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한국 창세설화) 줄거리
=>한국의 고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원을 담은 이야기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태초의 우주에는 오직 音(소리)만이 존재했다. 우주의 창조의 원음이자 리듬인 律呂에서 지구의 어머니인 마고가 탄생했다. 율려가 여러차례 부활을 반복하여 별들이 생겨났고, 이어 물과 육지가 나타났다. 氣 火 水 土가 형태를 갖추고 이들이 섞여 밤과 낮, 사계절 등 풍성한 지구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높고 성스러운 땅에 ‘마고성’이라는 낙원이 세워졌다.
마고 어머니는 하늘의 에너지와 통하여 천상의 딸 궁희와 소희를 낳고, 그들로 하여금 천지간의 만물을 창조하는 일을 돕게 했다. 궁희와 소희도 마고 어머니처럼 스스로 아들을 낳았다. 그리하여 천음 중에서 陰의 파장을 받은 네 천녀와, 陽의 파장을 받은 네 천인이 나왔다. 네 천녀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네 천인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온다. 土를 맡은 황궁,氣를 맡은 백소, 水를 맡은 이는 청궁, 火를 맡은 이는 흑소이다.
이들의 자손은 각기 번성하여 부족을 이루었고, 마고성에서 천지와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인간과 달라 성에서 흘러나오는 땅의 젖(지유)을 마셨다. 그들의 품성은 순정하며 혈기가 맑아 하늘과 통할 수 있었고, 기운의 활용에 막힘이 없었다. 또한 그 어떤 매개자도 없이 스스로 하늘의 뜻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천지의 원기와 깊이 연결되어 기운에서 물질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자신의 몸을 순수한 황금빛 에너지로 바꾸어 보존했고, 소리 없이도 능히 말을 전하며, 형상을 감추고도 오갈 수 있었으며, 수명에도 한이 없었다.
그러나 마고성의 이러한 순수한 상태는 영원하지 않았다. 마고성의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지유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백소의 무리중 지소라는 사내가 지유샘에 갔으나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소는 다른 이들에게 지유를 다섯 번이나 양보하다가 마침내 쓰러졌다. 그는 배가 고파 혼미해진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넝쿨에 달린 포도 열매를 먹어 생명의 기운 받았다. 포도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었다. 지소는 포도의 맛과 힘에 크게 놀랐다.
지소가 포도는 참으로 좋다 하니, 이를 신기하게 여겨 포도를 먹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과일과 곡물을 섭취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이러한 음식들은 지유처럼 맑지 않아 사람들이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자, 곧 지유 외의 다른 음식의 섭취를 금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외부의 법이 만들어지며 사람과 하늘의 연결이 약해졌다. 외부의 법을 따르게 됨으로써, 그들은 법이 없이 직관적으로 하늘의 소리를 듣는 자재율을 어기게 된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미각을 포함한 오감의 감각적 쾌감에 빠져들면서 하늘과의 연결이 더욱 약해졌다.
타락한 이들은 마고성의 순수한 파장과 맞지 않게 되었고, 천음을 듣지 못하여 마고성의 조화를 깨트리게 되었다. 그들은 이를 부끄러이 여겨 스스로 마고성 밖으로 나갔다. 성 밖으로 나간 이들의 일부가 지유를 그리워하여 샘을 찾기 위해 마고성 주변의 흙을 팠고, 마고성의 수원이 소실되어 샘이 더 빠르게 말랐다. 성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굶는 것이 두려워 과일과 채소를 먹기 시작했고, 그들도 점점 타락해갔다.
장자인 황궁은 이 ‘五味의 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마고 어머니 앞에서 사죄했다. 그리고 소중한 마고성을 지키기 위해서 남은 이들을 모두 이끌고 출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다시 하늘과 연결할 수 있게 되면 마고성으로 돌아오리라고 맹세했다. 황궁은 복본의 때가 오면 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마고성의 법을 담아 신성한 하늘의 표식을 만들었다. 황궁은 각 부족의 장들에게 이 天符의 신표를 전달하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부족이 제각각 흩어져서 지구의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명했다. 청궁은 오늘날의 중국, 일본, 중남미 쪽으로, 백소는 중동과 유럽으로, 흑소는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쪽으로 갔다. 황궁은 가장 춥고 위험한 길을 따라 시베리아, 동아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로 갔다. 이는 스스로 어려움을 선택해 고통을 참아내는 가운데 ‘복본의 맹세’를 이루고자 함이었다.
이때부터 인류는 의식의 밝음과 어두움을 오가며 본성과 천법을 따르는 삶을 찾기 위한 고난에 들어간다. 마고성에서의 삶의 방식은 한국의 仙道와 같은 전통을 통해 그 맥을 이어왔다. 이러한 전통에서는 사람이 천지와 하나 됨으로써 신성한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적, 영적 수행법이 전해 내려온다.
이 마고성의 이야기는 비록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다시 기억될 순간을 기다리며 우리모두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