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시래기 번개모임
최 화 웅
대설(大雪)을 앞둔 채전(菜田). 노란 스카프를 두른 무의 어께가 을씨년스럽다. 갯가에는 신선한 햇김 수확이 한창이다. 어린 날 이맘때면 물 빠진 갈밭 끄트머리 개펄에서 추위에 떨며 꼬시래기를 주물렀다. 꼬시래기를 잡는 방법은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모래톱 갯골 따라 두 발을 모아 막아서며 손으로 훑고 주무르는 천렵(川獵)이다. 입동(立冬), 소설(小雪)을 지나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면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돋우는 꼬시래기 회무침이 그리울 때다. 팔순을 바라보는 옛 국민학교 동기 우일, 무광, 창대, 영호랑 다섯이 음력초아흐레 물때에 맞춰 꼬시래기 번개모임을 가졌다. 생선회가 흔한 부산에서도 꼬시래기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명지와 신호, 가덕을 비롯한 강서지역 몇몇 횟집에서나 먹을 수 있다. 그마저도 물때에 맞춰 미리 부탁 하는 공을 들여야 몇 점 얻어먹는다.
꼬시래기회는 배를 따지 않고 등을 칼질로 길이대로 가른다. 담백하고 뼈 채로 씹을 때 고소하게 우러나는 맛에서 진한 고향맛을 느낀다. 꼬시래기회는 김장무와 배, 햇김에 부뚜막에서 발효시킨 농주초장을 치고 맨손으로 적당히 버무린 회무침은 입 안 가득히 넣고 씹어야 제맛이다. 김장철을 앞두고 무의 윗부분이 노랗게 물들면 꼬시래기의 씨알도 굵어진다. 빛깔 좋은 햇김이 나올 때다. 어릴 때 입맛 그대로의 명지 꼬시래기 회무침 맛을 기억하는 우리는 긴 설명하지 않고 발길이 하나로 모아졌다. 창대가 신호어시장에서 주문한 꼬시래기 횟감과 매운탕꺼리 장어를 마련하고 무광이가 용원어시장에서 갓 건져 올린 가리비 한 푸대를 사서 을숙도 건너 우리의 단골 다대포 초장횟집에 풀어놓았다. 회와 매운탕이 상에 오르기 전에 조금씩 싸놓으라고 일렀다.
아미동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영호의 부인, 권여사와 간병인을 위한 모가치다. 마치 우리가 횟집을 대절한 듯 마음 놓고 웃으며 거침없이 떠들었다. 어린 시절 ‘꼬시래기’를 잡던 추억과 서리의 이야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목청을 돋우었다. 누구는 ‘꼬시래기’, 또 누구는 ‘꼬시락’, 다른 누구는 ‘망둥어’, ‘망둥이’, 심지어 ‘운저리’라고 제각각 불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국어사전을 펼쳤다. ‘꼬시래기’라는 단어는 아예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겨레말 갈래 큰사전도 허사였고 어린이를 위한 우리말사전에도 없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나는 부산에서 가장 다양한 국어사전을 갖춘 한글학자 봄내 동인에게 전화를 내 귀찮게 했다. 컴퓨터의 위키백과에는 “‘꼬시래기’를 망둑어과에 속하는 풀망둑(Synechogobius hasta) 물고기로 소개하고 부산에서는 꼬시래기라고도 부른다. 서해에서 많이 낚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떫은맛에 꼬들꼬들한 식감과 단맛이 나는 ’바다국수‘로 일컫는 해초류 “꼬시래기목(Gracilariales)은 진정홍조강에 속하는 홍조식물목다. 꼬시래기과(Gracilariaceae) 프테로클라디오필라과(Pterocladiophilaceae)”로 소개한다. 위키백과(Wikipedia, Wiki百科)는 누구나 글을 쓰고, 편집할 수 있는 백과사전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더 신뢰가 가는 사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현행 ‘한글 맞춤법’은 조선어학회가 1933년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기본으로 문교부가 1988년 확정 고시했다. 당시 문교부는 세월의 변화를 반영해 맞춤법을 현실에 맞게 ‘표준어 규정’을 정비했다. 표준어 규정은 같은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일 때 어느 것을 표준어로 삼을지 정한다. 복수 표준어는 우리말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인터넷판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꼬시래기와 망둑어, 멍게와 우렁쉥이, 봉숭아와 봉선화, 자장면과 짜장면이 그 예다. 1930년대 낙동강의 만성적인 홍수를 예방하고 김해평야의 농업수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고 일제 조선총독부가 북쪽의 대동수문으로부터 남쪽의 녹산수문에 이르는 서낙동강물을 가두기 전에는 하단과 명지, 신호와 녹산, 가덕과 용원 일대에 발달한 갈밭 모래톱과 개펄이 물고기 ‘꼬시래기’와 해조류 ‘꼬시래기’의 서식지로 질펀했다. 물고기 ‘꼬시래기’는 15~25cm 길이에 큰 머리와 아가미를 가진 머리에 몸통은 원통형으로 길다. ‘꼬시래기’는 농어목 망둑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의 총칭으로 그 종류가 전 세계에 2천여 종에 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안과 서해안의 개펄에 60여 종의 꼬시래기가 서식할 만큼 흔하고 지역마다 제각각의 이름을 가진다. 명지를 비롯한 부산에서는 ‘꼬시래기’, 전라도에서는 ‘운저리’, 서해안 강화 경기지방에서는 ‘망둑어’라고 일컫는다. 그토록 물 맑던 낙동강하구에 흔하디흔하던 ‘꼬시래기’는 이제 개체수가 줄고 고향에 얽힌 아련한 추억마저 잊어버리며 산다.
첫댓글 국장님 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옛날에 수영 선착장 근처에서 꼬시래기 낚시를 했습니다.
거기는 기름 냄새가 좀 나서 먹지는 못했습니다만 한 번 던지면 두 마리도 올라오고 잘 잡혔던 기억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셨군요.
우리가 어릴 때는 모래토 물골에서 천엽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