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의 치수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8)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 10:14)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 (the holy of holies)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6-8)
증거궤가 있는 곳이 지성소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의 체험에 있어서 모든 성장과 성숙의 완성을 상징한다. 원칙상 지성소에는 오직 한 개의 기구만이 있다. 하지만 체험에 있어서 실제로 둘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기본 청사진에 근거하면 지성소 안에는 오직 증거궤만이 있다. 하지만 우리 체험의 관점에서 분향단도 지성소 안에 있다.
십 규빗 입방체(10x10x10) 출애굽기에서 지성소는 장과 광과 고가 각각 십 규빗이다. 새 예루살렘과 같이 장과 광과 고가 같다. 새 예루살렘은 장과 광과 고가 각각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다 (계 21:16). 열 둘(12)은 영원 안에서의 완전함을 의미한다. 십(10)이란 숫자는 시간 안에서 사람의 온전함과 완전함을 의미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은 십의 입방체의 완전한 간증을 얻기를 원하신다. 이 곳은 하나님이 십의 입방체의 수준까지 온전케 된 사람과 만나고 말하시길 갈망하는 곳이다.
완전함 중에 완전함의 완전함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완전하게 끝내지 않는다면 시작하지 않으신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좋은 성격을 가졌지만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어떤 사람은 키는 크지만 체중이 너무 나간다. 어떤 사람은 체중이 적당하지만 키가 너무 작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하지만 그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 지성소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최종 완성을 묘사한다. 우리의 생명 성장은 이 지성소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지성소 안으로 데리고 가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동역하는 것이다(히 10:19-22). 지성소의 첫번째 특징은 완전함이다! 이것은 어떤 아름다움보다 더 높다. 우리는 영원 안에서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체험하겠지만 지금 시간 가운데에서 완전한 지성소 가 있다. 만일 우리 인생의 여정의 마지막에서 주님이 우리를 보며 회계하실 때 “잘 하였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기를 갈망한다 (마 25: 21-23). 이것이 주님으로부터의 받을 수 있는 최종 인정이다. 단지 장례식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성취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충분한 인생을 마친 후에 사람들의 느낌에 매우 좋다고 생각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눈에 우리를 어떻게 보실 것인가? 잘 하였다 아니면 수치스러운 가이다 (마 25:26). |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마주할 때 우리의 상태가 어떠한 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사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 중요한 것은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정하실 지가 중요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 하였다 또는 수치스럽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많은 진리와 계시가 없이 종교적 열심만 있는 사람에게 주님은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의 경륜과 신성한 생명안에서 성숙하게 하는 높은 진리를 듣고 계시를 깨닫고 누리고 조성된 사람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그 결과 주님이 우리를 마주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를 보고 “잘 하였다”라고 말씀하시길 바란다.
바울의 10 입방체(10x10x10)
디모데 후서 4:6-8에서 바울은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10 x 10 x 10이다. 첫 번째 10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이다. 두 번째 10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이다. 세 번째 10은 “나의 믿음을 지켰다”이다. 첫 번째 10은 싸움이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한다. 두 번째 10은 달리는 것이다. 우리는 잘 달려야 한다. 세 번째 10은 믿음이다. 우리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붙잡아야 한다. 바울은 주님을 볼 때 주님이 그에게 의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면서 “잘 하였다”라고 말씀하실 것을 알았다.
결국 생명의 성장은 완전함에 이르도록 자라는 것이다 (골 1:28). 그리스도 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뜻과 경륜과 움직임과 운행이 완전하기 때문에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역사도 또한 온전하게 될 것이다 (히 7:25, 10:14).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있다 (민 10:33, 14:44), 언약궤는 증거궤(출 25:22)라고 불리우고 하나님의 궤라고도 불리운다 (삼상 4:11).
증거궤의 위치는 지성소의 중심이다
만일 우리가 성막의 도형을 본다면, 어떻게 증거궤가 성막, 즉 증거막의 중심 (출 38:21)인지 알 것이다. 왜냐하면 증거궤는 증거막의 가장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지성소는 증거막의 중심에 있고, 증거궤는 지성소의 중심에 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에 있다. 하나님은 성막 안 지성소에 거하셨다.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는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의 중심을 의미한다 (엡 2:21-22).
증거궤는 온 땅의 중심이다
마음이 소심한 사람은 무엇이든 과감하게 자신을 드리기를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추측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이득이 있을만한 곳에 돈과 물질을 투자한다. 이것은 그들이 중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심을 아는 사람은 온 땅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땅의 중심 동향을 볼 줄 안다. 비록 온 세상이 변할 지라도 유일한 중심인 증거궤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증거궤를 그의 중심으로 취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막을 자신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채우셨을 때 증명되었다 (출 40:34-35). 우리는 결코 이 중심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떠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고 하나님 안에서 수고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면 우리는 만물의 중심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증거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예표이다
출애굽기 25장 10-11절은 “그들이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 또한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쌀지라”고 말한다. 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었다. 조각목은그리스도의 인성의 예표이다. 뿐만 아니라 이 조각목 안팎을 정금으로 쌌다. 정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 두 본성을 가지신 인격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하나님-사람이시다(롬 1:3-4).
지성소의 중심에 있는 증거궤는 그리스도, 하나님-사람의 완전한 예표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과 합병된 하나님-사람을 얻기를 갈망하신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은 많은 하나님-사람, 하나님의 아들들을 산출하는 것이다 (엡1:5).
하나님은 아마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했는지, 또는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봉사하고 있는 지를 묻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에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사는지”를 물어보실 것이다 (빌 1:21). 하나님이 원하심은 그분과 연합되며 합병된 하나님-사람이다. 이러한 하나님-사람이 지성소의 내용이신 그리스도의 재생산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 완전함 중에 완전함의 완전한 증거가 된다.
레위기 2장에 소제가 나온다. 소제의 요소는 고운 가루와 기름이다. 기름은 고운 가루와 섞여졌고 또한 고운 가루 위에 부어졌다. 고운 가루는 기름 안에 있고 기름은 고운 가루 안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 고운 가루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예표이며 기름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된 하나님-사람이시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