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 3,14-21; 루카 12,49-53
+ 오소서 성령님
제1독서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바치신 장엄한 기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종족’이라는 단어는 본래 ‘가족’을 뜻합니다.
여기에 언어유희가 있는데요, 그리스어로 아버지는 ‘파테르’(pater)이고 가족은 ‘파트리아’(patria)입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되던 고대 시대의 관습이 반영된 것인데요, 따라서 모든 가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파트리아는 파테르에게서 이름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하늘의 영적 존재들과 땅에 있는 모든 인류의 기원이 아버지 하느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이어 사도는 다섯 가지 청원을 하는데요, 첫째,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아버지의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둘째,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셋째, 여러분이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주시고, 넷째,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다섯째,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이중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해석도 있고 ‘하느님의 계획’ 또는 ‘하느님의 지혜’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떤 교부들은 이 네 가지가 ‘십자가’의 네 가지 방향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했는데, 이 다양한 해석들을 모두 모아도 훌륭한 해석이 됩니다. 즉 하느님 계획의 신비는 하느님의 지혜를 반영하는데, 이는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느님의 계획이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깨닫는 능력을 주시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세 가지 말씀을 하시는데요, 첫째, 불을 지르러 왔다, 둘째, 시대를 알아보라, 셋째, 늦기 전에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께서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어순 그대로 읽으면 “불을 나는 지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세례가,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입니다. ‘불’과 ‘세례’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루카 3,16)이라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불 혀 모양의 성령을 보내시어 제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이는 당신께서 받게 되실 반대와 박해, 수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시며 한 집안의 식구들도 서로 갈라져 맞설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가 오기까지, 분열도 각오해야 합니다. 복음을 따라 살려 하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스르는 사람들로부터 반대와 박해를 받을 것인데 이는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에게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열의 시기가 지나면 마침내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1독서의 말씀처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가 가진 희망보다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에페소의 원형 극장
출처: Ephes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