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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1. 14)에 열린
서울시향의 콘서트 미리보기 강좌.
20분쯤 일찍 도착했는데도 앞자리 두 줄이 다 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청자가 무려 217명,
강좌 사상 유례 없이 많은 인원이라고 한다.
셋째 줄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바깥에 나가 물 한 잔 마시고 들어오니
젊은 남성이 피아노 앞에 앉아
귀에 익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바로 오늘의 강사 김문경 선생이었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음악을 듣고 소화하여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을 주문하는 말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소나타 형식을 설명한다.
카덴차 성격의 도입부
오케스트라 제시부
협연자 제시부 : 피아노+오케스트라(반음계 상승 음계로 종결)
발전부 : 오케스트라 총주-피아노+오케스트라 재현부 : 도입주제-피아노+오케스트라(반음계 상승 음계로 종결)-fake 카덴차-피아노+오케스트라
복잡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음악 한 곡 온전히 들으면 그만이지
이런 것까지 알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마음을 눈치챘는지
강사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소녀의 기도>를 잠깐 연주하고서
객석을 돌아보며 하는 말.
"정말 지루하지요.
옆집에 사는 예쁜 소녀가 쳐야만
겨우 용서될 수 있는 곡이에요."
순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이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본 주제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이 바로 변주란다.
그러고는 변주된 음악을 들려준다.
지루함이 훨씬 덜하다.
"변주곡은 커피입니다.
커피에 물을 더 타든
아이스크림을 섞든 커피는 커피지요.
-화면엔 다양한 커피가 등장(객석 웃음)-
변주곡은 아이스크림입니다.
녹차를 섞든 초콜렛을 섞든
아이스크림임에는 변함이 없지요.
-다양한 아이스크림 등장(웃음)-
변주곡은 런웨이 컬렉션입니다.
어떤 색감으로 어떤 천을 썼든
이 디자인은 두 가지 색의 팬츠라는 것이지요.
-두 가지 배색의 바지를 입은 모델들이 등장하는 패션 쇼 화면(웃음)-"
강사는 론도도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론도는 어장 관리입니다.
젊은 아가씨가 있어요.
A라는 남자를 오래 만나니 심심해요.
조금 더 재미있는 친구 B를 만나요.
그러다 A가 생각나 돌아가요.
또 심심해져요. 이번엔 C를 만나요.
그러나 A를 잊을 수 없어요.
또 돌아가지요.
늘 바람을 피면서도
언제나 가정으로 돌아가는 남성같이요."(웃음)
발전부에서 조성을 헤매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또 이렇게 설명한다.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말했지요.
노력하는 자는 헤매게 마련이라고."
적절한 비유와 인용이
강사의 내공이 만만찮음을 느끼게 해 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는
여러 권의 음악 관련 서적을 낸 적이 있고
특히 말러를 가장 깊이 있게 소개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직업은 특허청 특허 심사관이고
약학박사학위에 변리사 자격까지 갖추고 있다.
약학과 음악이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는
어떤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약(藥)에서 풀을 떼 내면 악(樂)이 됩니다.
약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악(樂)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옷은 또 얼마나 잘 입었는지.
체크무늬가 들어간 셔츠와 바지에
짙은 와인색 자켓,
게다가 큰 얼룩무늬 넥타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데도
조화가 잘 될 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지적인 모습을 연출해 냈다.
거기다가 웬만한 전문 연주자 뺨칠 법한
피아노 연주 실력까지 갖추었으니
금상첨화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또 샛길로 빠졌다.
(멋진 남성만 보면 정신줄을 놓는 고질병 ㅋㅋ)
덴마크 국립교향악단의 연주,
얀 크렌츠의 지휘,
아르투르 미켈란젤리의 피아노 연주로
<황제> 1악장을 감상한다.
음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치는
연주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깔끔하고 정확한 연주.
15분간의 중간 휴식 시간.
친구들이 머리를 모으고
강사의 명강의에 감탄하다가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하는 아들딸을 걱정하고
조금 더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고 되돌아보는 사이
2부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베토벤 교향곡 5번이다.
'딴딴딴따~'로 시작되는 운명 교향곡의 모티브는
4개의 음으로 구축한 음악의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진다는데
비슷한 모티브가
다른 음악에서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 현악4중주 10번 '하프' 3악장,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1악장,
슈베르트 가곡 난쟁이,
브람스 FAE 소나타 중 스케르초,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이 그렇단다.
이들 곡의 해당 부분을 직접 들려 주고
그중에서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슈베르트 가곡 난쟁이 전곡을 들려준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디스카우의 목소리를 이렇게 듣다니......
사람은 가도 목소리는 남았다.
그가 가고 나서도 이렇게 누군가
그의 소리를 듣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을까.
객쩍은 생각을 하는데
디스카우의 목소리가 끝난다.
강사가 묻는다.
<운명>은 무슨 음으로 시작할까요?
객석에서 대답이 없다.
8분 쉼표로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1악장의 악보를 보여준다.
정말이지 운명은 사뿐사뿐 다가오지 않는다.
기우뚱한 몸뚱이에 꺾어진 머리를 단
8분 쉼표처럼 가혹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시작이 있어야만
광명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고
베토벤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쉼표로 시작하는 곡은 지휘하기가 어렵단다.
그래서 베토벤의 운명은 듣기는 쉽지만
지휘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곡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딴딴딴따의 '따'에 해당하는 음표 위에
음을 늘이라는 표시(fermata)가 있는데
이것을 얼마나 늘이는지는
전적으로 지휘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어서 <운명>의 시작 부분만을
여러 화면을 통해 보여 주는데
과연 지휘자의 수만큼 각기 다른 지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휘자에 따라 연주 길이가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악장은 변주곡과 론도 형식의 이중교배(A-B-A'-B-A''-B-A'''-Coda)
3악장은 비대칭 트리오 형식의 스케르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2악장에서는 황금빛 트럼펫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3악장에서는 더블베이스가 그렇단다.
이 대목에서 강사는 피천득의 수필 한 대목을 소개한다.
"야구 팀의 외야수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스케르초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좋아한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2악장을,
헤르베르트 블륨슈테트의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3, 4악장을 조금씩 감상한다.
이제 마지막 순서.
베토벤이 수없이 쓰고 버렸던 악보를 찾아내
그가 왜 그 악보를 버리고 현재의 악보를 선택했는지를
번스타인의 해설로 듣는다.
또 번스타인의 연주로
베토벤이 버린 음악과 현재의 음악을 비교해 본다.
현재의 음악이 나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베토벤은 최선의 소리를 찾기 위해,
수없이 악보를 쓰고 찢었다.
운명을 작곡할 당시
점점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파지를 버린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완성도가 높은지도 모른다.
서울시향의 콘서트 미리보기 새해 첫 시간,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노력하라는
베토벤의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
(착각은 자유니......)
2009. 홍차 |
첫댓글 ㅎ 해설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이가신후에야 글을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