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나날들
이미나
새벽 어스름 적막 속에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직장 피로에 또한 그림을 그리느라 지친 남편을 깨지는 않을까 조심히 옆방으로 옮긴다.
모처럼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하기 좋고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한다는 뿌듯함으로 충만해져서 좋다
랜턴의 빛은 사랑을 밝혀 주는 항구의 등대처럼 신성한 거룩함을 내보인다.
노트북에 앉아 소소한 나의 생활을 풀어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둘째 임신과 출산으로 9개월 가까이 쓰지 못했으니 감을 잊어버린 듯하다. 항시 의욕적인 내게 이런 상황들은 마음을 비우고 조금 더 침착해지는 연습을 하게 한다. ‘차근차근 천천히’라는 말을 되뇌며 자판을 두드린다.
쓰다가 영감이 떨어진 듯하면 곧장 책들을 읽어가며 감성과 표현력을 풍부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책장을 넘기자 사랑스러운 손녀를 맞벌이 아들 부부를 대신에 키운 할아버지의 사연과 뒷마당에 심은 나무가 시들어 버리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풀어낸 수필, 아내와 사별한 아픔을 담은 시, 별을 보며 그리움을 노래한 시 등 몇 편의 작품을 읽어보는 것이 고작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소박한 일상을 깊은 사색과 철학을 담아 풀어낼 수 있는지 놀라움이 커진다. 삶의 투철한 의지와 사랑이 아름다운 글을 엮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다.
어느새 남편의 출근을 하려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된다. 언제고 이런 나만의 고요한 습작의 시간이 길게 허락되어 지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다음 일정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으로 아쉬움을 떨쳐낸다.
남편의 아침을 차려 주고 조금 유난 맞은 첫째는 다행히도 집 근처에서 사시는 친정어머니가 매일 같이 와서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같이 해 주시니 한결 수월하다.
어린이집 차까지 내 손을 꼭 잡고 하하 호호 웃으며 재잘거리는 예원이를 보내면 아침 설거지와 집 안 청소가 날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정신없이 기어 다니는 규원이는 친정어머니의 몫으로 남겨 두고 바쁜 손놀림으로 일을 해치우기 시작한다. 퐁퐁으로 음식물이 묻은 밥그릇과 접시를 씻어내고 어질러진 주방을 행주로 닦아내면 마음마저 상쾌하다. 쓱쓱 싹싹 거실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쓸어내고 걸레질을 하면 더욱 질서가 잡힌다.
이젠 당신의 바쁜 다음 일정이 있다며 서둘러 나가시는 친정어머니는 애초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딸이 자칫 살림에 신경을 덜 쓸까 봐 조바심을 내시며 힘들어도 똑소리 나는 살림꾼이 되라는 당부를 빠뜨리지 않는다.
규원이는 샘 많은 누나 때문에 만져 보지도 못한 장난감들을 마음껏 들고 놀이를 시작한다. 제법 다리에 힘이 생겨 자세를 고정하고는 있지만 가끔은 뒤로 넘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푹신한 이불을 깔고 돌봐 준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고개를 흔들며 도리도리를 하는 것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를 1시간 남짓 규원이는 배가 고픈지 입맛을 다신다. 생후 7개월이 지난 아기에게 이유식은 필수이다. 냉동실에 얼려 놓은 쇠고기 감자 죽을 전자레인지에 해동 시켜 먹이기 시작한다.
적당히 식은 죽이 입에 안성맞춤인지 입을 벌려 잘 받아먹는다.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것을 보니 성격도 원만할 듯싶다. 그릇을 비우고 놀이를 조금 하다가 무엇인가 짜증스러운 듯 몸을 한껏 뒤틀며 정신없이 울어댄다.
잠투정인 듯하다. 10킬로나 되는 튼실한 아가의 발버둥에 힘이 들지만 머잖아 조용한 밤을 그리듯 잠들 것을 생각하니 막판 저력을 과시하듯 기운을 내어 본다. 아기 띠에 규원이를 앉아 매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등을 찬찬히 두드려 주며 차분하게 해 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스르르 눈이 감기며 꿈나라로 빠져 버린다. 아가의 모습 중에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잠자는 모습이란 농담을 떠 올리며 전력 질주하여 결승선에 들어온 것처럼 그간의 소회를 풀어본다.
이처럼 짜릿한 순간이 있을까 내게 주어진 이 꿈같은 자유의 시간! 이럴 땐 그간의 피곤함이 밀려와 솜털같이 아늑한 침대에 잠시만이라도 누워 눈을 붙이는 것이 우선 순서가 된다. 50여 분간의 휴식이지만 긴장된 근육은 충분히 이완되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까 생각하다 오늘 아침에 동이 나 버린 이유식이 떠오른다.
규원이가 섭취해야 할 중기 이유식은 세 가지 재료를 칼로 얇게 채 썰거나 빻아야 하고 하루에 두 번을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성장, 발육에 필요한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가야 하는 중요성을 생각하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식단표을 보고 레시피를 참고해 가며 조리하기 시작한다. 편하게 다 만들어놓은 걸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마트에서 사는 방법도 있지만, 집에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 최고일 것이라는 내 신조는 변함이 없다.
얼마 안 있으면 깨어 막 만들어 낸 이유식을 먹을 규원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잠시 정리정돈 후 이번엔 매일 하는 성경 묵상 책을 펼친다. 오늘의 내용은 신명기 11장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을 자녀에게 집에 앉아 있을 때든지 집에 갈 때든지 누워 있을 때 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여 가르치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거듭 아멘으로 화답해 본다.
내 평생 말씀을 가슴과 마음에 새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행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마침 기도를 하자 마음에 깊은 평안함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이제 선잠에 깨어 규원이가 칭얼거린다.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먹인 뒤 유모차를 태워 아파트 밖으로 나선다.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과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나온 김에 20여 분 걸리는 아는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미용실에도 들러 보았다. 때마침 손이 많이 가는 파마를 끝내고 한가해진 권사님은 쏠쏠하게 대화의 장을 열어가신다. 나는 이제 유모차에 앉아 있는 것에 싫증 내는 규원이를 안고 미용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한다.
연륜이 있으신 어른들 앞에선 나의 고충을 쉽게 꺼낼 수 있는 편안함이 있어서 좋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인지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 그리고 이제 미운 5살이 되어 자기 고집을 부리는 예원이에 대한 교육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권사님은 당신의 지인들이나 친척분들의 비슷한 경우의 예를 들려주시며 인생에 대한 혜안을 넓혀주신다. 어쩔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선 말씀과 기도 속에 묵묵한 기다림 또한 필요함을 강조하신다. 속에 있는 말들을 한껏 토해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시계는 오후 4시 반을 가리킨다. 예원이 하원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권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미용실을 나선다.
말괄량이 예원이가 차에서 내리면 두 명을 감당해야 하니 머릿 속이 복잡해지는 시간이다. 우선은 두 아이를 목욕시켜야 할 테고 예원이와 남편의 저녁 식단은 무엇으로 할까 이 시간쯤이면 늘 상 갖는 주부들의 고민과 집에 오면 21평의 좁은 아파트에서 여느 때처럼 자신의 영역을 분명히 하며 장난감을 가지고 동생과 실랑이를 할 예원이가 걱정이다. 아이들이 자라가며 뒷바라지는 물론 두 아이 간에 갈등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점인 듯하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 지혜로운 부모가 되려면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는지 퇴근 후 남편과 상의도 해 봐야겠다.
이처럼 빠듯한 일정들이 가끔은 날 힘들게도 하지만 나의 어깨에 두 아이의 미래를 만든다 생각하니 지금의 이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 확신해 본다.
간혹 내 공부, 글쓰기와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역할병행이 어려울 때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가지의 역할들이 상충할 경우 나는 과감히 엄마 본연의 자세를 고수한다.
유년 시절에 부모로부터의 충분한 돌봄과 사랑의 결핍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울 수 없는 멍울로 남는 사례를 가끔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자칫 나의 무관심과 무지로 아이들의 욕구 불만이 생기거나 내면에 상흔을 입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경각심으로 나태해질 것 같은 나 자신을 추슬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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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은 더욱 더 자라나 자신들만의 뚜렷한 사고방식과 세계를 구축할 것이고 나는 그들의 정서적 지지자로서 그리고 멘토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겠지. 아이들이 힘이 들 때면 언제든지 나는 손 내밀어 함께 걸어가 주어야지 앞으로도 다소 힘들어질 나날들이 그림처럼 그려지지만, 어느새 다다른 아파트 공원의 새빨간 장미는 힘을 내라는 듯 환하게 맞이해 준다.
그리고 이제 곧 오늘 하루 어린이집에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이야기할 예원이를 실은 노란 어린이집 차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 인서와 가영이와 어떤 놀이를 했을까. 점심은 무엇을 먹었을까.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을까 한층 궁금해진 마음으로 나는 사랑스러운 딸 아이의 배웅을 하러 나는 잰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