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도 계속 고민 중
필자가 첫 수필집 <<꼴찌로 달리기>>를 내고 나서, 스토리 중심의 정통수필에서 벗어난 에세이 성(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을 적은 수상록 류)의 글을 주로 쓰는데, 그 이유는 작가인 내가 나의 과거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의미 있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려고 작품을 썼지만, 독자들은 그 작품을 통해서 작가인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헤아리려 하지 않고, “아, 그 사람 참 상처가 많은 삶을 살았구나!”, “아, 그 사람 그래서 성격이 이렇고 저렇구나.” 하는 식으로, 작가 분석을 통한 자기 관음증 충족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알고서부터 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다른 수필작가님들의 수필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많이 써서 카페 등에 올린 바가 있습니다. 수필 작품도 이렇게 읽고 감상하라는 일종의 가르침인 샘이지요.
그런데 필자가 에세이 유(類)의 글을 적극적으로 토해 내니 이제는 “가르치려든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읽기 싫으면 아니 읽을 자유도 독자들에게 있는데 다 읽고 나서 기분 나쁘다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은 필자보다 하루라도 더 젊은 분들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이미 다 아는 분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사족까지 답니다. (제 글을 읽고 화가 올라 오는 분이 있다면 왜 화가 올라 오는지 작가인 필자의 마음을 분해하기 전에 자기 마음을 먼저 분해해서 들여다 보시길 조언 합니다. 그래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바른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모든 문학 장르(철학과 종교도 동일)의 창작에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기초가 됩니다. 작가가 깨우친 것(=감성으로 느낀 것, 이성과 영성으로 깨친 것)을 불특정의 독자들에게 문학적 기법(은유, 상징, 과장, 직유, 풍자등등)으로 전하여서 알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오래 기억되게 하는 데에 작품 생산의 제 1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했더니 '깨우침"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어떤 지인 분이 “우리가 성철스님처럼 깨우쳐야 하느냐”고 되묻더군요.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고 반항이지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감성적인 글은 누구나 쉽게 공감은 하지만, 수필에서 현재의 자기 기쁨이나 자기 행복을 담은 글을 쓰면 “자기 자랑”이 되어 독자들이 질투하고 팔불출이 취급합니다. 그걸 아는 작가는 그래서 과거의 아련한 추억(그리움, 사랑, 회한, 고통)을 되살려서 그려 냅니다. 그러면 이제는 작가의 과거 삶을 분해해서 작가의 현재 행동 양태를 파악하려 들고, 아 저사람 과거가 그래서 현재 이렇고 저렇구나하며 작가의 인간성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달려듭니다. 값싼 동정이나 인간성 평가를 받자고 잠을 설쳐가며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닐진데, 우리 수필 독자님들은 거의 대부분이 수필가가 쓴 수필작품에서 작가의 삶을 정신분석하듯이 해부하고 거기에다 연민과 동정을 보내려고 달려든다는 것입니다. 작가를 모르는 일반 독자들 보다 작가를 일상으로 접하는 수필 작가들이 동료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그런 경향이 더 많이 있다고 하는 게 바른 표현이 되겠습니다. 시나 소설은 그렇게 읽지 않으면서 수필만은 꼭 그렇게 읽습니다. 이게 수필의 한계 입니다.
물론 그런 동정을 통해서 독자는 대리 만족을 작가는 자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 그런 연민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글을 저 수많은 수필가들이 똑 같이 써내는 게 독자들에게 무슨 의미(=유익)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읽으나마나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토해내면 독서할 가치성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써서는 개인주의에 충실한 요즈음 시대에는 "책을 받자 마자 쓰레게 통"으로 간다는 것입니다.(<시민과 함께 하는 수필의 날> 행사시에, 서문시장 지하철 역에서 공짜수필책 나눔 행사를 했는데 받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람들이 몇 배나 많있던 현장에서 입증된 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필자도 등단한 초창기에는 보내오는 모든 작가님들의 수필 책을 꼼꼼히 죄다 읽었는데 지금은 제목만 봅니다. 너무나 많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담은 수필 책들이 하루에도 여러권 날아오니 이제는 책을 받았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21세 때인 1904년,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 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고 썼습니다. 옳습니다. 책과 문장은 독자의 잠든 영혼을 쪼개는 도끼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인류에게 길이 기억될 날카로운 도끼가 될 문장을 남겨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두 번 수필집을 내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떻게 쓸까' 계속 고민 중 인 것입니다.
작가 여러분! 독자들에게 아부하는 글을 쓰지 마세요. 그들의 잠든 영혼을 깨부수는 글을 쓰세요!
그런 글을 써야 독자들이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보게 됩니다.(2022.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