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롬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야기, 빅토는 산업혁명의 이야기.
시대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작품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것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임롬 첫 플레이를 하면서 건물 건설 가이드를 검색해보던 중, 제게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한 가지 글을 발견했습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건물을 지으려면 돈이나 인력을 주는 것을 골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임롬의 우선순위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보다는, 어떤 계층을 더 지원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건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전에는 EU4와 크킹의 매시업이었던 것이, 마리우스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문명 건설 시뮬레이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마리우스 패치를 살펴보면, 가장 특징적인 변화가 크게 2가지쯤 보입니다.
1. 군사적으로는 징집병과 군단으로 구분됨
2. 내정에서는 문명도의 중요성 강조
제가 주목하는 건 2번째입니다.
건물을 지으면 문명도가 오르고, 문명도가 오르면 인구가 늘어나거나 집중됩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건물을 더 지을 수 있고, 문명도가 또 오릅니다.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는 것이죠.
'도시화'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크킹이나 호이에서는 대입할 수 없는 시스템이 임롬과 빅토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마지막 대안이 남아있습니다.
EU4의 시대상도 마찬가지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EU가 아니라 임롬이 빅토의 실험장이 되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이 카페에 이미 올려놓은 선구자 분이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Europa/OMpD/387?svc=cafeapi
이 글에서 선비욜롱 님이 언급한 것처럼, EU4의 도시화는 '개발도'가 대신하고 있는데, 이건 군주 포인트로 만들어집니다.
왜 도시화가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거죠. 굳이 이유를 찾자면, 국왕 전하께서 그냥 명군이셔서 그런 겁니다.
???? : 잠깐! 우리 틴토 스튜디오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EU4도 '도시화'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 : 이제부터는 준주나 속국의 개발도를 태워서 수도 개발도를 높일 수 있다!!
???? : (시무룩)
밸런스가 시궁창 속에 빠지면서 모든 것이 망했습니다. 이처럼 평소에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려 들면 피 보는 것이죠.
여기까지가 문명도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선구자 분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뭔가 다른 내용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령 기존 유로파4와 임롬의 인력 시스템은 매우 추상화된 시스템입니다.
프로빈스의 개발도/인구에 따라서 매달 징집할 수 있는 인력이 늘어납니다.
현실과 대입하자면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서 군역을 지는 예비군인이 국가의 자원풀에 추가되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인력이 모조리 거덜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경제가 망가지는 일은 없습니다.
전쟁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고 전쟁을 패배할 수 있지만 인력은 다시 수복할 수 있고 프로빈스가 대거 뜯기지 않는 이상에는 경제적 영향도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렇지 않습니다.
소모된 예비인력은 절대 쉽게 복구할 수 없고 사멸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해 초래한 공백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끔찍한 상처를 야기합니다.
임롬 2.0에서 추가된 각 지역별 징집병은 기존의 상비군과 달리 지역의 인구와 직접적으로 연동됩니다.
징집병이 전멸해버리면 해당 지역의 인구도 사라져서 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는 것은 물론 경제적 악영향도 심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저는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바로 이 사람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 ㅎㅇ
마키아벨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로마 공화정 덕후였습니다.
그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그는 용병이 난무하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전쟁을 비판하고,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시민군'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국가 공동체의 수호를 용병에게 맡기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시민)의 덕성과 책임감을 약화시키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두가 아시다시피, 용병에 의존하는 근세 유럽의 전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시대적 한계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죠.
모든 국민이 징병되어, 지역 간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며 '하나의 국민'으로서 단결되는,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그 '국민개병제'는 먼 미래, 혁명 프랑스에서야 비로소 실현됩니다.
크킹의 시대는 기병의 전략적 가치가 지나치게 높았던 때였습니다. 전쟁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전사 계급의 전성기였죠.
EU의 시대는 용병의 시대였습니다. 란츠크네히트, 스위스 용병, 발렌슈타인, 헤센 용병까지 이어졌죠.
호이의 시대는 징집병의 시대이긴 합니다만, 인력 소모가 지역 POP과의 깊은 관계를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전쟁 기여도가 곧 시민권과 참정권의 확대로 직결되는 사회적 변화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고대 그리스~로마와 19~20세기 사이의 유사성을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요약하자면,
시민군, 그리고 문명화
이렇게 두 가지 측면에서 임롬 시대와 빅토 시대의 유사성을 짚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근대 사상가들이 괜히 로마빠 중세까 짓을 한 것이 아니었네요.
첫댓글 선구자라니 과찬이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임롬 1.0에 대한 백래시와 꾸역꾸역 2.0으로 패치한 그 과정이 패러독스로 하여금 추상성을 낮추고 빅토2와 호이3 시절의 무리된 현실성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과 호흡을 같이 하는 시스템을 추구하게끔 유도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크킹2와 크킹3이 있지만 크킹2와 크킹3은 거의 자매격인 유로파/빅토/호이와 달리 캐릭터 놀음이 매우 강조되어서 그 시류와 동떨어졌다는 점에서 여타 시리즈에 영향이 한정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네요.
즉 빅4가 나올때 전에 임롬 2가 나온다는 소리!
이렇듯 로마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 간에는 깊은 유사성이 존재하므로 임롬의 한을 빅토3 로마모드로 풀어야합니다(?)
오오 좋은글입니다. 빅토3언넝 나와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