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philharmonic 원문보기 글쓴이: philharmonic
눈물 속에 피는 꽃
가슴을 적시며 눈물이 흘러 Limmensita 원어의 타이틀은 “무한”이라는 뜻인데 이 끝없이 넓은 세상에서 사소한 번민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라는 가사의 노래이다. 이 곡은 이태리 칸초네의 명곡으로 1967년 제17회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입상한 곡으로 원래 Johnny Dorelli가 불렀으며, 작사는 Don Backy와 Mogol이 만들었고, Deto Mariano가 작곡했다 원어의 타이틀은 “무한”이라는 뜻인데 이 끝없이 넓은 세상에서 사소한 번민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라는 가사의 노래이다. 작곡자는 돈 바키이며 1967년도 산레모 음악제에서 돈 바키와 죠니 도렐리가 노래해 입상하였다. 한영애, 1959년 ~ 대중가수이자 음악가이며 연극배우이다. 서울여고와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를 나왔다. 1976년 <해바라기> 멤버로 참여하며 가요계에 데뷔했고, 1978년 극단<자유>에서 연극에 데뷔했다.1982년 <참새를 태운 잠수함> 멤버로 활동했고, 1995년부터 지금까지 대중가요 노랫말만들기 모임 <詩樂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중음악전문지 서브(SUB)가 1998년 12월호에서 선정한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2집 앨범 《바라본다》와 4집 《불어오라 바람아》가 33위와 48위에 꼽혔으며, 2007년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바라본다》가 19위에 올랐다. 한영애는 영혼이 빨려들 듯 묘한 분위기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영혼의 울림을 가진 ‘소리의 마녀'다. 마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듯 무아지경에 빠져 열창하는 모습은 때론 관능적이고 범접하기 힘든 영적인 이미지까지 내 뿜는다. 결코 인기에만 영합한 활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색채로 폭 넓은 대중성을 확보한 드문 여가수다. 포크로 시작해, 블루스와 록, 그리고 테크노를 거쳐 최근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포크 가수 시절엔 ‘한국의 멜라니 사프카'로, 블루스 록 가수로 변신했을 때는 ‘한국의 재니스 조플린'으로 불렸다. 이는 끊임없이 음악적 아이디어를 창출하면서 그 어떤 노래일 지라도 자신만의 분위기로 변색시키는 그녀만의 차별성 때문이다. 한영애는 풍부한 영감 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카리스마적인 여성 보컬로 자신을 자리매김 시켰다. 그녀는 음악하고는 무관한 평범한 가정의 2남 2녀 중 둘째로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장래 희망으로 의사를 생각했지만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 숫기 없는 보통 아이'였다. ‘왜 아이들이 나를 지휘자로 뽑았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했지만 그녀는 을로초등학교 시절, 교내 합창경연대회 마다 지휘자로 뽑혀 친구들의 합창지도를 했고 국군장병아저씨 위문공연 때도 대표로 노래를 했을만큼 잠재적 음악성이 풍부했던 학생이었다. 서울여중에 입학해서도 튀는 학생은 아니었다. 이 시절,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엇을 찾고 갈구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꿈의 형태는 아니었다. 서울여고에 진학해서 비틀즈 음악을 간간이 들었던 언니와 집에 있던 라디오를 통해 대중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언니의 제안으로 저금통을 털어서 싸구려 기타를 구입했다. 아버지의 친구 동생에게 클래식 기타를 몇 번 배웠지만 결국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다. 여고 졸업 후 대학입시에 낙방한 그녀는 재수를 했다. 당시는 음반을 틀어주는 음악 감상실 전성 시대. 떼거리로 몰려다니기보다는 혼자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한영애는 주로 신촌 쪽에서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좋은 팝 음악을 들으려고 희귀한 판들이 많은 신촌 쪽으로 다녔어요." 음악을 좋아했던 남자 친구의 소개로 선배가 운영하는 신촌의 한 카페에 자주 놀러 가 음악을 틀고 손님이 없으면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목표 의식도 없이 그냥 노래가 좋아서 몇 달 동안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조금씩 노래 실력이 알려지면서 ‘이상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여자애가 나왔다'는 소문이 났다. 소문을 들은 한 음악 매니저가 카페에 찾아 왔다. “그 사람을 따라 뭔지도 모르고 친구와 함께 남대문의 프린스 살롱에 가서 오디션 같은 걸 보았어요. 그랬더니 내일부터 당장 나오라고 하더군요." 가수에 뜻이 없어 망설이던 그녀는 남자 친구의 설득으로 업소 무대에 올라 두 달여 정도 노래를 불렀다. 당시 레퍼토리는 김민기, 양희은, 멜라니 사프카 등 포크송 계열의 노래들. 사교적이질 못해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노래 부르는 자체만을 즐겼다. 어느 날, 함께 출연하던 개그맨 전유성이 드라마센터에서 여는 자신의 개그 쇼의 포스터를 가져왔다. 허락도 없이 게스트로 이름을 올려 거절도 못하고 노래를 했다. 그 후 구자형, 자룡 형제가 주도했던 ‘참새를 태운 잠수함'에서도 노래를 청해왔다. 당시 프린스는 신인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몇 만원의 월급을 이례적으로 받았다. “'처음 무대에 선 신인으로 월급을 받은 건 네가 첨이다'고 하더군요. 모든 사람이 그때 내가 가수가 되려 한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명동에서 ‘Time In A Bottle'등 팝송을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이정선과 정성조가 찾아왔다. 이정선은 무뚝뚝하게 노래 평을 해 어린 맘에 기분이 상했다. “이정선씨는 나름대로 노래를 가르쳐주고 싶어서 그랬나 봐요." 오비스 캐빈 앞의 로즈가든은 당시 모든 통기타 가수들에겐 최고의 무대. “재수할 때 아는 카페에서 심심풀이로 노래한 게 전부예요. 혼자 있다가 해바라기에 합류했어요. 그때도 가수를 할 마음은 전혀 없었고 그러다가 연극 쪽으로 갔어요" 명동 카톨릭 여학생회관의 해바라기홀에서 김의철을 통해 버피 세인트 메리라는 인디언 여자 가수의 노래를 접하게 되면서 감명을 받았다. “자연을 사랑했던 그 여자가 굉장히 크게 보였고 멋있는 여자구나,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당시 그녀는 C.C.R,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등 록 음악을 즐겨 들었고 밥 딜런, 김민기의 통기타 음악은 그들의 아름다운 가사를 좋아 했다. 75년부터 나가기 시작한 해바라기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 발표회 때 김의철의 노래를 주로 연습해서 불렀다. 그때의 노래들은 이정선 작편곡집인 77년의 비공식 1집<어젯밤 꿈/사랑의 바람.지구,1977>에 녹음 수록되었다. 수록곡은 김의철곡 ‘행복을 파세요', ‘촛불을 켜세요', ‘영원한 사랑', ‘어젯밤 꿈' 등. 1집(비공식)을 내고 TBC등 방송 공개 방송에 나가 몇 번 노래했지만 이 음반은 상업적이지 못하는 이유로 정식발매는 되지 못하고 묻혀버려 전설이 된 음반이다. 그러나 이정선이 그렸다는 수채화 재킷은 환상적이었다. 영원한 28 딸기띠로 사는 활화산 같은 무대 위의 여걸...카리스마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여성 뮤지션 한영애가 4년만에 테크노가 가미된 다섯번째 음반 '난.다'를 발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5집 앨범은 < 여울목 >, < 루씰 >, < 코뿔소 >, < 누구없소>, < 말도 안돼 >, < 조율 > 등으로 이어지는 한영애만의 독특한 '포크&블루스' 정서에 현대적인 테크노 사운드가 결합된 것으로 기존의 한영애 음악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타이틀곡 < 난.다(비상구/非常口) >는 신윤철의 곡에 한영애가 직접 노랫말을 쓴 것으로,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 너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 껍질을 깨고서 우주를 안고 난다 난다 난다 날아…'라는 가사가 다분히 미래지향적이다. 테크노 반주에 동일한 스타일 코드가 반복되어 '비상(飛上)의 이미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평이다. 또다른 트랙 < 문 > 역시 테크노에 드럼&베이스 연주방식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미래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외 도도하게 사회를 꿰뚫는 그녀만의 표현이 살아있는 < 봄날은 간다 >와 < 꽃신 속의 바다 > 도 주목되는 곡으로 꼽히는데, 특히 < 봄날은 간다 >는 애처로운 멜로디에 한국적인 심성을 한 폭의 회화처럼 담아냈다. 또 < 꽃신 속의 바다 >는 해바라기의 옛 멤버 김영미가 부른 포크 발라드로 고운 노랫말과 테크노 반주의 하모니가 이채롭다. 이밖에 한영애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록발라드 < 야화(夜花) >, 레게풍의 경쾌한 멜로디가 신선한 < 따라가면 좋겠네 > 등도 함께하고 있어 그녀의 팬들에겐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갈 것이다. 한영애는 76년부터 78년까지 해바라기로 활동했다. 그 후 8, 9년간 연극계에 몸담다가 85년 가을부터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렇게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변화를 시도하기엔 다소 모험 같은 이 시기에 그녀는 과감히 변신을 시도했다. 그녀는 말한다. "그저 대중들과 음악으로 대화하듯, 그렇게 나누고 싶은 마음을 음반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한영애는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뮤지션이다. 그녀의 긴 생명력도 그렇거니와 그녀가 10여년동안 보여주었던 음악 세계 또한 그녀의 선명한 자아를 드러내는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영애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들린 무당이 한풀이 굿이라도 하는 듯, 그녀가 뿜어내는 열기가 범상치 않다. 대중의 인기에 연연해 하고 대중의 구미에 맞추려 전전긍긍하고 하는 주류 음악 내의 대중 가수도 아니면서, 자신의 고집과 비타협의 자세로 일관된 자신의 음악을 고집해 온 그녀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에너지 가득한 그녀의 음악의 '희소성'은 마력과도 같이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그녀의 신들린 듯한 무대를 본 사람이면 그녀에게 빠지지 않고는 못배겼다. 여기 소개하는 앨범은 정규 앨범이 아니다. 정규 앨범과는 또다른 매력의, 한영애가 무대에 섰을 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완성도가 높은) 두 장짜리 라이브 앨범이다. 이 앨범의 세션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신대철, 신윤철, 송홍섭, 김효국 등의 한국 최고의 연주인들이며, 그들의 연주는 한영애의 음악을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인트로>가 지나고 나오는 <달>은 한영애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계기가 된 곡으로 여기서는 김효국의 하먼드 올갠 연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김수철의 곡인 <바라본다>는 한영애 최고의 명곡임이 분명하고, 한돌의 곡인 <갈증>은 한영애의 파워풀한 보컬의 매력이 매력적이다. 이정선의 <건널 수 없는 강>은 한국적인 블루스 곡으로 신들린 듯한 한영애의 보컬이 대단히 인상적인 곡이다. 정원영의 곡인 <부서진 밤>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음악적인 완성도와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이는 감동적인 곡이다. 장제훈 작사, 이영재 작곡의 <멋진 그대여>는 한영애의 다른 노래들과 달리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의 곡이지만, 프로그레시브(!)적인 구성을 엿볼 수 있다. 이정선의 <이어도>는 한영애의 음악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적 블루스'란 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곡이다. 두 번째 디스크의 첫 곡인 <말도 안돼>가 지나면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코뿔소>가 나오고, 이어 '신촌블루스'의 곡으로도 유명한 엄인호 작곡, 한영애 작사의 <루씰>이 나온다. <여인#3>은 한영애의 한숨 섞인 듯한 목소리만으로 듣는 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곡이며, 다음을 잇는 곡은 한영애 최고의 히트 곡인 <누구없소>다. 한영애 작사, 이정선 작곡의 <이별 못한 이별>은 매우 감성적인 기타 연주로 시작하여 한영애 특유의 흐느끼는 듯한 한서린 보컬이 '슬픔', '아쉬움', '후회' 등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돌 작사, 작곡의 <조율>은 라이브 앨범에서 오히려 원곡을 뛰어넘는 연주와 노래를 보여주고 있는데, 한영애의 힘찬 보컬과 백밴드의 합주가 어우러져 라이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다. 이어, 앵콜곡인 <여울목>... 이 노래는 초기 한영애의 포크 가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곡이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느낌의 이 곡을 마지막으로 긴 라이브 앨범은 끝나게 된다. 대중에게 그녀의 새로운 음악 인생 시작을 알리는 음반이었고,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음반이다. 일면 무겁게 들릴 수 있는 노래들로 대중에게는 외면을 받은 작품이지만, 그 무거움이란 진실되고 절실한 삶의 경험을 통해서 형상화된 진지함으로 적어도 한번은 심각하게 대해 볼 필요가 있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이 당시 그녀는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감성도 달라지고 이웃을 대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 감성이 풍부하고 아름다웠던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음반의 가사들에서는 '여과되고 정제된' 느낌을 받는다.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것. 외로움에 한없이 부딪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길어지는 것"이란 [불어오라 바람아], "일상 속에서 군중 속에 혼자 남겨져 외로울 때 날 위로하는 것은 너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란 [너의 이름]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아티스트로서의 탄생을 볼 수 있는 음반이다. 93년 그의 오랜 동료인 송홍섭과 공동으로 프로듀서를 맡은 2장짜리 라이브 앨범 <아.우.성>이 여실하게 증명하듯이 무대에 대한 그의 끝없는 존중심은 (80년대 전반의 대부분을 연극 무대에서 보내서가 아니라) 그의 노래로 하여금 재현 불가능한, 오직 한번의 죽음이라는 충일감을 수용자들의 가슴 속에 심어 놓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보컬 하나만으로도 예술의 경지에 오른 거의 유일한 여성 대중음악가, 70년대 중후반 데뷔 이래 단 한번도 브라운관을 자신의 숙주로 삼아 본 적이 없음에도 이 땅의 진지한 음악 수용자들로부터 마음 속으로 솟아나는 지지를 한결같이 받아온 한영애의 4집 앨범은 단 한곡을 제외한 전곡의 작사를 맡음으로써 이 앨범에 통일성을 부여 했고, <창밖에 서 있는 너는 누구>를 위시한 세 곡의 작곡까지 맡아 싱어송라이터의 반열에 진입하는 하나의 성과를 이룬다. 이 앨범은 한영애 그 자신과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이병우의 이인삼각 경주나 다름 없다. 이 둘이 만나서 풀어 놓는 세계는 앨범의 머리곡 <불어오라 바람아>에서 곧바로 완성된다. 한영애가 '인생이란 나무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오늘을 꿈꾸는 것'이며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성찰을 획득하면 이병우는 그만의 내성적인 선율 감각으로 차분히 음률의 실타래를 풀어 놓는다. 여기엔 여하한의 도약이나 기교적인 과시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란한 이미지의 나열을 선호하는 요즘의 감수성이 선뜻 들어설 수 없는 세계이다. 한영애는 이병우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베테랑 송홍섭, 그리고 달관의 경지에 거의 진입해가는 숱한 연주자들의 도움을 받아 포크에서 블루스를 지나 성숙한 세대의 음악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많은 매체에서는 그녀의 3집을 두고 '탈(脫) 언더그라운드'라는 타이틀로 소란을 피워댔다. 대마초 사건 등으로 신촌 블루스가 와해되었고 한 팀이기도 했던 김현식은 고인이 되었으며 그것은 '언더 문화' 하면 상징물처럼 떠올려지던 포크 세대들의 잠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사실상 당시 연극적인 콘서트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던 그녀에게 의식이나 저항의 모티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블루스 가수로서 터를 확실히 잡은 후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 좀이 쑤시던 그녀가 발표한 <말도 안돼>는 강한 록 계열의 시도로 세인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노래를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는 작곡가 한돌의 작품인 '조율'의 웅장한 코러스와 기승전결의 착실한 단계를 밟아나간 곡 진행은 차라리 감동적이라는 표현이 옳다. 앨범 중 고전적 발라드 풍의 애절한 사랑 노래로 사랑을 받았던 '이별못한 이별'은 강하고 록적인 분위기에 뭉뚱그려진 본작의 숨겨진 백미다. 70년대 중후반 4인조 포크 보컬 그룹 해바라기의 일원으로 등장한 한영애는 하나의 앨범이 얼마나 절대절명의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블루스를 탑재하고 86년 벽두에 나온 그의 첫 솔로 앨범과 <누구없소>에서 <바라본다>까지 숨막히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88년의 두번째 앨범에 이어 4년만에 발표된 이 앨범에 이르도록 그는 완전연소의 비등점에서 불타 오를 때까지 침묵에게 소리를 양보하는 집요한 견인주의의 작은 성채를 쌓는다. 어느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년에 한장씩의 '판'을 소모적으로 내놓아야 하는 스타시스템과 음반산업계의 강박관념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송홍섭의 베이스, 박청귀와 신윤철의 기타, 배수연과 김민기의 드럼, 정원영의 키보드의 도움을 받으며 한영애는 그의 음악적 출발점인 모던 포크와 비상의 교두보 역할을 한 블루스에 기반한 그 특유의 록과 두터운 발라드의 실타래를 올올히 풀어 낸다. 한돌이 제공한 <조율>을 통해 그는 김현식도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통찰력과 보컬 카리스마의 결합을 일구어 내고 그의 첫 앨범의 대부인 이정선으로부터 선사받은 <이어도>의 여백을 그의 선배보다도 더 깊게 형상화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앨범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오로지 자신에 의한 첫번째 노래 <말도 안돼>일 것이다. 이 노래에는 그가 걸어온 모든 음악의 스타일과 이상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세상이 변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변하는 건 당연해 어떻게가 중요해'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그의 고집인 것이다. 1집을 발표한 직후인 같은 해, 세기의 프로젝트 팀인 '신촌 블루스'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면서 이어진 2집은 블루스적 색채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콘서트와 옴니버스 앨범을 발표하면서 한영애가 자신의 보컬색에 대한 최초의 정체성을 찾은 앨범이다. 블루스 작곡가이자 가수인 윤명운이 만든 '누구없소?'는 실존에 대한 물음이라는 정의를 스스로 내린, 본작의 대표곡이자 1집부터 3집까지의 작업 중 본작을 한영애의 음악적 연대기를 나누는데 있어 정점에 있게 한 의미있는 곡이기도 하다. 샤우팅 창법의 또 한 곡 '코뿔소'는 '누구없소?'와 함께 장르별로 블루스이자, 강한 일렉 기타를 대폭 사용한 파워넘치는 사운드와 힘이 넘치는 보컬로 록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이는 언제든지 다양한 장르의 시도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반증한다. 작은 거인 김수철이 작곡한 프로그레시브 성향의 '바라본다'도 압권. 전인권, 김현식, 윤명운, 박주연 등 언더그라운드 대표선수들을 코러스로 참여시켜 대중적 지지와 음악적 완성도를 만족시킨 앨범. 자신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찾고, 이를 형상화시킨 음반이다. 그녀가 1집 음반을 만들고 느꼈던 것은 자신의 내부에 '뭔가 소리가 남아도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록 성향의 노래를 향후 하기로 결심했고, 송홍섭의 프로듀싱 하에 국내 최고의 세션 집단으로 녹음을 하였다. 이 음반은 녹음(최병철) 뿐만아니라 세션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음반이었다. 특히 기타리스트 박청귀의 발굴은 기타 세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84년 따로 또 같이 2집부터 구체적으로 전문 세션이 인식되기 시작한 이래 드디어 그 결실을 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영애는 이 음반에서 [누구없소?], [달]의 작곡자인 윤명운을 발굴하는 혜안을 보였고,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영재의 [호호호], 유재하의 [비애], 이정선의 [여인 #3], 이승희의 [코뿔소], 한돌의 [갈증], 엄인호의 [루씰], 김수철의 [바라본다]가 실린 이 음반은 타인의 작품만으로도 통일감을 갖는 하나의 결정체가 될 수 있음을 예시한 작품이고, 이에는 프로듀서 송홍섭의 역할도 지대했다. 1985년 가수 데뷔를 공언한 그녀의 첫 번째 독집 앨범. 가수로서는 이미 1977년 2월과 이듬해 5월 중창단 해바라기의 앨범 <해바라기> 1, 2집에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노래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한 보컬의 독자적인 파워는 이때부터 그 내공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포크 성향의 기존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나즈막히 깔리는 신디사이저의 반주로 시작되는 '여울목'은 그녀의 항해가 돛을 올렸음을 알리는 머릿돌이며, 엄인호의 대표적인 곡으로 손꼽히고 있는 '도시의 밤'은 두 사람의 원숙한 콤비네이션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첫 시점으로 포크 음악의 계보를 내리고 있었던 이정선 작사/곡의 '건널 수 없는 강'은 동의(同意)의 재즈넘버 'River No Return'에 비견할 수 없는 감칠맛을 자랑한다. 호들갑스러운 노처녀의 순수함을 보는 것 같은 마지막 곡 '기분 좋아'까지 총 아홉 곡이 든 본작은 스산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느낌이 지배적이지만 따뜻한 온기를 바라고 들으면 더없이 포근해지는 '매우' 매력적인 음반이다. 30살 즈음까지 자신이 가장 즐거워하고, 자신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폈다는 한영애는 이 무렵 드디어 다시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열정만 있었지 정확히 어찌 해야할지를 몰랐던 그녀는 오세은의 기획 하에 역사적인 솔로 데뷔 음반을 발표한다. 이 '역사적인'이란 의미는 그녀 자신이 이 음반의 [건널 수 없는 강]같은 거칠면서 폭발적인 곡으로 새로운 여자 뮤지션의 상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당시까지 통념적으로 여자 가수가 무릇 노래를 부르는 방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예쁘고 사근사근하게' 스타일이었다. 감정의 진솔한 표현이 전제가 되기보다는 정형화 된 이미지에 충실하기를 강요하는 대중음악계에 작은 반란을 불러일으킨 이 음반은 이후 후배 여자 가수들에게 좀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획 의도가 정확히 반영된 음반이 아니라서 완전한 한영애의 음반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많다. 엄인호의 [도시의 밤]은 향후 그녀가 신촌블루스 활동을 포함한 블루스에 근간을 둔 노래를 할 것이란 예측을 하게끔 하는 곡이다. 음원출처:http://cfs14.planet.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