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속의 빛바랜 사진 한 장
솔향 남상선/ 수필가
세상이 슬플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다. 맛있는 걸 사 주고 싶어도 인기척이 없을 때다. 아니, 옷 한 벌 사주고 싶어 불러도 어떤 소리도 없을 때다. 우리말에 ‘팔자가 사납다’는 ‘사궁(四窮 :홀아비, 과부, 고h아, 무자식)’이란 말이 있다. 그 가운데에도 으뜸이라는 ‘사궁지수(四窮之首 : 홀아비)’란 단어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내 신세를 대변하는 말이라 하겠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고 보니 사궁지수의 넋두리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지만 운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매사에 주인공이 없는 세상은 허망하다. 연극에서 대역이라는 게 있지만, 인생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비극이다. 장관의 경치가 있어도, 맛있는 음식이 목전에서 유혹해도, 하늘이 맺어 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할 수 없으니 마음만 아플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기에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숨소리만이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골동품이 다 된 낡은 지갑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 속엔 빛바랜 사진 한 징이 들어 있다. 그것은 낡고 빛이 바랜 흑백 사진이지만 나한테는 희귀 골동품 이상 가는 소중한 존재이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내가 20대에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맞선 보기 전에 제자 겸 큰처남인 고 3 학생이 가져다 준 것이다. 큰처남은 제자이면서 중매인 역할까지 한 사람이다. 게다가 이 사진은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것이니 어찌 예사 사진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자성어에 실우치구(失牛治廏)란 말이 있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으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 죽은 뒤에 약 지으러 간다.)과도 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어찌 보면‘있을 때 잘 해.’란 말로도 쓰이는 단어라 하겠다. 인생 소풍 길은 끝나면 그만이다. 사랑은 겉치레가 아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절감(切感)할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말로만 번지르르한 사랑은 무용지물이라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소풍 길 저물기 전에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같이 있을 때 마음 편케 해주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살다 보니 행복이란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돈과 제물이 많다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이 적다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재물이 많아도 탐욕을 부리면 행복을 맛 볼 수 없고 마음을 비우고 감사하며 살게 되면 행복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명언에,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
이란 말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여러 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불후의 한 마디에도,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란 말이 있는데 이 한 마디가 왜 유명세를 타는 명언이 됐는지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지갑 속의 빛바랜 사진 한 장’
모자란 생각이 평생을 얼룩진 한으로
만들어서는 아니 되겠다.
‘실우치구(失牛治廏)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골동품 사진이 토해낸 한 마디는 .
‘있을 때 잘 해!’
그 한 마디였다.
이걸 실천 못하면 평생을 후회로 맥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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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하는 사람은 소풍 길 저물기 전에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이 참 좋네요. 곧 부부의 날인데, 꽃 한 송이 준비해야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매번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모님을 떠나 보내신 선생님의 외로움이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군요.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