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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대 명산에 드는 주왕산은 세계 유네스코가 지정한 산으로
듣기 좋은 소문보다 찾아가 봐야 아는 산이다.
주왕산은 설악산과 북한산 그리고 월출산에 이은 바위가 아름다운 4대 명산(名山)으로 강원도의 설악산은 멀리서 봐도
그 웅장한 자태를 단번에 알 수 있고,역사를 간직한 북한산은 말할 것도 없고, 달이 뜬다는 월출산은 영암 들녘 가운데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며 홀로 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주왕산은 멀리서 봐서는 그저 평범한 산이며 차를 타고 인근을 지나도 주왕의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찾아간 주왕산과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하셨다는 비구니 사찰 대전사를 지나며 본 장군봉과 산속에서 또 산을 만들어 내는 山자의 기암
대전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경북 경산의 은혜사 말사의 절로써
뒷배경이 멋진 이 자리에 있을때 가장 잘 어울리는 사찰이다
주왕산을 대표하는 기암은 주방골의 수문장(守門將)바위로 대전사와 함께 표지모델을 자처하는 바위다.
오늘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드는 주방천으로 용연폭포와 용추 폭포를 거느리고 있는 용전천의 지류인 하천으로
발원지는 낙동정맥 길에 만나는 왕거암 북,동쪽 계곡인 작은가는골이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길이라 올라가는 동안 사진은 발원지 찾아 내려오면서...
신선이 살만한 멋진 바위 군상들을 연이어지며 계곡 따라 가메봉을 찾아가는 길에 본 성하의 싱그러움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산객이나 관광객분들은 보이지 않고 맑은 새소리 물소리따라 조용한 길이 이어진다
후리메기 삼거리에 도착해서 가메봉 방향으로 오르는데
여름 장마철에는 선답자와 함께 해야 할 코스이다
비가 많이 온 날에는 초보자는 절대 가서는 안될 곳인데
몇 번의 물길을 건너야 하고 계곡으로는 길이 희미하다
계곡속은 무척 습하며 땀은 비 오듯 흐르는데 바람은 어딜 간 건지...
희미하게 들리던 물소리를 뒤로하고 힘 한번 쓰면 가메봉에 쉽게 도착한다.
주위로 자기보다 더 높은 봉(峰)인 도수람이나 왕거암이 있지만 정상을 자처하는 가메봉
가메봉 정상에는 이곳 주왕의 바위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룩말 줄무늬를 닮은 정상석이 있고
그 뒤로 홀로 멋진 자태를 드러내는 소나무가 세월을 이기며 서 있다
주왕산은 산 아래서 올려다보면 주왕인지 동네 뒷산인지 구별이 힘들고
산 정상에 서도 조망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그중에 가메봉은 동, 남쪽으로 조망이 나온다.
잠시 조망 좋은 곳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계곡길이 어떨지 모르니
눈으로만 푸르름을 담아 본다
가메봉에서 보는 왕거암과 산능선 끝으로 멀리 동해 바다를 품은 강구쯤 될 것 같다
왕거암과 낙동정맥 먹구동 방향을 지나 청송군 윗동네가 영양군이나 석보땅의 여정봉이나 포도산쯤 될 것으로 추정해 보고
날씨가 후덥지근 하니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이제 왕거암 방향으로 이동할 차례다.
한국의 하천 188번째 누적거리 1만 460km
국립공원 주왕산
주왕(周王)이란 이름은 신라 문무왕 시절에 당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도(周道)라는 분이 싸움에 패한 뒤 주왕산까지 도망 와
숨어 살았다고 해서 주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신라왕족 중 억세게 재수 없는 왕족께서 잠시 머물렀다는 설이 있는데
태종 무열왕 6 세손이며 강릉 김 씨 시조인 김주원이다
아버지는 신라 왕족인 김 유정이고, 어머니는 명주(강릉) 지방의 호족 딸인 박 연화
신라 선덕여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화백회에서 김주원을 국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넘치는 바람에 김주원이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왕위는 그사이에 상대등(신라 최고의 벼슬) 김경신이 왕궁을 점거하고 왕위에 올라 원성왕(왕실 친족이 권력 장악 기틀 마련)이 된다
어쨌거나 김주원이 잠시 머물렀다고 해서 주방산이라 불렀는데 공교롭게도 오늘 걷는 하천 이름이 주방천(周房川)이다.
마지막으로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의 나옹화상(영덕 창수면 출생)이 이곳에 수도할 때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부르면 이 고장이(청송)이 번창할 것이라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푸르게 푸르게
이곳 청송은 세종대왕의 비(妃)인 청송 심 씨(沈氏)인 내조의 여왕 소헌 왕후를 비롯 왕비가 셋, 정승 열셋을 배출한 뼈대 높은
명문가의 집안인 곳이고, 인근에 자리하는 비봉산의 의성군, 일월산의 영양군과 청량산의 봉화군과 더불어 인구 소멸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산 빼면 아무것도 없는 오지의 자연환경 그대로 청정지역임을 알리는데
산업 단지(공장)와 가축이 발생시키는 수질과 토양 오염을 유발하는 축사단지 역시 설립 자체를 허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소똥 향으로 인한 주민들과의 불협화음은 절대 있을 수 없으니
대자연이 아름다운 청송으로 놀러 오시면 아주 좋을듯 하다
아참!~청송에 유명한게 하나 더 있군요, 교도소 이곳에는 절대 가지 마시고
낙동정맥길에 조금 벗어난 왕거암에 도착해서
주방천은 이곳 왕거암 북, 동쪽 계곡인 가는골에서 시작한다.
초반은 늘 이렇고
내려가는 길에 본 영양의 맹동산 방향
싸워서 이기지 못할 바에는 그저 친하게 지내는게 상책이니
잠시 돌아서
바위에 기생하는 이끼와 이름모를 풀이 그린 그린하며 달라붙어 있고
내려온 곳이고
내려가야 할 곳
계곡으로는 푸석한 자갈돌이 많고 낙엽이 그위를 덮고 있어
발목 삐기 좋은 곳이다
고목
스스로 잘 풀릴 것 같은 삶도 있는데
무슨 삶이 이리도 고달픈지
언제쯤 이 힘든 삶을 내려놓고 편안한 바닥에 쓰러져 눕게 할지
휘어지고, 굽어지고, 자식 같은 가지 몇 개는 오래전에 고사했고
속은 텅 비었지만 그래도 튼실한 가지 하나는 살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게 했다.
이렇듯 고목은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삶을 이어간다.
고목나무 아래에서 첫 물을 만나
낙동정맥길에 식수 없다고 이곳에 내려오면 올라갈 때 다 마시고 올라가야 할 것 같으니 절대 내려오지 마시고
물은 이곳에서 발원해 15km를 흘러가 용전천에 합류한다
내려온 길
낙엽과 푸석한 돌이 많아 진도가 안 나가고
조물주께서 돌을 주워 모아 콘크리트 탑을 만들다가 말았나
계곡으로는 날파리와 모기가 천지라...
모처럼 찾아온 나그네를 잡아먹을 듯 둘러싸고 떠나지 않는다.
고목이 바람에 버티다가 쓰러졌는데
비록 쓰러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남았다
바람 앞에 고목나무는 누가 강한지 겨루었던 게 아니라
누가 포기하지 않느냐에 관해 답을 하는 것 같다.
꼭 살아남아라
아직 이렇다 할 경치는 없고
상류에서 30분 정도 내려와서 본 사람이 만든 흔적
자연은 인간의 흔적을 대부분 지웠지만 돌축대는 어찌하지 못한 듯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곳인가
땀으로 샤워를 했으니 이제 맹물 샤워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다.
남해 바다 멸치대왕을 닮은 작은 피라미급의 물고기가 이리저리 헤엄치더니 어디로 숨어 버렸는데
이곳에 사는 피라미들은 아래에 거친 폭포 3개를 어찌 올라왔는지 궁금하다
한자리에서 계절이 바뀌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러다 결국 세월 앞에 껍질은 녹아내렸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계곡을 지키며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두번째로 만나는 사람이 만든 거주지? 밭?
아무도 없는 계곡이건만 누군가 살았다는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담
결국 사람은 또 다른 사람 찾아 떠났고 텅 빈 곳이건만 그 흔적만 오랫동안 남아있다
산 위에 있었다면 고립무원의 산성쯤으로 알았을 텐데
계곡 옆에 길게 자리하는 돌담이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으며
금방이라도 "거기 누구요" 라며 주름진 얼굴로 고개를 내밀듯한 촌로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지간한 계곡길에 꼭 만나는 돌담과 밭을 만들 때 쌓았던 돌축대를 만나는데
사는 형편이 어려워 땅 한뙤기 살 돈이 없어 깊은 산골로 들어가 살았던 사람들
순수했던 사람들의 삶은 늘 어려웠던 모양이다.
돌담장 모습
진시황제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면
이곳에 살았던 분들은 어떤 연유로 고달프게만 보이는 돌담을 이렇게 쌓았을까
길게 이어지는 돌담을 끝으로 사람이 다니는 등산길을 앞에 두고 있다
이제 사람이 다니는 길인가.
홀로 다니기에 조용함에 물들어 있으나 시끄럽게만 보이는 등산로가 왜 이리 반가운지...
왕거암에서 대략 3km 정도 내려와 가메봉 삼거리로 올라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아직 산행하러 온 분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대부분 이곳까지 올라오지 않고 주왕산 용연 폭포까지만 올라오고 내려가는듯하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방골에 살던 내원마을이 나오는데 지금은 자연 속,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마을이다.
내원마을 내원분교가 있던 자리에는 울창한 나무가 자라고 있어 옛 학교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내원마을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 산 아래 마을 주민들이 전란을 피해 찾아오면서 생긴 마을인데
1970년대까지 마을의 전성기를 맞았으며 전기 없는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이후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식당이나 민박이 생기면서 수질오염과 자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07년도에 마을은 철거되었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내원 분교가 있던 자리
내원 마을 집터와 돌담
이렇게 생긴 집들이 있었다니 상상해 보시고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평안을 빌던 신목(神木)과 서낭당 돌탑이 외로이 서있다
이쯤에서 찾아와 주신 안동 양반 추산대장님을 만나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 나누며 아래로 향한다
용연폭포 모습
용연폭포 모습
상류에 피라미 대왕의 자손들이 많이 사는데
피라미 조상 한분은 이곳을 어찌 올라왔을까
등용문(登龍門)인가
이 거친 폭포를 어떻게 헤엄쳐 올라왔는지
알레스카를 돌아다니던 연어도 울고 갈 장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주왕산에서 가장 큰 폭포인 용연 폭포
주왕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치 좋은 용소에 들어와
용소골의 용소폭포
금단의 땅인듯한 주왕의 주방천
학소대와 시루봉이 곁에 서있고
학소대
제1 폭포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우람한 근육질의 바위가 버티고 서있다.
청학과 백학이 떼 지어 살았다는 곳으로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전 정상 부근에 청학과 백학 한쌍이 살았는데
어느 날 일본인 포수가 백학을 잡아 버리자 청학이 날마다 찾아와 울었으나 이후에 청학마저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학소대이다
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 같아서 시루봉이라 부르며
멀리서 보면 마음씨 좋은 할배처럼 보여 얼굴바위라고 부른다
학소대와 급수대
주방천 계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암절벽인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약 50m 떨어져 있는 높이 30여 m의 수직암벽이다
옛날 주왕의 군사들이 암벽 꼭대기에 자새장치(급수기)를 설치해 놓고 계곡의 물을 길어 올렸다 하여 급수대 또는 자새대라는
이름이 전해 오는데,수직을 넘는 암벽이 위압감을 준다.
급수대에는 무열왕 6대 손인 김주원이 은신해 꼭대기에 대궐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건 아닌듯...
마음씨 좋은 어느 시골동네 할배를 닮으셨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시골의 마음씨 좋은 할배 모습
병풍바위와 학소대 그리고 급수대
생김새가 피어오른 연꽃 같아서 연화대라 부르는 연화대
연화굴은 남,여가 다정하게 키스하는 바위로 보이는데
주왕산을 찾았으나 이곳 연화굴 안 가보신 분 들은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사랑을 하면 이루어진다나 만다나... 그런 전설이 믿거나 말거나
주왕암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했다는 절
들어가 삼배하고 나와 주왕굴로 가본다.
어지간한 절은 모두 원효 아니면 의상이니... 그냥 때려 맞춰도 의상이다.
주왕굴
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다가 당나라 군사에 패하고 이곳까지 도망 와
숨었던 모양이다.
진나라는 진시황의 천하통일 된 진나라가 아니고,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 역사 400년 이후에 유비, 관우, 장비가 나오던 그 시기를
지나 삼국(위, 촉, 오)을 통일한 사마염이 세웠던 진나라인 듯 보인다.
진나라 이후 남북조 시대를 지나 수나라 40년 이후 당나라까지 내려왔으니...
당나라 왕이 신라왕(39대 소성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고 부탁하자 신라장군 마일성 장군에 의해 앞에 보이는 협곡 안의 주왕굴에서 화살에 맞고 최후를 맞았다
멀리까지 와서 고생은 했으나 그래도 주왕이라는 이름 하나를 건졌으니 그리 슬픈 일도 아닐듯하다.
굴 속에는 주왕산신을 모셔두었다
읽어 보시고
경상도 팔공산 자락의 은혜사 말사의 절인 대전사와 山의 형상을 하고 있는 기암이 너무 잘 어울리며
대전사는 고려 태조 2년에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했다고 하며
672년에 신라의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께서 승군을 모아 훈련시키기도 했던 사찰이다.
주왕산을 알리는 기암이 보이는데 주왕산은 찾아와 봐야 안다는 산이다.
능선은 대부분 조망이 없으나 장군봉에서 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아래 사진은 장군봉에서 본 조망(예전 사진 중에서)
장군봉에서 담은 기암
주왕산 주봉에서 담은 병풍바위와 학소대-급수대 뒷부분
더 좋은 이미지는 직접 가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주방천은 공사를 하고 있었으니
물은 어떻다 할 형편이 못되고
작은 아들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 물이 더러워 그런지 물가에서 돌만 던지며 놀고 있다.
하천가로는 키 높이 정도의 반송이 줄지어 자라고 있으며
한쪽은 시멘트길이고 나머지는 고무재질의 바닥이라 걷기에 편안하고
짧은 하천이라 즐기고 말고 할 것 없이 날머리를 지척에 두었는데
날씨가 후덥지근하니 땀이 연신 흐르고 덥다.
조금 더 가면 끝이라
주왕산면 하의리 마을을 지나며
배추밭에 무슨 일이?
요즘 배추 값이 헐값인지 모르겠으나
모두 뿌리를 드러낸 체 고랑에 누워있다.
만져보니 겉은 말라 있지만 속살은 아직 부드러워 먹을만하다
이런것도 한포기 가져 오려면 주인분께 허락을 받아야...아깝다
추산대장님께서 날머리에 기다리고 계시다가
차량 택배를 위해서 기다려 주셨고
시간내 주셔어 감사드리며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용전천과 합수하는 곳에서 일정을 마치고
용전천은 조선왕조 500년에 있어 내조의 여왕이었던 청송 심 씨 소헌왕후의 고향 앞으로 흐르는 하천인데
길이는 약 52km에 달한다.
청송은 온통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길을 가다가 보면 무슨 산인지 줄지어 나타나는데
그 아래 과수원이 있어 아하!~ 여기가 청송땅이지란 생각이 든다
도통 알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름도 찬란한 뼈대 높은 가문인 청송 심 씨(沁氏) 집안에는
조선 4대 왕 세종의 비(妃) 소헌왕후(심온의 딸)를 비롯해
13대 명종의 비(妃) 인순 왕후(심온의 6대손)
20대 경종의 비(妃) 단의 왕후(심온의 12대손)를 배출하였으며 정승 13명을 배출한 조선왕조 최고의 집안이다.
용이 있다면 이곳 청송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용전천 지류인 주방천을 답사를 마친다.
첫댓글 이제 200백번이 얼마남지 않았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발원지를 찾으려면
지맥길보다 더한 계곡이나 비탈을
내려가야 하는데 엄청 고생이 많으십니다.
암릉이라 길이없어서 돌아가는 일은
아직은 없는것 같으니 다행이라해야 하나요...ㅎ
멋진 주왕산과 대전사를 다시 보러
함 가야할텐데...
험한길 걷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주왕산 암능이 멋져서 몇군데 내려가고싶은곳이 있는데 이제는 드론만으로만..ㅎ
주왕산을 제대로 가본적이 없는 1인인지라...
후기 보는 내내
대전사 뒤의 손으로 인사하는 듯한 기암의 모습이며
학소대 할배 시루봉이며...
폭포 바위 속의 주왕굴~
ㅎㅎ 키스바위도^^
황홀한 모습에 제대로 꼭 가봐야지 꾹~점찍어 봅니다.
청송 심씨 집안이 왜 그리 뼈대높았을지
산좋고 물좋고 공기좋고
뭐 대단한 인물들 안나오면 그게 이상할듯
추산대장님 오랜만~ 반가움 전해 보며
주방천 강행 후기 감사히 잘 봅니다.
고생하셨어요. 방장님~
오~ 주왕산을 수없이 갔고, 연화굴도 몇번이나 갔는데
남녀가 다정하게 키스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그렇게 보이네요 ㅎㅎ
다음에 가면 꼭 그모습 눈도장 찍고 와야겠네요
고향 부근 산이라 어렸을 적엔 아버지를 따라, 조금 커선 친구들과, 성인이 되어선 애인(마눌)과, 현재는 아이들과 드나든 정든 산 주왕산, 다시 봐도 정겹습니다.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거리 종주도 그랬듯이 길을 개척하니 후에 따르는 사람들 많았듯이 발원지 찾는 익스트림 산행도 따르는 후배들이 생길지 궁금합니다.
늘 아무도 해보지 않은 길 도전하고 개척하는 모습 멋지고 전무후무할 듯 합니다~
배경 음악 차분하고 좋습니다
한여름 가시덩굴에 거미줄에 오통 방해꾼들이
발목을 잡지요
주왕산 다녀온지도 꽤오래된듯 하고요
맑은물에~~~~~~~~~~~~~~~~
수고 하셨습니다
이날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날씨였는데
주방천 발원지 찾아 오른산길 땀 무지
흘렸을것 같네요 계곡길 따라 내려오다보면
좌우로 보이는 귀암바위들의 멋진 풍경이
그림같은 곳이네요
더운날 주방천 걷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주방천 발원지 찾아서 기암바위와 폭포수 대비 멋집니다
무더운 날씨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대단한 녀석들!!
힘좋은 피라미 몇 녀석 잡아다가..
몸보신 삼아 푹~ 고아 먹으면..
올 여름 거뜬하게 날듯한데..
방장님 가신길이 험난해보여 두손두발 다 들고 빛의 속도로 포기합니다..ㅜ
그럼.. 이제 저는 무엇으로 몸보신을 해야할까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