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채구(九寨溝) 관광
황룡지구 관광을 마친 우리는 다시 川主寺 마을로 돌아와 하나뿐인 한식당에서 점심과 비슷한 메뉴의 저녁을 먹고
마을규모에 비하여는 제법 크고 훌륭한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그러나 호텔은 난방시설이 미비하여 개인 침대마다 전기요를 켜고 자야했는데 하루정도는 불편하지 않았으며
아침에 일어나니 온수가 나오지 않아 냉수로 대충 씻고 나와야 했다.
호텔식당의 아침메뉴는 많이 부실한 편이어서 빵과 감자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어서 놀라웠다.
구채구(九寨溝)는 고도 3,100m인 川主寺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계속 내려만 가면 나타나는데
구채구(九寨溝)란 아홉개의 티벳 마을이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3개의 마을만 개방되어 있고 6개의 마을은 개방되지 않았으며
개방된 3개의 마을은 민속촌이라는 이름으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판매시설로 변해 있었다.
이 3개 마을의 원주민은 많은 돈을 벌어서 成都같은 대도시로 떠났고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영업행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구채구(九寨溝)에는 모두 114개의 바다(海)가 있다고 하는데
티벳사람들이 바다를 못보아서 너른 물을 바다라고 불렀지만 바다를 알고 나서는 바다의 아들, 즉 海子라고 부른다고 한다.
說에 의하면 원래 이곳은 모두가 바다였으나 지질변화을 겪어 지금의 구채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구채구는 마침 일요일인지라 현지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매우 혼잡하였으며
입장권을 끊어서 들어가면 구채구지역내에서는 인가된 셔틀버스만 타고 이동하게 되어 있다.
셔틀버스는 계곡전체를 왕복 운행하는데 보고싶은곳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고 이동하는것은 자유롭게 몇번이고 가능하다.
<구채구까지 타고온 각각의 버스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어서 입구로 가야한다>
<구채구 입구... 표를 끊어서 안으로 들어간다... 놀이공원 입구 비슷하다~>
<국가지질공원 구채구...라는 표지석>
구채구 공원 안으로 들어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놀이공원에서 사파리 버스 타는 느낌이다.
입장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는 운전기사 뒷좌석이 풍경감상에 좋다하여 뛰어 올라가 약간 높은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구체구 지역내 셔틀버스... 여러번 환승이 가능하나 중간에, 또는 마지막쯤에 불쑥 승차권 검사를 한다>
버스가 출발하자 왼쪽편으로 흐르는 물을 따라 경치가 정말 좋았다.
초기에는 파랗게 흐르는 강물의 좌우에 밀집한 갈대밭이 한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려보인다.
그러다가 물길이 넓어지면서 주산지 분위기의 장면들이 나타나고 드디어 큰 호수가 보이다가 폭포도 보이곤 한다.
흐르는 물과 지형이 좁고 깊은 협곡이 아니라 느리고 넓고 완만하며 넉넉한 흐름의 강변 분위기이다.
이렇게 대략 40Km, 즉, 100리가 넘는 길이로 계속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지며 특히 새파란 물빛이 인상적이다.
마침 찾아간 계절이 단풍철인지라 형형색색의 나무 숲과 호수, 폭포들이 믿기 어려울만큼 아름답게 이어진다.
게다가 황룡지구에 비하여 대략 2,000m 높이의 저지대(?) 인지라 고산증세도 없이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다.
<옥빛 물줄기 좌우로 빼곡하게 자라난 갈대 숲이 넘 멋지다... 초입의 풍경이다>
<강폭이 넓어지면서 심어진 나무들을 광범위하게 휘감고 흐르거나 제법 落差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티벳인들이 바다라고 불렀을법한 너른 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ㅇ 오화해 (五花海)
우리는 거의 최상류 끝부분인 '오화해(五花海)'부터 관광을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오화해(五花海)란 해발 2,472m에 이루어진 9만평방미터, 수심 9m의 호수인데 흙과 산체가 무너져내려 막히면서 생긴것이며
칼슘, 마그네슘, 동이온등의 광물질과 이끼, 수조류등이 있어서 햇빛 아래서는 녹색, 파란색, 보라색등 다양한 색을 띄우는바
그 모양이 공작을 방불케하여 일명 '공작호'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오화해(五花海).....새파란 물빛과 물속에 잠겨 썩지 않고 있는 나무들... 환상적이다.>
<산그림자 드리운 오화해(五花海)는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이다.>
<필자...>
때마침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는 산허리에 살짝 비구름을 걸치더니 호수면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채색된 숲으로 가득찬 산골짜기와 칼슘의 광채로 파랗게 빛나는 물빛...
거기에 비쳐진 푸른하늘과 흰 구름들이 호수에 투영되니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요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아닌가?
ㅇ 眞珠灘(진주탄) 폭포
五花海(오화해) 아랫쪽에는 영화 '서유기' 촬영으로 유명해진 진주탄 폭포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보던 단순히 흐르는 물이 지형의 落差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그런 폭포가 아니라
계곡전체의 지형을 따라 강물이 흐르듯...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폭포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그런 모습의 폭포였다.
(그래서 그냥 진주폭포...라고 하지 않고 여울 '灘'자를 붙여서 진주탄 폭포라고 하는듯 했다)
해발 2,433m에 위치한 진주탄 폭포는 폭 163m, 높이 21m, 낙차 40m로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물살이 센곳이다.
<물결이 조금씩 빨라지는 격랑(激浪)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주변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폭포...실제로 여울을 이루며 흘러가듯 계곡지형 전체를 덮어버린다.>
ㅇ 점심 식사
점심은 구채구 경내에 단 하나뿐인 식당에서 모든 사람이 뷔페식으로 동시에 먹는다.
2층 건물이 어찌나 넓은지 수천명이 함께 먹어도 될듯하고, 가운데는 쇼핑센타까지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음식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90위안인듯한데 부분적으로는 140위안짜리도 있다.
<식당 전경.. 뷔페식인데 우리나라 군대식판 같은것에 덜어 먹는다...수백명 좌석이 몇곳인지 모른다...>
<식당 가운데 쇼핑센타 모습.....주로 소수민족들이 만든 수제 기념품을 판다.>
<오후에는 비가그치고 햇살이 비추어 오히려 관광 하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가 되었다....식당 밖 풍경~>
ㅇ 犀牛海(서우해).... (犀牛는 무소, 즉 코뿔소를 말한다)
오후에 첫 순서는 '코뿔소 바다'로 불리는 犀牛海(서우해)를 먼저 둘러 보았다.
해발 2,315m에 평균수심 11.7m....구체구 제2의 큰 호수인데 마침 오전내 내리더 이슬비가 그치고 나니
하늘은 더 맑고 푸르르며 단풍의 채색이 보다 더 뚜렷하게 살아나면서 수면에 비쳐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야말로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호수인지?... 어린시절 프리즘으로 보는 새상 같았다.
ㅇ 老虎海(노호해)
이어지는 '노호해'도 참 멋진 곳이다. (여기서 老虎라 함은 늙은 호랑이라는 뜻이 아니라 경칭으로 '老'자를 붙인다고 한다)
특히나 산아래 물을 따라 곱게 물든 단풍이 물에 비치고 하늘에 비쳐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많은 카메라를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누구 한사람 이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老虎海 아랫쪽으로 樹正瀑布(수정폭포) - 公主海(공주해) - 磨房(마방, 제분소) - 樹正群海(수정군해)....등으로 이어지며
제분소에서는 티벳마을 하나를 볼 수 있는데 이곳이 (9개 마을중) 2번째 마을이다.
<樹正瀑布(수정폭포)>
<公主海(공주해).... 수심이 17m나 된다. >
磨房(마방)은 밀가루나 곡식을 빻던 제분소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연자방아 같은것을 물의 힘으로 돌리는 물레방아이다.
다만 그 돌아가는 회전축을 이용하여 라마교 경전을 써붙인 '수경전'이 함께 돌아가게 하였는데
티벳사람들은 경전을 직접 읽지 않아도 깃발에 써서 세워놓은 경전이 바람에 펄럭일때마다
또는 수경전이 한바퀴 돌아갈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은것과 같은 효과라고 믿기때문이다.
<판잣집 같은것이 제분소... 펄럭이는 깃발은 라마교 경전을 적어놓은것이며, 아래는 水車를 이용해서 경전통을 돌리는 모습이다>
< 9개마을중 2번째 티벳 마을.... 기념품 판매점이 되어버렸다.....>
<9개의 마을을 상징하는 9개의 탑... 자기들은 조금 크게 만들었다>
<樹正群海(수정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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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成都(성도) 관광
구채구 관광을 마친 우리는 다시 해발 3,500m의 九寨黃龍 공항으로 올라가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40분을 날아 이틀만에 成都로 돌아왔다.
<다시 공항으로 올라 가는 길>
<九寨 黃龍 공항....>
成都에서의 저녁메뉴는 현지식사였는데 누군가가 成都에서는 '훠구어'를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샤브샤브 요리를 말하는데 가이드에게 미리 통보하여 적당한 곳을 예약하였으며 추가요금을 1인당 10불씩 부담하였다.
일종의 모듬 샤브샤브요리로서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등 육류와 야채...그리고 중국식 만두와 빵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가운데 육수국물을 끓이는 그릇은 2중으로 되어있어 안쪽의 작은그릇은 매운맛 육수가... 바깥쪽은 안매운맛 육수가 끓게되는데
먹고 싶은대로 넣어서 익으면 꺼내어 깨기름에 다진마늘과 소금을 넣은 양념에 찍어서 먹는다. 요청하면 리필해준다.
<샤브샤브 요리....원형식탁에 둘러 앉아서 함께 먹는다..>
ㅇ 武侯祠(무후사)
성도 시내에는 삼국지에서 촉한을 세운 유비의 무덤과 사당이 있다.
물론 형제의 연을 맺어 (도원결의) 그를 도운 장비와 관우, 그리고 천하의 재사 제갈공명의 영정들도 함께 모셔져 있는데
사람들은 유비보다는 제갈공명을 더 기억하여 (제갈의 死後 봉직인) 무후를 모신 사당이라고 '무후사'로 부르고 있었다.
<촉한을 세운 유비의 궁전이 있던 자리... 시내 중심가인 '天府(천부)광장'이다..>
<成都시내에는 2층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유비의 묘가 있는 '武侯祠(무후사)' 입구.... 분명히 한나라를 세운 유비의 사당이라는 漢昭烈廟(한소열묘)라고 씌여있지만
다들 무후사라고 부르는데 즉, 유비의 사당이지만 (뒷편에 함께 모셔진) 제갈공명의 사당을 더 높이 평가하는것이다.
<漢昭烈廟(한소열묘)...즉, 武侯祠(무후사) 입구...>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중문에 걸려있는 현판 하나...
明良千古의 明글자가 날 日자가 아니라 눈 目자를 썼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유비가 (자신의 능력은 많이 모자라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서 제갈과 방통, 관우와 장비등 사람들을 잘 골랐기에
(천고에 밝은 눈이라고) 눈 目자로 썼다고 하니 중국사람들의 뜻글자에 대한 생각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글자이다.
<유비가 모셔진 사당....>
<왼쪽 (보는사람은 오른쪽)에는 손자가 모셔져 있다>
<오른쪽.... 아들이 모셔져 있던 자리는 모두 치워지고 아무것도 없다
즉, 촉한이 망할때 손자는 최후항전을 주장했지만 아들은 쉽게 투항을 주장했기에 그리 되었다는 설명이다>
유비와 아들, 손자의 자리에서 오른쪽에는 제갈공명이, 왼쪽으로는 장비가 모셔져 있으며
길게 회랑을 지어 역시 오른쪽에는 문관들이, 왼쪽에는 무관들이 모셔져 이름과 업적등이 적혀있다.
<제갈공명... 재상이었지만 死後 '武侯'로 책봉받아 면류관을 쓰고 있다>
<장비... 아들들과 함께...>
<문관들...>
<무관들...>
유비의 사당을 지나니 비로소 제갈공명의 사당인 武侯祠(무후사)가 나온다.
<제갈공명이 모셔져 있다... 제갈공명을 얼마나 존경하고 추앙하는지 알것 같다.>
<三義廟(삼의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어 3형제가 되었기에 한곳에 모셨다>
<유비의 묘...높이 12m, 둘레 180m로 중국 황제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사적지이다>
武侯祠(무후사)를 둘러 본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錦里거리...우리의 인사동 비슷한 옛길을 걸어보는것으로
3박4일 동안의 중국 사천성 黃龍(황룡), 九寨溝(구채구) 여행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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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중국에서 山水가 가장 빼어나다는 四川省에는 모두 6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다.
우리가 둘러본 황룡, 구채구외에 낙산대불, 아미산, 청성산, 도강은수리공정(댐)이라고 하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風景의 백미라는 황룡과 구채구를 보았으니 여한이 없겠다.
(중국사람들도 사천성을 찾았으되 황룡과 구채구를 못보았다면 다시 가봐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마침 찾아간 날자가 10월중순.... 산위에는 눈이 내려 쌓이고 산아래는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절경~
년중 가장 아름다운 때에 찾아가는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사실 황룡과 구채구는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곳이고 최근들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곳이지만
이미 십여년전부터 유럽사람들과 일본인들이 즐겨 찾던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였던 것이다.
교통이 불편한 오지이긴 하지만 자연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이승의 선경'이라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계절적으로는 11월 하순부터 다음해 3월중순까지는 동절기 관계로 여행이 어렵다는 評이지만
겨울을 즐기는 사람은 일부러 그 기간에 찾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산동성은 왼쪽으로는 티벳자치구가... 아랫쪽으로는 운남성이 있는 곳에 위치하여
서북쪽으로는 매우 높은 고산지대에 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티벳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 티벳族 이야기
사천성에서도 오지인 황룡과 구채구 지역에 산재한 티벳인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 몇가지를 재미삼아 올려봅니다.
아다시피 중국은 강력한 인구억제정책을 추진중인바, 한족은 1명, 기타족은 2명까지 아이를 낳을수 있으며
이를 추가하면 벌금을 내야하는데 그 벌금은 사는곳이나 민족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더 낳으면 벌금을 안내려고 등록(출생신고)를 안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나중에 학교를 보낼수가 없게 된다.
결국 더 비싼 학비를 부담해야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관계로 인구조사 결과 13억이라는 말을 믿을수가 없다고 한다.
티벳족은 대략 5종류의 부족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다부다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부다처제도란 예컨대 부부가 살다가 남편이 대도시로 돈벌러 나가서 다른여자와 살면 부인은 다른 남자와 살게 되는데
전남편이 돌아오면 새남자에게 비켜달라고 하여 다시 예전의 부부가 살게 되고... 남편이 떠나면 다시 그남자와 사는 식이란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잘 모르고... 대부분 엄마의 성씨를 갖고 산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사망하면 水葬(수장)을 지내는 풍습... 그래서 생선을 잘 안먹는다고 하며
어른이 사망하면 정상적인 埋葬(매장)을 하고, 스님이나 유명인사들은 火葬(화장)을 지낸다고 한다.
일부 티벳본토 쪽에서는 天葬(천장)을 지내기도 하는데 이틀후 다시 확인해서 새들이 먹지 않았으면
칼, 도끼등으로 시신을 조각내어 새들이나 짐승들이 먹기 편하게 해준다고도 한다.
티벳사람들은 (옛날엔) 평생 3번 목욕을 한다고 했는데 한번은 출생때, 한번은 결혼때, 한번은 죽어서라고 한다.
부부관계는 가부장적 권위가 강하여 남편이 저녁에 돌아오면 부인이 상을 차려주고 남편이 밥을 먹는동안 이불속에 누워있는데
남편이 밥을 다 먹고나면 부인은 나오고.. 따뜻해진 그자리에 남편이 들어가서 잔다고 한다.
지금에야 많이 개화되고 도시화되어 그런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중국에서의 소수민족..특히 티벳족에 관한 얘기는 재미있는 내용이 참 많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