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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김포공항
박 완 서
노파는 손녀의 오늘따라 유별난 친절이 거북하다 못해 슬그머니 심통이 난다. 흥, 내가 미국을 가게 되니까 너도 별수 없이 나에게 아첨을 떠는구나, 누가 모를 줄 알구……. 노파의 소견머리는 고작 이쯤밖에 안 움직인다. 그만큼 노파는 식구들의 지청구에만 익숙해 있다.
제 에미를 닮아 새침하고 곱살스러운 데라곤 손톱만큼도 없던 손녀딸년이 할머니 서울 구경을 제가 맡고 나선 것도 수상한데 박물관에 들어오자 등에 손을 돌려 부축까지 해주며 저것은 법주사 팔상전을 본뜬 것, 저것은 불국사의 어디어디를 본뜬 것 하며 열심히 설명까지 하자 노파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거니와 친절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에도 너무 서투르다. 손녀가 환성을 지르며 손가락질하는 데를 바라보며 집 한번 으리으리 잘 지어놨다 싶더라도, 흥 저까짓 거 미국엔 백 층도 넘는 집이 수두룩하다는데 곧 미국 할머니가 될 내가 저까짓 것에 놀랄까 보냐고 코방귀를 뀐다.
머리숱하며 몸집하며 이목구비가 자리 잡은 간살하며 어디 한군데 넉넉한 데라곤 없이 옹색하고 박하게만 생긴 노파가 남을 얕잡을 때만은 갑자기 의기양양하고 되바라지며 밝고 귀여운 얼굴이 된다. 꼭 불이 켜진 꼬마전구같이. 요새 이 꼬마전구는 꺼져 있는 동안보다 켜져 있는 동안이 훨씬 많다.
노파는 곧 미국을 가게 모든 수속이 다 끝나 있다. 딸의 덕에. 노파에겐 이 딸의 덕이란 게 암만해도 진수성찬 끝에 구정물 마신 것 모양 꺼림칙했지만 아들 넷 중 맏이만 빼놓고 세 아들이 다 미국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시 고개가 빳빳해지며 당당해진다. 노파에게 미국이란 우선 먹을 것, 입을 것이 지천인 부자나라도 되었지만, 서울 장안만한 넓이의 고장도 되어서 딸하고 수틀리면 아들네로, 그 아들하고도 틀리면 다음 아들네로 몽당치마에 바람을 일으키며 한 설음에 달려갈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 노파의 자식들 중 미국에 있는 건 딸뿐이고, 둘째아들은 서독에, 셋째아들은 브라질에, 넷째아들은 괌도(島)에 가 있다.
세 아들들이 어쩌다 일이 잠깐 빗나가 지금 미국 아닌 고장에 뿔뿔이 흩어져 있긴 하지만 그들의 당초 목적은 미국이었고 미국으로 이민 갈 연줄을 찾아 눈에 핏발이 서 동분서주할 때부터 노파는 “미국, 미국, 미국에만 갈 수 있으면!” 하는 아들들의 잠꼬대 같은 탄식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고, 그러는 사이에 노파에게 미국이란 가기는 힘들지만 갈 수만 있으면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금시발복의 땅이란 고정 관념이 뿌리박았다. 노파의 아들들은 미국에 있어야 했다. ‘서독’ 이니, ‘브라짙’ 이니, ‘괌’ 이니는 서울의 누상동이니 아현동이니 청진동이니 하는 것처럼 미국 속의 어떤 동네 이름쯤으로 족했다.
하다못해 브라질이나 괌을 우리나라의 서울 부산쯤으로 멀찍 멀찍 떼어놓고 생각할 만큼의 소견도 노파에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파발의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의 딸로 자라 서울로 시집이라고 온답시고 겨우 무악재 고개 너 머 현저동 떠돌이 막벌 이꾼한테로 시집와서 그 동네에서 자직 낳고 난리 겪고 과부 되고, 혼잣손으로 자식 기르느라 고생하고, 속 썩이고 하는 새에 세상 구경은 고사하고, 서울 구경 한번 제대로 날 잡아 해본 일이라곤 없는 노파였다.
해봤다면 아마 철없는 새댁 시절 선바위 국사당에 큰 굿이 들었단 소문은 바로 선바위 밑의 동네인 현저동 일대엔 곡마단 소식처럼 빠르게 퍼졌고, 곧 닐니리 덩더꿍 하는 피리 장구 소리가 자자하게 들려오면 워낙 구경도 좋아하거니와 서발막대 거칠 것 없는 살림살이라 훌훌 틸고 일어나 동네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엉덩춤을 추며 선바위로 지달아 온종일 굿 구경을 실컷 하고 내친 김에 인왕산 성터까지 올라가 굽어본 서울.
언제나 남들처럼 나들이옷 차려입고 동물원이랑 화신상회랑 동양극장이랑 구경을 해보나 생각하면 심란해지고 울컥 친정 생각까지 치밀어, 북으로 구파발 쪽을 바라보면 불과 삼십 리 밖이라는 친정이 하도 아득한 산 너머 또 산 너머라 그만 울음이 북받치던, 그게 바로 노파가 본 가장 넓은 세상이었으니, 지금도 이 세상의 크기를 그때의 그녀의 시야(視野)만 한 됫박으로 측량할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다못해 육이오 난리 통에 남들 다 가는 피란이라도 가봤더라면 노파의 세상을 되는 됫박이 좀 후해졌을 법도 한데 그도 못해 본 노파다. 처음으로 내 집이라고 장만한 현저동 막바지 오막살이가 폭격에 폭삭 주지앉고, 남편 죽고, 수복이 되자 기둥처럼 의지하던 맏아들마저 군인 나가고, 올망졸망 딸린 밥바가지 어린것들, 그뿐일까, 지지리 고생 끝에 망신살까지 뻗처 남 같으면 단산을 하고도 남을, 마흔 살을 네댓이나 넘어선 나이에 뱃속에 유복자까지 있고 보니 아무리 중공군이 무섭대도 움직거릴 형편이 못되었다. 숫제 죽어주었으면, 벳속에서 죽든지 낳다가 죽든지 아무튼 꼭 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뱃속의 것은 죽지 않고 태어났고, 딸이었고, 지금 미국에 가 있는 막내딸이자 고명 딸이다.
그 딸자식이 에밀 미국에 데려가! 개천에서 용이 나도 분수가 있지, 하긴 위해 기른 자식보다 천덕꾸러기 자식 덕을 본다고들 하더니만.
자식의 효도를 후광 삼은 자신을 의식하자 노파는 한층 거드름을 피우며 서투른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줄을 지어 유리장 속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움직이는 게 아마 구경거리가 대단한 모양이다. 손녀의 손길은 한층 친근해진다. 관람객이 예상외로 많아 행여 할머니를 잃어버리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서인지 숫제 할머니 허리를 한 팔로 꽉 감아쥐고 교묘히 인파를 헤쳐 유리장 앞으로 뚫고 들어간다. 손녀는 아직 어린 나이인 데 비해 키가 훤칠해 노파보다는 모가지 하나는 더 크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감색 교복에 흰 깃이 청초하다.
무슨 휘황한 금붙이라도 들어 있는 줄로 여겼던 유리장 속엔 뚝배기 조각에 이지러진 질그릇 나부랭이가 들어 있다. 노파는 어이가 없다. 그러나 손녀는 눈을 빛내며 이것은 무문토기, 저것은 빗살무늬토기 하고 어려운 말로 설명까지 하려 든다.
쯧쯧, 이것도 보물이라고 이렇게 으리으리한 집에 모셔놨으니 판심하군 한심해. 게다가 뚝배기면 뚝배기, 사금파리면 사금파리지 아니꼽게시리 뭔 이름도 그렇게 지랄같이 유식하게 붙여놨노.
노파의 표정은 꼬마전구 같은 귀여운 오만에서 차라리 남남스러운 연민으로 바뀐다. 소녀는 노파의 이런 연민을 읽자 가슴이 답답해지며 어떤 절망에 빠진다.
소녀는 안다. 소녀는 여러 번 보아서 알고 있다. 바로 저런 남남스러운 메마른 연민이야말로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고 나서 떠나는 날까지의 마지막 얼굴이란 것을. 삼촌들도 그랬었고 고모도 그랬었다. 소녀는 지금 서독에 있는 큰삼촌, 괌에 가 있는 셋째삼촌, 미국에 가 있는 고모를 생각할 때마다 그들 개개인의 특징이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짐점 흐려지는 반면, 그들이 어떻게든 외국으로 뜨기로 작정하고, 그 연줄을 찾고 수속을 밟느라 쏘다닐 당시의 그들 공통의 몸짓 ― 흡사 덫에 결린 들짐승의 몸부림 이나 난파선의 쥐들의 불온한 반란이 저러려니 싶게 지랄스럽고 발악적인 몸짓만은 날이 갈수록 도리어 생 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당초에 하나같이 미국에 가기만을 원했다. 난리 통에 아버지 여의고 어린 나이로 손쉬운 대로 미군부대 주위를 맴돌며 구두닦이니 하우스보이니를 하며 잔뼈가 굵고, 부대의 잡역부가 되기도 하고, 장교 식당 웨이터가 되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제법 영어회화에 자신이 생기기도 했고, 말을 하다가 애매한 대목에 가서는 어깨를 움찔 추스르며 입을 삐쭉해 보이는 양키들 특유의 제스처까지 익숙해 갔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미군은 감축되었고, 어느 틈에 그들도 미군 부대 내에서의 직업을 잃게 되었고, 한국 기관에 직장을 구하려니 학벌이 없다는 설움이 톡톡했고, 이런저런 열등감과 영어를 잘한다는 우월감의 콤플렉스가 필연적으로 그들을 미국행으로 몰았는지도 모른다. 또 가난이 극심했던 어린 시절, 그들의 동심이 최초로 눈뜬 이 세상의 신비와 경이가 바로 미제(美製)와 달러에의 경이였으니 그 본고장에의 동경이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미군 부대에서 떨려나 몇 군데 한국 기관의 말단 노무직을 전전하다가 결국 그들 말짝으로 ‘더럽고 아니꼬워서 정말 못해 먹겠어’ 서 미국으로 날기로 결심을 하고 눈에 핏발이 서 싸다닐 무법의 집안의 복다구니와 난장판은 소녀가 아직 어린 시절이었는데도 악몽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으로 이민 갈 연줄을 생판으로 뚫어내려니 더러는 해외취업을 알선 한담시는 사기꾼한테 당하기도 하고, 교제비도 수월찮게 드는 모양이었다. 소녀의 아버지인 맏형은 동생들이 벌어다 보탤 땐 좋았어도 뜯어가는 데야 부처님 이 아닌 바에야 고운 소리가 나올 덕이 없으니, 싸움질이 그칠 날이 없었다. 형제간에 싸움질이 무르 익으면 반드시 곁달아 고부간에 싸움이 악다구니 쳤다. 노파는 작은 아들 편을 들다가 며느리는 남편 편을 들다가 자연히 그렇게 되고 마는 모양이었다.
두 패의 고함과 악다구니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말은 그저 미국, 미국, 미국이었다. 미국, 미국, 미국…… 미국 어쩌구저쩌구, 미국 이러쿵저러쿵.
“이놈아, 미국이면 다냐? 집안은 기둥뿌리가 물러나도 미국에만 가면 너 누가 거저 먹여준다던. 미국에 가서 돈 벌 놈이 여기선 왜 못 벌어. 인제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네 미국 치다꺼리. 동생 미국 보내는 것도 좋지만 나도 내 자식을 먹여 살리고 봐야지.”
“흥, 형이 날 공불시켰소, 뭘 형 노릇한 게 있소? 미국에만 보내 날라는 밖에. 미국만 가면 그까짓 돈 열 배로 늘려 갚는다구요. 형이 그럴수록 나는 미국에 가고 말아요. 미국에 가야 난 사람구실 한단 말예요.”
“여보 내버려둬요, 제 재주껏 미국엘 가든지 천국엘 가든지 우리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읍시다. 당신도 자식새끼 거지 안 만들려거든 인제 그 말 같잖은 허황한 소리에 작작 솔깃해하고 일찌거니 속 차려요. 흥, 미국은 뭐 아무나 가는 줄 알구…….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 난다고, 집안이 망하려니까 어디서 미국 바람은 들어가지고.”
이쯤 되면 가만히 듣고만 있을 노파가 아니다.
“아니 이런 앙큼한 년 봤나. 듣자하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시동생이 돈 벌어다 보탤 땐 아가리가 함박만 하게 헤벌어져 가지고 맛있는 것도 삼촌 거, 따뜻한 것도 삼촌 거 하며 알랑을 떨더니 이제 와서 뭐? 이년, 내 아들이 벌어다 바친 돈 냉큼 내놔라. 요리 뺏고, 조리 뺏고, 장가갈 밑천하게 계 들어 준다고 뺏고, 적금 들어 모갯돈 만들어 준다고 뺏고, 그 돈 다 어쨌니? 썩 내놔라. 내 손으로 당장 미국 보낼 테니. 아이고 분해. 맏며느리가 딴 주머니 차는 집안이 안 망하고 배겨. 아이고 분해. 내 팔자야.”
이렇게 되면 소녀의 아버지는 아가리 닥지고 국으로 처박혀 있지 못하겠느냐고 소녀의 어머니를 한 대 쥐어박고, 얻어맞은 어머니는 큰 소리로 통곡을 하고, 할머니는 나를 쳐라, 나를 쳐, 에미 대신 계집 치는 네 속셈 누가 모를 줄 알구 하며 마룻장을 두드리고, 삼촌은 나는 외로운 놈입니다, 나는 불쌍한 놈입니다, 아무도 내 마음은 모릅니다 하고 연극 대사 같은 독백을 하고 소녀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사파전(四巴戰)은 누가 누구하고 어떻게 편을 짠 싸움인지 켯속이 도무지 아리송하다.
끝내 일이 뜻대로 안 돼 결국 미국행은 단념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외국행을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행이 목적이 아니라 우선 이곳을 떠나는 게 목적이었다. 일단 떠나기로 작정하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떠버리고만 제 집, 제 나라에 좀처럼 다시 정이 들게되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공연히 신경질을 부리고, 눈을 부라리고, 입이 거칠어지고 꼭 누가 자기를 옭아매 두기라도 한다는 듯이 몸부림을 치고 발광을 해댔다. 하릴없이 덫에 걸린 들짐승의 몸부림이었다. 술만 먹었다 하면 이런 혼자만의 몸짓이 식구나 세간에까지 피해를 주는 난동으로 변하고, 제풀에 지치면 배우지 못한 게 한이라느니 기술 없는 게 한이라느니 하며 계집애처럼 홀짝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뒷구멍으로 무슨 수를 썼던지, 어디를 어떻게 들쑤석거렸던지 제가끔 서독이니 브라질이니 괌이니로 일자리를 얻어갈 연줄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수속을 밟는 동안에도 발광증은 더하면 더했지 가라앉지를 않았다. 수속을 밟다보면 항용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목에 부딪히게 되고, 그럴 떼마다 행여 일이 잘못돼 전번 미국행처럼 좌절을 겪을까 봐 미리 질겁을 해서필요 이상 초조해했다.
늘 안절부절못했다. 집에 있을 적에도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지를 못하고, 양손을 바지 포켓에 찌르고 어깨를 우그리고 험악한 인상을 쓰고는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윗목에서 아랫목으로 왔다 갔다 하기를 시계불알처럼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며 중얼대던 독기 서린 독백, “썅, 엽전들 하는 짓이란 그저 치사하고 더러워서……. 썅, 나도 오기가 있는 놈인데, 암 오기가 있구말구. 그저 한번 떴다 하면 내 다시 이놈의 고장에 돌아오나 봐라. 오줌을 깔겨도 이놈의 고장에다 겨냥하고 깔겨줄걸…….”
어쩌구 하던 것까지 소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양말이 안 해져서 또 육갑 떠는군 하고 소녀의 어머니는 뒤에서 빈정댔지만, 소녀는 그 당시의 삼촌들의 모습을 회상할 때마다 웬일인지 삼촌들의 발목에서 절그럭절그럭 쇠사슬 끄는 소리라도 났던 것처럼 기억 돼 소름이 끼친다.
그 당시의 기억이 소녀에게 이렇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민을 둘러싼 삼촌들의 초조한 몸짓이 조금도 교양이니 체면 따위로 위장되지 않은 원색적 이었던 까닭도 있겠고, 이민으로 연유한 그 당시의 소녀의 가정의 불화와 궁핍 이라는 불쾌한 회상 때문도 있겠다.
그러나 절그럭대는 쇠사슬 소리는 실제로 그런 소리가 났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소녀의 기억 속에 당초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다. 소녀가 자라면서 어린 시절의 단순한 기억에 기억 이상의 어떤 의식을 갖게 된 후부터 그 장면에 무심히 삽입하게 된 효과음 같은 거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소녀의 소름끼치는 혼란은 왜 삼촌들이 조국을 쇠사슬을 자르는 죄수와 덫을 물어뜯는 짐승같이 난폭하게 필사적으로, 난파선을 버리는 쥐들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교활하게 도망쳤느냐에서 비롯된다.
삼촌들로부터는 아주 드문드문 편지가 왔다. 처음에는 돈이라도 좀 부처올까 해서 식구들은 편지를 퍽 기다렸으나 이젠 시들해지고 말았다. 편지에는 돈을 많이 번다는 소리도 돈을 부처줄 테라는 소리도 없었다. 그냥 바빠서 죽겠다는 소리뿐이었다. 어느 만큼 바쁘냐 하면 편지 쓸 새도 없이, 집을 그리워할 새도 없이 바쁘다는 거였다. 자랑 같기도 하고 펀지를 자주 못 쓰는 핑계 같기도 하였다.
답장은 주로 소녀가 썼다. 소녀의 아버지는 돈도 안 부처오고, 마지못해서 몇 자 휘갈겨 보내는 안부편지를 자못 시답잖게 아니꼽게 여기고 있었다. ‘흥, 저만 바쁜가, 이쪽은 안 바쁘고.’ 이건 사뭇 바쁜 것의 대결이었다. 대결에선 형 내외가 이겼달 수도 있었다. 아우는 가끔밖에 편지를 못 쓸 만큼 바빴고, 형은 전연 편지를 못 쓸만큼 바빴으니까.
노파는 물론 펀지를 쓰고 싶었으나 쓸 줄을 몰랐다. 결국 소녀가 대필을 해야 했다. 노파는 구구절절 편지 사연을 일러줬다. 먼저 애간장이 타게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연과 암만해도 살아생 전 너희들을 못 보고 죽을 것 같다는 탄식 섞인 엄살과 그러고는 돈을 좀 부처달라는, 늙은이가 돈 한 푼 없이 형 내외에게 얹혀살려니 구박이 막심하다는 애걸로써 끝을 맺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늘 돈 부쳐달라는 대목을 빼먹었다. 대필에 사기를 쳤다고나 할까, 돈 달라는 소리를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소리로서 할 수 없었다. “막봉이 보아라. 세월은 유수 같아 어언간에 봄이 가고…….” 어쩌구 할 때까지는 완전 아들을 그리는 늙은 어머니가 되었다가도 돈 달라는 소리를 하려면 마치 그녀가 대한민국이 되고, 상대방이 브라질이나 괌이라도 된 것 같아지면서 그런 치사한 소리를 도저히 할 수 없어진다.
그런 까닭을 알 리 없는 노파는 꿈자리만 좀 좋아도 편지를 기다리고 요행 꿈이 들어맞아 편지를 받게 되면 그냥 안부편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고 나서도 행여 언제쯤 돈을 부쳐준다는 눈치라도 채려는 듯이 거듭 읽어주기를 졸랐다. 소녀는 노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삼촌들의 편지에 관심이 있었다. 삼촌들이 소원대로 이 나라를 떠나 어느 만큼은 이 나라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 그들에게 그들의 조국린이 나라는 어떤 뜻을 지니게 되었을까가 소녀는 알고 싶었다. 그러나 소녀는 노파와 함께 번번이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편지에는 김치에 대한 거의 환장할 것 같은 허기증을 호소해 오는 수도 있었다. 소녀는 반갑고 좀 고소하다. 그러나 곧 씁쓸해진다. 장가라도 들면 여자가 김치쯤 담가주겠지. 아무튼 그것은 미각의 호소이지 정신의 호소는 아니잖는가? 거창하게 무슨 애국이니 애족이니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인간정신과 조국과의 상관관계에 소녀는 조바심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소녀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냄으로써 삼촌들의 떠날 당시의 광적인 몸부림으로 하여 그녀가 빠져들게 된 혼란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분명해진 것이 없는 채 노파까지 며칠 있으면 떠나게 되어 있다.
소녀는 또다시 떠나 보내는 일을 겪는 게 싫다. 그것은 섭섭하다는 느낌과는 또 다르다. 소녀는 실상 할머니하고 아기자기한 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릇 딸들이 다 그렇듯이 소녀도 어머니 편이어서 어머니가 이제야 시집살이를 면하게 되었구나 싶어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또 이번 할머니의 경우는 삼촌들의 경우하고는 또 달라 미국에 간호사로 가 있는 고모의 초청으로 여비까지 그쪽의 부담이라 삼촌들 때처럼 사기꾼한테 당한 적도, 수속이 난관에 부딪친 적도 없었고, 돈 때문에 싸움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소녀가 싫은 것은 떠나는 것이 확정되고 나서부터 떠나는 날까지의 긴 동안이다. 삼촌들 때도 그랬었다. 떠나는 날만 받아놨다 하면 번연히 한솥의 밥을, 한 상에서 김치에 된장을 해서 먹었을 터인데도 문득문득 버터에 스테 이크라도 먹은 듯이 느글느글해지면서, 아주 이 집 식구와는 처지가 달라진 듯한 여유 있는 얼굴을 해가지고 기회만 있으면 노골적인 연민까지 베풀려 드는 데야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무렵의 삼촌들은 하다못해 골목에서 복닥거리며 노는 아이들도 그냥 지나쳐 보지를 않고, 꼭 구제품을 안고 고아원을 찾아온, 자선이 취미인 코 큰 사람 같은 아니꼬운 연민의 표정으로 혀를 차며 불쌍해하려 들었다. “원, 없는 사람들이 어쩌자고 아이들은 저렇게 무책임하게 많이 낳아놔서…… 고생문들이 훤하구나, 훤해.” 하늘을 쳐다보고도 “하늘 한번 지랄같이 푸르구나. 한심하군, 한심해.” 매사가 이런 투였다.
노파에게서까지 이런 눈치를 읽자, 소녀는 노파를 부축했던 다정한 손길에 맥이 스르르 빠진다. 그렇다고 소녀가 이번 박물관 구경으로 노파가 별안간 고려자기에의 심미안이라도 트이길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런 심미안은 소녀도 있을 리 없고, 박물관 구경조차 처음이다. 떠나기 전에 효도로 극장 구경이나 시켜드리고 점심이나 사드리라는 돈으로 소녀 임의로 박물관을 택한 것은 어쩌다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일껏 찾아간 국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간판에는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한쪽 입 귀로는 피를 흘리는 여자의 얼굴이 끔찍하리만큼 크게 그려져 있고, ‘한국적 한(恨)의 미학의 극치’ 라는 알쏭달쏭한 선전문구가 씌어 있었다.
극장 앞까지 잘 따라온 노파도 간판에 미리 질렸는지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점심이나 먼저 먹자고 했다. 곰탕집에서 노파는 왕성한 식욕을 보여 곰탕도 곱빼기로 들고, 김치는 두 그릇이나 비웠다. 소녀는 또 한번 삼촌들의 편지를 생각했다. 창공을 나는 연이 제아무리 자유로워 봬도 연줄을 통해 실패에 묶였듯이 세계 어디에 가 있어도 김치맛을 잊지 못함으로써 한국인임을 면할 수 없을 삼촌들, 고모, 그리고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조국을 떠나 있는 이들과 조국과의 연과 실패 같은 관계의 비밀이 겨우 김치맛일까 하는 소녀다운 치졸한 감상에 빠졌다.
그러나 한층 치졸한 짓은 극장 구경을 그만두고 박물관으로 노파를 이끈 일이었을 게다. 곰탕집에서 나온 소녀와 노파는 극장으로 갈 밖에 없었는데 노파가 오늘 저녁 꿈자리가 사나울까 겁난다면서 진저리를 쳤다. 아마 그 간판 때문일 게다. 소녀도 동감이었지만 딴 서울 구경도 생각나지 않았다. 소녀는 갑자기 오후의 해가 주체할 수 없이 길게 느껴지면서 갈 곳이 전연 없다는 답답함으로 숨통이 막혀왔다. 소녀는 노파를 부축하고 곰탕집이 있는 골목을 나와 싸구려 구둣방이 늘어선 큰길 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지 못해 심한 낭패감을 겪으면서도 노파에겐 그런 내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짐짓 태연한 척 했다. 그런데도 곰탕의 포식으로 어지간히 행복해진 노파는 네 마음은 내가 다 안다, 알고말고 하는 듯이 한층 돋보이게 행복해지면서 소녀에게 큰 선심을 썼다.
“얘, 애쓰지 마라. 구경은 무슨……. 이까짓 데 뭬 볼 게 있겠다구. 괜히 돈만 없애지. 나야 미국가면 별의별 구경 다 할걸. 돈은 네가 감췄다가 아술 때 용돈이나 쓰렴.”
갑자기 소녀는 갈 곳을 박물관으로 정했다. 소녀는 당당하고 의젓해졌다.
이렇게 해서 오게 된 박물관이다. 그러나 노파는 뚝배기 조각보다 더 나은 것이 나타난 후에도 시들해하고 지루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방이 바뀔 때마다 노파는 가운데 마련한 푹신한 의자를 제일 반가워하고 거기에 앉았으려고만 했다. 그러고는 아직 멀었느냐고 재촉도 하고 이까짓 데도 돈 내고 들어왔으냐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드디어 소녀도 노파를 무시하고 자기만 구경에 열중한 양 할 밖에 없었다. 실상 소녀가 노파를 박물관까지 이끈 것 자체가 즉흥적인 일종의 몸짓이었을 뿐, 이런 일로 노파를 어떻게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언제나 이 재미없는 구경이 끝나 집에 가서 편히 눕나 하는 생각만 하면서 손녀의 뒤만 따르던 노파는 어느 방인지 들어서니까 공기가 썰렁해지면서, 형 광등 불빛이 반쯤은 퇴색해 침침한 듯하면서도, 대낯의 빛이 쏟아져 들어와 바닥에 티끌까지 보이는 게 아마 마지막 방인가 싶다. 넓은 출구를 퉁해 눈부시게 환한 가을 뜰에 곱게 물든 은행 나무가 살랑이는 게 보인다. 금붙이 소리라도 날 듯싶다.
노파의 얼굴이 놀라움과 기쁨으로 일그러졌다가 이내 외경의 빛을 띠며 엄숙하게 굳어진다. 출구가 가까워서가 아니다. 그 마지막 방에는 대형 불상들이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불상들이 너무 많아 노파는 갈팡질팡하다가 드디어 제일 큰 돌부처에게 먼저 예배한다. 예배는 거듭된다. 노파는 누구에게 들은 바도 없이 제아무리 별의별 것이 다 있고, 미제만 쓰는 부자나라 미국에도 부처님만은 안 게시리라는 것을 그냥 안다. 그것을 알자 마지 망망한 허공에 혼자 내던저진 듯한 고독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노파의 고독과 공포는 아들딸이 자그마치 사남매나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는 곁으로 효도 받으러 간다는 크나큰 기쁨과 긍지로도 보상할 수 없는 절실한 것이다.
노파는 영겁을 믿으며 지성꼇 빌기를 좋아했었다. 부처님에게뿐 아니라 새댁 때부터 보아 와서 한 식구처럼 익숙한 국사당(國師堂) 벽의 여러 신령 화상들―신장님 이니 용왕님이니 칠성님이니 삼불제석님에게 비는 것도 좋아했고, 인왕산 기슭의 선바위니 형제바위니 하는 바윗덩이에 소원을 빌기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국사당에서 징 치고 꽹과리 치고 큰 굿 한번 해본 바 없고, 두둑이 시주하고 명산대찰에 공 한번 드린 적 없는 주제에, 어쩌면 그러니까 더욱, 부처님이나 산신령이나 그럴싸한 바위 에다 대고 소원을 빌고 답담한 사연을 하소연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홋날 소원이 이루어졌느냐 안 이루어졌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빌 때의, 뭐든지 꼭 이루어질 것 같고, 사는 것이 외롭거나 겁나지 않고, 마치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고, 제신(諸神)들과 영동이 이루어진 듯한 그 짜릿한 도취경을 노파는 사랑했던 것이다.
뜻하지 않게 부처님을 뵈올 수 있었던 감격과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겠거니 하는 초조로 기구하고픈 게 한꺼번에 오열럼 복받처 오르는 바람에 도리어 노파는 단 한 가지의 소원도 말할 수 없다.
제일 먼저 아직 어리지만 장차 자기 집의 대를 잇고 조상을 받들 단 하나의 손주인 길남이란 놈의 수명장수가 떠올랐다간 그보다는 먼저 올해 삼재가 들어 그저 조심스럽기만 한 맏아들이 무사하기를, 그리고 돈벌이도 좀 나아지기를 소원하는 게 더 급하게 여겨졌다가, 먼 딴 나라 땅에서 고생하고 있는 작은아들들 일이 더 걱정스러운가 하면, 딸도 걱정스럽고 자기가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탈 없이 갈 수 있을까가 도무지 미덥지 못해 그것도 빌고 싶고……. 이런
것들은 다 당장 코앞의 걱정이고, 먼 후일까지 지금 빌어두고 싶고, 자기의 사후 세계까지 지금 빌어두고 싶고, 노파의 조그만 머리엔 빌어두고 싶은 것이 쇄도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저, 비나이다. 그저그저…… 부처님, 제 마음 아시지요. 네, 제 마음 아시지요.”
비는데 당해서 노파가 이렇게 말주변이 없어 보긴 처음이다. 그러나 노파의 마음은 술술술 많은 말을 했을 때보다 오히려 빠르게 안정되어 오로지 경건할 따름이다. 부처님께서 저절로 다 아시고 다 들어주실 것 같다. 고맙다. 너무 고마워 노파는 손녀를 불러 돈 남은 걸 다 달래서 불상의 무릎 위에 공손히 바친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 제 마음 아시지요.” 를 되풀이하고, 절을 되풀이하고 불상을 우러른다. 불상은 네 마음 내 다 알고말고 하는 듯이 빙그레 웃고 있다. 노파의 마음은 법 열과도 같은 희열로 빛난다.
해가 설핏하긴 해도 바깥의 모든 것은 아직 한낮의 밝음 속에 눈부시다. 장장 반만년의 문화사를 훑어내렸는데도 가을의 오후는 아직 지물지 않은 것이다.
“아무 데서나 좀 쉬 었다 가자꾸나.”
노파는 햇빛 속에서 어지럽기도 하고 온몸이 흘러내리듯이 피곤하다. 그러고도 편안하다. 노파는 쉬고도 싶거니와 편안함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있고 싶은 것이다.
경회루 연못가엔 회장저고리나 색동저고리에 빛깔 고운 비단치마를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한때 희희낙락 산책을 즐기고 있다. 수면이 이 고운 빛깔들을 거울처럼 되받았다간 미풍이라도 불면, 이 고운 빛들이 잘게 부서지기도 하고, 너울너울 출렁이기도 하는 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신사복차림의 청년이 두어 명 뒤따르며 열심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다. 심한 피로 때문인지 노파의 시선은 초점 없이 멍한 게 사고가 정지된 사람 같고, 검버섯이 거뭇거뭇하고 주름이 밀려 깊은 고랑을 이루고 있는 피부는 고목의 수피(樹皮) 같다. 소녀는 가만가만 할머니의 손을 만져본다. 말랑하다.
“네 고모가 미국에서 뭐 한댔지?”
노파가 혼잣말처럼 푸듯이 중얼댄다. 여태껏 고모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으니 소녀는 내심 짚이는 게 있어 뜨끔하다.
“간호원이오.”
“한 달에 얼마나 번댔지? 여기 돈으로 셈해서 말야.” ¸
“이십오만 원쯤…….”
노파의 눈에 점짐 생기가 돌더니 예의 꼬마전구 같은 오만을 회복한다.
“네 고모한테 네 에민 너무했느니라. 사람이 그러는 게 아냐.”
고모가 미국으로 떠날 때의 얘기인 것이다. 소녀도 그땐 자기 어머니가 너무했다 싶다. 삼촌들처럼 떠들썩하지도 않고, 집안 돈도 축내지 않고, 제 주변으로 감쪽같이 수속을 끝내고 떠난 고모다. 소녀의 어머니도 그게 신통하고 고마웠던지 갈 때 입을 옷 한 벌 고급으로 해주마고 벼르더니, 내일이면 떠날 날인데 오늘 사왔다는 옷이 반코트 비슷한 윗도리 한 가지인데 싸구려티가 더럭더럭 나는 날림 물건이었다. 노파도 그걸 단박에 알아봤다. 아니 그래 딴 데도 아니고 미국엘 가는데, 저런 식모데기 같은 옷을 입혀 보내야 옳으냐고 며느리에게 대들었다. 며느리도 지지 않고 잔뜩 얕잡는 투로 “어머닌 그저 미국 미국, 미국만 가면 큰 출세나 하는 건 줄 아시지만 그게 아녜요, 고모가 뭐 벼슬이라도 해갖고 미국 가는 줄 아세요? 알고 보면 똥 치러 가는 거예요, 똥. 어머니도 속 좀 작작 차리세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기대를 꺾으려고 보조간호원으로 가는 것을 똥 치러 간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고도 모자라 보조간호원이란 간호원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키려고 두는 것이니까, 간호원이 하기 싫은 일이야 똥 싸는 환자 똥 치는 일밖에 더 있겠느냐, 그리고 그런 일이란 워낙 욕지기나게 더러운 일이어서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자기 나라에선 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 외국에서 사들인다고 제멋대로 풀이까지 했다.
그날 저녁 고모는 무릎까지 오는 번들번들한 장화를 사 신고 들어왔다. 하루 종일 분하고 원통해서 눈이 거꾸로 박혔던 노파는 먼저 그 장화 얼마 주고 산 거냐고 앙칼지게 따졌다. 칠천 원인가 줬다고 하자
“이년 이 싸가지 없는 년, 미국으로 똥 치러 가는 주제에 뭐 칠천 원짜리 구두? 꼴좋다. 꼴좋아, 천 원짜리 오버에 칠천 원짜리 구두 꼴좋다.”
이런 넋두리는 그날 밤새도록 계속됐다. 애꿎은 장화를 쥐어뜯으며, “이년 똥 치러 미국까지 가는 싸가지 없는 년.” ―이것이 노파와 딸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노파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먼 길 떠나보내면서 한 모정의 소리 였던 것이다.
드디어 노파가 뗘날 날도 내일로 다가왔다. 그러나 노파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도 흐뭇한 밤은 못 되었다.
노파는 마지막 밤을 맏손주인 길남이와 자고 싶었다. 꼭 그러고 싶었다.
아직 어리고 하나밖에 없는 사내놈이라 오냐오냐해서 길러서 그런지 제 에미만 바치고 할미를 통 안 따르는 놈이었지만 하룻밤만 같이 자면 잘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놈을 꼭 껴안고 그 신퉁하고 대견한 귀물인 고추도 좀 주물러보고, 잠결에 하는 발길질도 당하고, 이불도 덮어주고 토실한 뺨에 뽀뽀도 해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밤새도록 그놈을 품에 품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노파가 떠나는 날어 며느리 친정 어머니 환갑날이라고 며느리는 전날부터 친정으로 갔다. 친정에서 자고 다음날 비행장으로 곧장 나올 속셈인 모양으로 딸들에게 저녁에도 할머니 불고기 해드리고 내일 아침에도 할머니 불고기 해드리는 거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효부노릇을 한바탕 하고 갔다.
길남이만은 꼭 떼어놓고 갔으면 싶었는데, 길남이는 막무가내 제 에미 치마꼬리를 안 놓고, 그래도 에미가 딱 떼어놓으면 젖먹이도 아니겠다 못 떼어놓을 것도 없겠는데 “그래 그래 같이 가자. 할머니 오늘 밤은 푹 쉬셔야지.” 하고 큰 선심이나 쓰듯이 데리고 가버렸다,
노파는 밤새도록 그게 서운해서 몰래 울었다. 자고 나도 그게 무슨 한처럼 묵직한 응어리가 되어 가슴에 걸려있었다.
며느리는 다음 날 비행장에도 겨우 시간 전에 대와서 남편과 딸들에게 어서 어서 할머니 배응하고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니 환갑상 받으시는 데 잔 드려야 한다고 설쳤다.
배웅을 빨리 하게 하려면 빨리 갈 밖에 없겠다 싶어 노파는 또 한 번 야속하다. 노파는 길남이를 와락 껴안았다. 아프다고 울려고했다. 할 수 없이 놓아주고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쥐었다. 또 아프다고 울려고 했다.
소녀는 할머니가 입고 있는 촌스럽게 번들대는 합섬 양단 치마저고리와 은비녀가 삐딱하게 꽂힌 조그맣고 허술한 쪽과, 목에 걸어 거북하게 앞가슴에 늘어져 있는 BONANZA란 흰 글씨가 새겨진 빨간 숄더백과, 그런 겉치장의 부조화가 딴 여행객들과 이루는 또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부조화와, 끝내 길남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못 끊는 짓무른 노안을 지켜보면서 거의 육체적이랄 수도 있는 아픔을 가슴 깊은 곳에 느낀다.
떠나는 편에서나 떠나보내는 편에서나 이건 정말 못할 노릇이다 싶다. 차라리 삼촌들처럼 다시는 돌아오나 봐라, 내 어디서 오줌을 깔겨도 이놈의 고장에다 겨냥하고 깔길걸 어쩌구 폭언을 퍼부으며 의기양양 걸어 나가는 것을 보는 편이 속편했던 것 같다. 소녀는 막연하나마 삼촌 시대의 위악(僞惡)을 이해할 것도 같다.
시간이 없다고 어서어서 나가시라고 며느리가 재촉을 했다. 제 친정 에미 환갑상 받을 시간에 늦겠다는 건지 비행기 뜰 시간에 늦겠다는 건지 분명치 않은 채, 가슴에 걸려 있는 뜨거운 응어리를 시원히 풀지도 못한 채 노파는 딴 사람들과 휩쓸려 출국의 최종절차를 마치고 비행 기가 보이는 광장으로 나섰다. 비행기가 있는 데까지 타고 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남이 하는 대로 버스에 올라탄다. 모두 젊은이들뿐이다.
한 젊은이가 할머닌 어디까지 가십니까고 상냥하게 말을 건다.
“그 뭐라나, 미국의 어디 메드라? 참, 쌍포리코라던가.”
“네 , 샌프란시스코요. 저도 그리로 가는데요.”
젊은이가 광대같이 우스꽝을 떨며 노파를 껴안았다. 노파도 반가워서 젊은이 손을 덥석 잡았다가 놓으면서
“참 내 정신 좀 봐. 내가 이러구 있을 게 아니라 버스 뗘나기 전에 식구들에게 든든한 동행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이 늙은일 혼자 떠나보내고 발길들이 안 돌아설 텐데.”
노파는 허겁지겁 버스를 내린다. 노파는 그냥 가족들을, 특히 길남이를 다시 보고 싶을 뿐이다. 버스에서 내린 노파는 송영대 밑으로 달려가 송영대를 쳐다보며 악을 쓴다.
“얘들아, 마침 쌍포리코까지 같이 갈 동행을 만났다. 아주 친절한 젊은이야. 내 걱정들은 마라.”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다. 낯선 사람들이 킬킬거릴 뿐이다. 다시 쳐다봐도 송영대에 밀집한 사람 중 낯익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 벌써 환갑집으로 가버 린 모양이다.
다시 확인하고 싶으나 시야가 자꾸만 부옇게 흐려져 그게 여의치 않다. 별안간 송영대에 나와 있는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져서 숨듯이 다시 버스에 오른다. 버스를 내려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그동안 내내 노파는 혼돈 속을 가듯 눈앞이 지척을 분간 못하게 부옇고 의식조차 흐리멍덩하다. 아까의 젊은이가 노파를 부축해 주려다 말고 딴 젊은이들과 섞여서 시시덕댄다.
마침내 기체가 이륙하는 것을 노파는 심한 충격과 함께 의식한다. 그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노파 하나만의 것인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크나큰 충격이다.
몇백 년쯤 묵은 고목이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몽땅 뽑히는 일이 있다면 그때 받는 고목의 충격이 바로 이러하리라. 노파의 의식이 비로소 혼돈을 헤치고 뿌리 뽑힌 고목으로서의 스스로를 인식한다.
비행기 속의 젊은이들은 노파의 아들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국을 뜨는 마당에 일말의 애수조차 없이 다만 기쁘고,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도 동류의식을 느낄 수 없다. 노파는 외롭다.
“할머니 울잖아? 애기같이, 우리도 안 우는데. 울지 마 우린 같은 처지야.”
아까의 젊은이가 광대 같은 표정으로 어리광을 떨며 노파를 웃기려든다.
하긴 저들도 뿌리 뽑혔달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저들은 묘목이다. 어디에고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묘목이다. 그러나 난 틀렸어. 난 죽은 목숨이야.’
노파는 노파의 아들들이 이를 갈며 싫어했고 진저리를 치며 놓여나기를 갈망했던 이 땅의 모든 구질구질한 것까지 자기가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안다. 노파는 마치 자기 시신을 보듯이 숨 막히는 공포로 뽑혀 나동그라진 거대한 나무와 지상으로 노출된 수만 가닥의 수근(樹根)이 말라비틀어지는 참담한 모습을 환상하며 심장을 쥐어짜듯이 서럽게 운다.
일찍이 이렇게 서럽게 운 적도, 이렇게 서럽게 운 사람도 이 세상엔 없겠거니 싶다. 산 채로 자기의 시신을 볼 수 있는 그런 끔찍한 불행을 겪은 사람이 나 말고 어디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노파의 울음은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조곡(弔哭)인 만큼 처절하다.
젊은이들은 노파의 이런 울음소리가 못 견디게 듣기 싫다. 타고 있는 게 비행기만 아니라면 훌쩍 뛰어내린들 조금도 찻삯 같은 거 안 아까우리만큼 듣기 싫다. 이런 기분 나쁜 음색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가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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