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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피눈물로 이룬 경제다 박정희 경제신화의 실체
60-70년대는 누가 대통령 해도 고도 성장
한국 역사상 최고 인물 인터넷 여론조사는. 박정희가 이순신 장군보다 3배 이상 더 존경받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아예 명함도 못비치고 있다. 참으로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립투사를 토벌하는 일본군 장교가 됐다. 박정희는 당시 대구사범을 나와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데도 일신의 영달을 위해 충성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에 자원하여 일본에 충성하였다. 이런 민족반역자 박정희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보다 몇 십 배 더 존경받는 나라. 이 참담하고 비극적인 현실 앞에 나 역시도 이러한 나라의 국민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수치스러울 따름이다.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박정희의 경제적 기여가 너무 커 친일, 남로당 가입, 유신독재, 인권탄압 등 온갖 죄악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경제적 기여를 가지고 존경여부를 따진다면 건설, 자동차, 조선산업을 일으킨 정주영 회장이 더 존경받아야 함) 도대체 박정희가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얼마나 기여를 했길래 박정희가 지은 죄악을 덮고도 남는지 한 번 냉정하게 살펴보자
먼저 역대 우리나라 집권자들의 경제분야 종합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분석해 보았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성장률은 집권기간 연평균 실질성장률을 기준으로 했다. 통계청의 전문가는 실질성장률이 한나라의 실제 성장정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라고 한다. 역대 집권자들의 연평균실질성장률(이하 연평균성장률)은 전두환 9.3%, 박정희 8.5%, 김대중 6.8%, 노태우 7.0% 순으로 단순 수치상으로는 박정희가 2위이다.
그러나 각 집권자별 연평균성장률과 우리와 여건이 비슷하고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여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대만은 10.0%, 주요국은 5.2%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 기간 동안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주요국의 성장률이 5.2%였다. 일반적으로 한나라의 경제개발에 시동이 걸리면 성장률이 일정수준까지는 급상승하나,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로 선진국으로 인접 주요국 성장률 5.2%는 대단히 높은 수치이다. 또 대만이 10%였다는 것은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국제적으로 엄청난 호황기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정희는 18년이 넘는 집권기간 동안 연평균 8.5%의 성장에 그쳐 10.0%의 대만에 못 미쳤고 주요국보다 3.3% 높았다. 전두환은 집권기간(7년) 동안 연평균 9.3%의 성장률 기록하여 수치상으로는 역대 대통령 중 최고를 기록하였다. 전두환의 성장률은 대만의 성장률 8.5%보다 약간 높았고 주요국보다 5.7%나 높았다. 노태우도 연평균 7.0%의 성장률은 기록 수치상으로는 전두환에 약간 못 미쳤으나 주변국의 성장률과 비교할 때 전두환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김대중의 집권시기는 대만이 연평균 3.1%, 주요국이 2.0%에 불과해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 극심한 불황기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이 기간동안 연평균 6.8%의 성장률은 기록하여 수치상으로는 1위의 전두환에 뒤졌으나 대만보다 3.7% 그리고 주요국보다 4.8% 앞서는 내용면에서 매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상에서 경제통계를 근거로 분석한 역대대통령의 경제성적표는 단순수치상으로 전두환 1위, 박정희 2위, 김대중 3위 순이다. 그러나 대외 여건을 감안한 내용적인 면에서 분석한 결과는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이다. “박정희가 대한민국 경제를 세우고 경제기적를 창조했다”라는 칭송을 듣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실적이다.
박정희 추종자들이 늘 내세우는 논리가 박정희 이전과 비교했을 때 박정희 때부터 급성장했다고 한다. 이승만 때의 4.1%의 성장률이 낮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종전 후 잿더미 속에서 맨 손으로 전후복구를 하고 나아가 4.1%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경제부분은 평가 받아야 한다고 본다.
전두환은 2차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안았고, DJ도 IMF 환란을 극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노태우와 YS 시절도 민주화의 과도기여서 절대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어떠했나. 60-70년대에는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장기간의 호황이 이어졌다. 또 박정희는 60-70년대 우리 군인들의 목숨의 댓가인 월남특수, 머나먼 나라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탄을 캐고 시체를 닦던 서독광부.간호사파견, 또 우리근로동자들의 피와 땀의 결실인 중동특수 그 당시 막대한 돈을 받고 한 한일협정으로 우리 군인들의 목숨과 우리 근로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조상들의 수탈과 치욕의 역사들이 고스란히 박정희의 치적에 스며들었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오로지 박정희의 공으로 둔갑되었다. 그리고 당시 군부, 관계, 언론계 등에 포진해 있던 과거 친일분자들이 박정희를 우상으로 모시다시피하여 박정희는 누구보다도 좋은 여건이었다.
지금까지의 박정희 추종자건 비판자건 경제성장에 관한 한 박정희가 독보적인 존재로 알아왔다. 나 역시도 통계치를 분석하기 전에는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통계치에 의한 분석결과를 볼 때 지금까지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하나의 허상임을 알 수가 있다. 박정희 추종자들에게 이와 같은 통계분석 결과를 들이대면 이 들은 처음에는 도무지 믿으려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통계치에 논리가 궁색하면 박정희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80불의 절대빈곤 속에서 이만큼 사는 것도 박정희 덕이라고 한다. 박정희와 추종자들은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우리를 세뇌시켰다. 박정희 추종자들이 늘 써먹었던“80불의 절대빈곤 속에서 이만큼 사는 것이도 박정희 덕이다”라는 말 속에는 상당한 과장과 왜곡이 있다.
마치 국민소득 80불은 지금 생각하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빈곤국을 연상시키고 이만큼 산다는 것은 지금의 국민소득 만불대로 연상시킨다. 보통 일반인은 경제학자나 전문가와는 달리 통계수치를 훤히 꿰차고 있지 않다. 박정희 추종자와 조.중.동이 늘상 박정희가 일으킨 경제를 YS와 DJ, 노무현이 말아먹었다는 것을 사실여부를 떠나 아예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가 죽은 79년 당시 국민소득은 지금의 1/10 도 안되는 1,600불 수준이었다. 또 박정희가 집권하던 61년 당시의 국민소득 82불은 당시 일본의 국민소득이 500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절대빈곤의 최빈국 수준이 아니었다. 이토록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실제보다 많이 과장되었다.
집권자별 실질경제성장률
집권자 기 간 국내총생산(GDP) 한국연평균 비 교 대만평균 주요국연평균 집권시/퇴임시 성장률(%) 대만 주요국 성장률(%) 성장률(%)
이승만 '53-'61 19,763/ 27,179 4.1 -3.2 -0.4 7.3 4.5(장면포함)
박정희 '61-'79 27,179/117,435 8.5 -1.5 3.3 10.0 5.2
최규하 '79-'81 122,412/122,412 2.1 -4.6 0.1 6.7 2.0
전두환 '81-'88 122,412/227,864 9.3 0.8 5.7 8.5 3.6
노태우 '88-'93 227,864/320,044 7.0 -0.1 4.3 7.1 2.7
김영삼 '93-'98 320,044/394,710 4.3 -1.9 1.3 6.2 3.0
김대중 '98-'03 394,710/547,839 6.8 3.7 4.8 3.1 2.0
1) 출처) http://kosis.nso.go.kr/ 에서, 'KOSIS >자료출처별 검색(국제통계) >국제금융통계,IMF >국민계정' 순으로 선택한 후, 각종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항목 중, 기준년도 불변가격 국내총생산으로 나라별, 기간별 경제성장률을 계산
2) 출처) 대만자료는 http://www.dgbas.gov.tw/, 行政院主計處 第三局
3) 국가선택-> 주요국 : 미국,카나다,독일,영국,프랑스,이태리,일본, 대만
4) 국내총생산(GDP)은 '95년도 불변가격임
5) 연평균성장율 = (집권년도불변가격수/퇴임년도불변가격)의 (1/집권기간(년))승
흔히들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이 한나라의 경제수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 우리정부와 언론은 늘 국민들에게 그렇게 주지시켜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율 변동 때마다 그 폭이 너무 커 실제 소득수준과 경제성장 정도를 나타내는데 문제가 있다.
김영삼 재임기간 중 집권당시인 93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7,811불이었는데 퇴임시기인 98년에는 7,355불로 오히려 400불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한 실질성장률은 연평균 4% 이상을 기록하여 재임기간 중 실제로 23%의 성장을 하였다.
박정희는 1인당 국민소득이 실질소득이 아닌 명목소득으로 계산할 때 82불로 시작하여 죽을 때인 79년 1636불을 기록하여 외형상 연평균 18%의 엄청난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60년 12월까지 달러 당 65원이었던 환율이 집권시기인 61년 130원으로 두 배 올랐다. 또 박정희가 죽을 때 환율이 485원이었는데 74년부터 6년간 지속되어온 이 환율이 두 달 후인 80년 1월에는 20% 상승한 580원이었고 연말에는 700원에 육박하였다.
다시 말해 박정희는 집권 직전 2배의 환율 상승으로 저평가 된 국민소득액($82)에서 출발하여 환율상승 전에 죽는 바람에(485원의 환율이 6년간 유지됨) 고평가된 국민소득액($1,636)을 유지한 상태에서 죽었다. 즉 박정희는 집권과 종료시 환율변동을 잘 타는 바람에 외형상 성장률이 엄청나게 증폭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실질성장율은 이 거품이 빠지는 바람에 8.5%에 그치고 주변국들과 비교할 때 내용상으로는 뒤지게 된다.
박 정희 추종자들은 늘 “80불의 절대빈곤 속에서 이만큼 사는 것이도 박정희 덕이다”라는 말로 상징조작에 성공한 것이다. 유신독재시절 박정희를 우상화시키는 일이 성공의 지름길이었고 박정희에 불리한 비판은 있을 수가 없었다. 또 박정희가 죽은 후도 조선, 중앙, 매일신문 등에 의해(박정희 전기 연재를 통해) 박정희의 우상화가 지속적으로 계속되었다.
집권자별 명목국민소득증가율
집 권 자 기 간 1인당국민소득 한국연평균 비 교 대만연평균 주요국연평균 집권/퇴임 증가률(%) 대만/주요국 증가률(%) 증가률(%)
이승만 '53-'61 67/ 82 2.6 3.8 -2.1 -1.2 4.7(장면포함)
박정희 '61-'79 82/ 1,636 18.1 3.0 6.1 15.1 12.0
최규하 '79-'81 1,636/ 1,749 3.4 -14.5 -3.0 17.9 6.4
전두환 '81-'88 1,749/ 4,268 13.6 0.3 4.8 13.3 8.8
노태우 '88-'93 4,268/ 7,811 12.8 1.4 7.6 11.4 5.2
김영삼 '93-'98 7,811/ 7,355 -1.2 -3.6 -3.9 2.4 2.7
김대중 '98-'03 7,355/12,646 11.4 10.1 9.5 1.3 1.9
출처) 한국은행, IMF / http://climate.snu.ac.kr/wrms/DATA/econo_data/main.html 재정경제부 / http://home.hometer.com/GNP.htm 재정경제부 / KOSIS >온라인통계간행물 >주요경제지표 대만자료는 http://www.dgbas.gov.tw/, 行政院主計處 第三局 주1) 원칙적으로 1인당 GNI를 기준(GNI자료 수집이 불가한 경우 GNP)
주2) 국가선택-> 주요국 : 미국,카나다,독일,영국,프랑스,이태리,일본,대만
주3) 집권기간 연평균소득증가율 = (집권년도국민소득/퇴임년도국민소득)의 (1/집권기간(년)
박정희 18년간 무역적자 233억불 (수출 638억불 수입 871억불) 다음에 박정희와 추종자들이 그토록 내세우는 수출입국 건설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박정희의 18년간의 통치기간 매년 38%의 매우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전두환 때 16%, 김대중 때는 6%정도로 수출증가율이 둔화되었다.
이승만 정권 때는 자료입수 가능기간인 57년 이후부터 61년까지 연평균 15%의 수출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57년 2천3백만불이었던 수출액이 58년에는 천4백만불로 감소하다가 이후 집권종료 전 1년간 3천7백만불을 기록하여 연평균 48%의 수출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박정희의 38%를 능가하는 수치로서 박정희 집권이전부터 이미 급격한 수출증가의 기미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수출에 관한한 전두환이가 지금도 큰 소리 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집권기간 중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총 638억불을 수출하고 871억불을 수입하여 수출이 급격히 늘었지만 수입 또한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 집권기간 중 무려 233억불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였고 집권종료시기인 79년는 150억불 수출에 203억불을 수입하여 한 해에만 53억불 적자를 기록하였다.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지금도의 1/10수준임을 감안하면 79년 한해의 무역적자만 지금의 500억불 적자규모와 같다고 볼 수가 있다. 박정희 집권기간 무역적자 233억불은 지금의 2000억불 이상의 무역적자 규모에 해당한다. 그러니 집권기간 중 8억불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전두환이가 자랑할 만도 했다.
후임 집권자 중 노태우가 132억불 적자, 김영삼이 366억불 적자를 기록했고 김대중은 불과 5년 동안에 846억불의 흑자를 기록하여 지금까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리하여 보면 이승만 정권 때는 수출신장의 싹이 보였고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높은 수출증가를 이룩했으나 수입 또한 그 이상으로 늘어나 당시 경제규모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큰 규모의 무역적자를 나타냈다. 다시 말해 박정희때 외형은 크게 늘었지만 결국 크게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운을 타고난 박정희는 대일청구권 자금, 월남특수, 중동특수 등으로 무역에서 펑크 나는 것을 메웠고 이것도 부족하여 매년 많은 차관을 도입해야 했다. 이 빚은 결국 후임정권이 짊어져야 했다. 최초로 흑자를 기록한 전두환은 남는 장사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또 흑자규모를 늘리고 지속적으로 유지한 김대중은 크게 남는 장사를 하여 현재는 1500억불이 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도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박정희는 외형만 키웠고 실제적으로는 적자 투성이었다. 그러나 항상 수출이 늘어난 것만 보도되고 또 이 것이 전적으로 언론의 박정희신화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홍보되었다.
무역 통계
집 권 자 기 간 수출액(100만$) 연평균수출 집권기간 적자/흑자 집권기간 집권/퇴임 증가률(%) 총수출/총수입 누계 국민소득($)
이승만 '57-'61 23/ 37 14.5 107/ 1,644 -15억$적 67-> 82
박정희 '61-'79 37/ 15,057 38.4 63,809/ 87,122 -233억$적 82-> 1,636
전두환 '80-'88 18,369/ 50,670 15.6 217,241/216,427 8억$흑 1,749-> 4,268
노태우 '88-'93 50,670/ 77,845 9.0 341,939/355,218 -132억$적 4,268-> 7,811
김영삼 '93-'98 77,845/138,673 12.2 583,240/619,917 -366억$적 7,811-> 7,355
김대중 '98-'03 138,673/169,850 4.1 771,981/687,309 846억$흑 7,355->12,646
1) 자료출처: KOSIS >자료출처별 검색(국제통계) >국제금융통계,IMF(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무역
2) 수출/수입액 : 집권연월이 속한 분기를 기준으로 1년간 실적
3) 총수출/수입액 : 집권연월에 따른 분기별 실적을 감안하여 계산
경제개발 치적은 박정희만의 전유물 아니다.
다음으로 도로 및 발전설비 등 건설부문을 살펴보자. 박정희 정권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과거 정권을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으로 매도하고 마치 모든 경제개발이 5.16 이후에 이루어진 것처럼 졌다고 선전해 왔다. 과연 그런가? 생각해 보라! 이 좁은 땅에 2차 대전 때보다도 더 많고 가공할 포탄과 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사실을. 또 남북을 막론하고 완전히 초토화된 이 땅을 다시 복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가를. 결국 박정희 집권 이전 정권에서도 경제개발의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박정희 추종자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치적인 고속도로건설을 살펴보기로 하자. 박정희는 18년이 넘는 집권기단 동안 총 1,225Km의 고속도로를 뚫었다. 이 가운데 경부선 428Km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의 제한속도가 시속 70Km인 2차선이었다. 그리고 후임정권은 24년간 1,566Km(2002년 기준)의 고속도로를 뚫었다. 이 시기 건설된 도로는 대부분 4차선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전 간을 8차선으로 또 호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등 많은 고속도로를 넓혔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하면 박정희 이후의 정권이 박정희보다 2.5배 이상 고속도로를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발전설비는 어떤가? 이승만 정권 때 37만Kw,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766만Kw의 발전설비를 증설하였다. 그리고 후임정권은 무려 4,795만Kw의 발전설비 증설하 였다. 발전소를 짓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때의 발전설비는 다소 늘어나리라 짐작된다. 그렇더라도 박정희 이후의 정권이 박정희정권에 비해 무려 5배의 발전시설을 건설하였다.
이상에서 보듯이 국가기간산업 건설 측면에 있어서도 박정희가 유독 두드러지는 면이 없다. 집권기간을 감안했을 때 후임정권 때보다도 훨씬 부진했다. 다만 통계수치상 이승만 정권 때가 박정희정권 때보다 낮게 나왔으나 이승만정부가 전쟁 후 최악의 여건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승만정권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집권자별 건설 통계
집 권 자 기 간 고속도로신규건설(Km) 2차선환산시(Km) 발전량(신규,만Kw)
이승만 '53-'61 0 0 37
박정희 '61-'79 1,225 1,643 766
전두환 '80-'88 305 1,010
노태우 '88-'93 57 771
김영삼 '93-'98 389 1,576
김대중 '98-'03 815 4,668 1,257
* 2차선환산시 4,668Km는 전두환부터 김대중까지 22년간의 합계임
출처) 한국도로공사 출처) 한국전력 출처) 통계청,「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각년도 출처) 통계정보시스템(KOSIS)
추종자들이 그토록 향수를 느끼는 70년대의 생활수준 이제 마지막으로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박정희의 친일. 유신독재, 인권탄압 등의 박정권의 죄악상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적 경우를 예로 들겠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70년대 두 세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보통 세 네 식구가 살았다. 그 작은 방 옆에 손바닥만한 부엌이 있었고, 건너편에 냄새가 풀 풀 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당시 만해도 연탄을 땠는데 윗목은 온기가 가지 않아 겨울이면 걸레가 얼어붙곤 했다. 연탄불에 겨우 물 한바가지 정도 데워 그것으로 세수하고 머리감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때려 한참 말려야 하던 시절이였다 임금상승률보다 소비자물가가 상회한 시절이였다 70년대에는 물가가 20% 이상 뛰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TV는 물론 조선, 중앙, 동아 등 신문도 외형적인 성장만 강조할 뿐 급격한 물가상승 등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못했다.
아마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물가가 10%만 상승했다면 박정희 추종자와 조.중.동이 온갖 선동으로 무능한 대통령으로 뒤집어 씌워 끌어내렸을 것이다. 내 말이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되었다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 통계치를 조사해 보았다. 박정희 시절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가 6.4대, 1인당 주거 면적이 2.5평, 2년제 전문대를 포함하여 대학 진학자수가 18만명이었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김대중 집권 말인 2003년에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가 204대, 1인당 주거 면적이 6.1평, 2년제 전문대를 포함하여 대학 진학자수가 60만 명이었다. 70년대 군대생활을 한 분들은 배식되는 밥은 몹시 적었고 부식이래야 콩나물국에 김치 몇 쪽이었다. 가끔 한 번 돼지고기 국이 나왔는데 고기는 온데 간데 없고 비계덩이만 몇 개 떠 있곤 했다. 전방 오지일수록 정도는 더욱 심했다. 요즘 군대에서 배곯는 병사가 있는가?
요즘 우리생활 수준이 어떤가? 물론 요즘 취직이 안 되어 고통을 당하고 아직도 달동네에서 적은 수입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있지만 웬만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차를 2대 이상 가진 집이 많고,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냉난방시설 틀어놓고, 웬만한 가정에는 컴퓨터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식구마다 휴대폰을 차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만약 요즘 소득수준으로 13평짜리 연탄 아파트에 차도 안 굴리고 휴대폰 대신 공중전화를 이용한다면 얼마나 풍족하고 여유로울가? 박정희 시절 작은 집에서 살고 차도 안 굴리고 밤낮으로 일만 하고 살았으니 먹고, 입고, 애들 학비 외에는 돈 들어 갈 일이 없었으니 불편만 감수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지금보다 삶이 박정희 시절이 결코 잘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면 결국 박정희는 철권통치로 언론을 장악해서 거짓 경제신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밖에 없고 그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세뇌된 민초들도 빨리 이 박정희 과장된 신화에서 깨어나길 하는 바램이다.
집권자별 주거면적
집 권 자 기 간 조사년 1인당주거면적(평) 조사년 대학/전문대진학자수
이승만 '53-'61 통계무 1961 통계무
박정희 '61-'79 1975 2.5 1979 178,289
전두환 '80-'88 1985 3.4 1988 305,109
노태우 '88-'93 1990 4.2 1993 400,039
김영삼 '93-'98 1995 5.2 1998 621,583
김대중 '98-'03 2000 6.1 2003 601,600
출처) 통계청,「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각년도 출처) 통계정보시스템(K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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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아~~~젗나게 깁니다요?^^
국민학교때 박정희를 존경했습니다.
경제개발의 주역!
하지만 그것 그때의 생각!
미국의 사주에 의해 경제개발 지침받고 철처히 움직인 하수아비에 불과 한것.인터에서 보고 읽었습니다(우투브)
의식이 깨어나서 단순무식(저 같은 경우...)
그것이 큰 죄악 이란걸 느끼는 요즘..
정말 단순무식하게
보수정당 이라
해서
또한 그반대라 해서
단순무식한 공격은
나라의 장래를 둘로 갈라 넣는 죄악 이라
생각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이젠 정말로..
북한괴뢰도당이 밉지만. 북괴와 쪽바리가 싸운다면?
은근히 북괴편을 들고 싶은건...
중도우익이라 자칭하는 저만의 생각 일까요?ㅠㅠ
@papa 저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릴때 무척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최고의 지도자로만 생각했습니다.
반면 제 고향이 대대손손 부산인지라 지역적 특성과 세뇌된 교육으로
김대중은 빨갱이나 간첩.또는 아주 나쁜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세뇌된 수구 꼴통이였죠... 그러나 조금 눈을 떠고 세상을 바라보니
객관적 진실과 사실은 현실과 너무 많은 괴리가 있음을 알았지요.
저 또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정할 객관적 사실은 냉정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꺼꾸로 쓴 역사를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세뇌하는 못난 부모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동감합니다....
박정희는 정치는 독재를 했지만 경제는 그래도 잘 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이렇게...장년층들의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당시 박정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통령이(50만표?? 떨어진 김대중 후보)
됐더라면 독재정치 없이 더 나은 경제를 발전을 시킬수 있지 않았겠나 돌이켜 봅니다..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성장 성과를 소급해서 비교 해 본다면..)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왜곡, 포장된 평가측면이 많아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고
경제발전의 주체는 부지런하고 억측같고 타고난 빨리빨리 정신의 국민성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와우 직접 적으셨나요?
대단합니다!
그런데 다 못읽겠어요...
찾아보고... 편집하고... 쓰고...
@에이스VN 아닙니다...대단합니다 선배님~
동문회에도....딱 나누어집니다.
진보(민주당), 보수(한나라당)
그런것 때문에 선배들끼리 싸우고 그럽니다. 두 선배...(김무성, 문재인) 대권도 파가 완전 딱 갈라져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중도입니다....^^;;;
그 시절에 지금의 중장년층이 겪었던 고초와 고생으로 지금까지 달려 왔는데,역사는 때를 잘 만난 영웅에 의해서 새롭게 변하는 것이,안타까울 뿐입니다,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이 그 시절에 대통령 하셧으면 지금 국가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져 중진국 문턱에 올려 놓으신 경제박사 대통령이라고 교과서에 실린건데 말입니다,
욕 봤습니더. . .ㅎ
콜롬브스의 달걀이지요.
객관적 사실과 통계에 의한 수치는
정답이 없는 콜럼브스의 달걀과는 다르죠.
@에이스VN 왜 그럼 박정희가 나서기 전에는 못했을까요?
하고나니 그걸 누가 못해. . .라고 하지요.
박정희가 나서기전까진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날마다 싸우기만 했지요.
심지어는 북한 보다 소득도 낮았지요.
@타이티 글 안 읽어 보세요?
박정희 나서기 전 시대와 후 시대들도 충분히 설명되어 있어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물타기를 하시네요.
@에이스VN 물타기라니요? 그당시 박통이 군인정신으로 강하게 밀어붙엿기 땜에 이룬 경제 기적이어요
이때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만약 집권햇다면 날마다 토론과 데모대 똥만 닦아주다가 허송세월하고
지금의 필리핀 보다도 못사는 국가가 되엇을것이 뻔히 보이네요
@우르르쿵 시시한 통계를 좋아하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순전히 억지논리를 위한 하수들에게나 먹히는통계에
불과하네요... 도무지 수긍이 가지않는 아전인수식 통계말입니다
@우르르쿵
통계청이나 한국은행 기타 공공기관의 통계도 불신하나요?
그러면 믿을 만한 다른 통계제시 하고 반론해 보시죠?
물타기...카더라... 아님 세뇌된 진부한 수법 말고요...
@에이스VN ㅎㅎㅎ
저는 에이스님처럼 머리가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물타기 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죽으라고 제게 달려들지 마시기 바랍니다....ㅎㅎㅎ
그냥 말도 안되는 소리인듯 싶으시면 그냥 똥밟았다 생각하시고 무시해버리세요...
저는 여러분들처럼 정치적으로 무장이 되어있지도 않구요....그리고 정치쓰레기들을 위하여 싸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중도보수입니다.
@타이티 제가 볼 때는 역사와 정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저 [중도보수]라고 부르며 착각하는 경향이 많은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역사적인 사실]도 모르면서 [정치]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어른들이 어른들 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간에 끼어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생각해 봅니다. 제발 [역사적 사실]은 알고 나서 그 다음에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난 후에...의견을 주었으면 합니다.
@에이스VN 아무런 자원도 자본도 없던 시절에 허허벌판에서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은분과 닦아진 토대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집행한분들과는 천지차이이지요.
실제로 전두환때 가장 높은성장률이 이를 입증하고 잇습니다
이게 다 박정희장군이 중화학 공업까지 토대를 구축한 덕분이지요
김대중, 김영삼은 경부고속도도 반대한자들인데... 어더케 이런 기초를 닦을수 잇겟어요
따라서 시시한 통계 갖고 단순비교하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우르르쿵 가진것이라고는 사람뿐, 원유도 사와야지, 굶주리는 백성들 하다못해 밀가루라도 나누어 줘야지...
고속도를 건설해야지, 포철등 중화학 공업을 육성해야지... 이러한 어려움을 민주나발만 불고 잇으면 과연 해결이 되엇을 까요?
@타이티 죽으라 달려 들어요?
제가 볼 땐 타이티님이 죽으라고 달려드는거 같습니다
잠시 웃고 가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콜럼브스 달걀과 사실이 증명된 Fact 랑 비교하는게
물타기 아닙니까?
지난번에도 본글 확인도 안하고 엉뚱하게 물타기 하시두만요~
@우르르쿵 그대의 논리라면 이승만과 장면정부를 칭찬해야 맞죠
6.25 종전 후 전쟁의 잿더미 허허벌판에서 신화를 이루었다고 하면
조금 동정과 이해는 갑니다
@우르르쿵
제가 볼 땐 박정희가 계속 집권 했더라면
북한과 똑 같은 상황이 됐을거 같네요
객관적 사실과 통계와 수치가 틀리거나 이견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자료를 준비해서 반박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할말 없으면 물타기로 일관하는 것 보면 어이 없습니다...
전문가가 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시 한번 공부했습니다..
박정희=다까기 마사오.
일본육사출신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하세요.
역사에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만약 ~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 지나가고 만 것을.
그래서, 인물에 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살아온 족적, 즉 숨길수 없는 Fact 만 논하는 것이 옳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정희에 대한 팩트만 봅시다.
친일인명 사전 속 박정희 이력.
1. 21세 : 일제 괴뢰국 (만주국)군관 첫 번째 지원 -> 탈락.
2. 22세 : 만주국 군관 두 번째 지원.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이라고 쓴 혈서 제출. -> 탈락.
3. 23세 : 만주국 군관 세 번째 지원. -> 합격
이어서...
4. 25세 : 일본육군사관학교 3학년 편입
5. 27세 : 일본군 소위로 수차례 전투 참여
6. 28세 : 만주국 중위. 일본패망 뒤 베이징 광복군에 합류
7. 29세 : 귀국후 조선국방경비대 소위 임관
8. 30세 : 중위, 대위 거쳐 소령 진급
9. 31세 :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체포
10. 32세 : 군법회의서 무기징역 선고
11. 33세 : 6.25 발발하자 소령으로 현역 복귀
12. 36세 : 준장진급
13. 38세 : 5사단장
14. 41세 : 소장 진급
15. 44세 : 군사쿠데타로 권력장악
21부터 45세 사이의 이력입니다. Fact 입니다. 이 이력에 대한 개인의 평가는 각자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경제성장률이라는게, 경제정책 결정,시행의 산물인데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몇년에 걸쳐 나타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당해 대통령 집권 기간중 성장률만 가지고 과실을 평가하는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질경제성장율.소득증가율.무역수지.경제개발치적.건설통계등등
총 망라한 글입니다. 단순한 성장율만 적어놓고 과실을 평가하진 않은 내용 입니다.
맞습니다. 정곡을 찔럿군요... 이깟 통계가지고 평가 하는게 말이 됩니까?
@우르르쿵 대꾸할 가치는 없지만....
통계청.재경경제부.국제금융통계.한국은행.한국도로공사.한국전력등
국가기관에서 조사한 통계를 이깟 통계라 하시고 믿지 못하면 다른
통계를 제시해 보시죠? 모든 경제발전상과 역사는 객관적 통계로
평가하지 무엇으로 합니까? 올림픽 운동선수의 기록들이 모두가
숫자이고 기록된 통계입니다.
이런 통계도 불신하는 그대는 과연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스럽네요.
빠진거 있어유.
남로당 뿌락찌로 잡혔을때 꼰질러서 300명 넘게 지 부하들 다 죽이고 지만 살았어유.
존경할만 하쥬. 비겁도 능력이유.
경제적 전반 문제만 다루었습니다.
다음에는 박정희의 사상적 실체를 한 번 올려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노인들 불쌍한노인들 본인들이 피땀흘려 이룩한 발전을 전부 박새끼의 공으로 돌리는 ...
답답한 사람들이 많은것 같아 생전 처음 댓글을 답니다.
종북좌파가 활개치고 다니는 이유를 알겠네요.
경제발전 개나 소나 다 할수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이런글 쓸 시간에 자기개발 열심히 해서 멋지게 사는게 좋을것 같네요.
종북이란 "북한과 김일성, 김정일 등의 주체사상과 북한정권의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무서운 말이죠
여기 누구도 북한과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북한정권과 지도자 놈을 더 경멸하고 싫어합니다.
친일매국노들이 자기편 아니면 이렇게 종북좌파라고 몰아갑니다.
열심히 써 놓은 남의 글에 예의없는 댓글을 달 시간이 있다면
님이야 말로 열심히 공부해서 종북좌파가 무엇인지 알아보셔요
아이엠 에프는 아무나 극복할수 잇나요 그게 더힘들죠
그렇다...라 말하는게 종북좌파라고 몰고가시면 님은 수구골통입니까?
이런 종북좌파들 같으니라구.
재치있습니다~ㅎㅎㅎ
다들 연배가 있으실테니 인생의 경험으로 본다면 기회주의자, 배신자중 옳바른 사람이 있던가를 생각해 보면 정답이 나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