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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궁극이
58편 3절-8절: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찌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하나님이여 저희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저희로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3절: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이 말이 아이가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었으면 이 아이가 하나님과 가까워질 텐데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죄를 지어서 아이가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거냐?
어머니의 한 태에서 나온 에서와 야곱이 하나는 하나님과 가까웠고 하나는 하나님과 멀었는데, 이것은 이들이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었다 안 믿었다 해서 이렇게 된 거냐? 믿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라는 표현을 한 건가?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라는 이 말씀이 교리적으로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를 말하는 것임을 전제로 하고, 이 말씀을 우리의 이룰구원 차원에서 생각을 해 보면 해석이 조금 달라진다. 오늘날 교인들이 기본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다 행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룰구원 차원으로도 봐야 한다.
우리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처음 믿을 때부터 교회에 들어오던 길로 진리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자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완전히 비뚤어져 나갔다는 거다. 거짓된 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예수 믿는 처음부터 비뚤어져 나간다. 이걸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라고 하는 것은 신령천국에 갈 수 없는 기본구원에 관한 말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서도 처음부터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거짓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거짓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신앙을 하는 질이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불타지고 없어질 세상 것을 목적으로 믿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니 이런 신앙은 거짓이라는 거다.
4절: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사람이 독사에게 물리면 몸에 서서히 독이 퍼지면서 정신이 흐려지고 결국은 죽게 된다. 정신이 흐려진다는 것을 교훈적인 면으로 보면 분별이 안 되는 것을 말한다. 이건 서서히 죽어가는 거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뱀 속에 들어가서 하와를 유혹했다. 하와는 이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 즉시로 하와의 영은 죽었고 이성과 몸은 점차적으로 죽어 들어가게 되고, 결국은 죽는다. 영이 즉시 죽었다는 것은 영에 관한 것은 한 이치 한 이치를 깨닫고 수입이 되는 것이 그 즉시 즉시 된다는 거다. 그러나 영적 성장적인 면에서는 완전을 향해 점차적으로 된다.
어린아이가 출생하자마자 몸과 마음이 성장이 되어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출생을 하는 즉시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다. 이런 인생을 선악과 따먹은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죽게 방치해 둔다면 이 사람에게서 무슨 목적이 없어지느냐?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없어진다. 이런 인생을 사랑의 하나님께서 가만 보고만 계시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서 사죄 칭의 새생명을 입혀서 마귀가 손을 댈 수 없는 영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다.
이런 성도를 죽이려는 사단 마귀의 종들이 교회 안에 있는데, 이들의 말 속에는 성도를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독이 들어있다. 여기서 죽이려 한다는 것은 기본구원을 얻은 성도의 중생된 영을 죽이려 한다는 말이 아니라 기본구원을 얻은 것을 바탕으로 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갈 수 있는 인격의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장할 것을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는 면에서 ‘망하게 한다. 죽인다’ 라고 표현을 하는 거다.
사단 마귀는 거짓 종들을 통해서 성도들의 영적 기능과 지능의 성장, 즉 영인성장을 완전히 망하게 하는데, 종교적인 업적을 크게 많이 이루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며 이 일에 부려먹으면서 망하게 한다. 이게 무슨 이치와 같은가 하니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도록 부려먹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지 못하고 애굽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나쁜 사람은 사람을 속여서 부려먹다가 자기의 이익을 취하면 부려먹던 사람을 버려서 폐인이 되게 한다. 그런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라고 하시는데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을 위한 일을 시키면서 애굽에 붙어있게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거짓 종들이 많은데, 성도들을 세상을 소원 목적하게 하고 종교적 세상적인 것을 취하게 해서 성도의 신앙인격은 물론이고 일반 인격적으로도 폐인이 되게 한다. 예수 믿는 자기가 미련하고 둔탁하고 모르면 이렇게 돼버린다. 한 인생마다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분명히 있는 건데 깨닫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신앙사상 면의 영과 육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도의 영적인 면을 흐리게 하는 독이 들어있는 거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교훈을 깊이 생각을 해야 한다. 교회 교훈의 기본은 항상 영과 육이 나눠져야 한다. 그리고 천국을 향한 이치가 들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저절로 구별이 되는 거다.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독사가 귀가 있느냐?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주변을 파악하려는 거다. 뱀은 귀는 있는데 잘 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코브라가 피리소리에 춤을 추는 것은 소리를 듣고 추는 게 아니라 몸으로 피리소리의 파장을 느껴서 이 파장이 자기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방어하려는 행동이다. 그래서 피리를 흔들면서 불면 코브라도 이 파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춤을 추는 것으로 보이는 거다.
귀머거리 독사와 같다는 것은 진리이치의 옳은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고집하는 것을 말하는 거다. 자기가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옳은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만 세운 적이 없느냐? 그 순간만큼은 자기는 귀머거리 독사였던 거다.
교회 안에는 귀머거리 독사와 같은 종, 귀머거리 독사 같은 목사, 귀머거리 독사와 같은 교인들이 많다. 목사님들이 종종 하는 말인데, ‘진리가 이렇고 이러니 깨달아라’ 라고 말을 하면 ‘뭘 그렇게 복잡하게 믿느냐? 나는 그냥 예수만 믿고 이대로 살다가 죽으련다’ 라고 한다. 이런 목사가 가르치는 교인들이 어떤 신앙상태가 될까? 할 수 없는 말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5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찌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술사가 악기로 여러 가지 음의 소리를 내면 독사는 이 음파를 자기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다가 독을 머금은 이빨로 사람을 물어버린다. 왜 이런 표현을 하는 거냐? 술사나 귀머거리 독사를 말한다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닌데, 이런 독사와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복음서에 장터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잔치를 열어서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음악소리가 나고 피리를 불고 하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뭔가 움직이느냐, 전혀 안 움직이느냐? 움직여진다. 그런데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데도 그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에 아무 감각이 없다면 이 사람은 감각성에 화인을 맞은 거다. 교훈 면에서도 옳은 소리를 들으면 뭔가 사람의 마음이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전혀 없다면 이 사람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거다.
우리 성도들은 감각의 느낌성이 민감해야 하되 어떤 소리를 들을 때 민감하냐가 중요하다. 무슨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를 민감하게 들으면서 느끼는 감성의 분별력이 빨라야 한다. 어떤 말이나 소리를 들을 때 무조건 반응을 하라는 게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의 감성이 자기가 꼭 들어야 할 소리를 구별해서 민감하게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사람을 볼 때 확실히 독사 같은 인간이 있는 게 분명하냐?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귀머거리 독사다. 인도자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교인들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다.
6절: ‘하나님이여, 저희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악한 지도자와 그 지도를 받는 자들은 마치 독을 머금고 있는 귀머거리 독사와 같다. 이런 자들은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듣기는 듣는데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젊은 사자처럼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죽이고, 신앙이 어리고 신앙이 약하고 분별을 못하는 자들을 자기의 먹이로 삼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이 보기 좋아서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이들로 통해 성도를 연단시킨 후에 때가 되면 사자의 이를 꺾듯이 그들의 기세등등한 것을 완전히 꺾어버린다. 이런 역사는 개인적으로도 있는 거고, 인류 전체적으로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 자기가 귀머거리 독사처럼 살다가는 완전히 꺾일 날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거다. 사람의 이빨을 꺾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말이 바로 나오느냐?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 완전히 입을 막아버린다는 거다. 기세등등했느냐? 자랑을 했느냐? 언젠가는 끽소리 못하도록 완전히 입을 틀어막는다는 거다.
7절: ‘저희로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급히 흐르는 물은 아래로 흐르다가 금방 사라진다. 악한 자들은 알고 보면 급히 흐르는 물처럼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인생이다.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섭리 안에서 성도의 이룰구원을 위한 하나의 이용물로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불쌍한 존재다.
영리하고 똑똑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산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벗어나면 진리성도의 이룰구원의 이용물로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왜 그러냐? 자기 속에서 움직이는 사상 정신이 전부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올려져 있는 사상이요, 그 질이요, 그 소원이요,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믿는 우리는 빛 되게 살다가 빛의 후손을 남기고 구원적으로 사라져야지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채 흔적 없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자기가 빛 되게 살고, 교훈적으로도 빛의 후손을 남기고, 육신적으로도 시집장가 가서 빛의 후손을 남기고. 이게 얼마나 멋있는 인생이냐? 빛의 후손을 남긴다는 게 얼마나 멋있는 인생이냐? 이렇게 살지 않는다면 전부가 이용물이다.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겨눈 살이 꺾이면 활을 쏘려고 하던 자의 마음이 어떨까? 그런데 여기서는 악한 자가 살을 겨둔다는 것인데, 악한 자가 사람을 향해 겨누는 살은 마땅히 꺾어져야 한다. 신앙적으로 보면 진리성도를 향한 잘못된 악한 주장자들은 모두 꺾어져야 한다. 그 화살은 꺾어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사람을 향해 겨냥한 악한 화살은 꺾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라. 이건 옳은 기도다. 자기를 먼저 살피고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 사람을 말로써 죽이려고 하던, 진리를 깎아내리던 이런 살들은 전부 꺾어져야 한다.
8절: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달팽이가 기어가는 뒤를 보면 자기의 진액을 남긴다. 발자취를 남긴다. 그렇게 자꾸 가다보면 달팽이에 있던 진액이 자꾸 소멸이 되고 결국은 죽는다. 그러니까 이 달팽이는 땅바닥을 기면서 자기의 일생을 모두 길바닥에 소비하고 낭비하다가 소멸이 된 거다. 여기에서 신앙 믿음의 이치를 찾아라. 모든 만물에는 우리 믿음의 이치가 들어있다. 그러니 만물을 우습게보지 말고 하나하나 생각을 해서 신앙 믿음의 진리이치를 찾아라.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솔로몬이 따로 없다.
달팽이는 자기 집을 둘러메고 다닌다. 이사를 갈 때는 벗어놓고 가면 좋은 텐데 그 무거운 집을 가지고 다닌다. 이게 타락한 인생들이 죄짐을 지고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그리고 달팽이가 길바닥을 기어가면서 자기 진액을 다 쏟아서 결국은 죽게 되듯이 악인들은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이것을 이루기 위해 사느라고 자기를 소멸시키고 결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삶을 산다. 산다고 할 때는 옳은 것으로 자꾸 자라나고 확장이 되어야 하는데 악인들은 살아갈수록 심판성이 자꾸 많아지고 누적이 된다.
한 인생을 70여년으로 볼 때 자기가 얼마나 살았느냐? 앞으로 구원을 이뤄갈 날이 얼마나 남은 것 같으냐? 그러면 자기가 그동안 살아온 날이 ‘아차’ 이런 말이 나오게 된다. 이뤄놓은 구원이 얼마나 있느냐?
악인들은 영생에 대한 자기의 확장과 건설이 없다. 자기의 소원 목적이 전부는 땅에 둔 삶인고로 전부가 사망성공의 삶이다. 사망으로 성공이 됐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성공을 했다고 하는 사람은 사망으로 성공을 한 거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차원을 전혀 감각을 못한다.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분명히 자기에게 있는 건데 자기에게 있어서 이것이 완전히 소멸이 돼버린 거다.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했다는 게 게 무슨 뜻일까? 뱃속의 아기는 열 달이 되면 나오는데, 이 달수를 못 채우고 나오면 어떻게 되느냐? 아기의 몸 상태, 뼈 상태, 두뇌 상태가 제대로 여물었겠느냐? 그러니까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했다는 것은 사람이 바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말한다. 즉 사람이 깨달음이 바로 되어서 세상에서 활동을 해아 하겠는데 그렇지 못한 자가 세상에 나왔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람이 덜 된 자가 이 세상에서 뭘 하겠느냐? 사람노릇을 못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고 참 사람으로 살다가 천국에서 영원히 존귀 영광자로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정상적인 삶이다. 인간 자기가 이 땅에 태어나서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얼마든지 받을 기회가 있는 건데 이걸 다 무시하고, 버리고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악한 것만 뿌리고 간다면 참으로 허무한 인생이다.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낙태된 어린아이는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하나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빛 된 것이 하나도 없이 살다 간다면 낙태된 아이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받고 참 사람으로 살다 가야 할 텐데, 사람노릇을 하고 가야 할 텐데 하나님의 옳은 것을 받고도 하나님 앞에 참 사람으로 살지를 못했으니 이건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거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진리의 사람으로 바로 살다가 한 인생을 마쳐야 되지 않겠느냐?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나님도 모르고, 옳은 진리도 모른 채 육덩이로 살다가 소멸하는 달팽이처럼, 낙태된 어린아이가 햇빛을 못 보고 죽는 것처럼 살아서야 되겠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