독하며 예수를 부정했던 것은 영지주의자, 유대인, 카발리스트 신지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인 예수와 문자주의에 오염된 거짓예수를 부정했으며,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을 탈무드에 기록하며 예수를 경멸했다.
템플 기사단이 시온 수도회라는 비밀조직과 연계 되었다는 주장은,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시온
수도회의 비밀문서외에는 다른 근거를 찾을수 없다. 템플 기사단이 성지에서 솔로몬의 비밀궁전과
성배를 손에 넣었다는 것도 시온 수도회의 비밀문서 외에는 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3) 영지주의에 대한 무지
작가들은 중세시대의 카타리파를 언급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영지주의(Gnosticism)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영지주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논조를 펴가는 것이다.
성혈과 성배 작가들은 카타리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로마교회의 눈에는 카타리파가 물질적인 피조물(예수가 그를 위해 죽었다고 생각되는)을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보았으며, 그의 #말씀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했던 하나님을 약탈자로 보았다는 것은 중대한
이단행위로 비쳤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심각한 이단사상은 예수에 대한 그들의 태도였다.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했으므로,
카타리파는 예수가 물질과 관계를 맺고 육신으로 태어났으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따라서 일부 카타리파에 의하면 그는 전혀 육신을 입지 않았고 유령(phantasm)이요, 십자가에
못박을 수 없는 순수한 영의 실체였다." [Michael B 외 / 聖血과聖杯 / 강혜령 역/ 행림출판, 1982 / P.40]
작가의 설명대로 영지주의자들은 물질과 육체를 부정하게 생각했으며, 상당수의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 예수를 부정했다. 성혈과 성배의 작가들은 영지주의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가 덧붙여 말하면 영지주의자들에게 역사적 예수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숭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작가들은 이상한 논조를 펴가고 있다. 작가들은 영지주의에 대해 잘알고 있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펴나가기 위해 횡설수설 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육체를 부정하게 여기고 육체적
예수를 부정했던 영지주의자(카타리파)들이, 육체적 예수의 후손과 관련된 비밀(성배)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육체적 예수를 부정했던 영지주의자들이 어째서 모순적인 행동을 했을가?
육체적 예수를 부정하는 영지주의자들이 동료들의 죽음마져 감수 하면서 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이,
고작 육체적 예수의 후손을 증거하는 성배였다는 말인가? 이것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수 있는가?
저자들이 이런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템플 기사단의 초창기 회원중에
카타리파가 끼어 있었다는 시온수도회의 비밀문서 내용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작가들은 '예수 바라바'나 예수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구레네의 '시몬'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필자가 안티바이블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것들은 영지주의 교리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8장의 '예수 바라바'라는 글 참조)
성혈과 성배류 책의 문제점은 영지주의에 대한 몰 이해에서 비롯 되었다.
'가현설'(docetism)의 교리를 담고 있는 영지주의 문헌을 내밀면서 예수의 후손을 들먹이고,
육체적 예수를 부정하는 영지주의자(카타리파)들이 육체적 예수의 후손(성배)을 수호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 이것이 바로 성혈과 성배류의 잘못된 논리전개이다!
사살상 신학적 지식을 어느정도 갖춘 사람이라면 #다빈치코드류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중 상당수가
억지주장임을 알아챌 수 있다.
(4)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다빈치코드의 작가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명화속에서 한 인물을 지적한다.
작가가 지적하는 인물은 예수의 옆에 앉아있는 여자같이 보이는 인물이다. 작가는 이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댄 브라운'은 시온 수도회의 단장 명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포함 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다빈치의 그림들을 눈알이 뻘개 지도록 찾아 다녔을 것이다. 도데체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으로 예수를 연구 하겠다는 것 자체가 황당함의 극치가 아닌가!
작가의 지적대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속의 한 인물은 여자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를 세어보면 예수를 포함해서 모두 13명이다.
작가는 #12제자 중에 가롯유다는 예수를 밀고하기 위해 만찬장에서 빠져 나갔으므로 그림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림속에 묘사되어 있는 예수제자는 모두 11명이며 여자같이 보이는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그림이 #요한복음을 묘사한것으로 생각한다.
이 그림속에는 가롯유다는 확실히 있으며, 여자같이 보이는 인물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이다!
우선, 전반적인 그림의 구도를 보면 가운데 있는 예수를 중심으로 그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6명씩의 제자가 있다.
예수의 오른쪽에 자리잡은 제자들은 전체적으로 평온한 분위기이며, 예수의 왼쪽에 자리잡은
제자들은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등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논쟁을 하는듯한 격렬한 분위기이다.
예수의 바로 오른쪽 옆에는 문제의 여자같은 인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흰 수염의 남자가
그 여자같은 인물에게 무엇인가 귓속말을 하고 있다.
예수의 바로 왼쪽 옆에는 갈색 수염의 한 남자가 두팔을 쫙 펼치며 분노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예수의 시선은 왼쪽 탁자에 놓여진 빵을 향하고 있으며, 그는 바로 왼쪽 옆 남자의 탁자에 빵을
내려놓고 있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예수의 바로 왼쪽 옆에 있는 그 남자의 시선은 자신의 탁자로
빵을 내려놓은 예수의 손을 향해 있으며, 매우 화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예수의 왼쪽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격렬하게 토론을 하는 분위기를 띄긴 하지만 화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예수의 바로 왼쪽 옆의 그 남자는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분노에 가득찬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남자는 예수가 자신에게 빵을 건네자 무척이나 화가 난 것같다.
이제, 요한 복음 13장에 묘사된 최후의 만찬을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요한 복음 13장 23~27절]
예수는 제자들에게 배반자가 너희중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안긴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배반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시킨다. (위의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베드로가
누구에게 물어보라고 시켰는지 애매모호하게 번역 되어있다.) 그러자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다시 예수의 품에 안겨 배반자가 누구인지 묻고, 예수는 "빵을 건네받는 자가 배반자다"라고 말하며
가롯 유다에게 빵을 건네준다.
이제 독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다빈치의 그림속에서 예수가 자신의 탁자위에 빵을 내려놓자
격앙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남자가 바로 가롯유다이다! 그리고 여자처럼 아름다운 인물은 바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인것이다. 그리고 여자같은 그 인물에게 무엇인가 귓속 말을 건네는 흰 수염의 남자는
바로 #시몬베드로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를 다빈치는 어째서 여자같이 묘사했는지 독자들은 궁금해질 것이다.
필자가 '안티바이블' 본문중 11장의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의 저자는 다른 사람이다.'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상기하도록 하라.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가장 중요한 인물중에 하나이다.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요한복음(다른복음서도 마찬가지 임)의 저자로 여겨지는 '예수의 사랑 하시는 제자'는 전통적인 신학에
따르면 세베대의 아들 요한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 사이에는 '예수의 사랑 하시는 제자'를 '나사로'로 추측하고 있다.
어쨋든,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나사로건 요한이건 간에, 그 문제의 제자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품에 안긴다. 세베데의 아들 요한도 남자이고, 요한복음 11장 2절에서도 베다니의 나사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라고 언급하고 있다. 남자가 남자를 품에 안다니, 예수는 동성연애자인가?
또한, 본문 7장에서 언급했던 '마가의 비밀복음'을 다시 상기해 보라.
그 문헌에 묘사된 예수와 나사로의 관계는 더욱더 동성연애적이다.
필자는 '안티바이블' 본문에서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적인 성향을 많이 띄고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즉, 요한복은 1장 18절에서 예수는 "아버지의 품속에 안긴 독생자"이며, 마찬가지로 품에 안긴 제자는
이 구절과 연계되어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14장 20절의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고 언급한 요한의 신학을 상징적인 코드로 처리 한 것이다.
"내 안에", "너희 안에"라는 단어로 요한복음을 검색하면 무수히 발견된다.
따라서 예수는 신의 품에 안겨있고, 사랑받는 제자도 예수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처럼 상징으로 처리된
영지주의적인 교리가 복음서에 남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징을 파악하지 못하고 문자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어처구니없게도 예수는 동성연애자가 된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를 왜 여자처럼 묘사했던 것일까?
'꽃미남과 여전사'라는 새로나온 책을 소개하는 '오마이 뉴스'의 기사를 옮겨보도록 하겠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여장 남자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아는가. 반면 다 빈치의
'세례자 요한'은 매혹적인 눈길과 미묘한 손의 표정으로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 같은 남성을
그려냈다. 미켈란젤로 또한 남성의 몸을 여성적으로, 여성의 몸을 남성적으로 그린 그림과 조각 작품을
남겼다." ['모나리자'는 여장남자?/ OhmyNews / 2006-08-08]
남녀양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그리는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에게 유행했던 모양이다.
#다빈치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품에 안기는 사랑받던 제자를 당시에 유행했던 방식에 따라 묘사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이어오면서, 문득 15세기 무렵의 화가가 그린 그림을 어째서 예수연구의 자료로 삼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수 없다. AD 1~2세기의 초대교회 신자들이 남긴 카타콤 벽화나 각종
그림들은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연구자료로 쓰일수 있다.
그런데 예수 이후 무려 1400년이나 지난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을 가지고 예수를 연구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유가 있다면 딱 한가지 뿐이다. 시온 수도회의 비밀문서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들 조직의
단장이었다고 말하니까! 정말 너무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비밀문서에는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도 그들 조직의 단장을 지냈다고 하는데,
어째서 뉴턴과 위고의 저작물들에서는 비밀코드를 찾으려 들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문득, 필자의 머리속에 황당무계한 망상이 떠올랐다. '레 미제라블 코드'가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장발장은 시온 수도회, 장발장이 성당에서 훔친 은촛대는 성배, 코제트는 막달라 마리아,
장발장을 평생동안 괴롭히는 자베르만 경감은 오푸스 데이,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건네주며 자비를 베푼
밀리에르 신부는 예루살렘의 십자군 왕 '코데이 후루와 드 부일라',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결혼식은
예수 후손의 세계정복....오! 그러고 보니 이런 황당한 논리전개도 그럴듯하게 보인다.
갑자기 '레 미제라블 코드'(Les Miserables Code)를 만들어 대중들을 우롱하고 싶은 악마의 유혹이
불같이 일어난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필자의 글에서 영감(?)을 얻고 흉내내는 사람이 등장할까 우려된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머리에서 나왔으니 사기를 쳐도 필자가 먼져 칠것이다! (하하하....)
(5) 잘못된 유추
필자는 성배전설과 기사도 문학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특별히 비평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화학의 대가 '조지프 캠벨'박사의 '신화의 세계'(원제: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 /
'까치글방'에서 번역출판)에서 기사도 문학과 성배 이야기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기사도 문학과 성배 이야기들은 사실상 고대로 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방신화가 기독교의 옷을
입은 것 뿐이라고 추측된다. 이것은 '성혈과 성배'저자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20세기 학자들은 성배이야기들이 궁극적으로 이교도적 기초, 즉 한해의 계절들,
죽음과 재생의 순환에 관련된 제의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교의 가장 초기적
기원들에 있어서 이교는 중동 지방의 탐무츠, 아더스, 아도니스, 오시리스의 제의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유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형식상 그것들과 밀접히 관련된 식물제의를 포함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리스'와 '벨쉬'신화에는 땅의 재생과정, 즉 황폐와 비옥함의 비슷한재생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죽음, 재생, 갱신의 반복적인 언급들이 있다.“
[Michael B 외 / 聖血과 聖杯 / 강혜령 역/ 행림출판, 1982 / P.289]
'성혈과 성배'저자는 성배전설에 대해 이렇게 잘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저자는 성배가 예수의 후손을 의미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딱 한가지뿐이다.
십자군 원정때 성배를 손에 넣었다고 비밀문서에 나오니까! 바로 그 한가지 이유때문에 작가는
억지스러운 논리전개를 펼쳐 나가는 것이다.
작가는 성배전설에서 어떤 여자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놓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성배전설에서만 여자가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기사도 문학에서도 여자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놓여져 있다. 기사도 문학에서 기사들이 싸우는 목적과 쟁취의 대상은 바로 여성이다!
"내가 사랑하는 귀부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임을 인정하라!"라는 황당한 이유로 결투를
신청하는 우수꽝스런 기사들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기사도 문학속에는 남녀간의 애정과 불륜이 자주
언급 되어 있다.
#성배전설을 비롯하여 기사도 문학에서 등장하는 그 여성들의 정체는 바로 여신들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유럽인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설과 신화들이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재등장한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작가는 중세시대에 민간에 떠돌던 여신숭배 흔적을 언급하며 '성혈과 성배'와 유사한
논리전개를 펼쳐나가고 있다. 그러나 논리전개가 잘못 되었다. 정말로 그런것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면
그 주제는 '이방종교의 여신이 기독교의 마리아 숭배에 미친 영향'이 될것이다. 예수의 후손을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온 막달라 마리아와 연계시키는 것은 기괴한 논리전개이다.
작가 '댄 브라운'식의 논리전개를 하다보면 황당한 결론이 나올수도 있다. 예를들어 개신교는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를 비난한다. 실제로 카톨릭은 성모 마리아상을 성당에 세우고 마리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마리아 조각상은 어머니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마리아 조각상은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를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카톨릭은 성배의 수호자들이며, 보수 카톨릭 단체 '오푸스 데이'의 조직원들은
예수의 후손들이다!
독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논리교육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바로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브라운이 펼쳐 나가는 논리전개가 이런 식이다.
성혈과 성배의 작가들은 #구약성경의 베냐민 지파가 메로빙왕조와 연계되어 있다는 시온 수도회의
비밀문서들을 언급한다. 시온수도회의 자료외에 그들이 근거로 내미는 것은 프랑스의 상당수 지명이
셈어에 기원한다는 식의 미약한 자료들 뿐이다.
비밀문서에 언급된 자료의 진정성도 문제가 있지만, 프랑스의 지명을 운운하는것도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예컨데 제임스, 데이빗, 제이콥, 존....등 서양사람들의 이름도 상당수 성경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논리를 전개시키면 서양인들은 전부 유대인이라는 황당한 결론이 나올것이다.
(6) 혹시 헛다리 긁은게 아닐까?
작가들은 메로빙 왕조나 유럽 귀족의 족보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런 분야에 무지한 필자로서는
뭐라 반박하기 어렵다. 아마 작가의 자료가 상당부분 정확할지 모른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할수 밖에 없다.
예수를 연구하는데 왜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의 족보를 연구해야 하는가? 왜?
예수를 연구하는데 왜 르네상스 시대 화가의 그림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하는가? 왜?
이유는 딱하나 뿐이다. 플랑타르라는 망상가가 남긴 황당무계한 비밀문서 때문에....
그런데 한가지 궁금증을 야기시키는 것이 있다.
성혈과 성배의 작가들의 메로빙 왕조와 템플 기사단에 대한 내용은 상당부분 비밀문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예수에 대한 분석에서는 비밀문서가 아예 언급 되지 않는다!
예수를 분석하는 대목에서는 일부 영지주의 문헌등을 사용하고 비밀문서는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들이 발견했다는 비밀문서에는 템플 기사단이 십자군 전쟁때 무엇인가 보물을 발견 했다는 암시를
하고 있고, 메로빙 왕조의 혈통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며 그들이 구약의 베냐민 지파에서 유래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예수의 혈통에 대한 암시는 비밀문서에는 없는 것 같다.
혹시 문제의 비밀문서에서는 예수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는 것이 아닐까?
비밀문서에 따르자면 시온 수도회는 십자군 전쟁이 일어날 무렵인 AD 10세기 무렵에 등장 했다고 한다.
비밀문서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때는 예수가 살았던 시대로 부터 무려 1000년후의 시대이다.
#예수의 시대로부터 시온수도회가 등장할 무렵까지 엄청난 공백이 있다.
비밀문서에서는 예수에 대해 어떠한 암시도 없고, 메로빙 왕조가 구약의 베냐민 지파에서 유래 되었고,
왕위를 빼앗긴 그들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성배를 손에 넣었다는 식으로 묘사 된 것 같다.
만약 비밀문서에 예수에 대한 무엇인가의 암시가 있었다면 "비밀문서에 따르면 메로빙 왕조는
예수의 후손이다"라고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분석 대목에서는 비밀문서를 언급하지
않고 영지주의적 문서들을 제시하고 있다.
혹시 작가들은 플랑타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결론까지 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시온 수도회가 십자군 원정때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암시를 잘못 받아 들여서 헛다리를 긁은 것이
아닐까?
"그들은 매우 값싸게 제작했던 것 같은 외관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은 타자로 쳤거나 복사나 등사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Michael B 외 / 聖血과 聖杯 / 강혜령 역/ 행림출판, 1982 / P.89]
소니에르의 양피지를 비롯하여 시온 수도회의 비밀 문서들은 고문서가 절대 아니다.
양피지 문서는 장 뤽 쇼멜에 의해 1960년대 무렵의 위조품으로 감정 되었고, 나머지 시온 수도회의
문서들도 타자기나 복사기를 이용해 작성한 프린트물에 지나지 않는다.(그 당시에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 있었다면 시온 수도회의 비밀문서들은 컴퓨터 프린터기로 인쇄 했으리라....)
#성혈과 성배나 다빈치코드류의 작품에 대해 필자는 악평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실은 매우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로써 적합할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는 못한다고 평가한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은 우리에게 지적 호기심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성혈과 성배류의 작품은
음모론에 깊이 빠지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적그리스도 작[출처] 안티바이블 그 -73, 사기꾼 플랑타르|작성자 천리아허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