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山東軒(안산동헌)
이원(李原:1368~1429)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 시호는 양헌(襄憲)이다.
고려말 행촌(杏村) 이암(李嵒)의 손자이다.
매형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에게 글을 배웠다.
1382년(우왕 8) 진사가 되고, 1385년에 문과에 급제.
1421년 1월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그해 12월에 좌의정에 승진했다.
1425년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많은 노비를 불법으로 차지했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아
공신녹권을 박탈 당하고 여산(礪山)에 귀양 가서 죽었다. 세조 때 관작이 회복되었다.
문집에는 『용헌집(容軒集)』 · 『철성연방집(鐵城聯芳集)』이 있다.
동헌에 홀로 앉아 푸른 산을 바라보니
獨坐東軒望碧山 독좌동헌망벽산
절은 흰 구름 사이에 가리어져 있네
禪宮隱約白雲間 선궁은약백운간
때가 되면 이 몸도 스님을 찾아가서
乞身何日尋僧去 걸신하일심승거
누워서 솔바람 소리 들으며 땅의 찬 기운도 느껴보리라
臥聽松風特地寒 와청송풍특지한
*
안산시의 진산은 수암봉(秀岩峯)이다.
일명 정상에 바위가 독수리를 닮았다고 하여 취암(鷲岩)이다.
수암봉 아래는 안산읍성과 관아지터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성(城)의 나라이다.
고을마다 읍성이 있고, 산마다 산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걸쳐오면서, 왜놈들은 평지성(坪地城)인 읍성과
관아지를 중점적으로 파괴하였다.
요즘 남아 있는 읍성은 별로 없다.
그나마 수원의 수원화성은 복원을 통해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수원행궁도 몇 차례 복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안산 읍성과 관아지도 복원 중이다.
이 시의 배경은
지금은 사라진 안산의 관아(官衙)인 동헌에서
수암봉을 바라보며 지은 시다.
시(詩)에 나오는 사찰(寺刹)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옛 지도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화자는 관아 동헌에서 무료함을 달래며
지긋이 수암봉을 바라보고 있다
절은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말동냥 할 겸 절밥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한가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절에는 식견 높은 스님도 계시고
그 절이 있는 그곳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한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곳에서 자라는 늙은 소나무의 게송도 듣고 싶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운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자연이 아니면 치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옛 시는 대부분 자연과의 소통이다.
한 글자에 목숨이 좌지우지하던 시대에
자연은 가장 소중한 벗이었고, 부모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