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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집: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原初的) 생(生)의 뿌리이고,어머니의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
그러므로 시인이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 놓여 있을 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 시는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재학 시절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국 땅에서 낯선 환경 속에 생활하며 유년 시절에 겪은 여러 추억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를 쓰게 한 배경이라 할 것이다.
토속적인 어휘와 창가조(唱歌調)의 구성 형태를 취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감각적 심상을 사용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모든 정서를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처리한 것은 이 시가 한국 시사(詩史)에 있어 한 단계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정지용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지만 시 <향수>의 고향 배경은 외갓집이 있었던 충북 옥산면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옥천’에는 넓은 벌이 없기 때문이다.
시 <향수>는 오늘의 우리에게 고향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첫댓글 향수 (정지용)가 마음에 진하게 전해집니다,아마도 타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더욱더 고향이 그리워지는 시 와 그리고 노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