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적 분별에 대하여 기본개념을 정리할 필요에 따라, 정리해보았습니다.
다음의 글은 우리 모임은 아니지만 미국 미들타운 교회에서 경륜적 분별 성경공부 교재에서 발췌하였고, 일부 내용은 모임 정서에 맞추어서 수정편집하거나 역자주를 달았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변하여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들로 성장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경륜적 분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인류 역사의 파노라마를 통해 경륜적 분별의 특징들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어떤 신학 체계도 완전하지 못하므로 우리는 여기서 제시하는 경륜적 분별 내용들이 완벽하여 이것들로 성경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감히 믿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성경 해석 체계가 성경을 보는 눈을 열어 줄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진리들을 볼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7)
위에서 언급한 대로 경륜적 분별
신학 체계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여러 개의 시대로 나눕니다. 지금까지 가장 잘 알려진것은 인류의 역사를 일곱 경륜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설명하는 ‘고전적인 경륜적 분별 체계’입니다. 이에 이 책에서는 그와 같은 고전적인 경륜적 분별 체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완벽한 체계가 아닙니다. 경륜적 분별에 서 경륜은 꼭 일곱 개만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두 개, 다섯 개, 아홉 개 등 여러 개의 경륜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륜의 개수에 상관없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한다는 경륜적 분별의 본질은 동일함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경륜들’(dispensations) 혹은 ‘경륜들’에 관해 공부할 것입니다.
8)
‘경륜’은 중요한 단어이기에 우리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경륜’ 자체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차이점 인식
하나님은 변치 않고 동일하십니다. 말라기서 3장 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본래 그분의 모습과 다르게 변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불변하는 하나님이 인류 역사에 걸쳐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분은 여러 시대의 여러 사람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루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적용된 방식이 바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들 모두에게 큰 긍휼을 베푸사 그들을 구원하셨고 또 영원을 상속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둘을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바울과 아브라함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책임과 의무도 달랐습니다. 노아와 솔로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다룬 방식도 달랐습니다. 노아의 의무는 방주를 짓는 것이었고 수백 년 뒤 사람인 솔로몬의 의무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시되는 진리의 정도 차이
수천 년의 인류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리를 계시해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일시에 모두 주어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많은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더 많은 계시를 받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다윗에게는 더 많은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구약 성도들에게 계시되지 않았던 진리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대언자들과 의로운 자들이 너희가 보는 그것들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그것들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마13:17).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경의 모든 진리가 계시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요16:12).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사도 바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갈1:11-12; 엡3:3-5 참조).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죽자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에 게 더 많은 진리를 계시해 주셨고 요한은 이것을 계시록에 기록하였습니다(계1:1-3, 9-12
등)
물론 이 같은 진리의 계시 방식은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당신이 처음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당신에게 필요한 진리를 다 가르쳐 주셨습니까?
과연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한 번에 모든 진리를 다 알려 주십니까? 아니면 차츰 차츰 알려 주십니까?
어린 그리스도인에게는 ‘젖’이 필요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단단한 음식과 고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벧전2:2; 고전3:1-2). 초신자가 깊은 영적인 진리를 모두 받는다 해도 그것을 소화해 내지 못합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은 아직 기하학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하학은 나중에 배우고 먼저 더하기와 빼기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은 이른바 성경이라는 책에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성경이 하룻밤 사이에 생겨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성경은 약 1600년이라는 기간에 - 주전 1500년경에서 주후 100년까지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약 40여 명의 인간 기록자가 점진적으로 진보되는 계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노아에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아담: “제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성경 같은 건 없었고 다만 하나님께서 여러 번 나타나 말씀하셨습니
다.”(창17:1; 18:1 등)
모세: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의 5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다윗: “제 성경은 모세오경과 여호수아기, 사사기 그리고 제가 기록한 시편들이었
습니다.”
에스라: “제게는 대부분의 구약성경이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침례자 요한: “제가 소유했던 성경은 전체 구약성경이며 신약성경은 없었습니다.”
바울: “저는 구약성경 전체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 “저는 구약성경 전체와 신약성경 전체를 가지고 있었고 죽기 전에 하나님께
서 저를 사용하셔서 신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을 쓰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통해 교회가 눈에 보이게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도 성도들에게는 신약성경이 - 심지어 복음서 한 권도 -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리를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이고도 진보적으로 계시해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성경을 한 번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성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신구약성경 전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성경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으로 모두 합쳐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성경에는 다윗 시대의 성경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 담겨 있습니다.
몇 가지 명백한 차이점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항상 긍휼과 은혜를 베푸셨으며 사람과 놀랍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경륜에 걸쳐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엡2:8).
율법 이전 사람인 아브라함이 이렇게 구원받았습니까?(창15:6)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롬4:3). 율법 시대에 살던 다윗도 그렇게 구원받았고(롬4:6)
신약 시대의 우리도 그렇게 구원받았습니다(롬4:5)! 노아, 이사야, 베드로, 바울 등 천국에 간 모든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할 것입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즉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내게 값없이 부어 주신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과 호의로 구원받았습니다. 내 영혼을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류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경륜적 분별(경륜주의)는 결코 시대마다 구원 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롬11:6).
은혜에 행위를 더해 구원받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아닙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 속에서 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각 시대의 사람들을 다루시는 - 혹은 각 시대를 경영하시는 - 하나님의 방식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점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당신은 교회에 갈 때 어린양을 가지고 갑니까? 어린양을 가지고 가서 당신의 죄로 인한 희생물로 그것을 드린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구약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했습니까?(레3:7 4:32; 삼상7:9 참조)
오늘날의 성도들도 그들처럼 짐승을 희생물로 드립니까?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은 짐승을 희생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희생물로 드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고 있으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짐승의 희생물을 드릴 것을 규정하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며 그것을 구원의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점이 로마서 10~11장에 걸쳐 말씀하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잠시동안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영적 분별이 어두워져있는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세대는 율법세대이고, 신약성도인 교회만이 율법의 지배가 아닌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 역자주)
이런 경우도 고려해 봅시다. 오늘날 토요일(일곱째 날)에 일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죽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구약 시대의 율법에는 토요일에 일하는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이 있습니까?(출35:2 참조)
실제로 토요일에 나무 가지를 줍다가 죽은 예가 민수기 15장 32-36절에 나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하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갑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성경적인 교회에는 은사에 따라 섬기며, 모두 만인 제사장으로서 각자가 하나님앞에 중보자 없이 섬기는 지역교회입니다. 교회에는 두가지 직분이 있는 하나는 목회자와 집사들이 있습니다.’(역자 편집)
하지만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라고 불린 특별한 집단이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은 아론의 아들들과 그들의 후손들로만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입니다(벧전2:9 계1:6).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부모가 아기에게 할례를 행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건 부모의 선택일
뿐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 유대인 아이의 부모에게 할례는 필수였습니까? 선택이었습니
까?(창17:10-14 참조)
아담이 살았을 때는 먹어서는 안 될 과일 나무가 있었습니다(창2:16-17). 그러면 지금도 그렇습니까? 오늘날에도 그때처럼 먹어서는 안 될 열매 곧 ‘금단의 열매’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을 다루신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십니까?
또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주일에 함께 모였습니까?
다윗이 사람들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습니까? 모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는 주의 만찬을 행했습니까? 솔로몬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16:15)는 명령을 받았습니까?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인식해야 할 차이점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과 오늘날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명령)는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에 대한 요구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다 - 역자주)
하나님은 다양한 시대에 속한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십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다만 각 시대마다 인간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경영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 또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7절을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너희는 가면서 선포하여 이르되,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복음은 “하늘의 왕국이 땅에 가까이 왔다.”는 하늘의 왕국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보면 부활 이후에 복음 선포 대상이 바뀌고 사람들에 게 선포한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이처럼 성경을 보면 제자들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말씀도 때가 바뀌자 -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경영 방식이 바뀌자 - 내용 면에서 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시대마다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경영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경륜 전후의 차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각 시대마다 핵심이 되는 사건이 있는데 그것으로 인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은 놀라운 변화와
차이를 일으켰습니다. 다음을 살펴봅시다.
○ 사람의 타락(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 노아 시대의 대홍수
○ 바벨탑 심판
○ 아브라함을 부르심(창12)
○ 율법 수여(출19-20)
○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 성령 강림(행2)
○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이 사건들 중 몇몇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어떤 차이가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A. 사람의 타락
사람이 타락하기 전과 타락한 후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2장 25절과 창세기 3장 7절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람의 타락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습니까?(롬5:12 참조)
B. 노아의 홍수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사람이 온 지면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나무의 열매 같은 채식성 음식만을 먹었습니다(창1:29). 짐승도 역시 모두 채식을 했습니다. 홍수이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짐승을 잡아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창9:2-3). 그 이후로 지금은 사자 같은 짐승이 육식을 하지만 천년왕국 시대가 되면 다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게 됩니다(사11:6-9). 홍수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살인자를 사형시키지 않았습니다(창4:15). 그러나 홍수 이후에 그분께서는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십니다(창9:6)
C. 바벨탑 사건
바벨탑 사건 전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창11:1). 그런데 사람들의 반역으로 인해 바벨탑 사건 이후에는 사람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나가 민족들을 구성하였고 그 민족들의 수대로 언어가 생겨났습니다(창11:7-9). 바벨탑 사건 전에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온 세상의 사람들이 여러 민족을 형성하면서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민족들은 연대기적으로 창세기 11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D. 아브라함을 부르심
아브라함 이전에는 이방인으로 불리는 한 그룹의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이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전에는 할례라는 표적이 없었고 그것을 행하라는 명령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후에는 그것이 명령이요 표적이 되었습니다(롬4:9-12).
E. 모세의 율법
모세 이전에는 글로 기록된 명령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 받은 이후에는 글로 기록된 명령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모세 이전에는 명령에 의거하여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지만 모세 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모세 이전에는 음식물에 관한 상세한 규례가 없었지만(레11장)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율법 안에 그러한 규례를 포함시키셨습니다.
F.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여기서 생기는 차이점 중 몇몇은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십자가 이전에서 십자가이후로 옮겨가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 즉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잠정적인 짐승의 희생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완전한 희생’으로 바뀌었습니다(히10:1-4). 제사장 체계 역시 아론의 제사장 체계에 서 모든 성도의 제사장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십자가 이전에는 음식물 규정이 있었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그런 것이 폐지되었습니다(딤전4:3-5).
이 외에 또 다른 변화나 차이점들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G. 성령 강림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나 오순절 이후에는 그분께서 그들안에 내주(인침)하게 되었습니다(요14:17).
오순절 이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그룹의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 존재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사람이 유대인, 이방인, 교회의 세그룹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고전10:32). 오순절 이전에는 땅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없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교회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H. 교회의 휴거
휴거 이전에는 교회, 유대인, 이방인의 세 그룹의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휴거 이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만 이 땅에 남습니다. 휴거 이전에는 성령님이 자신의 특이한 성전인 성도들의 몸 안에 머물고 계십니다(고전3:16-17 고전6:19-20). 그러나 휴거 이후에는 성령님이 여전히 이 땅에 계시지만 구약 시대처럼 사람들 안에 내주하지는 않습니다. 휴거 이후에 나오는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며(살후2:4) 이것은 결코 신자들로 구성된 영적 성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돌과 나무 등으로 건축된 실질적인 성전입니다.
I.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님은 왕국이 도래할 시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마6:10). 그러나 왕국은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하늘의 왕국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왕국이 임하게 될 때 세상은 지금과 판이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상고하는 사람이라면 이 차이를 인지할 것입니다.
가령, 왕국 시대에 사는 짐승들을 생각해 봅시다(사11:6-9). 그때가 되면 짐승들의
습성이 바뀝니다. 사자 같은 육식성 짐승이 채식을 합니다. 현 세상에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마24:6-7). 그러나 천년왕국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미4:3). 거기서는 다시 전쟁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리기 위해 복음을 선포하고 그분에 대해 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막16:15 등). 그런데 과연 왕국시대에도 이런 일이 필요할까요? 예레미야 31장 34절, 이사야 11장 9절 등은 이런 일이 필요치 않음을 보여 줍니다. 스가랴 13장 3절을 보면 이때에 대언을 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즉 대언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는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경륜적 분별자란 성경을 믿고 역사를 통해 나타난 이 중요한 차이점들을 인식하게 된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처음에 등장했던 경륜/경륜(dispensation) 라는 단어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 의미부터 살펴봅시다.
경륜/경륜의 뜻
경륜/경륜 혹은 경영 체계 등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dispensation’은 이 단어에
상응하는 그리스어 단어를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으로 옮기면서 사용한 ‘디스펜사티오’(dispensatio) 라는 라틴어에서 나와 영어로 정착된 말입니다. 이 라틴어 동사는 ‘무게를 달아서 나누다’ 혹은 ‘배분하다’란 뜻의 복합어입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이 단어의 의미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념이 들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1. 나누어주거나 배포하는 행위
2. 행정을 보거나 지휘를 하거나 혹은 관리를 하는 행위 혹은 물건들을 주거나 운영하는 체계
3. 어떤 요구 조건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분배해 주는 행위
이 단어의 용도를 신학적으로 좀 더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면서 위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dispensation’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경륜/경륜: 점진적 계시의 한 단계, 특정한 민족이나 기간의 필요에 특별히 부응하는 단계…또한 어떤 체제가 널리 보급된 시대나 기간.
스코필드 같은 경륜적 분별자들이 경륜에 대해 내린 정의에 대해서 여러 사람이 불만을 토로하곤 합니다. 그런데 저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경륜에 대해 정의를 내리면서 ‘경륜’과 ‘시대’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기 형제들의 경륜에 대한 분별은 이와는 같지 않았다. 그들은 시대와 경륜을 구분하였다. 경륜은 시대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땅에 대한 부르심과 경영방침으로 정의하였다. 엄격히 말한다면, 이러한 경영방식이 경륜에 따라 다른 것이지 시대와 기간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율법시대와 율법경륜에 대한 분별의 차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초기형제들은 교회를 경륜에 속하지 않는 천상적인 유업을 받은 성별된 무리로 보았으며, 땅의 유업을 받은 유대인들과 다르다고 분별하였다. 그리고 현시대는 율법경륜으로 보았으며, 은혜는 하나님의 일관되게 사람을 대하심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이 율법수여되기 오래전이었으며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성경의 대전제이기도 하다. 소위 전통적 경륜적 분별자들은 율법시대와 교회시대를 구분하여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한 말씀을 통하여 교회시대를 은혜시대로 특정하여 구분하였지만, 성경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율법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거룩을 요구하고 있으며 폐해지지 않았다.이는 복음주의자들의 복음전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기에 중요한 차이임을 밝힌다.)
경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는 ‘관리하다’, ‘규제하다’, ‘집행하다’, ‘계획하다’ 등을 의미하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사람이 사는 집의 일을 나누다, 할당하다, 집행하다, 혹은 관리하다’를 뜻하는 여러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복합어입니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와 영어의 ‘economy’를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매우 비슷하지 않습니까? ‘오이코노미아’는 다음과 같이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oikos = 집(house)
2. nomos = law(법)
따라서 이 단어는 ‘한 집안의 법’ 혹은 ‘집안 법’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가족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집안의 법’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집에는 구성원이 따라야 할 ‘집안 규칙’이 없습니까? 아버지가 당신에게 부여한 의무나 책임은 없습니까? 규칙을 어겼을 때 꾸지람을 듣지는 않습니까?
‘경륜’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dispensation’ 자체는 신약성경에 4번 나옵니다.
(1)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dispensation) 안에서 친히 모든 것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엡1:10).
(2)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dispensation)을 너희가 들었으리라(엡3:2).
(3)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dispensation)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함이니(골1:25)
(4) 내가 자원하여 이 일을 행하면 보상을 얻으려니와 자원하여 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분배 사역’(dispensation)을 내가 맡았노라(고전9:17).
‘dispensation’과 같은 어원을 가진 그리스어는 또한 누가복음 16장 2-4절에 나와 있는대로 ‘청지기직’(stewardship)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파피루스에 보면, 경영 체계를 집행하는 관리자(오이코노모스)는 재산의 청지기나 관리자 혹은 회계를 맡은 자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륜/경륜’ 혹은 ‘경영 체계’란 의미의 dispensation의 중심 개념은 가정의 일을 관리하거나 집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륜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먼저 ‘청지기직’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A. 청지기직
청지기의 뜻이 무엇입니까? 청지기는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즉, 청지기는 다른 사람의 소유 - 물건이나 재산 - 를 돌보는 사람을 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지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청지기를 둘 만한 재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소유는 스스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말 10필과 보트 8대,2000에이커에 이르는 땅과 500두에 이르는 소, 3개의 풀장, 25대의 자동차, 8대의 트럭 그리고 하나의 유전(油田)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관리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재산들을 잘 꾸리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청지기는 관리자로서 다른 사람의 소유를 돌보는 책임을 맡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은 청지기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청지기는 자기가 맡은 것에 책임을 지는 신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4절에 나오는 청지기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여기에 나오는 청지기는 신실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까? 신실한 청지기의 모습은 창세기 39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1-6절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였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모든 소유는 이 사람의 손에 맡겨졌습니다(창39:4, 6). 요셉은 자기 주인에게 속한 모든 것을 관리했으며 그의 주인인 보디발은 자기 집과 자기 재산이 ‘신실한 자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청지기는 그저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그 집의 소유주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집의 관리인은 요셉이고 집의 소유주는 보디발이었습니다. 그 집은 분명히 보디발의 소유이지 요셉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절에서 집의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B. 특권과 책임
보디발의 소유를 관리하는 요셉에게는 특권과 책임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자는 어느 시대에 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돌보는 데 대한 책임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에 크고 놀라운 약속을 쥐어 주셨습니다(창12:1-3; 17:1-8). 또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거룩한 율법과 명령들을 주셨습니다
(출19-21장). 바울은 하나님에게서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았습니다(엡3장). 믿는 이들은 각자 하나님께 받은 것을 누릴 권한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청지기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청지기직은 일자리를 얻은 사람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 멋진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와서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아무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일자리가 아닙니다. 당신에게 특별한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 직장에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이런 직장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직장이 당신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당신만이 이 점포에서 일하면서 나오는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선 많은 것을 배우겠고 값진 경험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일하면서 얻는 유익이 많을 것이며 시간에 따른 대가를 받습니다. 꾸준히 신실하게 일하다 보면 어느 날 승진도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자리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고용주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게으르고 출근 시간에 지각하고 고객에게 불친절하다면 어느 사장이 좋아하겠습니까? 점포의 주인은 당신이 신실하게 의무를 다하고 맡은 것을 바르게 처리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일을 잘 처리했다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해고당할 수도 있습니다.
청지기직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에 무언가를 맡기셨고 그것을 바르게 꾸려 가는 것은 사람의 책임이요 특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지기직 혹은 경륜이라는 단어의 성경적 용례
A. 이 단어의 성경적 용례
신약성경에는 ‘경륜’란 단어가 여러 가지 형태로 20회에 걸쳐 나타나고 동사
‘오이코노메오’는 누가복음 16장 2절에서 ‘청지기가 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명사 ‘오이코노모스’는 10회에 걸쳐 사용되었으며(눅12:42; 16:1, 3, 8 롬16:23;
고전4:1, 2; 갈4:2; 딛1:7 벧전4:10) 로마서 16장 23절에서 ‘재무관’으로 사용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 ‘청지기’로 번역되었습니다. 또한 명사 ‘오이코노미아’가 9회 사용되었는 데(눅16:2, 3, 4 고전9:17 엡1:10 3:2, 9 골1:25 딤전1:4) 이 구절들에서 이 단어는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청지기, 경륜, 직분, 경영 체계, 위임, 일 등).
B. 이 단어의 성경적 특징
이 단어에 대해 어떤 형식상의 정의를 내리기 전에 이 단어와 관련하여 신약성경에 나타난 특징 중 몇 가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결코 경륜적 분별 체계만의 특징들이 아니며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통해 관찰 가능한 것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두 비유에 국한되어 있습니다(눅 12:42; 16:1, 3, 8). 이 두 비유는 모두 청지기가 집안을 관리하는 내용인데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비유는 청지기직 혹은 경영 체계 즉 경륜의 구성 및 배열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여 줍니다.
1. 기본적으로 두 부류 즉 의무를 부과하는 권세를 지닌 자와 이러한 명령을 수행할 책임을 지닌 자가 있다. 누가복음 16장의 비유에서 부자와 청지기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1절).
2. 독특한 책임이 있다. 이 비유에서 청지기는 자기 주인의 재물을 허비함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1절).
3. 책임뿐만 아니라 회계 보고도 이러한 구성 및 배열의 한 부분이다. 청지기는 어느 때라도 부름을 받아 자기의 청지기직 이행 실적에 대해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인은 자기가 청지기에게 맡긴 의무들을 그가 성실히 수행할 것을 기대할 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4. 현재의 경영 체계 하에서 신실하지 못한 요소가 발견되면 언제라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더 이상 청지기가 되지 못하리라.” - 2절).
이 네 가지 특징은 이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쓰였을 때 경영 체계상의 합의된 구성 및 배열이라는 개념에 포함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베드로전서 4장 10절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만 나옵니다.
다음의 용례들은 이 단어의 개념의 특징들을 보여 줍니다.
1. 사람들이 청지기 직무 이행에 대해 책임을 지닌 대상은 하나님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관계를 세 경우에 대해 언급한다(고전4:1-2; 딛1:7).
2. 경영 책임을 맡은 자들에게는 신실함이 요구된다(고전4:2). 이것은 어떤 도시의
재무관(청지기)이라는 중요한 직분을 맡은 에라스도에 의해 잘 나타난다(롬16:23).
3. 청지기직은 정해진 시간에 끝날 수 있다(갈4:2). 갈라디아서의 해당 구절의 경우에는 다른 목적이 도입되면서 청지기직이 끝남을 보여 주며 또한 경영 체제가 시간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4. 경륜들은 하나님의 신비 즉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계시와 관련이 있다(고전4:1; 엡3:2; 골1:25).
5. 경륜/경륜과 시대는 서로 관련이 있지만 이 두 단어를 항상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는 없다. 골로새서 1장 26절에 보면 “이 신비는 여러 시대와 여러 경륜으로부터
감추어져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륜 혹은 경영 체제가 어떤 시간상의 기간 안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은 서로 연관이 있다.
6. 사도 바울은 적어도 세 가지 경영 체계 - 경륜적 분별 가르침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세 가지 경륜 - 를 언급하고 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그는 ‘때가 찬 경륜 혹은 경영 체계’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은 미래의 기간을 가리킨다. 또한 에베소서 3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혹은 청지기직’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바울이 선포한 내용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한 골로새서 1장 25-26절은 신자들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된 현재의 경륜보다 앞선 또 다른 경륜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위의 여섯 가지 경우 중 처음 두 경우에서 우리는 성경이 경륜 혹은 경륜이라는 단어를 경륜적 분별자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기간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성경이 분명하게 은혜의 경륜과 때가 찬 경륜라는 기간에 대해 이야기함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경륜적 분별자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두 가지 경륜을 부르고 있으며 또한 세 번째 경륜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경륜/경륜 요약
이제 다시 ‘경륜’이라는 단어를 이해해 보도록 합시다. ‘경륜’이라는 말은 ‘청지기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한 경영 체계는 한 청지기직인데 여기에는 세 가지 사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 집의 주인
청지기직이 있다면 집의 주인이나 소유주가 있다는 것이 당연합니다. ‘집안의 법’을 세운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의무와 책임, 특권을 규정해 놓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집의 주인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히3:4 참조).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십니다(창14:19, 22). 하나님이 소유주이시며 머리가 되십니다.
B. 집
주인이나 소유주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주인이 그 규정을 집행하고 권위를 행사할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바로 세상입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님의 것이며 세상과 그 안에 거기 거하는 자들도 그러합니다.”(시24:1; 창18:25 출9:29 참조)
세상은 주님께 속해 있고 주님은 자신의 뜻과 지혜를 따라 세상을 다스리고 관할하십니다.
C. 청지기
주인과 집 말고 또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는 신실하고 집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청지기는 어떤 물건이나 직무를 맡습니다(사도행전 17장 30절과 요한일서 3장 23절을 보면 지금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자기에게 준 ‘집안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청지기가 ‘집안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곤경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곧 인류입니다(딛1:7 고전4:1-2; 벧전4:10).
이제 성경의 경륜과 관련하여 세 가지 사항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집주인: 살아 계신 하나님
(2) 집: 세상
(3) 집의 청지기: 인류
경륜은 여러 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집을 다스리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안 규칙이 늘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사도 바울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동일한 세상에 살았지만 그들 각자에게 적용된 집안 규칙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의 집안 규칙은 베드로 시대의 규칙과 같지 않았습니다.
집안 규칙이 다르다면 경영 방식 혹은 경륜도 달라집니다. 이
것은 A라는 사람의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가 B라는 사람의 집으로 일자리를 옮겨가면 B 집의 집안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두 집의 규칙 중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가정부는 B 집에서 실패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경륜이 단순히 ‘집안 규칙’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각 경륜에 단지 규칙만을 주시지 않고 사람이 믿고 순종하고 다루어야 할 어느 정도의 진리도 주셨습니다. 규칙과 법에는 그것들에 상응하는 특권과 기회 그리고 책임이 따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를 사람의 손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다른 집안 규칙’을 말한다고 해서 각 경륜에 주어지는 규칙과 책임과 특권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경륜이 바뀌어도 여전히 동일하게 남아있는 규칙이나 특권이 있고 바뀐 것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화를 살펴봅시다. 김철수 씨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그에게는 세 가지 ‘집안 규칙과 특권’이 있습니다. 이는 그에게 경륜 차가 나는 세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장남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맡겼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 만큼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권뿐 아니라 장남에게는 그 만한 책임이 부과됩니다. 여기 김철수 씨 집안의 ‘세 가지 규칙과 특권’이 있습니다. 이 예는 한 아버지와 나이가 서로 다른 세 아들을 고려한 것입니다.
A. 열 살짜리 아들
- 부모에게 순종할 것
- 부모를 존경할 것
- 거짓말이나 도둑질하지 말 것
- 오후 8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들 것
- 매주 용돈이 지급됨
- 숙제에 대한 규칙을 준수할 것
- 차를 모는 특권은 주어지지 않음 등등
B. 열다섯 살 먹은 아들
- 부모에게 순종할 것
- 부모를 존경할 것
- 거짓말이나 도둑질하지 말 것
- 오후 10시에 취침할 것
- 매주 막내보다 많은 용돈이 지급됨
- 숙제에 대한 규정이 강화됨
- 아직 차를 몰 수 있는 특권은 없음 등등
C. 스무 살 된 아들
- 부모에게 순종할 것
- 부모를 존경할 것
- 거짓말이나 도둑질하지 말 것
- 취침시간에 대한 규정 완화
- 용돈은 없음 - 스스로 벌어서 쓸 것
- 졸업했기에 숙제에 대한 규정은 없음
- 운전할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주어짐 등등
세 아들에게 공통된 것이 무엇인지 보입니까? 왜 그럴까요?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바뀌는 내용도 보입니까? 왜 그럴까요?
이와 같은 원리가 경륜에도 적용됩니다. 앞에 나온 동일한 아버지(김철수 씨)에게 다른 시기에 태어난 세 아들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과 다른 때 태어난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변하거나 새롭게 더해진 규정이나 책임이 있고 그대로 남은 것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시기에 태어나 서로 다른 경륜에 살았던 세 사람을 비교해 봅시다.
D. 노아 - 홍수 이후 시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을 수 있는 특권과 믿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음
-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음(창6:9)
-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었음(히11:7과 비교)
- 살인자는 사형시켜야 함(창9:6)
- 짐승의 희생을 드림(창8:20)
- 안식일을 지키거나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행하거나 믿는 이에게 물로 침례를 주어야 한다는 명령은 없었음
E. 다윗 - 모세의 율법 시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을 수 있는 특권과 믿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음(노아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됨)
-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음
-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었음(신8:1)
- 살인자는 사형시켜야 함(출21:12)
- 짐승의 희생을 드림(레1-5장)
- 안식일을 지키고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행해야 했음(레12:3; 신5:12-14)
- 믿는 이에게 물로 침례를 주어야 한다는 명령은 없었음
F. 바울 - 교회 시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을 수 있는 특권과 믿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음(노아나 다윗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됨)
-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음
-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었음(요일2:3-5)
- 살인자는 사형시켜야 함(롬13:1-4)
- 짐승 희생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음(히10장)
- 안식일을 지키라거나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은 필요 없음
-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물로 침례를 주라는 명령을 받음(마28:19-20)
이처럼 세 가지 경륜 속에서 꾸준히 남아 있으면서 이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항들이 보이십니까? 왜 그럴까요? 바뀌거나 변화된 사항들도 있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경륜이나 청지기직이 바뀐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규정이나 조건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령 어느 경륜에서나 거짓말, 살인, 도둑질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경륜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었습니다(히11장 참조). 즉 경륜이 바뀌어도 여전히 공통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뿐 아니라 앞서 살펴보았듯이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바뀐 사항들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도움이 될 만한 또 하나의 예화가 있습니다. 당신이 200년 전 사람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때에 TV나 자동차, 전기 같은 것이 있었습니까? 생활환경이 오늘날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세차하는 대신에 말을 돌봐 주어야 합니다. 옷을 빨기 위해선 세탁기 대신에 빨래판과 물, 비누를 사용해야 합니다. 추운 겨울 편리한 자동온도 조절 장치만 맞추어 놓으면 되는 대신에 밖에 나가 장작을 구해다가 불을 때야 합니다(물론 오늘날에도 장작으로 난방을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때 살았다면 해야 할 일 즉 책임이 달랐을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같은 것도 있겠지요. 가령 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합니다.
당신이 지금부터 200년 후에 살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 대신에 다른 운송 수단이 등장했을 것입니다. 개인 컴퓨터를 소장하고 다루는 것은 기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다윗, 이사야는 모두 동일한 집안 규정과 권리 아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경륜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그 규정과 권리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 바울, 요한도 같은 규정과 권리 아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서신서(로마서에서 계시록 1-3장까지)에 그 규정과 권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그들에게 속한 동일한 규정과 권리 아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같은 경륜에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경륜 요약
(1) 무죄(아담)
무죄 경륜은 사람이 죄를 지어 타락함으로 막을 내린다.
(2) 양심(에녹)
사람은 이 경륜 이후에도 계속해서 양심 아래살고 있다.
(3) 인간 정부(노아, 홍수 이후)
사람은 이 경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간 정부 아래 살고 있다.
(4) 약속(아브라함)
이 경륜 이후에도 약속은 무효가 되지 않는다(갈3장).
(5) 율법(다윗, 침례자 요한)
율법은 씨가 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유효하지만 십자가로 막을 내린다.
(6) 은혜(바울)
다른 경륜에도 은혜가 있었지만 이때에 가장 크신 은혜가 증언된다(엡2-3장).
(7) 천년왕국
* 무죄의 경륜 보충
하와가 사탄의 간계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였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들었을 때 욕심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고 아담도 이에 동조함으로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무죄하였다. 즉 범법함이 없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이때를 어떤 분들은 도전받지 않은 의의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의로움은 시험받을 때 죄를 짓지 않음으로 증명되는 것인데, 이런의미에서 아담의 의는 도전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지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시험받았을 때 비로소 그는 죄인이 됨으로 의롭지 않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첫댓글 이글을 직접 다쓰셨나요? 스크랩 했단 표시가 없어서요.
수고 하셨네요. 이 경륜이나
세대를 논아 구별하는건 성경침례교나 성서침례교.킹제임스진영 에서 믿고있고
그분들은 환난전휴거를 믿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