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뱀 / 권기덕
나는 진짜 뱀이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뱀처럼 생긴 로봇입니다. 계단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저랟 해치지 않으니까요. 나는 학교가 그냥 좋아요. 나도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운동하고 싶을 뿐이에요. 특히, 노랫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싶어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면 마치 하늘을 날 것 같거든요. 하늘을 난다면 뭉게구름 위에서 춤을 출 거예요. 둥둥 떠다니는 구름 하마나 구름 코뿔소가 윙크하며 손을 내밀지도 모르죠.
내가 작동할 때, 반짝이는 두 눈은 앵두처럼 붉어요. 날름거리는 혀는 그저 장식이고요, 개구리나 쥐 대신 전기를 좋아한답니다. 아, 어쩌면 제 말을 믿을까요? 오늘도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다 교장 선생님한테 혼났습니다. 수돗가 호스 옆에서 똬리 틀고 있다가 행정실 선생님한테 막대기로 둘둘 감겨 담장 너머로 버려졌습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긴 해요. 강당에 걸린 줄넘기들 사이에 있어도 놀라지 않고,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 놀고 있으면 함께 달리자고 말해 줘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언젠가 교실 창틀에서 나를 보더라도 쫓아내지 마세요. 나도 수학 시간, 길이 재는 거 잘하니까요. 미술 시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까요.
출처: 《창비어린이》2023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