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시인이라는 여자의 남편이 올시다.
시인이라는 여자의 남편이올시다. 얌전하게 잘 살아오다가, 그저 살림만 알고 연속극만 보며 퍼진 뱃살처럼 느긋하게 살다가 어느 날 별안간 시인이라나? 마누라가 시인 되었다는 아이들의 말에 좀 의아해 했지. 도대체 믿어지지 않았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시인이라니...... 네 어미가 시인이 되었다는 말이야? 애들이 헤헤대며 가져다준 책을 보니깐 정말 마누라의 사진이 박혀 있었어. 눈을 다시 한번 꿈쩍였지. 이게 정말 마누라인가 해서 내 왕방울 눈에 바짝 갖다대고 살피니 이름까지도 분명히 마누라잖아. 앵? 어찌된 일이야? 이 사람이 설거지하다가 먼 산을 가끔 바라보더니...... 애들한테 다시 한번 물었어. 정말 이 사진이 네 어미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애들은 분명히 엄마라고 좋아하더군. 그것 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하는 생각에 사진 박혀 있는 앞장에 쓰여 진 시라나, 마누라의 시라는 것을 봤어. 그리움이라 말하지 마세요 / 개똥아빠 마누라 초저녁 장바구니에 담긴 무게를 그리움이라 말하지 마세요. 베란다 창밖 먼 구름이 흘러 간 마음자국이라도 봄이면 새록새록 피어오른 얼굴 어쩌면 진달래일까요, 나는, 사립문 밖 그 개울가 빨래터에 얄밉도록 익어가던 앵두였지요. 바라보는 그 눈을 그냥 그리움이라 말하지 마세요. 나는 솔직히 마누라가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가 없었지 뭐야, 사실 학창시절에는 내 국어점수가 꽤 나빴지만 말이야, 장바구니라는 글은 이해가 가는 말이지. 길 건너편의 재래시장에 자주 다녀오니깐, 그리고 베란다 창밖으로 보면 가끔 구름도 흘러가긴 했었어. 그런데 마음자국?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보거든. 마음이면 마음이지 거기에 무슨 자국이 남는 거야? 마음도 뚜벅뚜벅 걸어 다니나? 그것 참, 사십을 후딱 넘기고 내일 모레면 오십 줄을 바라보는데, 뭔 애들 같은 짓인지...... 그래도 시인이라고 하잖아. 김소월이라던가? 그 기생 같은 이름을 가진 녀석 말이야. 뭐라고 썼더라......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뭘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라던가, 하여튼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껄인 시인인데,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 줘서 한참 애 먹었던 기억이 내가 기억하는 시의 전부야. 밤에 잠이 안 오는 거야. 코를 디릭디릭 골며 자는 이런 마누라가 도대체 시인이란 게 이해가 되어야 말이지. 그래서 마누라 사진이 박힌 책을 다시 들쳐봤어. 그리움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거야? 뭐가 그렇게 그리운 거야? 완전히 주접떠는 것도 같고, 혹시...... 혹시...... 이 여편네가 엉뚱한 새끼라도 있는 거 아냐? 하하, 그럴 리야 없지. 쓰레기봉투에 얌전히 담아 내놔도 아무도 안 집어 갈 텐데 말이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어. 설마하니 진짜 시인이겠어? 마누라가 시인이면 나는 시인의 남편인데, 설마하니 내가 그런 팔자겠냐는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마누라가 나보다 더 똑똑한 게 뭐 있나,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려고 작심한 일요일인데, 애들이 난리법석이더군. 지 어미가 신인상을 타는 날이라나, 빼꼼 눈을 뜨고 보니깐 화장대 앞에 앉은 마누라가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두드리고 있더라. 아니, 저 여편네가 바람이 났나? 아흐. 제발 바람이나 났으면 좋겠다. 부스스 돌아눕는데, 빨리 일어나 봐요. 오늘 같이 나들이나 갑시다. 하는 마누라의 목소리가 들렸어. 애들도 자꾸 나를 흔드니 할 수 없이 일어나서, 상인지 뭔지를 준다는 식장까지 갔잖아. 참, 기가 막혀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마누라가 자기 이름을 대니깐 다짜고짜로 “시인님 반갑습니다.”그러더라고. 그리고는 나를 보고 시인님의 부군되시냔가? 언 듯 처음에는 부군이 뭔 소린가 했는데, 남편을 보고 그렇게 부르더군. 좀 이상하더라고. 그래도 내가 노가다 십장인데 말이야, 감히 “군”이라니? 김군, 이군, 이런 소리하고 같잖아. 그냥 꾸벅댔지. 다들 양복쟁이들이라서 나 보다는 그래도 잘난 사람 같았으니깐, 아휴, 시인님의 시가 참 좋습니다. 너무 잘 쓰셨어요. 문학적 역량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영혼을 달래는 시를...... 아휴,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만 주고받더군. 저쪽 구석에 가서 담배만 뻐끔거렸지. 무슨 말이 되어야 말을 하지. 자기들끼리 통하는 소리만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시인이라는 노인네가 나와서 빨간 빵떡모자를 쓰고 앞에 서더니, 마누라를 불러서 상장과 상패를 주더라. 뭐라고 하더라......음...... 그러니깐 우리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큰 역할이 기대된다나? 훌륭한 신인을 발굴하게 되어서 기쁜 일이라나?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문단의 별이 되라나? 그게 다 마누라한테 한 소리야. 참 기가 막혀서, 도대체 저 사람들이 꼴깝을 떠는 건지, 내가 무식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빵떡모자 쓴 노인네는 신문에도 났었고 방송에도 출연했고 책을 무진장 많이 펴냈다는 것이야. 또 대학교수고 무슨 단체의 회장이라고 하더라고. 그렇다면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놈이잖아. 안 그래? 덕분에 그 유명하다는 빵떡노인네하고도 사진을 같이 찍었지만, 사람들이 마누라한테만 말을 시키지 나는 거들떠도 안 보더라. 허기사 마누라가 상을 탄 것이니 섭섭해 할 일은 없어. 호호호..... 네네, 호호호호...... 이게 별안간 변한 마누라의 웃음소리야. 집에서는 목구멍이 다 보일 정도로 캬캬캬하고 웃던 마누라가 여기서는 빨간 칠을 한 입술을 안으로 오므리며 그렇게 웃으니, 어이가 없더라고. 시인이 되면 다 그렇게 웃는 거야? 신체검사도 갑,을,병,정이라고 하여튼 가지가지야. 그렇지만 남들이 다 시를 잘 쓴다고 그러니, 맞는 말인 모양이야. 나야 뭐...... 뭔 소린지 전혀 모르지만, 아참, 장바구니하고 베란다 창 밖의 구름은 알아, 그건 내가 직접 봤거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마가 상을 탔으니 나보고 밥을 사라고 애들이 보채잖아. 상 탄 사람보고 밥을 사라고 했어. 그랬더니 애들이 난리야. 상을 탄 사람을 축하해 주는 의미에서 내가 꼭 사야 한다고, 꼬불쳐 놓은 돈이 날아간 거야. 성질이 좀 나더라. 상을 주려면 아예 밥상이나 내올 것이지, 그깟 종이조각하고 호떡 같은 거에 글자 새긴 상패라나? 그것이 사람 사는데 뭔 소용이 있어? 마누라가 기분이 째진 모양이야. 그날 밤에 이불을 들쳐 들어오더니 먼저 나를 툭 건들이더라. 나는 기분이 별로였어. 이상한 사람들 모인 곳에 데려가서 자기들끼리 주접떨다가 기껏 비상금이나 날리게 하고 말이야. 그래서 휙 돌아누웠지. 마누라의 엉덩이가 내 엉덩이에 붙더라고, 그래서 한 마디 했어. 시인 엉덩이도 별게 아니구먼, 그랬더니 마누라가 픽 돌아누우며 엉덩이를 떼더라고. 아,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별안간 시인과 함께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다니, 아니, 이 여편네가 점점 미쳐가는 건가? 문학을 하면 다 저렇게 되는지 모르지만, 밤낮 컴퓨터에 매달려 밥 줄 생각을 하나, 찌게를 태워먹지 않나, 전에는 밤 열시만 되면 연속극에 넋을 놓다가 꼬박꼬박 졸던 사람이 별안간 올빼미가 되었는지 새벽 두 시, 세 시 너머까지 투닥거리지를 않나, 이 양반이 도대체 어찌 돌아가는 양반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 아침이면 벌건 토끼 눈알이 되어서 하품이나 뻑뻑 하면서 밥을 차려주는 거야. 매일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나, 그래서 신문이나 책으로 나가는 글이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야. 그냥 컴퓨터에 올리는 거래. 그래서 컴퓨터에 올리면 그 회사에서 돈이 나오냐고 물었지. 그런데 그것도 아니래. 그러면 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가슴이 얹힌 게 많다나, 살아오면서 가슴에 맺힌 게 많아서 매일 그거를 오바이트해야 한데, 아휴, 이 여편네가 말하는 거 봐. 누가 알면 내가 매일 두드려 패고 고생이나 직사하게 시킨 줄로 알거 아냐, 안 그래? 그래도 뭐...... 가끔은 책에 마누라가 쓴 시라나, 뭐라나, 하여튼 그런 게 실렸어. 나 보다 잘난 구석이 있는 모양이구나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지. 어느 날 윗동네 사는 김씨하고 바둑을 두는데, 그 자식이 은근히 자기 마누라 자랑을 하더라고. 뭐냐면, 마누라가 구청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을 탔다나, 거기에 글을 냈는데 상을 탔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자식이 바둑알을 놓을 때마다 자꾸 그 소리를 반복하잖아. 은근히 성질나더라고. 나는 마누라 자랑하고 다닌 적이 없거든. 왜냐하면 내가 알 수도 없는 사람들이 지껄인 소리인데, 나하고 뭔 상관이 있냐는 말이지. 그렇지만 이 자식한테는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째려보면서 말했지. 내 마누라는 말이야, 중앙월간지라는 데에서 신인상을 벌써 탔어. 책에도 나오고 말이야. 조금 있으면 마누라가 자기 시집이라나, 뭐...... 그런 거 있잖아. 책을 내는 거 말이야. 시집도 낸다고 지금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야. 알았어? 그깟 구청에서 뽑는 거 가지고 까불지 마. 그랬더니 그 자식이 정말이냐고 증거를 대라는 거야. 참, 기가 막혀서...... 내가 할 지랄이 없어서 거짓말까지 보태가며 마누라 자랑을 하겠어? 그래서 집에 달려와서 마누라가 당선된 책을 가지고 가서 펼쳐 보였지. 여기 봐라. 내 마누라다. 이 사진을 똑똑히 봐라. 그리고 마누라를 뽑아 준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알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시를 잘 쓰는 사람이래. 이 사람이 마누라 보고 문단의 별이 되라고 했던가? 무슨 발전에 많은 기대가 된다고 내 앞에서 분명히 말했어. 알았어? 그 자식이 코가 납작해져서 말도 못하더군. 한 마디 더 해 주었어. 마누라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데리고 살맛이 나지. 소위 글을 쓴다고 하면 이 정도는 유명해져야 하는 거 아냐? 히히, 그 자식이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가더니 다음부터는 마누라의 마짜도 안 꺼내더군. 정말 짜증나더라. 모처럼 마누라나 끌어안고 잘까, 잠자리에서 이리저리 풀썩거리며 기다려도 도대체 이불 속으로 들어올 생각도 안하고 또 뭐를 쓰는지 컴퓨터만 투닥거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목소리를 쫙 깔아...... 여보~ 그렇게 불렀거든. 대답이 없더라고, 그래서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여보 뭐해? 그랬지. 그랬더니 먼저 자요. 나는 나중에 잘게요. 그렇게 싹둑 잘라 대답하는 거야. 그렇다고 뭐시기를 좀 하고 자자고 보챌 수도 없고 눈만 꺼벙하게 뜨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이 와야 말이지. 잘뚱 말뚱 꺼벙꺼벙,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거실에서는 음악소리만 들리더군. 기어나가서 하자고 할 수도 없고, 신경질 낼 수도 없고, 기다리다 보면 이불 속으로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뜨니 벌써 아침이더군. 옆에 마누라가 자고 있지만 할 수 없잖아. 잘못하다가는 출근시간 늦는데 말이야. 그날 저녁에 들어오면서 오늘 밤에는 꼭 끌어안고 자자고 다짐했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깐 애들끼리 밥을 먹고 있더라고, 엄마는 어디 갔냐고 물으니깐 문인들 모임이라나,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에 갔다는 거야. 그래서 일찍 샤워를 하고 얌전하게 이불속에 들어가 있었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이러다가 잠들면 안 되는데...... 에휴,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기다리자, 그렇게 꼬박거리다가 정신을 차리니 벌써 열두시가 넘은 거야. 얼래? 이 여편네가 제 정신인가? 시인이 되더니 별 지랄을 다 떠네, 성질이 팍팍 오르더라고. 거의 한 시쯤에 마누라가 들어왔어. 이불 속에서 꼼짝도 안하고 잠자는 척 했지. 그랬더니 살금살금 화장실에 들어가서 씻고 나오더라고. 성질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 왜냐하면 성질을 내면 모처럼 단 둘이서 그거 할 수도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잖아. 또 이렇게 기다린 보람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성질 죽이고 마누라가 곁에 누우면 모른 척 하고 달려들기로 했어. 그러면 지도 미안하니깐 거부할리야 없겠지. 마누라가 방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더군. 역시 나도 자는 척 했지. 헤헤, 이 여편네가 미안하긴 미안한 모양이지? 이불 속으로 들어오기만 해 봐라. 벼르고 있는데 마누라가 방문을 다시 살짝 닫더니 거실에서 또 뭐를 하는 거야....... 아휴, 지겨워...... 저 놈의 컴퓨터에 또 매달린 거 아냐? 그 날도 그렇게 넘어간 거야. 정말 나도 속 좋은 놈이지, 끙끙 앓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지고 말다니. 다음날 아침에 좀 따질까 하다가, 애들도 있고 해서...... 마누라가 유명해지는 건 맞는 모양이야. 우체통을 보면 여기저기서 월간지라나, 문예지라나, 그런 책들이 배달되어 있고 겉봉투에는 꼬박 000 시인님 귀하, 그렇게 쓰여 있어. 수신자 개똥엄마라는 글은 전혀 안 보이더군. 그러다가 또 무슨 모임이 있고...... 무슨 단체의 사무장인지, 뭔지...... 집에 전화가 와서 받으면 목소리 쫙 깔은 남자시인이라나, 점잔은 목소리로 000 시인님 부탁합니다, 그러고...... 그러면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거야. 전에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인데, 마누라가 점점 예뻐지는 거야. 외출도 잦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또 마누라가 어떤 놈한테 채어 갈 리도 만무하겠지만 왠지 마음이 안 놓이기 시작한 거지. 쓰레기봉투 속에 얌전히 넣어서 밖에 내놔도 아무도 안 집어 갈 것만 같았던 마누라였는데, 그것 참 묘해지더군. 나 자신도 이상하게 마누라한테 점점 주눅이 들어간다고 할까, 노가다 판이나 돌아다니는 나하고 시인들이야, 서로 인생층수가 다른 거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시인이라도 내 마누라잖아. 뭐가 이렇게 꿀리는 맛이 들지? 그러던 어느 날에 방송국에서 들이 닥치더라고. 마누라가 이번에 시집을 발간했는데, 그것이 참 잘 쓴 거라는 말이었어. 물론 내가 봐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인터뷰인지 뭔지 한참 씨부렁대더니 그 사람들 하고 같이 나가더군. 집 근처에 꽃이 많이 핀 개울가에 간다는 거야. 꽃을 배경으로 해서 촬영을 한다나....... 방송국 사람들하고 웃으며 가는 마누라를 창밖으로 내다봤어. 정말 하얗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마누라가 예쁘긴 예쁘더군. 아휴, 씨팔. 저러다가 마누라가 도망이나 가는 거는 아닌지, 정말 알 수 없다. 적응이 안 돼. 에휴, 나는 시인이라는 여자의 남편이올시다. <계속>

첫댓글 갑자기 변한 아내를 둔 남편의 갈등 묘사를 너무나 리얼하게 잘하셨네요, 다음편이 궁금해 집니다. 아, 참멋져요
글이 없어져 삭제한줄 알고 얼마나 속으로 아쉬워했었는지......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