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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타락
히브리서 6:4~12
우리는 지난 주 수요일에 신앙을 가진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자라지 못한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당시의 성도들을 향하여 책망하는 말씀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자로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향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앞으로 전진해가라고, 영적으로 성장해가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이렇게 권면한 이유는 그들이 지금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고,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저버릴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인 히브리서 6장 4절 이하에서는 더 강력한 경고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것은 4절로부터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여기서 보면, 타락한 자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타락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파라핍토’는 ‘옆으로 떨어지다, 미끄러지다, 배교하다’는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참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변질된 상태로 나아간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깊이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고 확정적인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새롭게 될 수 없고 회개조차 불가능할 정도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 사람은 영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영적인 은혜를 받은 정도를 4절과 5절에서 다섯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타락자는 한번 빛을 받은 자입니다. 여기서 빛은 영적인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는 바, 캄캄한 마음 속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라는 지식의 빛이 환하게 비추어졌을 때에 이 가르침을 받고 그 영혼이 환한 영적 계시의 빛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이 타락자는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던 자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극적인 병고침을 받았으며, 기도를 통하여 삶의 큰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는 은혜도 받았습니다.
셋째로, 이 타락자는 성령에 참여한 자였습니다. 성령에 참여했다는 말은 성령의 활동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의 통로가 되어 쓰임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바대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병을 고치기도 했으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넷째로, 이 타락자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본 자였습니다. ‘맛보다’라는 단어는 깊이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했고 그 말씀이 그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에게 주어진 말씀대로 그의 주변이나 환경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는 경험도 했습니다.
다섯째로, 이 타락자는 내세의 능력도 맛보았습니다. 신비한 체험을 통하여 천국을 보기도 하고, 지옥을 보기도 했습니다. 천사들의 모습도 보고 천국의 아름다움과 평안과 행복을 지상에서 맛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할 때에 거듭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사람은 신앙의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생각됩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 충만함을 경험한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 깊은 체험을 간직한 영적인 고수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타락할 수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멸망당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러한 일들이 신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노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고 대상이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이거나 교회 안에 있는 가짜 성도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구원받아야 할 연약한 성도들, 배교의 위험에 노출된 성도들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이 매우 강력하고 심각한 타락의 경고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대상은 분명 기독교인으로서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도들은 여기서 말한 바 다섯 가지의 경험들을 대부분 경험한 성도들임이 분명합니다. 진리의 빛, 구원의 깨달음의 단 한번의 빛을 받았고 그 때에 예수님을 구주라고 영접하고 시인한 사람들이요 그들은 하늘의 은사들, 선물들을 경험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성령의 동역자로서 일한 바 있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이 자기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고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지상의 신앙 생활에서 맛보고 있으며, 아주 예외적으로 사도 바울처럼 천국과 지옥을 그 영혼이 환상 중에 보고 온 경험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타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렇게 영적인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타락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러한 실제 예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방 선지자 발람은 분명 성령의 감동도 받았고 천사도 보았고 나귀가 말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신령한 예언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재물과 권세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축복하시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는 악랄한 방법을 모압과 미디안 족속들에게 전수하여 해를 끼쳤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군대의 칼에 의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발람은 하나님의 음성도 여러번 들었고 칼을 든 천사도 보았고 심지어 나귀의 경고하는 말도 들었고 여러번에 걸쳐 성령의 강한 감동 속에서 놀라운 예언들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거역했고 재물과 권력의 자리를 얻으려고 하나님 백성들을 해치는 계교를 알려주는 악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영에 깊이 사로잡혔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더라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에 삼손도 성령의 감동을 강력히 받았으나 이방 여인과의 육신적인 애정의 유혹에 넘어가 쓰러지곤 했으며,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았던 다윗도 크게 넘어진 바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삼년이나 예수님과 동행했으며 성령에 참여하여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친 바 있었으며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화의 모습도 본 적도 있었건만 예수님이 잡힐 때 다 도망쳤으며 베드로는 여자 종 앞에서 자기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한 때 바울의 동역자로서 열심히 일했던 데마라는 젊은 사역자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두 번째 투옥하여 순교를 앞둔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는 사명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에도 이러한 배교가 영적으로 깊은 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던 영적인 지도자에게서도 얼마든지 나타난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 이하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21~23)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말씀과 예증들을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던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미끄러질 수 있고 변질될 수 있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깊은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고도 넘어진 자들은 다시 새롭게 되어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확실한 주장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전도하다 보면 이전에 교회도 다녔으며 직분도 받아서 열렬히 활동도 했던 사람이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 목사, 권사의 직분도 받았으며 많은 활동을 했던 사람이 이단과 사이비의 유혹에 굴복하여 이단 교주를 찬양하는 사람도 눈에 띄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의 특징은 복음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더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더 고약한 신앙의 대적자들이 되어 버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음이 지극히 완악해져서 복음 전도를 받을 때 자기도 다 교회 다녀보았다고 말하고, 은사도 받았었다고 말하면서 신앙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깊게 타락하고 변질되어서 마치 양심이 화인맞은 것처럼 굳어져서 결코 다시 새롭게 되거나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의 타락은 본질적으로 근본을 파헤친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6절 말씀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되어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그들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것과 같은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다고 고백하였으며 세례를 받았으며 성령의 은사를 받아 주의 이름으로 열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변질되어 이제는 그 반대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룩함 대신에 악취나는 행위를 하고 심히 부도덕한 행위를 공공연하게 행하고 이단과 사이비에 속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악하게 비난하거나 거짓 그리스도를 열렬하게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놓고 모욕한 것과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차라리 진리의 말씀을 몰랐더라면 좋았을 뻔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기 이전에 극렬한 악을 행하였으나 진리의 빛을 그 심령에 받고 성령에 참예한 후에 완전히 달라져서 핍박자의 삶에서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핍박을 달게 받는 열렬한 전도자로 탈바꿈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복음을 전혀 몰랐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처럼 주님을 만난 후에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큰 은혜 속에 있다가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고 그 영혼이 타락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한 히브리서 저자의 말씀을 우리는 정말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이 그 앞서서 가르친 바 신앙의 진보가 없고 믿은 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영적인 어린 아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영적인 선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지낸 성도들에 대한 경고에 이어진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만약 영적으로 어린 아이에 계속 머물면서 안일하고 게으른 영적 상태를 지속하고 진보하지 않는다면, 이렇듯 타락의 위험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써 주어진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주는 이유는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 중에 한 때에 뜨거웠고 한 때에 열렬했고 한 때에 성령의 은혜 속에 살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타성에 젖어서 이제는 뜨뜻미지근한 상태에 있어서 이런 저런 유혹과 강력한 핍박을 만나면서 완전히 타락하고 주님을 저버릴 위험을 겪을까 히브리서 저자가 심히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일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자 몸부림쳐야 합니다. 한 때 뜨거웠던 은혜의 과거만 자랑하다가 얼마든지 회개할 수 없는 타락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히브리서 저자는 밭의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앞에서 말씀한 경고의 가르침을 재 강조합니다. 7절로부터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면 밭은 사람의 심령을 가리킵니다. 채소는 좋은 신앙의 열매를 상징하고 가시와 엉겅퀴는 악한 불신앙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때를 따라 풍성히 내려주실 때에 사람의 마음 밭이 그 은혜의 단비를 받아서 좋은 채소를 풍성히 내면 그 마음 밭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께서 각종 은혜를 주셔도 내는 것이 가시와 엉겅퀴처럼 먹지 못할 못된 열매를 맺으면 결국은 그 마음 밭은 불살라지고 황폐하게 버려둠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살라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원한 불의 심판, 지옥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렇게불타는 밭의 이미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로써 다시 한번 히브리서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한껏 경고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이어지는 9절로부터 12절까지의 말씀에서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베풀어줍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이 편지에서 편지를 받는 자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 만큼 이 말씀은 따뜻한 위로의 말입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심각한 경고의 말씀을 받는 성도들이 혹시라도 낙심하고 의기소침할까 걱정하였기에 이렇게 그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면서 자기의 애정을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최악의 나무람과 경고를 하는 것도 그 자녀를 미워하고 싫어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히브리서 저자가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무서운 타락의 경고와 심판의 위협의 말씀을 심각하게 말씀한 것은 그만큼 그들을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이요 그들로 그 경고를 받아 한 사람도 타락하는 자가 없기를 바람 때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편지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 아까 경고했던 것과 같은 타락의 심각한 위험에 빠질 자는 없는 것을 확신한다고, 그들보다 훨씬 나은 신앙의 상태로 구원받는 자들일 것을 확신한다고 여기서 격려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이유에 대하여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함께 10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성품을 환기시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들이 행한 일 곧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성도들을 그 동안 섬겨왔던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그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결코 잊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과거에 행한 우리의 수고를 자기를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인정하시고 그렇게 행한 우리의 모든 수고와 열심과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고 그것을 자기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믿음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우리를 잊지 않고 붙잡아 주시고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 때에도 과거의 충성을 기억하시면서 계속 기억해주시고 알아주시고 붙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과거에 뜨거웠던 사랑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끝까지 기억하시고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자손들의 영혼과 삶까지도 신실하게 갚아주심을 믿으시고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저자는 앞으로의 신앙의 지속적인 헌신과 성장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11절과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 동안 계속 강조했던 바를 다시금 반복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지속적인 수고입니다. 끝까지 변함없는 충성됨입니다. 안일하지 아니하고 게으르지 아니하고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핍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오래 참아 부활의 주님의 복음을 꼭 붙들고 승리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강력한 핍박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너무나 크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믿음의 선배들도 그러한 시험을 다 겪었으며 그러한 시험 가운데 끝까지 오래 참고 믿음으로 싸워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 엘리야, 엘리사, 다니엘 구약의 용사들이 다 그렇게 시험과 압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의 그 승리를 기억하면서 동일한 신앙의 견고함으로 이겨냅시다. 그리하여 타락의 위험이 점점 커지는 이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한 사람도 실족하여 물러가는 자가 없고, 위에서 부어주시는 은혜의 단비를 맞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신앙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서 천국 창고에 다 거둬들이고 우리가 행한 모든 수고를 따라 주님 앞에서 기억하시고 귀한 상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