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에세이】
청양 ‘장평(長坪) 초등학교’ 옛 이름은 ‘적곡(赤谷) 국민학교’였다
― 아직도 옛 지명이 익숙하고 친밀감이 든다고 말하는 출향인이 많다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객지 생활한 연세 지긋한 출향인 중에는 아직도 옛 지명인 ‘적곡(赤谷)’을 그대로 부르는 분이 많다. “유년 시절부터 입에 달라붙어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잘 떨어지지 않는 지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적곡(赤谷)’이란 지명이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장평(長坪)’으로 바뀌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충청지역 민속과 풍물, 향토사에 밝았던 고 송백헌 박사(문학평론가, 전 충남대학교 국문과 교수)와 필자의 문답식 대화를 통해 살펴본다.
※ 본 글은 『청양신문』 2021.9.27일 자에 실린 ‘필자의 수필’이다.
2025. 5. 9.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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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수필】 청양신문 2021.9.27.
나의 모교 청양 ‘장평초등학교’ 앞을 지나오면서
- 충남 청양 출신 출향인의 잊지 못할 회고담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장평면 중추리 출신
이곳을 지나는 일이 일 년에 두 번 정도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그리고 팔월 보름날. 성묫길에는 으레 거쳐 가야 하는 곳, 청양 ‘장평초등학교’ 앞길.
▲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초등학교 정문 - 추석 명절 성묫길에 2021.09.21.(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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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날 때마다 학교명이 낯설다. 내 고향 모교 명칭인데도 왠지 낯설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장평초등학교(長坪初等學校)’가 아니다. ‘적곡국민학교(赤谷國民學校)’이다.
어느 날 송백헌 박사(1935년 ~ 2021년, 문학평론가, 전 충남대학교 교수)가 내게 전화로 물어왔다.
“윤 선생, 내가 대전 mbc 라디오 『산 따라 물 따라』에 고정 출연하고 있잖우, 내일은 『청양 편』이 방송된다오. 윤 선생이 청양 출신이니, 몇 가지 방송 자료로 써먹을 것을 좀 여쭤봅시다. 윤 선생 출신지가 청양군 장평면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옛 지명 ‘적곡면’이 ‘장평면’으로 바뀐 거요?”
아니, 송백헌 박사가 누구신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큼 박학다식(博學多識) 천재 학자요, 무불통지(無不通知) 문학평론가로 정평이 난 원로 학자 문인이 아니신가.
저명한 송 박사가 내게 긴히 자문하실 때도 있는가 싶어 내심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게다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묻는데 반가움이 더욱 컸다.
“적곡면(赤谷面)이라는 지명에는 ‘붉을 적(赤)’ 자가 들어 있어 개칭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참고문헌】 1987년 1월 1일에 적곡면의 명칭이 『赤』과 『北』자가 들어 있는 행정 단위 명칭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는 단순 논리에 의하여 개정됨에 따라 장평면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장평국민학교 60년 사(1995년)》 <장평면의 역사와 환경> 15쪽 -
※ 적곡(赤谷)의 어감이 빨갱이 굴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1987년 1월 1일 장평으로 개칭. 이는 예전부터 이 지역을 장수평야(長壽坪野)라 한 데서 유래했다 함. 본래 정산군의 지역으로서 도림사가 있는 적골의 이름에 따라 적곡면 또는 줄여 적면이라 함 *출처: 《靑陽郡誌》(1965년) 靑陽의 地名
또 항간에는 여성의 신체 부위(적곡=젖꼭지)와 어감이 비슷하여 바뀌었다는 설도 있으나 후자보다는 전자의 이유가 더 확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모교를 ‘적곡국민학교’라 칭하기 일쑤이고, ‘장평초등학교’라는 이름은 왠지 생소하여 지금도 자연스럽게 입에 잘 달라붙질 않아요.
‘적곡’이란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저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하고 있어요.
칠갑산이 인접한 저의 고향 적곡면은 가까이에는 망월산이 있는데, 봄에는 유난히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붉은 골짜기[赤谷]’를 이루지요. 그래서 ‘적곡’이라 불리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답니다.”
※ [참고] 진달래 만발한 ‘붉은 골짜기(赤谷)’란 해석은 산수경개 아름다운 내 고향을 홍보하기 위한 필자의 현실적인 지명 해설이고, 청양군 발행(1981) 『지명과 전설』에 의하면 “이조 때엔 정산현에 속했다가 이조 말엽엔 정산군으로서 도림사(道林寺)가 있는 <적골>의 이름을 따서 <적면>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적곡>의 적(赤)은 풍수지리에서 북(北) 쪽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자, 송 박사는 “진달래꽃 천지인 그 고장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지명 삼은 것으로 추정하는 윤 선생의 설명이 참으로 그럴듯한 해석”이라면서 대전 mbc 『산 따라 물 따라』 방송프로그램에 나가서도 내가 설명한 바를 언급하였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자, 고향의 동창생 중에는 내게 이런 제안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적곡」이란 지명이 오랫동안 써 와서 그런지, 「장평」이란 지명보다 더 정겹게 여겨지니, 친구가 「옛 지명 되찾기」 청원이라도 한번 내 보시게.”
그러나 나는 어느 기관에도 청원을 내진 않았다. 지명이 바뀐 지 어언 34년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면 개칭된 장평초등학교 졸업생만도 34회째 배출된 학교명을 이제 와 다시 바꾼다면 그 혼란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개칭된 현재 지명이 여전히 입에 착 달라붙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옛 지명을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옛 학교명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어 명절 때마다 고향에 다녀오면서 가족과 함께 ‘지명 개칭의 역사’를 화젯거리로 삼을 뿐이다. (청양신문 2021.9.27.)
2021. 09. 21. 고향을 다녀오며
윤승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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