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랭스 교구장 겸 프랑스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에릭 드 물랭 보포르(Éric de Moulins-Beaufort) 대주교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시노드에서) 여성은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혀 화제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⑴의 정신을 기리며 창립된 학술지 『정신권』(Noosphère) 7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 같은 밝히며 교회 운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구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받은 오늘날은 신앙이 대체로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면서 “교회는 인간을 마치 손 잡아줘야 하는 어린아이인 것 마냥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교, 신부는 평신도보다 더 유식하거나 하느님께 가까운 것이 아니기에,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은 하느님의 계시 앞에서 동등하다”면서 “세례를 받은 모든 평신도들의 목소리는 성직자의 목소리만큼이나 중요시 여겨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는 “능력의 문제에서 보면 여성이 제도기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더욱 많이 맡는 일을 막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 부제직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더욱 탈중앙화되고 더욱 형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결국 여성부제직을 비롯한 교회 개혁의 쟁점은 “우리가 모든 층위에서 공동합의성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공동합의성은 형제애 속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교황청이 언젠가 여성이 포함된 추기경단을 갖춘 교황에 의해 운영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교회 구조 안에서 함께 일하는 방식을 손보지 않고서는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아무 소용없을 것”이라며 “사도전승이 남성에게 안정되어 있으므로 특히 여성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여성부제와 같은 거대한 제도 변화 외에도, 여성의 시노드 투표권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해 아마존 시노드 당시 남자수도회 장상들은 의결권이 주어진 교부로 인정받은 반면, 여성수도회 장상들은 의결권이 없는 참관인 자격만이 주어진 바 있다.
그는 이 일을 두고 “만약 주교들만이 투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나마 논리적이기는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주교는 “사제와 남성 수도자들을 투표에 참여하게 한 순간부터, 나는 여성 수도자들을 투표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며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코로나19를 비롯한 전 세계 위기, 민주주의와 국수주의 등 교회뿐 아니라 시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지난해 프랑스 주교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되어 평신도의 목소리를 가톨릭교회에 반영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 일환으로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지난해 11월 루르드에서 열린 주교회의 정기총회부터 주교당 2명씩 남녀 평신도가 함께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하였다.
⑴ 떼이야르 드 샤르댕 : 프랑스 예수회 신부. 『인간 현상』, 『신의 영역』 등의 저작을 통해 ‘정신권’(Noosphere)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던 인물이다. 신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연구했으며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추구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