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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놀라울 뿐이다.
2016년 8월 7일 놓아버림 몰입중에....
2021년 9월 24일
나의 눈 에고의 해체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 후 묵상중!!
이 장에는 지난 십수년간 세계 각처에서 열린 워크숍과 세미나에서 주고 받은 질문과 대답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또한 독자로부터받을 만한 질문을 예상해 항복기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자주 받은 질문을 담았다.
종교적 목표와 영적 목표
일반적으로 영적 목표나 의식확대 또는 종교적 신념이라고 일컫는 것을 성취하는 일에 항복기제를 적용하는 문제는 항상 많은 질문을 받았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중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놓아버림 기법은 종교나 영적노정, 자기향상 프로그램과 전혀 어긋나지 않으며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입장과도 절대 상충되지 않는다.
놓아버림에는
그 자체의 영적 가르침이 없다.
가르침 대신
스스로 이해해 영적 진보의 장애를 없앨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할 뿐이다.
또한 인간주의 심리학과도 통한다. 모든 영적 노정과 종교에서는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강조하는데, 항복과정은 본래 사랑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사랑에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면
자신과 타인, 신을 사랑하는 능력이
커진다.
또한 항복을 통해 모든 위대한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작은 자아", 즉 흔히 에고라고 부르는 것을 항복하는데 목표가 있다.
놓아버림 기법은
작은 자아를 녹여 없애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단순하게
내면에서 항복과정을 사용한다.
작은 자아를 초월할때 내면의 진정한 큰나가 빛을 발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 항복현상을 최대한 짧게 표현한 말들을 예로 들어보자. 전형적으로 이런 패턴을 따른다.
"놓아버리고 신께 맡기라.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라.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그 신의 보살핌에 인생과 의지를 넘기라.
있는 그대로 항복하라. 신은 만물속에 있으므로"
부정성을 놓아버리면 분명, 모든 종교와 영적 노정에 강력히 권고하는 바로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놓아버림의 과정은 주로 감정과 관계가 있으며, 앞서 보았듯이 감정은 우리의 생각과 신념체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항복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적, 종교적 목표도달이 쉬워지는 경험을 한다.
의식적으로는 아무런 종교적, 영적 목표가 없는 사람들도 항복기제 덕분에 사랑하는 능력이 커지면서 그에 따라 훨씬 행복하고 평안해졌음을 이야기한다. 칼 융은 신은 무의식 속의 주요 원형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신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각자 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신론자조차 신의 개념에 대해 감정이 있다. 따라서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신은 머잖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신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거나
신이라는 문제에 의식이 압도되는 것은
만족스러운 해법이 되지 않는다.
놓아버림 기법을 통해
무신론자와 신앙인 모두가
내면의 오랜 갈등에 답을 얻는다.
문 : 놓아버림은 죄의 개념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답 : 앞서 논한 부정적 감정들을 종교 용어로 묘사한다면, 지금까지 이른바 "대죄"를 서술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항복기제는
그러한 것을 놓아버리는 방법으로
그런 특질에 대한 애착을 놓아버리면
개인의 삶에서 종교의 가르침을 터득하기가 쉬워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 : 저는 특별히 어떤 영적 노정을 따르고 있지는 않고 저만의 개인적 노정이 있습니다. 놓아버림 기법에서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답 : 모든 영적 노정은 예외없이 에고를 녹여 없애는 기법에 기반합니다. 에고에는 우리의 부정적 프로그램 전체가 포함됩니다. 항복하는 것은 부정적 프로그램을 놓아버리는데 아주 탁월한 내적 과정입니다.
항복은 영적 이해를 얻기 위한
최고의 도구입니다.
문 : 놓아버림 과정이 어떤 식으로든 저의 신앙에 지장을 줄 수 있을까요?
답 ; 그 반대입니다. 무엇이 신앙의 장애물일까요? 온갖 형태의 부정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성을 놓아버리면 신앙의 장애물을 없앨 수 있습니다.
문 : 저는 신앙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주제에 대해 배우는 일에는 흥미가 있습니다. 놓아버리는 방법이 저에게 도움이 될까요?
답 : 항복기제는 도구일 뿐입니다. 100만달러를 버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는데 항복기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영적 자각의 성장에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는데 쓸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항복하는 사람들 대부분 사랑자체에 가까운 어떤 것을 내면에서 발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몸이나 감정, 생각, 세상일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런 발견을 하니 불쾌해졌다는 사람을 본적있습니까?
문 : 놓아버림 기법과 모순되는 영적 가르침이나 종교적 가르침이 있습니까?
답 : 이 주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부정성 놓아버림은 어떤 영적 가르침과도 상충되지 않음이 밝혀졌습니다.
문 : 저는 오래전에 종교를 버렸습니다. 종교때문에 죄책감이 너무 많이 생겨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놓아버림 기법을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답 : 수년에 걸친 임상 관찰에서 종교를 버리는 가장 흔한 것이 죄책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지를 자문해보세요.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배운 것과 실제 모습으로 지각되는 바 사이의 격차때문입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모두 놓아버리려고 시도하면서
마음가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세요.
다시 말하지만 놓아버림은 도구입니다. 삶의 모든 방면에서 목표를 쉽게 이루는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모든 죄책감을 놓아버리는 것에서 출발하면 좋습니다. 죄책감은 고통과 질병이 생길 수 있는 감정적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명상과 내면기법
문 : 놓아버림과 항복하기는 다른 명상기법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답 : 거의 모든 명상기법은 마음을 침묵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편에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라"라는 금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명상하는 사람 대부분이 알게 되듯이
마음의 침묵도달은
명상자체의 최대 난제입니다.
왜냐하면
억제된 감정이 끊임없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명상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제된 감정 이면의 에너지를 인정하고 놓아버리면 명상의 목표를 이루기 쉬워집니다.
줄을 잇는 생각의 이면에서
감정이 있는 곳을 정확히 찾아내어 항복하면,
그 일련의 생각 전체가 즉시 멈춥니다.
끊임없이 항복을 통해
지극히 고요한 마음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일상의 활동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해낼 수 있는 일이고,
그 결과 명상능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반면
대부분의 명상기법은
하루 중 몇십분 내지 몇시간에 국한되는 수행입니다.
높은 의식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쉼없는 항복을 통해 가능합니다.
문 : 저는 영적노정을 밟고 있지는 않고, 확언과 시각화기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놓아버림 기법이 저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답: 놓아버림을 하면 확언이 힘을 발휘하기가 아주 쉬워집니다.
확언은
긍정적 진술입니다.
확언의 힘이 제약받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확언에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다수의 부정적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직접 알아볼 수 있습니다. 확언을 적을때 "그래 그렇지만...하는 생각"이 드는 것에 주목하면 됩니다. 이 "그래, 그렇지만....하는 생각"들이 확언의 힘을 제한하고 확언의 효력을 떨어뜨립니다.
심리치료
문 : 저는 정신분석일에 종사합니다. 분석비용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는데, 이 일에 놓아버림 기법이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상충될까요?
답 : 놓아버림 기법을 연구한 치료자들은 그 효과에 동의합니다. 기법을 배워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치료자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바로 활용결과에 대한 평가는 100% 긍정적입니다.
부정성과 자기 한정을 놓아버릴 수 있는 환자의 능력덕분에
이른바 "겪어 내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치료가 훨씬 빠르게 진전됩니다.
심리치료자들 스스로도 놓아버림을 하면
환자를 이해하거나 환자에 대해 느끼는 역전이
감정을 해결하기 쉬워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놓아버리는 법을 아는 치료자는
치료과정에서 자신에게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의 효과가 좋아지고
치료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문 : 저는 집단 심리치료에 종사합니다. 항복기제를 사용하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답 : 개인 심리치료의 경우와 똑같이 내면의 부정적 감정을 항복하는 능력이 커지면 집단 치유가 매우 쉬워집니다.
문 : 저는 융 학파 분석가입니다. 놓아버림 접근법이 저의 일과도 맞을까요?
답 : 항복을 통해 원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형도 분명 신념과 감정이 모인 것이고,
따라서 모든 신념이나 감정처럼
일종의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래밍된 신념과 감정을 놓아버리는데
항복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원형패턴에 무의식적으로 휘둘리기 보다는
그에 대해 선택할 힘을 갖습니다.
알콜중독과 약물중독
문 : 저는 "익명의 알콜중독자들" 모임에 나갑니다. AA모임 사람들 중에 놓아버림 기법에서 혜택을 얻은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 : 놓아버림 기법을 행하면 "익명의 알콜 중독자들"에서 교육 중 하나인 12단계 밟기가 굉장히 쉬워지는 것을 공통적으로 경험합니다. 특히 3단계가 그렇습니다. 3단계에서는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든 그 신의 보살핌에 의지와 인생을 넘길 결심을 했다라고 진술합니다. 바로 이 3단계에서 좌절을 겪는 aa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런 요령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이나 어떤 높은 힘의 보살핌에
의지와 인생을 넘기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지라는 것을 살펴보면 의지는 욕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욕망은 애착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항복기제를 사용하면 애착에서 벗어나기 쉬워지기 때문에 항복기제는 기제의 의도면에서 3단계와 거의 같습니다.
신에게 항복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놓아버림을 뜻합니다.
고집은 에고 그 자체입니다.
음주강박은 강제되는 상태, 애측으로 인해 강요받은 상태입니다. 이 강박을 항복과정으로 약화시켜서 줄일 수 있습니다. 음주는 또한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면 음주라는 특정형태의 회피를 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줄어듭니다. 이는 다른 약물에도 적용됩니다. 그 모두가 낮은 감정을 높은 감정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놓아버림 기법은 "익명의 알콜중독자들"과 같은 자조집단의 필요성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법을 활용하면 회복프로그램으로 성공을 거두는 일이 대단히 용이해집니다. 이는 물론 12단계를 고스란히 도입한 여타의 모든 익명집단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관계
문 : 저는 오랫동안 영적인 길을 걸었는데, 왜 아직도 부정적 감정을 겪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답 ; 영적으로 발전해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치 천사인 양 부정성이 전혀없을 것이라는 공통 환상이 있습니다. 이런 환상에 젖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직도 부정적 감정이 있는 것에 짜증을 내고, 거기에 죄책감과 자기불만이 커집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감정은 일시적이고
발전하려는 의도는 변함없다는 점입니다.
천사가 되려는 야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에 대해
죄책감을 놓아버리세요.
자신이 타고난 인간적 측면과 신경계,
신경계에 따르는 뇌 기능에 대해 연민을 가지면
한결 담담해질 수 있습니다.
천국에 야심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천사가 되지 않습니다.
문 : 일에서 자기 몫을 다하지 않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를 볼때마다 울분을 느낍니다. 그러고 나면 그에게 분개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 상황에서 놓아버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 상황에 대해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를 알아채고 이를 인정한 다음, 감정적 상태에 탐닉하기 보다 감정을 치우는 일에 들어갑니다. 일터에서는 억울한 심정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갈등이 곪아 터지게 됩니다.
놓아버림 기법을 쓰려면
내면으로 들어가서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는대로 인정하세요.
감정을 억제하지도 말고 터뜨리지도 말고,
올라오게 놓아두세요.
그런 다음
주의를 감정에서 다른 데로 돌리세요.
감정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없어지게 하세요.
문 : 주의를 부정적 감정에서 다른 데로 돌릴 것을 권하시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감정을 억압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답 : 억압은 받아들이지 못한 감정을 자각 밖으로 밀어내어 상대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과정입니다.
주의 전환은
부정적 감정에 탐닉하지 않을 것을 택하는 행위입니다.
내면의 감정을 인간적 일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나아가 감정을 없애기 위해
선택하는 행동은 평화와 조화,
일의 완성같은 더 높은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의를 돌리는 방법으로 가구배치를 조금 바꾸거나 창문 블라인드를 올렸다 내렸다하거나,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거나, 커피 한잔하는 시간을 갖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이에 감정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일어납니다.
문 : 어김없이 기법을 사용하는데도, 어떤 감정들은 아주 재발하는 것 같더군요.
답 ; 부정적 감정이 자주 재발한다면 재발 패턴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부모나 기타 가족이 하는 방법을 답습한 것이거나 자신이 속한 문화를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감정을 다루는 법은 각 문화마다 차이가 큽니다.
그러나 감정반응의 바탕에 깔려있는
무의식적 패턴을 살펴보고,
그런 패턴을 놓아버리세요.
문 : 놓아버리려는 의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 감정이 지속되면 어쩌지요?
답 : 어떤 상황에 항복할 것을 거의 강요받다시피 하면서 이런 상황은 카르마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하고 짐작만 할때가 있습니다.
영적 탐구를 해보면
이런 상황은 정말로 카르마적임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많은 이에게 못되게 굴었던
카르마를 갚는 중이라고 합시다.
이제 사람들이 내게 못되게 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 기회를 얻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취할만한 행동으로 유일하게 남은 것이
카르마적 패턴에 항복하는 것일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카르마를 종교 교리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주는대로 받는 법이라는
사람사이의 상호작용 기본법칙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법칙은 그렇지만
우리 대부분은
항상 성자처럼 살지는 못하고 있으니까요!
문 : 저는 교사인데, 짜증나게 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습니다. 교사인 저는 그런 짜증을 극복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조언을 주실수 있을까요?
답 : 짜증이 났으며 그렇게 짜증나도 괜찮다는 사실부터 먼저 받아들이세요. 그런 짜증은 인간의 의식이 치러야 하는 대사일 뿐입니다.
짜증이 완전히 올라오게 놓아두고,
거기에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말고
특정개인에 대한 것으로 보지 마세요.
짜증에 저항하지 말고
도리어 짜증이 더 나게 해달라고 하세요.
짜증은
단지 부정성의 에너지란 점을 보세요.
그러면 짜증이 특정인에 대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자문합니다.
이 에너지를 기꺼이 놓아버릴 것인가?
그러면
대게 에너지가 사라질 것입니다.
문 : 저는 금실이 좋은 편입니다만 배우자가 짜증나고 불만스러울 때도 있고, 배우자와 의견충돌이 있을때도 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과 짜증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답 : 짜증이 나도 괜찮다는 점은 이미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감정은 인간적인 면일 뿐입니다.
우선 할일은
상대방이 문제 삼는 바와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개개인 모두
사고방식이 다르고
선호하는 바가 다릅니다.
선호하는 실내 온도나 음량이 다르고
돈 쓰는 방식이 다른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문제의 열쇠는 상대가 선호하는 바를
걸핏하면 비판하는 일과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는
이것이 "제대로"라며 자부하는 일을 놓아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각자가
상대의 인간적인 면을 받아들이고
사고방식도 당연히 때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문 :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의견차이로 인해 관계가 깨지는 것은 상대를 비난하거나 상대의 행동을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대신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요?
답 : 모든 관계에는 기복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인간이라는 상태 자체와
그 상태가 보여주는 모순과 역설에 대해
유머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은 상대가 행복하고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고,
상대가 행복하고 마음이 편할때
당신도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생활이 평화롭도록 서로 맞추어 나갑니다.
상대에 대한 비판과 비난, 통제를 놓아버립니다.
상대가 현재상태에서 달라지기를 바라는 기대를 놓아버립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기벽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기벽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환경이나 관계의 부정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갈등과 의견차이를 용인할 수 있는지 그 기간이 서로 다르고, 어느 나이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도 차이가 납니다.
문 : 아이들을 다룰때 부모에게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은요?
답 ; 아이들의 행동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 문화적 맥락과 성별, 나이, 도덕관, 기타 요소에 따라 달라집니다. 유치원에서는 봐줄 수 있는 일도 초등학교 3학년에게는 용인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기대를 놓아버려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음악가에게
음악적 재능이 없는 아이가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기대하는 것은 상대를 미묘하게 압박해
상대가 무의식중에 저항하게 만듭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당신은 기대를 걸거나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당신의 당구 솜씨가 도사라면,
아이의 당구실력이 형편없을때 실망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까?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로 과보호가 있습니다. 때로 어떤 부모는 다 자란 자녀에게 모든 곤경에서 구해내는 것을 사랑으로 혼동합니다. 어떤 나이에 이르면 사랑은 때로 "엄격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자기가 만든 혼란 상황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내게 해
자기 내면의 지략을 발견할 기회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문 : 죄책감을 너무 놓아버리면 기법으로 인해 성적으로 문란해지는 일은 없을까요?
답 : 성적문란 상태는 자존감이 낮고, 상대를 이용하려들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부정성과 이기심을 놓아버리고 상대를 배려하고 함께 있는 즐거움이 커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관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능력이 빠르게 커집니다. 성적 문란상태는 무의식적 공포를 극복해 안심을 얻으려는 시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한결 성숙한 관계가 자리잡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문 : 저는 행동 재훈련에 바탕을 둔 성 장애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도 놓아버림 기법과 상충하는 것일까요?
답 : 상충되는 점이 없습니다. 행동 재훈련은 부정적 프로그램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입니다. 난 못해를 난 할 수있어로 바꾸는 것을 본질로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놓아버림 기법으로 이루려는 바지요.
문 : 놓아버림 기법으로 발기불능이나 불감증이 치료될까요?
답 : 놓아버림 기법은 무엇을 고쳐주는 치료법이 아닙니다. 내면의 감정과 생각, 신념을 빠르게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자기 탐구기법입니다.
발기불능과 불감증 둘 다 행동수준에서
"난 못해"라고 진술하는 것인데,
그런 진술은 무의식 수준에서 난 안해를 의미합니다.
모두 환희와 사랑, 표출, 생기에 대한 저항입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억압된 죄책감과 공포, 분노같은 감정이
자율 신경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발기불능과 불감증은 갈등의 표출입니다. 놓아버림 기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 성생활이 여러면에서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성적 억제에서 회복되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적 과잉상태나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해방되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문 : 항복기제가 노화과정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답 : 우아하게 늙을 수 있게 해줍니다. 늙어가면서 생활방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대개 시력과 청력, 기동성이 떨어집니다. 이전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던 일을 다른 사람의 보살핌에 의존해 할 수 밖에 없지요. 노년 자체에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전에는 탁월하던 방면에서 어느새 무능해지니까요.
그렇지만
짜증을 놓아버리면 고령의 무능력도
나름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 덕에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삶의 어떤 분야에 여전히 스타로서 관여하고 있으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분개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 품위를 지키기가 어렵게 됩니다.
신체기능이 점차 위축되어 가면
그 덕분에 노년에 적응하고
조만간 떠날 것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지며,
세상을 떠날때까지는
원하는 영적 수행을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깁니다.
노화 과정은 인간이라는 상태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에 항복하면 노화과정과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더욱 사랑을 베풀고, 타인이 자신에게 베푸는 사랑과 보살핌에 감사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모든 이가 내게 도움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날 도울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내 삶을 돕게 한다면 내가 이기적인 거지" 그러나 실제로 돕게 하는 것이 너그러운 것입니다. 너그러움은 나의 삶을 타인과 나누려는 자발성입니다.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놓아버림 기제
문 : 더욱 끊임없이 항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답 ;
항복기제를
더욱 자주, 더욱 한결같이 사용하는 비결은
'그렇게 하려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걸음입니다. 감정을 유지하기 보다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야 합니다. 잊지 앉고 기제를 사용하기만 하면 해결될 때고 있으므로 스스로 상기하기 위한 어떤장치를 만들어 놓는 방법도 좋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일과로 정해놓는 것'입니다.
기대하는 일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항복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아주 좋습니다. 일이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마음속에 그리면서 그날 하루가 그렇게 되는 것을 방해할 만한 부정적 생각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칠때에는 자리에 앉아 그날 생긴 일중에서 대충 지나쳤거나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없었던 일을 떠올려 항복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청소하기"라고 부릅니다.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잠을 더 잘 잘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성과를 적어놓고 공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에
끊임없이 항복할 목표를 적고
이후의 결과가 어떤지를 덧붙여 적어나갑니다.
또 다른 방법은
'항복하는 일에 대한 저항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날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정성을 놓아버리겠다는 의도를 재확인합니다. 결국 항복은 전적으로 스스로 선택하느냐 선택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항복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모두 놓아버리세요.
"해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 : 항복에 저항하는 원인으로 어떤 것이 가장 많다고 보십니까?
답 : 우리는 어떤 감정을 꽉 붙잡고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 감정덕에 내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정 덕분에 내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때는
그 감정을 움켜쥐면
무슨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잘 살펴보면 좋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알게 되는 것은
그 감정이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나에 대한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상상을 놓아버리면
감정도 기꺼이 놓아버리게 됩니다.
문 : 늘 항복하면 수동적으로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요?
답 : 그와 반대로 항복하면 효과적으로 행동할 채비를 갖추게 됩니다. 상황을 처리할 대안을 찾지 못해 주저하기 때문에 수동적일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회의 때 그 인간 때문에 너무 열받아서 그냥 앉아서 아무말도 안했지" 문제가 무엇인지는 뻔합니다. 아무말도 하지 않은 까닭은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감정반응은 분노밖에 없다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즈니스 상황에서 분노반응은
절절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분노를 놓아버렸다면
입을 꼭 다무는 대신
적극적으로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했을 것입니다.
문 : 심리치료 요법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주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만두어야 할까요?
답 : 분노를 잘 살펴보면 분노의 바탕에는 항상 공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위협받았기 때문입니다. 위협을 받으면 공포가 생깁니다.
공포가 생긴다는 것은
자신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음을 뜻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분노는 상대방에게 겁을 주려고 몸을 부풀리는 것과 같습니다. 분노는 강함보다는 약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복하는 사람은 약함보다 강함에 의지합니다.
항복하는 사람은 상황을 감당하기 위해
분노에 기댈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분노에는 기댈 수도 없습니다.
또한 분노는 파괴적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예를들어, 내가 분노를 휘두르기보다는 분노가 나를 휘두릅니다. 완전히 항복한 사람은 원한다면 분노 표출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 분노는 표출하기로 선택한 것이지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는 신체기관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만성적 분노가 그렇습니다. 억압된 분노는 고혈압이나 관절염, 기타 다양한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다루는 정신신체의학의 연구결과입니다.
문 : 항복은 마음의 자연적 심리기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항복하는 법을 굳이 배워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답 : 항복이나 놓아버림이 마음의 자연적 기제라도 마음속에서는 다수의 동기가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일부는
감정에서 오는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감정을 움켜쥐고 있으면
어떻게든 마법처럼 어떤 원하는 목표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의식하고 자각해
기법을 완전히 익히지 않는 한
마음의 갈등에 지배당하고 장악됩니다.
놓아버림 기법을 통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마음의 경향을 선택할 능력을 얻습니다.
마음의 영향을 받는 대신
마음에 통달합니다.
기법을 통해 자유와 자유선택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문 : 저는 받아들임이 잘되지 않아 힘든 참입니다. 어떤 조언을 주실수 있을까요?
답 : 경험상 정말로 본질적인 점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어떤 날은 비가 옵니다. 어떤 날은 화창합니다. 어떤 날은 흐립니다. 비오는 날씨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우비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해 비에 젖지 않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는 있습니다.
바꾸어 놓을 수 없는 삶의 측면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와 다르기를 바라는 기대나 욕구를
놓아버릴 수는 있습니다.
예를들어
세상을 보면
어딘가에는 항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전쟁 발발도 인간본성의 일면이며
역사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류역사의 97%가
전쟁중이었습니다.
문 : 저는 제가 평생 공포와 불안에 쫒겨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쫒겨산 덕분에 경제적 성공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항복하는 법을 배운다면 저의 수입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답 :
낮은 수준의 동기를 놓버리면
마음은 저절로 높은 수준의 감정과 동기로
낮은 것을 대체합니다.
생활비를 벌되
공포에 쫒겨서하는 대신
즐기며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동일한 활동이 이어지되 즐겁게 할 수 있고,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문 : 죄책감이 없으면 못된 짓을 하지 않을까요?
답 :
앞의 대답과 마찬가지로
죄책감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하지 않게 됩니다.
더 사랑할수록 우리는
타인과 사회전반에 대해
더욱 무해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타인의 안녕을 염려할 때,
자신의 안녕도 보살핌을 받고
해결됩니다.
문 : 저는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저도 놓아버림 기법을 익힐 수 있을까요?
답 : 기법을 익히기 위해 외워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놓아버리는 방법일 뿐입니다. 기법을 익힐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문 : 어떤 때는 제가 놓아버릴 줄 아는 것 같은데, 또 어떤 때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답 : 항복과정 자체에 대해 저항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기법대로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 생각이나 의심, 감정이 듭니까? 이런 저항이 모두 올라오게 해서 받아들이고, 놓아버리세요.
더욱 행복하고 더욱 사랑하고
더욱 평화로운 사람이 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세요.
궁극에 대한 항복
문 : 대단히 깊은 항복은 궁극의 현실을 경험하는 수단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묘사해 주실수 있습니까?
답 ; 그런 항복을 가리켜 "최종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놓아버림 기법을 삶의 모든 방면에 예외없이 적용하면
영적수행의 에너지가 점점 더 강해집니다.
무슨일이 벌어지든 주의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기법수행이 이루어집니다.
30년동안 영적수행을 하다 말다 했더니 그 자리 그대로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명상 조금하고, 저기서 기도 조금하고, 워크숍에도 가고, 강연도 듣고, 책도 읽고 하는 식으로 수행이 늘 산발적입니다. 다 괜찮습니다. 세상일로 바빠서 그런 것이고, 지금 축적하는 정보들은 나중에 가서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무슨 수행이 되든
예외없이 24시간 할때가 옵니다.
진리에 대한 헌신이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스스로 밀어붙여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이 끌어 당기는 것입니다.
궁극의 운명을 선택한 카르마로 인해 전념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점에서
항복기법을 사용한다고 합시다.
일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을 항복하고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사건이
1만분의 1초동안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정점에 이르고 사라집니다.
즉
모든 감정, 모든 생각, 모든 욕망을
그 정점에서 놓아버립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연속적으로 쉼없이 이루어집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
저는 11일에 걸쳐
어떤 심한 애착을 놓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애착을 놓아버리는 일만 했습니다.
그에 대한 모든 생각, 모든 감정, 모든 기억을 놓아버렸습니다.
어떤 것이 올라오면 바로 그것을 항복했습니다.
가족의 일원을 잃었을때 비탄을 느끼는 것은 단지 그사람이 여기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전쟁에서 겪은 모든 죽음으로 축적된 에너지가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항복이
11일간 밤낮으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멈추었습니다.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결코 다시는 그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진지한 영적수행이란
일이 생기는 대로 끊임없이 놓아버리는 자발성입니다.
만사를 통제하고 싶은 바람을 항복하는 자발성,
만사를 바꾸어 자기 좋을대로 하고 싶은 바람을 항복하는 자발성입니다.
아주 빈번하게 현실의 본성에 대해 환상이 생길텐데, 그또한 놓아버려야 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존재한다는 환상입니다. 이것은 모두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현실에서는
태양이 빛나고 구름이 몰려옵니다.
비가 내리고 풀이 자라고 시듭니다.
주식값이 올라가고
떨어집니다.
자라나고 늙어갑니다.
사람들이 나타났다 떠나갑니다.
그렇게 밀려왔다 밀려갑니다.
우리가 이와같은 순환의 한 지점에 있다면,
순환에 대해 울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순환이 제 스스로 순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환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항복하면
결국에는 순환이 사라집니다.
순환과 하나되기를 선택하고
순환이 일어날 때
순환을 바꾸어 놓으려는 바람을 거부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렇게 하세요.
무슨일이 있더라도 쉼없이 하세요.
이는
여기서 예외를 허용하고
저기서 예외를 허용할 수는 없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대해
끊임없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외를 허용한 한두가지가
실은 한 무더기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두가지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 한두가지가
자신에게는 그 에너지가 쌓인 무더기 전체를 상징합니다.
며느리라면 시어머니를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에는 임재로 가는 길 앞에 놓인 모든 것을 항복합니다. 임재는 너무나 뚜렷하고 너무나 놀랍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임재는 깊고 전체적이고 모든 것을 아우르고 절대적으로 압도하고,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고 오해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임재로 가는 길 앞에 놓인 모든 것을 항복할때, 임재가 그곳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미래의 어떤 일로 여기지 말고
지금 받아들이세요.
깨달음은 50년 동안 다리를 꼬고 앉아
"오움"하고 만트라를 외운 끝에 일어나는
미래의 어떤 일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바로 여기에,
이 순간에 있습니다.
이 완전히 평화롭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지 못하는 까닭은
깨달음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에 저항하는 것은
이순간을 통제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의 경험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놓아버리면
이 순간이 음악의 음색인 양 끊임없이 항복하면
정밀하게 끊임없는 상태의 물마루에서 살게 됩니다.
음악의 한 음처럼 경험이 생겨납니다.
음을 듣는 순간,
음은 이미 지나가버립니다.
그렇게 매 순간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다음 순간에 대한 기대를 놓아버리고
이 순간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놓아버리고,
지나간 순간을 붙들려는 노력을 놓아버리세요.
방금 일어난 일에 매달리지 말고 놓아버리세요.
곧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일을
통제하지 말고 놓아버리세요.
그러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공간속에서 살 것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가 존재합니다.
이제 나는 집에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이를 미래의 어떤 일로 여기지 말고 지금 받아들이세요. 깨달음은 50년 동안 다리를 꼬고 앉아 "오움"하고 만트라를 외운 끝에 일어나는 미래의 어떤 일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바로 여기에, 이 순간에 있습니다. 이 완전히 평화롭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지 못하는 까닭은 깨달음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에 저항하는 것은 이순간을 통제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의 경험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놓아버리면 이 순간이 음악의 음색인 양 끊임없이 항복하면 정밀하게 끊임없는 상태의 물마루에서 살게 됩니다
음악의 한 음처럼 경험이 생겨납니다. 음을 듣는 순간, 음은 이미 지나가버립니다. 음을 들은 순간, 음은 이미 사라집니다. 그렇게 매 순간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다음 순간에 대한 기대를 놓아버리고 이 순간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놓아버리고, 지나간 순간을 붙들려는 노력을 놓아버리세요. 방금 일어난 일에 매달리지 말고 놓아버리세요. 곧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일을 통제하지 말고 놓아버리세요. 그러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공간속에서 살 것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가 존재합니다. 이제 나는 집에 있습니다.
놓아버리고 신께 맡기라.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라.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그 신의 보살핌에 인생과 의지를 넘기라.
있는 그대로 항복하라. 신은 만물속에 있으므로"
읽기!!!
놓아버림 몰입중!!!
그러다가 무슨 수행이 되든 예외없이 24시간 할때가 옵니다. 진리에 대한 헌신이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스스로 밀어붙여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이 끌어 당기는 것입니다. 궁극의 운명을 선택한 카르마로 인해 전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