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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건죄의 규례 및 제사장의 분깃
7:1- 10: 1 속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는 지극히 거룩하니 2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의 희생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 그 모든 기름을 드리되 곧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고 5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이는 속건제요 6 지극히 거룩하니 이것을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며 7 속건제나 속죄제는 일례니 그 제육은 속하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8 사람의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얻을 것이며 9 무릇 화덕에 구운 소제물과 솥에나 번철에 만든 소제물은 그 드린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10 무릇 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아론의 모든 자손이 평균히 분배할 것이니라
이것은 속건제의 기본 절차를 설명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5:14-6:7에 설명되었던 속건제 절차의 보완이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내장, 콩팔의 기름 그리고 간 꺼풀을 화제로 여호와께 드렸다.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다.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사장의 몫과 먹을 수 있는 자격 및 방법이 같다는 것인데 이 경우 속죄제는 족장 및 평민의 제사였다. 속죄의 표시로 드려진 제물은 헌제자가 먹을 수 없고 오직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다. 반면, 번제의 경우에는 가죽이 제사장에게로 돌아갔다.
소제물의 화덕에 구운 것이나 번철에 부치고 솥에 삶은 것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2:4-8). 이는 요리된 소제의 양이 적었기 때문이다. 다른 소제 즉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첨가한 것은 양이 많아서 모든 제사장들에게 분배되었다(2:1-3,14-16). 이 때 특별한 때 소량만 드리게 되는 경우였고, 다른 소제 즉 마른 과일이나 곡식 등은 소제 예물의 보편적 형태로 양이 많았고, 모든 제사장들에게 균퉁히 분배되도록 했다. 이 분배는 문제가 되어 후에 제사장들을 반차로 나누어서 번갈아서 봉사하게 했다(대상 24; 녹 1:8-9; b. Ta'an. 27a). 제물의분배로 인한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분배에 관해서까지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볼 수 있다.
화목재 희생과 제육의 규례
11-21: 11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 희생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12 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 13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리되 14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16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17 그 희생의 고기가 제 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18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 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 19 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사를 것이라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을 것이니 20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 21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이곳에 는 화목제 추가 규례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화목제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감사제, 서원제, 그리고 자원제이다. 감사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대한 예배자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랍비들은 시편 107편에 근거하여 항해로부터의 안전한 귀환(107:23-25) 사막 여행으로부터의 안전한 귀환(107:4- 8), 질병으로부터의 회복(107:17-22), 그리고 감금에서 석방(10- 16) 등을 열거했다(b. Berakoth 54b). 서원제는 소원 성취를 위해 서원할 때나 또는 그것이 성취되었을 때에 드리는 제사이다. 자원제는 낙헌제라고도 하는데 한 가족이나 가문이 하나님 앞에 벌이는 축제를 의미한다.
화목제는 소제와 함께 드려졌고 미쉬나에는 회식용으로 누룩 넣은 빵(떡)인 유교병과 무교병을 위한 고운 가루를 동일하게 드렸다고 했다(Menahot 7:1). 홈 없는 소, 양, 또는 염소중 압수 구별 없이 드려졌는데 (3: 1.6.12) 여기서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를 누리는 데 있어서 누구나 인간의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음을 나타낸다. 제사 방법은 거제로 제단 앞에서 제물을 상하로 들었다. 내리는 제사 방식이다. 화목제로 드려진 소제인 누룩 없는 무교병, 무교전병, 그리고 구운 과자는 화제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제외하고는 집전하는 제사장의 몫이었다. 누룩을 넣어 넓적하게 구운 떡인 유교병은 무교병보다 맛이 더 있어 화목제의 공동 식사와 친교를 위해 사용된 제사 음식이다.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은 될 수 없었다(2:11 - 12).
감사제의 희생 고기는 제사 당일에 먹었고 서원제나 자원제는 다음날에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 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살랐다. 이러한 규정은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계를 누리는 화목제의 경우 가난한 이웃들과의 축제적 성격도 되고 여호와의 성물이 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것도 되기 때문에 불사르도록 한 것 같다. 이러한 조치는 자동적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초청하여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이다(신 12:11-12, 17- 18; 16:11; 시 42:4). 예수님께서도 잔치를 배설할 때에는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눅 14:13)고 하셨다.
이것은 모세에게 주신 축제에 대한 원칙의 반복임을 볼 수 있다. 감사제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고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아야 했지만, 서원제나 자원제이면 이튿날에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기가 제 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르어야 했다. 만약 고기를 삼일까지 남기면, 제사가 열납되지도 않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되며, 그것을 먹는 자는 가증한 것이 된다고 했다. 즉 썩어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또한 여기서 제사장은 음식을 축적하지 말고 매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 앞에 더럽고 부정한 제사가 된다. 부정한자가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처형을 의미하거나 또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재산권과 예배권이 박탈되어 죽음 이상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다(출 12:15,19; 30:33,38; 31:14; 민 19:13; 겔 14:8,13,17,19,21).
피와 기름 금지 규례
22-27: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3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24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달리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 말지니라 25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희생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26 너희의 사는 모든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말라 27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벡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여기서는 제사장에게 금지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미 주어진 금지 규정(3: 17; 7:19-21)에 대한 추가 조항이다. 기름은 힘의 근원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고 피는 생명의 근원이며 속죄의 수단이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기름은 먹을 수가 없었다. 제물이 아닌 짐승의 고기는 먹을 수 있었지만(7: 15), 반드시 피를 빼고 먹도록 했다(신 12:16). 기름은 생활 용품(등잔 기름이나 광택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피는 일절 금지되었다(17:10- 14).
화목제의 제사장의 몫, 그리고 영원한 제사규례
28-38: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9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화목제의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 희생 중에서 그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가져오되 30 여호와의 화제는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 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릴 것이며 32 또 너희는 그 화목제 희생의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33 아론의 자손 중 화목제 희생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우편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라 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35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 자손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36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 이니라 37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 38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꼐 드리라 명하신 날에 시내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하셨더라
여기서는 제사 방법 및 제물의 분깃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다. 제사 방법에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불로 태우는 화제가 있다. 이는 5 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사 방법이다. 제물(짐승이나 가루, 기름, 유향 등)이 불태워지고(1:9, 13,17; 2:1-3,9- 11; 3:3, 5, 9, 11, 14, 16; 6:17-18; 7:5) 연기가 하나님 면전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을 예표하고 헌제자 빛 이스라엘 전 민족(번제의 경우)의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상징했다.
요제는 위 · 아래와 좌 ·우로 흔드는 제사인데, 화목제 및 초실물(레 23:15,20; 민 8:11-15) 등을 하나님께 드릴 때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리고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음을 상징했다. 이러한 것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생명이 근원이시며, 인간의 대표로서 하나님께 드려짐을 예표했다. 거제는 높이쳐들고 올리는 방식의 제사이다. 제물의 우편 뒷다리, 처음 익은 곡식 가루나 곡식, 십일조, 포도주, 기름 및 전리품(민 15:20; 18:24; 31:50- 53; 느 10:39) 등의 땅의 초실물을 하나님 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생명과 축복의 시여자임을 인정하고 일부를 그분께 드리고 다시 받는 예식이다.
화목제 제물의 가슴을 요제로 드렸다. 이렇게 가슴을 흔들어서 ‘흔든 가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7:34; 10:14- 15; 민 6:20; 18:18). 고대 세계에서 가슴 부위 (ribs)가 좋은 고기로 축제에 즐겨 사용되었다. 이것은 아론과 모든 제사장들에게 주어졌다.
가슴 부위를 모든 제사장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의 이유가 제시된다. 특히 요제의 몫에 대한 분배방법은 의미가 있다. 모든 제사장들이 제물에 대한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제물 몫에 대한 제사장들 간의 갈등을 줄이고 평민들에게는 선호하는 제사장의 봉사를 요구하는 욕구를 없애며 이 의식의 외형은 제사의 아름다움과 제사장 직에 대한 존경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Milgrom, Studies in Cultic TeTminology, 162).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삼아 집전하는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 모세 시대 이전에도 제물의 앞다리는 봉사하는 제사장의 몫이었다. 거제로 들어 오린 뒷다리를 ‘든 뒷다리’라고 불리기도 했다(7:34; 10:14-15).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것을 제사장들의 영원한 소득이라 했다.
이로서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사업에 전념하도록 했다. 여기서 우리는 성직에 종사하는 자들의 생계에 대해서까지 염려하시고 그들의 사역에 대한 삶을 보장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오늘날처럼 산업 자본주의 사회와 같이 기술이나 화폐 경제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순수한 농경사회의 물물 교환 방식의 체제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제사장들과 그들의 생계에 대한 놀랍고도 지대한 관심의 표현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성직에 종사하는 자들과 그들의 생계 문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와 같이 여전히 하나님의 관심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제사법의 규례들은 시내 광야에서 제물을 드리라 명하신 날에 말씀하신 것이다. 즉 출애굽 (c. BC 1445) 제 2년 1월 1 일에 성막이 봉헌되고 시내 산을 출발한 날이 동년 2월 20일이니까 제사법에 관한 계시가 주어진 기간은 이 사이 어느 기간에 주어지 말씀이다.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중요한 점은 성소에서 예식과 제사를 집전했던 제사장들에 관한 것이다. 물론 신약 시대에 피를 드리는 것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거룩한 예배를 인도하는 데 있어서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제사장이나 헌제자가 제사법과 관련된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 고 헌제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 이 되었다(7:18).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한다(요 4:24). 성도들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 12:28- 29). 여기서 고도의 영성과 은혜가 넘치는 예배를 위해서는 최선의 준비와 훈련이 필요함을 보게 된다. 오늘날에도 완전한 예배를 위해서는 가장 사소한 면에 이르기까지 가장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어야 함을 보게 된다.
구속사관
성물은 거룩하기 때문에 반드시 구별된 장소에서 먹어야 했고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이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이 개념은 신약에서 복음사역에 헌신하는 자들은 신자들로부터의 지원을 은혜롭게 그리고 폰귀하게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가르친다(고전 9:7-14; 덤 전 5:18; 마 10:10).
화목제의 고기 중 어떤 것도 남겨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매일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의지해야 함을 가르친다. 이런 자세는 모든 신자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1) 라는 주기도문의 모델을 제시한다. 통일한 정신으로 신자들은 물질적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하나님과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의 펼요가 충족된다는 것이다(마6:19-21,33; 빌 4:19; 히 13:5; 딤전 6:10).
제사장이 번제단의 불을 매일 간수하고 재를 치웠다. 그들이 매일 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러한 것은 제사장은 늘 하나님과 교통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에서 자신이 제사장인 신자들은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보내야 함을 웅변적으로 나타낸다. 물론 이 일에는 시간과 준비가 요한다.
구약의 제물의 취급 및 처리방법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것처럼 신약에서의 예배도 하나님의 거룩성에 조화되는 진리 가운데서 드려야 한다(히 12:29). 역동적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지만, 주의 깊은 준비로 질서와 거룩성이 있어야 한다(고전 14:26- 40).
이상에서 말한 5대 제사의 특성은 제사의 중보자로서 제사장이 드리고, 번제단에서 희생의 피를 근거로 드려졌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거룩하게 화제로 드려졌으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대로 진행되었다.
제사법의 정신:
제사법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며,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신 사랑의 명령이다. 인간의 기본적 자세가 하나님을 섬기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기에 이렇게도 여러 가지의 다양한 제사제도의 규정들을 주셨다. 자구적으로는 구약이 끝나고 십자가의 구속 사건으로는 그 의식적 법률 조항 및 구속력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5대 제사의 지고한 법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신약에 그대로 용해되고 확대 적용되고 있고 더 나아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한한 의미와 교훈을 담고 있다. 모든 제사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형으로서 신약의 진리의 원형이 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고 그분의 생애와 고난,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하늘 봉사에 그대로 구현되고 승화되었다. 번제는 전체를 불사르는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대속의 원리와 헌제자의 삶 전체를 번제물처럼 바치는 헌신을 나타낸다. 이 제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과 그분의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죄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의 삶을 가리킨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 번제물처럼 하나님 사업에 온전히 헌신하고 복종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도리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소제는 우리 인생의 삶의 시여자요 유지하시는 공급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우리들의 삶 전체가 향기로운 성화된 제물로서 겸손과 감사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우리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고 서로 화목하도록 해야 함을 보여 준다.
화목제는 죄인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을 나타낸다. 하나님과의 화해와 이웃 사랑 및 친교를 볼 수 있다. 신앙 생애가 항상 기쁨이 넙치는 화목제물이 되어서 이 구원의 축제에 우리의 가족, 친척 및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화목의 사신이 되어야 한다. 요행이나 우연 혹은 판자소관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정직하게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속죄제는 말 자체가 죄의식과 동시에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연약성과 부지중의 죄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속죄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할 수 있다는 것과 속죄제의 제사장 사역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는(sin- bearer) 주님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예배와 경건 생활에서 성도들은 죄를 일일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자복하며, 속죄를 받는 경험 그리고 죄용서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속건제는 죄용서와 배상의 원리를 가르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값을 갈바리 십자가 상에서 갚아 주셨다. 십자가상에서 우리의 악한 모든 죄값을 배상해 주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이 위대한 대속의 은총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보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웃이나 하나님께 대한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가능한 한 먼저 변상하고 화해하며 죄용서를 구해야 한다.
위와 같이 제사제도의 법정신인 속죄, 헌신, 감사, 회개, 변상 및 화해와 친교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구약(미 6:6-8)과 신약(마 5:23-24; 8:4; 23:2- 3) 모두 이러한 제사법의 실천인 실제적 경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예수님 지상 생에 기간 중 이러한 제사제도는 계속되었고 그분께서도 제사제도의 모형적 특성을 말씀하셨다(마 26:28). 사도 바울도 제사제도를 그리스도의 참된 희생의 모형으로 설명한다(고전 5:7; 히 10:1-11). 오늘날 이러한 제사법들은 그리스도인 예배와 삶 전체에 그대로 살아 있는 산 생명의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성도의 자세이며 산 제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