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허름한 야산에 커다란 컨테이너가 지게차로 내려졌다.
이사장이 놓을 장소를 지휘하는데 반대편의 트럭에서는 여러 이삿짐이 내려지고 박상이 지켜봤다.
경차에서 내린 호규가 다가오자 모여들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을 구멍은 있다더니 가까운 장소를 이리 쉽게 구할 수 있다니 다행이네요"
"아파트 한채값 모두 털어넣었는디 시상에 돈으로 안되는 일이 어딧것냐?"
"그깟 서민 아파트 몇푼이나 간다고 어지간히 노래부르네..호규야..돈에 너무 연연하면 크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넌참 싸가지가 있는 편여"
"노래라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숨은 대재벌인양 폼잡던 사람이 알고보니..전세방값도 없는 개털신세라니..한심해서 원"
"돈은 날자 그 쥑일 년이 몽땅 들고 날랐다잖아!"
"이제 잘못되는 건 모두 날자탓만 하겠네. 일리는 있어. 호규야 돈에 어두워지면 안돼. 죽으면 싸들고 갈 것도 아니고"
"내말이!"
"까탈한 총무가 알고보니 회장아들이었다니 장차 복이 들거다. 사양했는데도 기어이 오천만원을 돌려받았으니 얼마나 감동했것냐"
"그건 틀림읎지..1억도 안나가는 아파트한채를 빌딩 한동인양 유세하느라 안달인 팍상보단..훨 감동이지"
"싸움도 재밋거리겠지만 그만들 좀 하세요. 저는 누구 편을 들어야..아니 태후편이요. 저는 태후편입니다! 태후도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겁니다. 경우바르고 똑부러지고 보통남자보다 훨 나아요"
"너..너가 지금..감히 내게 정면도전을!"
"파문하고 싶겠지요. 예 저도 이제 같이 안살아요. 라면 끓이기도 설거지도 지겹고요. 두분 수발할 자신없다고요"
소리에 놀라는 이와 박이었다.
"저아래 다가구서 혼자 살며...수업..가르침은 받겠지만..선생님들 인생엔 일체 관여하지 않을겁니다. ..필요하다면 가정부를 구해드리죠"
"그래 맞다..이생 호규 걍 냅둬.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우리가 지리산속 도사들도 아니고 호규 다컸어. 솔직 우리 도움이 아니어도 클기여"
"그래..가번져라. 실은 나도 네 눈치 보기 힘들었다...예펜네에 이어 딸도 배신 때렸는디 하물며 제자따위.."
"서운하시겠지만...포기해야 얻는 것도..떨어져있어야 깨닫는 것도 분명.."
"미워도 다시한번 찍냐? 당장꺼져 이늠아!"
13. 선생님
리어카에 잡동사니 이사 물건을 가득 싣고 중간재를 내려오는 호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올해는 넘기려했지만 중간재가 없어졌으니 할 수 없지'
다가구에 이사짐을 부리는 심호규.
'중고제 명인은 찾을 수 있으려나?
판소리에서도 얻는 게 있으려나?
동편제 서편제까지 모두 섭렵해야 되나?'
물건을 방안에 정리하면서도 계속 모색중이었다.
'이생팍상은 과연 명인이고 고수일까?
나같은 어중간.. 어정쩡..엉거주춤..?
이도 저도 아닌 날라리..부류일까?'
암담해지는 눈..
'도무지 울내와 똑 같이 발전도 개선도 차도도 안보이니..그 꿈속의 노래는 언제나..실현이 될려는지..'
그러다 이를 악물며 눈을 빛낸다.
'그래, 괴물같은 이생팍상도 벗었으니 날자도 벗어나야 돼. 내려놔야만 초월하고 도약할 수 있을지도..'
그러다 퍼뜩
'마, 맞아, 선생님!'
강원도 산골 풍경에 이어 해변의 작은 도시. 큰 학교 앞 거리로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미인이 걸어왔다. 하늘색 긴 원피스에 머리를 뒤로 한갈래로 묶었는데 테가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다. 미모에 몸매도 날씬하여 타고난 미녀의 시선이 멈춘 곳에 허름한 청년이 엉거주춤하고 있었는데 물론 심호규였다.
활짝 웃으며 두팔을 벌리지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호규였다.
"호규야, 어쩜 십이년전 그때와 똑같으니? 조금도 안변했어"
한발 다가오면 한발 물러나는 식의 엉거주춤인데
"예..그때와 똑같이 숫기도 없고 눈치도 없고 바보인 호규여요. 선생님 역시 옛날과..아니 그때보다 더..몰라볼 뻔 억"
등이 벽에 부딪쳐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 다행 정재인 선생님도 더 다가들지는 않았다.
"전에 간간 네 소문을 들어서 추리했었는데 정말이었다니"
"많이 놀랬지? 난 탐정이 적성이 아닐까 착각? 히히 뿌듯했단다. 네가 그다음날 확인전화가 올 때까진 엉뚱한 사람에게 네 이름 판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흐흐흐"
"많이 놀랬고 고마웠고 감격했었어요. 선생님이 제 이름을 기억하실 줄은 꿈에도.."
"난 더 그랬단다. 대가수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대가수 아니거든요. 장차 그리 될지는 모르지만"
"아니 넌 돼. 내가 알아"
"그그리 아시는 근거가"
"무엇보다도 넌 감수성이 뛰어나거든. 감정이라고 해야 맞나. 내 한마디에 홀랑 녹아 그 가시밭길로 뛰어든 것만 봐도 글찮아키키키킥"
"아..알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일리는.."
"크크큭 알은 뭐고 계란은 뭔데..넌참 재미있어"
"아차참..다닭..아니고..병아리가 먼저 같은데..? 아참.."
"쿠하하하..커커컥.."
어느새 호규의 가슴을 때리며 폭소인 선생님이었다.
"얘, 학생들이 우릴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거리서 이러지 말고 울집에 가서 얘기하자"
"지..집에 가족들이"
"아니 혼자 살아. 물론 결혼은 했으니 오해말고. 신랑과 애는 서울에 따로 살아. 이쪽이야"
같이 걷는데 어느새 선생님의 손이 호규의 손을 잡고 있어 감전되는 호규표정이었다.
"그래 넌 결혼은 못했을 거고 여친..애인은 있니?"
"이, 있어요..있었어요. 여태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특해라. 요즘같은 삭막한 시대에 호규가 연애도 하다니"
"아아..지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선생님들은 너같은 제자를 만나는 게 큰 행복일걸. 뭐 좋아하니 무슨 음식 먹을래?"
"선생님이 만든 것이라면...라면도 좋겠어요"
"만들 순 없고 우리 순대랑 떡볶이 사다 먹자. 맛있는 곳이 있어"
"그래요 뭐든...어쩌면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지..명랑하시고 잘 웃으시고"
"단순하고"
"결코요. 학생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알아주고 친동생같이 부담없이...진주..국보같은..문교장관 할 귀재가 여태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니 울나라 교육 문제가 많긴많은.."
"쿡쿡 얘가 왜 이리 말이 매끄러워졌지? 우리 좀 비싼 음식 먹을까?히히히"
그러다 잠시 시선을 바다쪽 먼곳을 향하고는
"그런데 호규야. 너도 나도 가야할 길이 달라..결국 인생은 홀로인거야..누가 뭐라 해도 절대고독은 피할 수 없어. 부모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그런...가요?"
"넌 아직..좀더 살면 알게 될거야"
"....."
"괜히 이상한 얘기했나보다. 조만간 서울로 옮기면 자주 만나서 대화나누고 놀자"
"서..서울로 전근인가요?"
"아니 명문대학교에서 교수로 와달래"
"..."
"왜 그런 표정이니?"
"왜 하필 서울인가요?"
"?"
"사람많은 서울보다 지방이 선생님을 더 필요로 할 것 같은데..제2 제3 제4의 심호규..이우태 공영진 장석현 강효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은데..."
"!"
"서울...교수만이 아니라 총장 장관 대통령까지 못할 것 없겠지만...그럼 여기 남겨둔 학생들은 어찌되나요? 그 실망 허탈 텅빈 가슴은 어떡하나요?"
"..."
"떡볶이 순대 라면 슈퍼 세탁소 혹은...선생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추워지고 외로울 건데...여기 지방에도 대학교 있을 거잖아요. 오히려 서울에서 여기로 가족을 불러들이면 어떨까요"
"이..일리가 있어..하긴 세월이 세월이니 너도 컸겠지..나를 가르칠 정도로..."
"가..가르치다니요! 그런 마..망극한 말씀은제발억"
선생님의 손이 자지러질듯 호규의 가슴을 쳤다.
"너때문에 얼마만에 웃는지...그래. 고민해볼게..서울은 이제 싫어졌어"
"근데 선생님은 확실히 변했네요...이리 폭력을 쓰다니"
아예 두 주먹으로 복싱하듯 원투를 날리고 발로까지 차려들며
"정말 격투기나 배워야겠다. 아참 평택이랬지 아예 평택으로 이사갈까?"
호규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그건 여기 지금 제자들이 걸려서 안되겠다. 넌 연애할만큼 다컸으니까 혼자서도 잘살 거니까..이집. 바로 저방이야"
멋진 양옥의 2층인데 아름다운 창가에 예쁜 화분까지 두개 놓여있었다.
"들어가있음 내가 떡볶이랑 순대 이내 사갈 테니까"
"아니오..감히 제가 어떻게 선생님방을 더럽혀요..남들 눈도 있는데.."
"너..너 정말 맞아볼래?"
"저기 골목 끝에..바다가 보이겠네요. 저기까지만.."
둘이 나란히 걷는데 호규가 둘러보며
"이골목도 뭔가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청라언덕이던가 같은.."
"여태 몰랐니? 호규로잖아크카카카캇"
"파파테루!벌금..."
"...으로 저좀 안아줘요..한번만..잠시만.."
그러자 팔을 벌려 호규를 꽉 안는 선생님이었다.
"호규야..."
"됐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니 내가 안되었어. 호규야..언제 어느 때라도 와. 넌 둘도 없는 동생같은 제자니까..남편같은 애인이니까..선생 뺨치는 제자니까..크큭 말이 자꾸 엉키네.."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물어볼 것도 배울 것도 많았는데...더이상 원하면 하늘이 노해 천벌을 받을 것 같아요"
골목끝까지 온 참인데 마침 [쿠르르뚝딱] 뇌성벽력이 치는 통에 놀라는 사제였다. 더 놀란 선생님의 어깨를 감싸 진정시키며
"봐요 경고하잖아요. 하루에 전화 한번쯤은 참아줄 테니까"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안의 한결 성숙해진 표정의 호규였다.
'하늘..하늘...이제 와서 종교도 알아야 차도가 생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