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시각장애인 구글 소프트웨어 개발자 서인호 씨
-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부딪히면서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IT 기술은 분명 빠르고 편리한 삶을 제공하지만 장애인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는 양날의 검 같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에서 3년째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는 서인호 씨는 IT를 통해 삶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는 스크린리더를 활용해 코딩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한다. 서 씨는 전맹 시각장애인 개발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정면 돌파한다. 최근 에세이집 ‘나는 꿈을 코딩합니다’를 통해 입시, 취업 등 생생한 도전기를 써 내려간 것도 그 때문이다.
Q.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구글 소프트웨어 개발자 서인호입니다. 현재 저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지내고 있어요. 저의 주 업무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코딩은 글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일반적 글쓰기의 독자가 사람이라면 코딩의 독자는 컴퓨터인 셈이지요.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직접 타이핑해 읽고 쓰기에 스크린리더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프트웨어라는 게 무형의 것을 다루기에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 많아요. 정확히 이해하고 명확한 코드로 적기가 쉽지 않죠. 분명한 건 시각장애인이기에 어려운 게 아닌,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라는 겁니다. 협업이 상당히 중요한데 제가 이해한 내용과 동료가 이해한 내용이 같은지 확인하는 게 코드 적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Q. 어떤 분야의 코딩을 맡고 계신가요?
A. 시, 소설, 수필 등 글쓰기의 갈래가 다양한 것처럼 코드 또한 웹 개발, 앱 개발, 인공지능 개발, 서버 개발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글을 영어로도 쓰고 한글로도 쓰듯이, 코딩도 파이선, C언어, 자바(JAVA) 등 다양하게 작업할 수 있어요. 현재 저는 인공지능 기술을 더 쉽게 사용하도록 개발하고 있어요. 제가 주로 사용하는 스크린리더는 ‘NVDA’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로는 vscode를 사용하고 있어요.
Q. 어린 시절 녹내장을 앓았다고 들었습니다.
A. 선천성 녹내장의 합병증으로 망막박리 등이 생겼고, 여덟 살 때 시력을 상실했습니다. 이듬해 서울맹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2016년 졸업 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어요.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행정가가 되겠다는 꿈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면서 변했습니다. 10개가 넘는 도시를 혼자 지팡이랑 스마트폰만 들고 여행하기도 했어요. 스마트폰에 있는 도보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고, OCR 앱으로 간판이나 영수증을 읽었지요. 자연스레 ‘IT 기술이 삶의 영역을 확장해 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만들어보고 싶은 기능이 떠오르더라고요. 곧바로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했고 그것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Q.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취직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어요.
A. 실은 중간에 공부를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어요. 전맹 시각장애인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교수님이 많았거든요.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전공 서적 대체도서 제작을 의뢰했지만 책에 그림이나 수식이 많아 거절될 때가 많았어요. 전공 서적으로 원서를 쓰는 경우가 잦았는데 다행히도 원서는 인터넷에서 PDF 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번역서 대신 원서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죠. 이 밖에도 어려움이 참 많았는데 그때마다 부딪히며 한 걸음씩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아요. 여느 취업 준비생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고배를 마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과 일할 준비가 안 된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러면 장애인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다 구글 리서치에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보안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인턴 생활을 시작했죠. 인턴을 거쳐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어요. 일반전형으로 입사했기에 절차상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각 분야 실무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지만요. 사무실 곳곳에 점자 표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는 것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해외에 있는 동료들은 제가 시각장애인인지 모르기도 해요. 함께 일하는 동료 중 시각장애인이 없다 보니 접근성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그때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하니 서글프기도 해요. 과거에 비해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접근성에 대해 많이 알려야 하는 이유죠. 누구보다 개발자들이 접근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최근 에세이집을 펴냈는데요, 책을 쓴 계기가 있나요?
A.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대부분 겪는 초·중·고등학교, 대학 생활, 취업 준비 등의 과정을 적었습니다. 눈이 안 보인다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등 거쳐온 길을 나누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장애인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할 수 없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각장애인이라고 예외가 돼서는 안 됩니다. 다만 눈이 안 보이니 그 방법을 달리 해야겠죠. 종종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이 조언을 구하고자 연락을 주십니다. 저는 장애인이 비장애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결코 잘나서가 아니에요.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Q. 우리나라와는 다른, 미국에서의 장애인 대하는 방식이나 정책이 있나요?
A. 이곳에서는 장애인을 동정하지 않아요.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부분까지만 도움을 주죠. 인식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도움을 줘요. 이게 시혜적일 수도 있고 동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요.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건 장애인에게 우호적이기만 하진 않다는 점, 우리나라가 살기에 더 좋은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가령 우리나라 지하철이 미국 지하철보다 이용하기가 쉽고 안전해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복지콜이나 나비콜 같은 서비스도 미국에선 찾아보기 힘들어요. 활동보조 서비스도 받기가 어렵죠. 다만 미국은 주마다 정책이 많이 다르기에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Q. 가장 뿌듯한 순간과 가장 아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A. 개발한 기능이 실제 사용자들에게 쓰일 때, 승진해서 연봉이 올라갈 때가 가장 뿌듯하더라고요. 가장 뿌듯한 순간은 시각장애인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줄 때죠. 가령 “스크린리더로 앱이 잘 구현되지 않아요”라고 하면 관련 개발자를 찾아주고 문제가 잘 해결되는지 살펴요. 설사 그 개발자가 같은 회사 동료가 아니더라도 수소문하면 관련 개발자를 찾을 수 있더라고요. 시각장애인이면서 개발 업계에서 일하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요. 아쉬운 점은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 시각장애인 개발자가 없다는 부분이에요. 이따금 스크린리더로 웹 사이트나 개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을 때가 생겨요. 그때 외로운 감정이 듭니다. 동료들에게 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접근성 문제도 제가 해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Q. 평소 좋아하는 인물이나 글귀가 있나요?
A. 어릴 때는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o dots”라는 말을 좋아했어요.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의미 없는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경험이 모이면 의미가 있는 스토리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제 삶 또한 그런 것 같아요. 요새는 경제적 자유에 관심이 많아서 조기 은퇴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어요.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A. 흔히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우러져 산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어요.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가 되려면 대가 없이 시간을 공유해야 합니다. 자주 만나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면 나이 들어서는 그 시간을 같이 추억할 수 있게 돼요. 그러므로 같이 놀아야 해요. 게임을 하든 운동을 하든 말이에요. 그런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장애인의 놀이문화와 비장애인의 놀이문화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이 다르고 생각하는 순서가 다르면 소통하는 방법 또한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적극 만들어야 해요. 1990년대 도스 PC 통신 시절에는 텍스트로 게임이 가능했기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게임을 즐겼습니다. 오늘날 PC 게임을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시각장애인의 놀이문화와 비장애인의 놀이문화가 어우러지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제작 협력 사회적 기업 (주)도서출판 점자 <손끝으로 읽는 국정> 통권 207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