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0일, 도시철도 1호선 중앙동역에 내렸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건물 사이로 바다까지 막힘 없이
이어지는 풍경. 신문에서 보니 이런 걸 '통경축'이라고 한단다. 시원하게 뚫린 바다 전망 확보를 위해 일부러 건물을 짓지 않고
비워 놓은 공간 덕분이다. 닫혀 있던 항만을 시민에게 되돌려준 북항
재개발. 지난해 마무리된 1단계 사업은 부산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시민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K씨 가족, 마리나에서 요트 체험을부산 서구에 사는 K씨 가족. 북항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슬리퍼를 신고 지하철을 타고 왔다. 재개발이 결정될 당시 어느 대통령이 했던 말처럼 말이다.
절대 오를 것 같지 않던 원도심의 집값도 많이 뛰었다. 틈만 나면 해운대로
이사 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K씨의 아내도 요즘은 만족한
얼굴이다. K씨의 아파트값도 꽤 올랐기 때문이다.
2019년 1단계 사업 마무리
원도심 집값도 많이 올라
산복도로 위에서 본 '일품' 야경
오페라하우스에선 '명품' 공연
세계적 IT 기업들도 속속 입주
꿈 같은 미래, 꼭 실현 됐으면…K
씨의 가족은 오늘 요트 체험에 나선다. 처음 마리나시설이 생겼을 때는 '뭐 상위 1%를 위한 시설이겠지' 생각했다. K씨 가족이
요트를 탈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시민을 위한 무료 요트 체험교실이 생겼다. 마리나 사업자가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얼마 전 운영을 시작했다.
요트교실에 가는 길, 아이들이 신나서 소리를 지른다. "우와~ 크루즈다! 우리도 조만간 크루즈 타고 가족여행 가는 거죠?"
K씨와 아내는 요즘
크루즈여행을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 부산을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 여행 프로그램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어디부터 가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배낭을 멘
외국인 관광객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영어 회화에 재미를 들인 K씨의 아들이 나섰다.
■외국인 L씨 "원더풀, 산복도로 야경!"외국인 L씨는 '부산항박물관'에 가는 길이다. 어느 한국인 가족에게 길을 물었더니, 꼬마 아이가 대답한다.
"저기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이에요. 저도 많이 가 봤어요. 옛날 부산세관 건물을 복원한 거라고
가이드 누나가 설명해 줬어요."
L씨도 들었다. 1911년 완공된 옛 부산세관은 러시아산 벽돌로 만들어진 거라고. 그래서 유난히 '부산항박물관'에는 러시아 관광객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꼭 러시아 출신이 아니더라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부산항박물관'은 필수 관광코스로 손꼽힌다. L씨도 한국
여행 가이드북에서 봤다. 부산항의 역사와 '해양도시' 부산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부산항박물관'을 찾으라고 추천돼 있었다.
박물관 관람 뒤 L씨는 산복도로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옥상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산복도로 집들이 흥미로웠다. 산복도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북항의 야경도 아름다웠다.
오페라하우스에서 국악 공연과 K팝 공연도 봤다. 몇 년 전 '강남스타일'로 돌풍을 일으킨 뒤 세계적 스타가 된 싸이의 공연이었다. '내일은 서울 가서 강남 구경을 해 볼까?'
다음날 아침, 국제여객터미널 인근 숙소에서 아침을 맞은 L씨. 터미널에서 부산역까지 놓여진 보행데크를 건너려다 재미난 풍경을 봤다. 수상버스에서 내리는 한 무리의 넥타이 부대였다.
L씨는 서울 가는 열차 대신 해운대로 가는 수상버스를 타 보기로 마음 먹었다.
■직장인 C씨 "나는 북항으로 출근한다"해운대에 사는 직장인 C씨는 오늘도 수상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꽉 막힌 도로 위를 달리는 대신 바다 위를 달려 출근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C씨는 지난해 외국계 IT 기업으로 이직했다. 북항재개발지역 IT·
영상지구에 세계적인 IT기업이 들어오게 돼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다.
회사 자체도 워낙 유명한 기업이라 한 번 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무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북항재개발지역 내에 수변공원들이 잘 돼 있어 아이디어가 막힐 때면 머리를 식히기에 그만이다.
맛집도 많다. 인근 직장인들과 크루즈터미널에 입항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어서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C씨는 점심 먹은 뒤 북항 공원 일대를 산책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각 광장과 공원에 콘셉트가 있어 코스를 바꿔가며 걸으면 전혀 지겹지가 않다. 북항재개발지역 내 공원·녹지 면적만 총 27만 5천26㎡라고 들었다.
C씨는 부산항 100여 년 역사가 살아숨쉬는 북항 공원을 걸으며 생각한다. '서울 사는 동생한테도 이쪽으로 이직하라고 해 볼까?'
오후 근무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가는 C씨. 콧노래가 절로 난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북항재개발사업 현재 공사 현장 모습. 부산일보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